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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96

     왕국에는 그런 병이 존재하지 않지만, 제국에는 ‘정신병’이라는 병이 존재한다.

     말 그대로, 정신병.

     정신적인 스트레스로 인해서 사람이 미쳐버리거나, 우울증이라는 증세에 빠지거나, 심각한 경우에는 정신착란을 일으키는 경우.

     왕국에서는 상대적으로 정신병에 걸리는 이들이 적었다.

     대부분 결투로 처리하거나, 꼬우면 죽이려들거나, 제국인들 입장에서는 어찌보면 야만적이고 어찌보면 화끈(?)한 그런 해결방식이 우선이었으니까.

     노스트럼 전체가 아무래도 남성중심적인, 제국용어로 이야기를 하자면 좀 ‘마초’적인 성향이 짙다보니, 어딘가 유약하다거나 그런 자들은 도태되고 겉으로 내보내지를 않는다.

     렘버리 캠프의 주된 프로그램은 그런 남자다움을 기조로 하는 바.

     

     “훈련에 따라오지 못하는 자는 열외다. 남들보다 뒤에 처지기를 바란다면 포기해라.”

     “이 정도도 못하나? 남자가 고작 이 정도밖에 하지 못해서야 되겠는가?”

     “차라리 저기 제국 유학생들이 더 낫군. 제국 유학생들은 호흡조차 거칠어지지 않았는데, 왕국의 자존심이라는 것들이 지금 뭘 하는 거지?”

     남자다움이라는 독기를 가득 품은 기사들이 훈련장마다 학생들을 굴리고 있다.

     “힘든가?”

     “””아닙니다!!”””

     오전 몇 시간 동안 개같…열심히 굴러서 그런지, 학생들의 목소리에 기합이 들어가있다.

     “…저기, 그레이.”

     

     그리고 그런 학생들을 구경나온 나를 향해, 아스타시아가 조심스럽게 내 뒤에서 손가락을 찌른다.

     “정말 저, 티 안 나는 거 맞죠?”

     “물론입니다, ‘엘리’.”

     현재.

     나는 지팡이를 짚은 채 ‘이사장’으로서 현장에 나와있다.

     그리고 나의 옆에는 열차 특등석에 미리 준비해놓은 메이드복으로 갈아입은 아스타시아가 달라진 모습으로 내 뒤에 서 있다.

     아스타시아의 변장?

     왜 했냐면, 당연히 그녀 또한 신경 쓰이기 때문.

     우리는 죽어라 흙바닥에서 훈련을 하며 구르고 있는데, 황녀님은 저기 어딘가에서 그레이 지브롤터와 하하호호 웃고 있겠지.

     맞는 말이다.

     실제로 아스타시아 또한 그걸 감당하려고 한다.

     그래도 앞에서 대놓고 나타나면 그런 소리를 싫어도 듣기 때문에, 차라리 눈 앞에 아스타시아로서 나타나지 않는 게 낫다.

     아스타시아의 변장을 아는 사람은 없다. 

     설령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눈치챘다고 하더라도 알아차려서는 안 된다.

     보통 알아차리는 이들에게는 ‘눈치’라는 게 있으니까.

     “이것 참, 그레이 지브롤터 경이 아니십니까.”

     

     비꼬듯이 말하며 다가오는 기사 하나.

     

     “그대는 누구지?”

     “에르난데스 바르셀이라고 합니다.”

     “아아. 황금여명의 기사인가.”

     바르셀.

     제로스 바르셀의 사촌동생이지만, 바르셀이라는 성씨를 허락받은 자.

     성이라는 것은 곧 ‘우리 가족’이라는 울타리기에, 귀족 중에서는 성씨를 주는 걸로 가문에 좀 더 깊게 편입시키는 경우가 있다.

     남자의 경우에는 양자로서.

     여자의 경우에는 결혼으로서.

     “그대는 누구지?”

     “…에르난데스 바르셀, 황금여명 기사단에서 이번에 오로솔 아카데미 군사훈련 렘버리 캠프에 파견된 황금여명의 총책임자입니다.”

     “그렇군.”

     알고는 있지만, 일부러 물었다.

     저쪽에서 먼저 자극하려고 다가왔으니, 좋은 반응이 나올 리가 있나.

     “구경하러 나오신 겁니까?”

     “그렇다네. 이번 캠프에서 우수한 활동을 하는 학생에게는 ‘명예협곡장학생’이라는 상을 수상할 거거든.”

     “그렇습니까. 아쉽군요.”

     기사 에르난데스가 진심으로 아쉽다는듯 이죽거린다.

     “경께서도 학생으로 입학하셨다면 저기에서 함께 훈련을 받으셨을텐데.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가? 나는 나보다 약한 자에게 훈련을 받지는 않아서 말이야.”

     “……예?”

     “뭘 잘못들었습니다, 그런 표정을 짓고 있나. 여기 캠프에 있는 이들 중에 나를 가르칠 수 있는 오직 윈체스터 대공 뿐인 것을.”

     “하, 하하….”

     미소에 금이 간다.

