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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96

       하늘이는 반짝반짝 빛나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니, 그러니까, 원래도 얼굴이 빛나기는 하는데.

       

       이건 물리적인 현상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 지금 하늘이가 짓고 있는 미소에 대한 비유법이다. 어느새 내 허리를 꼭 끌어안아 자기 몸에 밀착시키고, 금방이라도 다시 입술이 닿을 것 같은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하늘이의 미소는, 꼭 그렇게 빛나는 것처럼 보였다.

       

       얼굴에서 나오는 그 환한 빛 때문이 아닌, 미소 그 자체의 빛.

       

       그 얼굴을, 그저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내 뒤통수에 뭔가 와 닿았다.

       

       이 방 안에 우리 둘 외에는 아무도 없었고, 내 양손은 전부 아래로 축 늘어져 있었으니, 당연히 그것은 하늘이의 손길이었을 것이다.

       

       조금 전까지 꽉 잡혔던 손이 자유롭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얼른 올려서 하늘이의 어깨를 잡아봤지만,

       

       “저, 으, 하늘아, 잠까읍……!”

       

       내가 어떻게 반항하기도 전에, 하늘이의 얼굴이라도 제대로 파악하려고 뒤로 한껏 재꼈던 뒤통수가 그대로 하늘이의 손에 눌려 앞으로 나아갔다.

       

       당연히, 하늘이의 얼굴도 앞으로 나왔다.

       

       앞으로 일어날 일을 깨닫고, 황급히 눈을 감았지만……

       

       ……아니, 눈을 감았기에, 이렇게 더 적나라하게 느껴지는 걸까?

       

       하늘이의 입술이, 나의 입술에 겹쳐 있었다.

       

       한없이 부드럽고, 따뜻한.

       

       한동안 그렇게 딱 달라붙어 있던 우리 둘의 입술은, 하늘이가 손에서 힘을 빼고 나서야 겨우 떨어질 수 있었다.

       

       “……어.”

       

       이렇게 충격적인 상황이었는데도, 나의 정신은 멀쩡했다.

       

       ……왜?

       

       이유는 금방 알 수 있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한창 경악하고 비명을 질러야 할 사라가 조용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내가 사라와 함께 지내며 그런 일은 딱 한 번밖에 겪어보지 못했다.

       

       ……사라가 기절했을 때.

       

       그러니까…… 지금 키스 때문에 기절했다는 말인가?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원래는 인격이 바뀌어야 하는 상황인데도 바뀌지 않아서 이런 건지, 아니면 순전히 머리에 피가 몰려서 그런 건지. 나도 확신이 잘 서지 않았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지금 내가 하늘이와 입맞춤을 나누었다는 거다.

       

       ……왜, 라는 의문은, 굳이 품을 이유도 없었다.

       

       하늘이가, 사라를 좋아한다는 뜻이겠지.

       

       생각해보면 이상할 것도 없다. 하늘이는 원래 게임에서 사라와 연결될 수 있는 캐릭터였고, 지금까지 하늘이가 사라와 나에게 보인 일관된 호의를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그런 감정이 있었다고 해도 이상하지는 않았다.

       

       이제야 눈치챈 것이 오히려 더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로.

       

       “저기, 하늘아. 미안하지만…… 조금 전의 키스는 네가 원한 사라가 아니라…….”

       

       “아니.”

       

       하늘이가 확고한 대답으로 내 말을 중간에 끊어버렸다.

       

       “어, 뭐라고?”

       

       하던 말이 중간에 끊어진 내가 순간 말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하늘이에게 다시 물어보자, 하늘이는 나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내가,”

       

       한 마디씩,

       

       “키스하려고 한 사람은.”

       

       끊어서,

       

       “너란 말이야.”

       

       확실하게 내 귀에 들리도록 말했다.

       

       나를 바라보는 하늘이의 눈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자기가 지금 하는 말이 어떤 말인지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고, 지금 상황을 그만큼 확실하게 알고 있다는 말이겠지.

       

       “그, 그러니까…….”

       

       “좋아해.”

       

       “…….”

