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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96

       *

         

         

         신의 영향력이 사라졌다는 것을 가장 먼저 알아차린 이들은, 당연하게도 신의 영향력에 기대어 살던 이들일 것이다.

         

         프리첸카야, 성 얀스크 대학의 신학부는 그날 혼란에 휩싸였다.

         

         

         “주여… 주여 어디에 계시나이까….”

         

         

         수녀가 눈물을 흘리며 성상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녀와 같은 수많은 신도들이 울먹이며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태양을 모방해 만든 거대한 반구형 성상은, 여전히 한낮의 볕을 받아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으나.

         

         이 자리의 모든 사제들은 신성력을 잃고 허물어져 있었다.

         

         

         “주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담당 사제들의 비통한 기도에도 신은, 그러나 여전히 대답하지 않았다. 장미 넝굴이 얽힌 신학부 본동에서, 주교는 마침내 자리에서 일어서서 걸음을 옮겼다.

         

         어째서 그들이 신성을 잃었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어쩌면 주의 말씀을 저버린 믿는 자가 있었는지도. 어쩌면 이제 우리의 악과 죄를 더 이상 방기하지 아니하시고, 이 또한 하나의 시험일지도.

         

         그러나 그 무엇이 되었든, 다행인 점이 하나 있다면. 지금 이 학교엔 주의 가장 가까운 자리를 약속 받은 사람이 있다는 점일 터였다.

         

         성녀, 파트리시아. 잘린 팔다리를 기도 한 번으로 붙이고, 물 위를 거닐고, 담수를 포도주로 바꾸는 이적을 직접 보인 여인.

         

         열다섯 어린 나이로 용사와 함께 마왕을 물리치고 돌아와, 각국의 모든 사례금을 아낌없이 헌금하여 고아와 난민을 보살피는 데 사용한 헌신적인 여인이다.

         

         주교는 떨리는 손으로 학장실 문을 두드렸다.

         

         

         “들어오세요.”

         “…학장님… 아니, 성하.”

         

         

         평소에 어떤 경우에도 성직과 관련된 호칭을 거부하던 그녀였으나, 지금 주교는 결코 그녀를 한낱 대학의 학장으로 칭할 수 없었다.

         

         신의 보살핌이 사라진 시점에, 이 어린 양들은 무릇 목자의 품에 의탁해야 하는 법이 아닌가.

         

         주교는 조심스럽게 무릎을 꿇고, 공손하게 고개를 조아렸다.

         

         

         “저희가 불민하여 주의 휘광을 잃었사옵니다. 성하, 저희를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그녀의 말에 주교는 문득 고개를 들고 말았다. 성경의 익숙한 구절이다. 원어로 암송까지 가능한. 그러나 지금 이 상황에서 저런 말씀을 하신다는 것은….

         

         

         “하니 주께서 뭐라 하셨던가요?”

         “…주께서 가라사대, 두려워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형제님. 우리는 주의 버림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원죄는 주의 죄사함 있었으니, 어찌 우리의 여죄가 주님의 넓으신 사랑을 빗겨나게 하겠나요.”

         “…성하. 소인은 불민하여 성하의 뜻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사람의 죄와 사람의 덕은 사람에게.”

         

         

         성녀는 푸릇한 난에 물 적신 손수건으로 잎을 닦아내며 말했다.

         

         

         “온 세상 만물이 주님의 조화 속에 흡족하시니. 사람의 죄와 사람의 덕 또한 주님의 뜻이라…. 주께선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시며, 우리 또한 주님을 버릴 수 없습니다.”

         “그러하시다면…?”

         “네. 신성력이 사라진 것 또한 주님의 뜻일 테지요. 그리고 저는, 교황 성하께서 인가하신 제일교권해석의 무류지권으로 선언하겠습니다.”

         

         

         정오의 햇살이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해 아름답게 산란하고 있었다.

         

         여인은 두 손을 맞잡고 조용히 속삭였다.