     그의 배후에 있는 제로스 바르셀 후작이 나를 자극해보라고 지시를 내렸겠지만, 기사라는 족속들은 노쇠한 정치인들보다 상대하기 쉽다.

     “아니면 뭐, ‘밤’에 따로 가르쳐주기라도 하려고?”

     “밤에는 잠을 자야죠. 깊게. 안 그렇습니까?”

     “이것 참. 누가 들으면 자고 있는 동안 어떻게 하겠다고 그러는 소리인 줄 알겠어.”

     “설마요. 이렇게 사람이 많고 같이 있는 장소에서 그런 무시무시한 말씀을.”

     “그렇지. 지금이 무슨 200년 전도 아니고, 수틀리면 암살자를 보내서 냅다 죽여버리고 보는 그런 야만스러운 시대도 아니고 말이야.”

     “…….”

     이 남자.

     나의 정보에 따르면, 나를 죽이러 왔던 그 기사-라이오넬 바르셀의-

     “라이오넬이라는 이름을 아십니까?”

     “처음 듣는데.”

     “제 동생입니다.”

     “…그런가?”

     친형이다.

     “지브롤터 경께서도 남동생이 있으니 아시겠지요. 동생이라는 녀석들은 참으로 손이 많이 가지만, 그래도 동생이라는 것을.”

     “자네 동생은 지금 어디에 있나? 이번에 캠프에 같이 왔나?”

     까득.

     “하하. 라이오넬…을 말하는 겁니까?”

     “자네가 방금 말하지 않았나. 동생이라고.”

     이 갈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본인은 나름 조절했다고 생각하겠지만, 마스터의 귀에는 그런 소리가 하나하나 잘 들린다.

     “…아쉽게도, 지금은 장기 출장 중입니다.”

     “황금여명에서 장기 출장? 우리 위대하신 국왕 전하를 모시기라도 하나?”

     “위대하신 국왕 전하, 인 겁니까? 하하. 폐하가 아니고?”

     “나는 황금여명의 기사들과 같이, 노스트럼 왕국은 ‘실질적 제국’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 보수적인 입장이라서 말이야.”

     “…….”

     “내가 만일 저기 캠프장에서 같이 훈련을 받는 학생들이었다면, 지금쯤 교관인 자네가 개인적인 감정을 가지고 나를 굴리고 있었겠지?”

     “하, 하하….”

     기사 에르난데스의 표정이 여러모로 복잡해지고 있지만, 나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아니면 누아르를 대신 굴렸거나.”

     “누아르 지브롤터는 어디에 있습니까?”

     “그걸 물어보려고 왔나?”

     “아스타시아 황손녀 전하는-”

     “황녀일세.”

     “…….”

     “폐하가 아니라 전하인 것처럼, 호칭 문제는 똑바로 해야지. 안 그런가?”

     말을 하면 할수록 에르난데스의 얼굴이 붉어지지만, 그는 애써 웃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실례했습니다. 그러고보니, 아스타시아 황녀 전하는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어딘가에 있겠지.”

     “…….”

     “왜. 국제 문제라도 일으키려고? 재미있겠군.”

     나는 열차가 머무르고 있는 역 방향을 가리켰다.

     “그레이 지브롤터와 함께 있는 도중에 아스타시아 황녀가 살해당하기라도 한다면, 지브롤터와 제국 사이에 전쟁이라도 일어날 것 같은가?”

     “…….”

     “설마 그런 생각으로 암살자를 보내려고 하는 이가 있다고 한다면, 얼토당토 않은 생각이니 당장 접으라고 전해두게.”

     “하, 하하. 무슨 그런 험한 말씀을.”

     에르난데스가 눈을 잠시 감은 뒤, 고개를 숙였다.

     “아무쪼록, 마음에 드는 학생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럼.”

     에르난데스가 떠났다.

     나를 염탐하며 정보를 캐내기 위해 다가왔지만, 별다른 소득은 얻지 못했다.

     ‘그건 내 생각이지.’

     저 인간은 과연 아스타시아를 눈치챘을까?

     아니면 아스타시아가 내 옆에 엘리라는 메이드로서 붙어있다는, ‘황녀가 메이드복을 입은 채 그레이 지브롤터를 모시고 있다’라고 생각을 할까?

     “이사장님. 저 남자, 수상한데요.”

     아스타시아가 작게 속삭였다.

     “저한테는 눈길 한 번 주더니, 계속 이사장님만 노려보고 있었어요.”

     “정상은 아니죠.”

     아스타시아가 메이드복을 입고 있는데, 남자로서 본능적인 눈길도 보내지 않는다?

     “둘 중 하나입니다. 저를 향한 증오가 너무 확고한 경우.”

     자기 동생을 죽인 자.

     혹은 동생이 행방불명된 것에 대한 단서를 가지고 있는 자.

     이미 죽어 오로솔 아카데미 뒷산 텃밭에 흩뿌려졌지만, 그런 것조차 알지 못하기에 어떻게 할 수 없는 자.

     “보통은 엘리가 누군지 관심이라도 가질텐데 말이죠.”

     “그럼 다른 가능성은…?”

     “사실, 둘 다일 수도 있습니다.”