       

       “계속 좋아했어. 처음 만났을 때부터. ‘사라’가 깨어나기 전부터. 계속.”

       

       “…….”

       

       뻐끔뻐끔.

       

       나는 공기가 부족해 수면에 입만 내민 금붕어처럼 입만 뻐끔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머리가 새하얗게 물들었다.

       

       분명 지금까지 들었던 말 중에서, 가장 충격적인 말이었는데도, 나는 도망갈 수조차 없었다. 나를 대신해줄 인격인 사라가 계속 응답이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그렇다고 몸이 기절할 정도의 충격은 또 아니었나 보다.

       

       ……하긴, 지금 기절해서 깨어난다고 해도, 상황이 전혀 수습되지 않았을 테니 나만 곤란해질 상황이었지만.

       

       게다가 한창 파티 중이기도 할 거고. 하늘이는 여전히 드레스를 입고 있었고, 여기 이 방은 우리가 평소에 쓰는 방이 아니라 어딘지도 모를, 작은 창고 같은 곳이었다. 다행히 드레스에 먼지가 묻을 만큼 지저분한 곳도 아니었지만.

       

       그러니까…… 지금 한창 파티 중이고, 잠깐 쉬러 들어왔는지, 아니면 하늘이가 끌고 들어왔는지는 몰라도, 아무튼 우리는 파티 도중에 이렇게 단둘이 밀회를 즐기고 있다는 뜻이었다.

       

       내 허리를 감싸고 있던 하늘이의 손이 스륵 풀렸다.

       

       내 뒷머리에 닿아있던 하늘이의 손도.

       

       “후아…….”

       

       하늘이가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고, 딱 달라붙어 있던 우리 사이에 공기가 스며들었다. 그제야, 나는 하늘이의 몸이 얼마나 달아올라 있었는지 상기할 수 있었다.

       

       아니, 사라의 몸— 그러니까, 내 몸이 그만큼 달아올라 있었던 걸까?

       

       순간 느껴지는 한기에 몸을 떨었다.

       

       꽉 잡혀있던 몸이 자유로워지고, 몰려있던 피도 잘 돌 수 있는 상황이 되었는데도, 얼굴은 더 상기되었으면 상기되었지, 가라앉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 차가운 바람이, 우리 둘이 얼마나 가까웠는지 깨닫게 만들어줘서.

       

       그 와중에도 하늘이의 몸과 나의 몸이 떨어진 것이,

       

       입술과 입술이 떨어진 것이 조금은 아쉽게 느껴져서.

       

       이미 꿈속에서 사라에게 몇 번이나 당한 일이었지만…… 이런 일을 하늘이에게 당했다고 생각하니, 뭐라고 형언할 수 없는 부끄러움이 밀려들었다.

       

       처음부터 나의 반신이라고 생각하고, 평생 하겠다느니 뭐라느니 하는 말을 서로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아이와 전혀 그렇지 않을 거로 생각했던 아이의 차이였으니까.

       

       아니, 그러니까 사라가 더 소중하지 않다는 말은 아니고…….

       

       …….

       

       아니, 지금 누구한테 변명하고 있는 거람.

       

       “아, 으헤.”

       

       뇌의 언어를 담당하는 부분이 고장이라도 난 모양이다.

       

       입을 열어서 말을 할 때마다, 미처 언어가 되지 못한 신음만 흘러나왔다.

       

       내가 제대로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하늘이는 내 왼손을 잡고 있었다.

       

       왼손으로 손을 부드럽게 잡아 올리고, 오른손으로는.

       

       ……오른손으로는, 대체 드레스의 어디서 꺼낸 건지 알 수 없는 반지를, 내 왼손 약지에 끼우고 있었다.

       

       “어, 아……!”

       

       그제야 하늘이가 무슨 행동을 하고 있는 건지, 깨닫고 깜짝 놀라서 손을 빼려고 하니, 하늘이가 쓰게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

       

       그 표정에, 나는 순간 행동을 멈췄다.

       

       “분명히, ‘사라’랑도 키스한 거지?”

       

       “…….”

       

       그건 또 어떻게……?

       

       아니지.