         

         

         “주님께서 우리 사람을 지극히 사랑하시어 마침내 사람이 오롯이 사람됨을 허락하셨습니다. 무릇 아이가 독립할 때, 어버이는 마땅히 축복하는 바. 우리의 앞날을 주께 기대지 않고, 우리는 우리의 손과 발로 걸어 나가야 합니다.”

         “성하. 하오나… 교단이 이를 어찌 이해하련지요.”

         “교황청에 서한을 보내겠습니다. 공의회를 열어 주교단을 소집하지요.”

         

         

         갑작스레 신성력이 사라졌다면, 교회의 권위는 바닥에 처박히고 말 것이다. 많은 이들은 사제들이 타락하여 신의 분노를 샀노라 여길 테니까.

         

         하지만 그것은 어리석은 민중의 착각이다. 신을 분노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신이 진정코 전지하고 전능하다면, 인간은 어떤 경우에도 신의 기휘를 범할 수 없다.

         

         인간이 어떤 행위를 하더라도 이미 알고 있었으므로. 그리고 저지할 수 있었을 테니까. 단순하게 설명하자면 그렇다.

         

         그러나 신은 그런 식으로 군림하지 않았다. 그것은 곧, 인간의 자유의지가 곧 주의 뜻이란 의미이며, 그 자유의지 아래에 일어나는 모든 일은 곧 주의 크나큰 계획에 포함되어 있다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따라서, 인간은 신을 분노케 할 수 없다. 실제로 성경에서 주가 감정을 표현한 것은 단 한 차례 뿐이었다.

         

         

        -한 처음에 주께서 하늘과 땅을 지어내셨고.

        -빛이 있으라 하시자 빛이 생겨나니.

        -낮과 밤이 나뉘어 하루낮 하루밤이 지났으며.

        -창공과 대지와 물이 나뉘어 주께서 보시기에 좋았다.

         

         

         “천지만물이 주님의 뜻대로 만들어졌으며, 주께서 이 세상을 직접 만들어내시고 흡족해 하셨으니, 참으로. 우리 모두는 탄생부터 축복받은 이들이 아니겠습니까?”

         

         

         성녀는 조용히 성호를 그었다.

         

         

         “주님의 크나큰 사랑에 이제 비로소 한 사람이 보답할 수 있게 되었으니, 저는 한낱 죄인 된 몸으로 감히 이렇게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그냥 그 자리에 계시옵소서.

         그러면 우리도 땅 위에 남아 있으리라.

         

         

         “아멘.”

         

         

         베올그린 그리켄코스.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마법사여. 우리 모두의 구원자.

         

         모든 것이 그대 뜻대로 이루어졌으니, 이젠.

         

         부디, 편히 잠들기를.

         

         

       

       

       

       

       Side ep. 이 땅에는 신이 없다.

       

       

       

       

       

       

         

         

         “아직도 별 얘기 없어요? 막 갑자기 누가 또 죽었다거나, 그런 계시 없냐구요!”

         “네, 네. 다들 잘 지내시는 모양이네요.”

         

         

         유진은 떽떽거리는 이자벨에게서 고개를 돌린 채 김치찌개를 먹었다. 이자벨은 더 이상 김치를 만들지 않았으므로, 이제 요리는 그와 유리의 역할이 되어버렸다.

         

         이반이 출장을 나가자마자 이 꼴이다.

         

         이자벨은 매일 그냥 축 늘어져서는.

         

         

         “아직도 안 와?”

         “이래도 안 와?”

         “독하다 독해.”

         

         

         이런 소리를 하질 않나.

         

         며칠이 지났다고 벌써부터.

         

         

         “늦네에, 아저씨…. 이러다 저, 할머니가 되어버려요?”

         

         

         같은 소름끼치는 소리를 하면서 칼을 휘적거리고는 자리에 누워버렸다.

         

         솔직히 중증이다.

         

         

         “내 영혼에는 초원의 별이 흐릅니다….”

         

         

         에시디스는 멍하니 작곡을 시작했다. 그녀는 관현악부와 지휘과 교차 지원을 한 주제에 작곡과의 역할까지 탐내며 악보에 낙서를 하고 있었다.