     나에 대한 증오와 더불어, 다른 가능성이 함께 할 때 저 자는 극도로 위험해진다.

     “여자에 관심이 없는 인간일 경우.”

     “……네?”

     아스타시아의 얼굴이 붉어진다.

     “저, 저기. 그게, 그레이?”

     “여기 밖입니다.”

     “아니, 그, 농담하시는 거죠?”

     아스타시아가 잠시 연기를 잊어버릴 정도로-사실 그런 것도 상관은 없지만-당황했다.

     “그…이성에 관심이 없다는 거죠?”

     “이성에 관심이 없기는 하죠.”

     “…….”

     “알았습니다. 그렇게 자꾸 등을 손가락으로 몰래 찌르지 마십시오.”

     나는 아스타시아에게 달라붙은 뒤, 그녀의 등에 손가락을 뻗었다.

     “나리아 공주는 자신이 왕이 된 이후, 황금여명 기사단을 전부 해체할 겁니다. 그건 그 자신의 군사적 기반이 모르가니아…흑장미 기사단에 있기도 하지만, 황금여명 기사단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문제가 하나 있기 때문이죠.”

     “설마.”

     “황금여명 기사단은 왕국의 시작과 함께 했던 기사단이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그들은 여자를 뽑지 않아요.”

     “…….”

     아스타시아의 표정이 점차 창백해지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여자를 뽑았습니다. 하지만 소수였고, 이런저런 문제가 생겼죠.”

     “그건….”

     “그런 문제가 일어나지 않게 하려고 내부적으로 덮어버리고 남자만 뽑게 되었다고 하지만, 그것이 지금까지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내려와 문화가 되었죠.”

     그리고 그 이면.

     황금빛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기사단의 뒤.

     “남자들끼리 모여있을 때 일어나는 여러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황금여명 기사단은 가까이해서는 안 될 족속들입니다.”

     나리아가 자신이 ‘성인’이 되기만을 벼르고 있는 이유가 있다.

     “그….”

     아스타시아가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제국에서, 동성애는 일단 합법의 영역은 아닌데요…. 아니, 제가 왕국법을 다 아는 건 아니지만….”

     “……?”

     “예?”

     “…하.”

     나는 아스타시아의 허리를 당겨, 사람들이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그녀의 귀에 가볍게 키스했다.

     “그거 아닙니다.”

     “……네?”

     “그냥 남자들끼리 더럽게 논다는 뜻이었지, 그런 쪽으로 노는 경우는 잘 없습니다.”

     “……아.”

     이런 말을 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오해가 깊어질 수도 있었겠지.

     하지만 그건 아니다.

     “개인적인 관계로 그런 인간 한두 명이 있을지는 몰라도, 황금여명 기사단은 그냥 부패하고 썩어빠진 집단일 뿐입니다. 제로스 바르셀 후작에게 첩이 세 명이나 있는 것이 가장 대표적인 예시죠.”

     황금여명의 성향은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과 비슷하다.

     애초에 지금 왕실 제1기사단에 남아있는 이들 자체가 세인트 지오의 그런 행각을 참고 견딜 수 있는 이들만 남아있으니까.

     “황금여명의 입장에서는 지브롤터같은 이들은 이해할 수 없는 샌님입니다. 어떻게 남자가 여자를 한 명만 안을 수 있냐. 남자가 여자 여럿 거느리는 건 당연한 것이다.”

     “뭔가, 기사단의 엄청난 어둠을 본 것 같은 기분인데요….”

     “어디 가서 함부로 이야기하지 못할, 부패하고 썩어빠진 왕국의 이면이죠.”

     

     술.

     흡연.

     백은.

     캐롤라인.

     그 외, 기타 등등.

     “뭐, 이미 다 처치는 끝내놓았습니다.”

     “처치?”

     “캐롤라인만 먹으면 상관없지만, 백은까지 함께 섭취하면 어떻게 되는지 아시죠?”

     “……!”

     황금여명 기사단은 부패한 삶을 계속 살아갈 경우, 아마도 몸 속에서 금색과도 같은 무언가가 흘러나오지 않을까.

     “지켜보도록 하죠. 아직은 그런 자가 없지만, 한 명 정도는 나타날 수 있으니.”

     당장 그런 일이 생기지는 않을 것이다.

     “얼마 전에 만난 카를로스 경이 그러더군요. 황금여명 기사단은 발자크 자작이 따로 마련해준 별장에 숙소를 두고 있다고.”

     하지만.

     “렘버리 캠프의 예산 중 일부가 그 숙소로 흘러들어갔는데, 아마 거기에 남자만 있는 건 아닐 겁니다.”

     그런 게 걸릴 가능성이 있다는 것 자체가, 지금도 그런 행동을 하고 있다는 뜻.

     “…….”

     “엘리.”

     나는 열차에 준비되어있던 물건 하나를 꺼냈다.

     “지금부터 우리는 나리아를 위한 ‘탄환’을 마련하도록 하죠.”

     “앗, 그거….”

     “그거 아십니까? 제국에도 왕국에도, 아직 관련 법은 없습니다.”

     아스타시아에게는 익숙한 물건.

     “촬영용 영사기 마도구. 소리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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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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