       

       이 몸을 움직이고 있던 사람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사라였으니까. 둘이 대화하다가 들켰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하늘이는 그 말을 듣고 홧김에……

       

       ……는 아닌가. 저렇게 반지를 준비했던 걸 보면.

       

       이제야 살펴본 하늘이의 왼손 약지에는, 내 손에다가 끼워주는 반지와 똑같은 디자인의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지금 당장 대답할 필요 없어. 이건 우정 반지라고 생각해.”

       

       아니, 우정 반지를 왼손 약지에 끼우나……?

       

       아무리 여자끼리라도 그런 행동을 하면 무조건 오해받는 게……?

       

       “……지금 당장만, 이렇게 해 줘. 부탁이야.”

       

       하늘이는 내 손에 반지를 끼우느라, 고개를 살짝 숙이고 있었다.

       

       그 표정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왠지 그 표정이 어떤지 알 것 같았다.

       

       “어, 음…….”

       

       어떻게든 말을 고르려고 하는데,

       

       갑자기 하늘이가 얼굴을 확 들었다.

       

       그 얼굴에 떠 있는 표정은, 어……

       

       그러니까, 내가 상상하던 표정은 아니었다.

       

       뭐랄까, 자신감과 확신이 끓어 넘치는 표정이라고 해야 할까.

       

       “내가 반드시, 나를 좋아하게 만들 테니까.”

       

       그리고, 하늘이가 던진 말은, 누가 봐도 주인공의 말이었다.

       

       히로인을 공략하는 주인공의 말.

       

       둘 다 여자이기는 했지만.

       

       “어…… 응.”

       

       그 확신이 넘치는 얼굴에, 나는 나도 모르게 그렇게 말해버리고 말았다.

       

       왠지, 그렇게 말해야 할 것 같았다.

       

       “좋아.”

       

       내가 뭐라고 더 하기도 전에, 하늘이는 다시 내 양 볼을 잡았다.

       

       아, 왠지 이쯤 되니까 하늘이가 뭘 하려고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좋아해. 정말로.”

       

       그리고, 하늘이는 다시 나에게 입을 맞추었다.

       

       “……그럼, 여기서 쉬다가 나와. 나는 밖에 나가 있을 테니까.”

       

       하늘이는 활짝 웃으며 그렇게 말한 뒤, 날아갈 것 같은 걸음걸이로 방에서 나갔다.

       

       문이 살짝 소리를 내며 조심스럽게 닫히고 나서,

       

       나는 얼굴을 감싸 쥔 채로 그 자리에 쭈그려 앉았다.

       

       정말이지, 어마어마하게 부끄러웠다.

       

       *

       

       기분이 날아갈 것 같다.

       

       유하늘은 그렇게 생각했다.

       

       자신감 넘치는 ‘사라’를 보고, 사라와 ‘사라’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조금은 짐작할 수 있었다. 어떻게 두 사람이 그런 관계가 될 수 있는지, 대체 어떤 방식으로 그런 일이 이루어지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랬기 때문에 조급해졌다.

       

       그래서 생일 선물로 준비했던 반지를 가지고, 어떻게든 단둘이 있을 기회만 노리고 있었는데…….

       

       사라는 유하늘을 거부하지 않았다.

       

       그 후로 두 번이나 더 키스했는데도!

       

       미워하지도 않고, 관계가 깨지지도 않았다!

       

       그저 평소의 사라처럼, 엄청나게 당황한 채로 멍하니 있을 뿐이었다.

       

       좋아, 아직 기회는 있어.

       

       언제나 붙어있는 ‘사라’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자리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자신에게는 확고한 장점이 있었다.

       

       바로, 몸이다.

       

       이 몸. 확실하게 사라를 안아줄 수 있고, 확실하게 입맞춤을 나눌 수 있는 이 몸이야말로, 유하늘의 진짜 무기였다.

       

       그 사실을 깨달았기에, 유하늘은 기분이 좋았다.

       

       너무 기분이 좋은 나머지, 유하늘에게는 ‘사라’ 말고도 경쟁자가 몹시 많다는 사실을, 그녀는 잠시 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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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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