         

         이젠 더 이상 성악조차 아니다. 화음따윈 개나 줘버린 것처럼 가사를 써내려가고 있었다.

         

         실제로 그녀의 영혼엔 초원의 별이 흐르고 있긴 했다. 드로안은 초원과 황무지로 이루어진 척박한 땅이었으니까.

         

         

         “삼촌이 사라진 것이 슬펐고, 사라지고 싶지 않아서 나는 아이처럼 울었습니다….”

         “여러분, 저를 구하려면 삼촌과 시간을 잔뜩 보내야 합니다.”

         

         

         닭의 살을 발라내 튀겨서 빵 사이에 끼워주면 진정이 될까.

         

         화이트소스는 어떻게 만들어야 하지. 하며, 유진은 한숨을 내쉬고 이 금쪽이들을 동아리방에서 내쫓았다.

         

         간신히 되찾은 평화 속에서, 그는 미간을 꾹 누르며 고개를 흔들었다.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르고 계신 겁니까.”

         

         

         [퀘스트 등재]

         [“???급 퀘스트” 만년의 겨울, 세나스 게오르.]

         [엘프가 유예한 세월의 겨울이 도래합니다. 바다가 얼고, 하늘이 갈라지며, 신이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기도하십시오. 그러나 자비를 바라지 마십시오.]

         [목표 : 세나스 게오르의 처치.]

         [선택 목표 : 알렉산드르 키릴로비치 크라실로프 처치.]

         [선택 목표 : 추밀원 설득 혹은 제거.]

         [선택 목표 : 이드란힐 점거 또는 만년궁 점거]

         [선택 목표 : 베올그린 그리켄코스와의 조우.]

         [부가 목표 : 3개 이상의 마일스톤을 정지.]

         [부가 목표 : 이드란힐의 마일스톤을 정지.]

         [부가 목표 : 칼리온의 존속.]

         [보상 : 크라실로프의 부동항 확보, 연합 왕국 전역의 제공권 확보, 공중전함 설계도 공개, 연합 왕국의 분열 3년 연장.]

         

         

         “신이 나오고 그러는 퀘스트를 지금 1학년들 모인 데서 주면 이게 벨런스가 맞나 싶어요.”

         

         

         유진은 상태창에게 투덜거렸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상상도 하기 어렵지만, 어쨌건 퀘스트가 터진 이상 지금 칼리온에선 난리가 났다고 봐야겠다.

         

         적어도 틸레스 내전 수준의 난리가.

         

         어쨌건 지금 크라실로프에 있는 그가 해줄 수 있는 일이란 것이 달리 없다. 그는 그저 가끔 쳐들어와서 깽판을 치는 동료들을 쫓아내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기도 전에, 퀘스트창이 다시 점멸하며—

         

         

         [퀘스트 완&*133@#]

         

         “엑.”

         

         

         갑자기 상태창의 글자들이 깨지기 시작했을 때, 비로소 그는 사태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S급 퀘스!#$” 만년!@#]

         [이제!@#%#%]

         

         

         “뭔데. 뭐, 뭐, 무슨 일인데?!”

         

         

         유진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마구 점멸하는 푸른 창을 바라보았다.

         

         파직, 파직, 하는 소리와 함께 일그러지던 푸른 창이, 한순간 크기를 키우며 그의 시야를 덮었다.

         

         

         [목*$& : 너는 신을 죽였다.]

         [보조 목표 : 이제]

         [부가 목표 : 너희는]

         

         

         깨진 글자들이 조립되듯 다시 읽을 수 있는 상태가 되었지만. 내용은 그렇지 않았다.

         

         

         [보상 : 자유다.]

         

         

         유진은 오싹, 소름이 올라온 팔뚝을 쓸어내리며 침착하게 숨을 내쉬었다.

         

         

         [전파 차단으로 인하여 라이브 서비스 서버와의 접속이 끊어집니다.]

         [당신의 위업에 경의를 표하며, 우리는 당신에게 추가 컨텐츠를 공개하겠습니다.]

         [이제 당신!@#%$%]

         [선택하십!%%^]

         

         

         [“불가능급” 퀘스트. 별이 된 전사들.]

         [“불가능급” 퀘스트. 교리전쟁.]

         [“불가능급” 퀘스트. 대몰락의 서곡.]

         [“불가능급” 퀘스트. 샛별의 화신.]

         [“불가능급” 퀘스트@%#$^ 진정한 자유를 위하여.]

         [목표 : 신살자, 이반 페트로비치 예레모프 처치.]

         

         

         유진은 공포에 질린 채 힘겹게 숨을 몰아쉬었다. 그러나 푸른 창의 폭주는 멈추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라도 더 하겠다는 듯이, 차라리 악의마저 느껴지는 문장들이 그에게 몰아치기 시작했다.

         

         

         [자유롭게 선택하십시오. 그러나 당신이 선택하지 않은 퀘스트는 ‘실패’ 처리 될 것입니다.]

         

         

         협박이라도 하듯이, 각종 목표, 보상, 실패의 패널티가 눈 앞을 정신없이 어지럽히고 있었다.

         

         유진이 간신히 상태창 위의 글자들을 읽고 있는 와중,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마침내 창이 모두 꺼졌다.

         

         그리고 치직, 마지막 촛불이 타오르는 소리와 함께.

         

         

         [이제 너희는 비로소 자유로우며.]

         [이제 이 땅에는 신이 없다.]

         

         

         유진은 단절되는 듯 메말라버린 신성력을 느끼며, 그 문장을 한참 다시 읽어야 했다.

         

         

       

       

       

       

       Side Ep. 이 땅에는 신이 없다.

       

       

       

         

         

         이반 페트로비치는 크게 숨을 몰아쉬며 눈을 떴다. 꿈이 끝났다.

         

         그는 조심스럽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따듯한 공기, 타닥, 타닥 타들어가는 화로가 보였다. 문득 그는 피부 위를 포근하게 감싸고 있는 비단 이불을 바라보았다.

         

         

         이거 익숙한 상황인걸.

         

         이반은 천천히, 소리 없이 이불을 걷어내고 몸을 일으켰다. 그가 일어난 자리, 가치를 따지기 어려울 정도로 호화로운 침상 끝엔 한 실루엣이 동그랗게 몸을 말고 있었다.

         

         호흡에 따라 조금씩 들썩이는 이부자락 사이로, 매끄러운 머리칼이 보였다.

         

         

         “꿈인가.”

         

         

         그래야만 할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 저 머리색은.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한처음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지어내셨고…
    …하시니 하나님께서 보기에 참 좋더라.

    -창세기
    *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두려워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누가복음 5장 8절-11절
    *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그냥 그 자리에 계시옵소서.
    그러면 우리도 땅 위에 남아 있으리라.

    -자크 프레베르, 하느님 아버지.

    *

    이 땅에는 신이 없다.
    -넷플릭스 드라마 제목 (개강추)

    *

    무류지권 : 교황의 교권해석엔 오류가 없다는 의미의 권한. 교리를 확정적으로 선언할 때 교황의 임무에 의하여 교도권의 무류성을 지닌다. (교회법 제749조)

    *

    “순종적인 건지 음흉한 건지.”
    “신실한 것이지요. 형제님.”

    -Ep29. 천답

    *

    그는 부드러운 벨벳 이불을 걷으며 침대 위에서 몸을 일으켰다.

    붉은 융단 카페트가 깔린 바닥과 벨벳 이불이 부드럽게 너울지는 침대.
    그리고 그 끝에, 돌아 누워있는 실루엣.
    여자.

    -Ep11. 성 얀스크 대학과 비밀의 방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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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Years Have Passed Since the Prologue

30 Years Have Passed Since the Prologue

프롤로그에서 30년이 흘렀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got transmigrated into a game I’ve never seen before. I thought it was a top-notch RPG and spent 30 years on it. I retired as a war hero and planned to spend my remaining time leisurely. But it turns out, it was an academy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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