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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96

    <196 – 보호와 훈육>

     

    스콜라는 내심 각오를 했다. 온갖 흉흉한 소문이 도는 1학년 출입금지구역에 발을 들이는 짓이다.

     

    ‘일이 잘못되면 죽을지도 몰라. 500포인트에 목숨을 거는 건 너무했나? 유피에게 말린 기분이야.’

     

    유피에게 직접 들은 실체는 소문 이상으로 무서웠지만 주의사항을 충실하게 준수하자 다행히 목숨을 잃는 일 없이 무사히 목적지에 도달했다.

    막상 해보니 생각보다 힘들지는 않았다고 안심하려는데 어째 보관소 안의 동태가 심상치 않았다.

     

    ‘동물들이 긴장하고 있어?’

     

    묘한 기색에 기척을 죽이고 조심스럽게 걸음소리도 죽여가며 내부를 돌아보던 스콜라.

     

    “!!”

     

    그는 발견하고야 말았다.

    어두컴컴한 구석.

    두려움에 덜덜 떠는 골렘의 사료통.

    수북이 쌓인 바위더미 사이에서 작은 돌멩이 하나를 골라서 “럭키~!” 같은 소리를 지껄이며 대뜸 돌을 삼키는 오크노디의 모습을.

     

    ‘맙소사!’

     

    딱히 골렘을 동정하지는 않는다.

    애초에 골렘에게 다른 동물들을 괴롭혔다는 누명을 씌울 작정으로 물감통을 챙겨오고 골렘을 자극해서 다른 동물에게 주먹질을 하게 만들 수단도 공부해온 장본인이 그였으니까.

    하지만 세상에 골렘밥을 훔쳐먹는 미친 아이가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아니, 오히려 잘됐어. 이 모습을 알리면 오크노디에게 직접적인 타격을 줄 수 있겠지!’

     

    도대체 뭘 하려던 건지는 궁금하지도 않았다.

    돌이 너무 맛있어서 훔쳐먹었는지.

    골렘을 협박하고 있었던 건지.

    뭐가 됐든 저 아이는 출입금지구역에 침입해서 탑승물의 먹이를 훔쳐 먹었다.

    심지어 돌만 훔쳐먹는 것도 아니다.

    낑낑거리며 제발 우리 밥통은 건들지 말라고 애원하는 치타의 이마를 톡톡 때리고는 치타먹이도 뺏어먹고 있지 않은가.

    한두 번 훔쳐먹어본 솜씨가 아니다.

    이 정도면 현행범으로 잡히기에 충분한 사유다.

     

    ‘어리석은 녀석. 제 무덤을 제가 팠구나!’

     

    급히 플라톤 교수를 찾아 나서서는 <상급반 탑승물 보관소>에 플라톤 교수와 교관들을 데려온 스콜라.

     

    “제보는 확실하겠지? 아카데미 직원을 헛걸음하게 만든 허위제보는 감점사유일세.”

    “걱정 마십시오. 제 두 눈으로 똑똑히 봤습니다.”

     

    드르륵 문을 열고 거침없이 탑승물 보관소에 들이닥친 교수와 교관들, 그리고 제보자 스콜라.

    그런데 유기체탑승물사료도둑 오크노디는 어디가고 요리사 모자에 음식을 잔뜩 싸들고 와서 동물들에게 나누어주던 오크노디의 동료들만 있었다.

     

    “너희 뭐하냐?”

     

    멍청하니 서있던 이사벨이 손에 든 주먹밥을 당나귀가 혓바닥으로 낼름 훔쳐먹었다.

     

    “탑승물에게 먹을 것을 챙겨주고 있었습니다.”

    “멀쩡히 있던 사료는 어디 가고?”

    “그게 실은…”

     

    위기의 순간.

    지젤이 순발력을 발휘했다.

     

    “오크노디가 재단에서 훈련받던 시절에 사료만 먹고 생활한 적이 있었는데, 이런 맛없는 것을 먹고 자라는 동물이 얼마나 불쌍하겠냐며 사람이 먹는 음식을 챙겨주고 싶다고 제안해서 이렇게 허가 없이 몰래 탑승물 보관소에 침입하고 말았습니다.”

    “허어.”

    “사료를 먹어?”

    “뭐 저런 불쌍한…”

     

    교관들조차 탄식을 금치 못할 스토리!

    음식을 들고 있던 이사벨이 모험가의 눈칫밥으로 지젤의 순발력 멘트를 이어받았다.

     

    “죄송해요. 변방에서는 가축들에게도 먹을 것을 챙겨주며 가족처럼 지내는 문화가 있는데, 시험을 준비하느라 학생들을 등에 태우고 고생만 해왔던 동물친구들을 챙겨주지 못한 것이 저희도 쭉 마음에 걸렸거든요. 꼭 오크노디 때문에 했던 일은 아니에요.”

     

    자발적인 봉사활동임을 어필하는 멘트!

     

    “모범적인데?”

    “탑승물과의 유대감을 챙기는 자세도 훌륭하고.”

    “얘들 기특한데요. 가산점 줄까요? 교수님?”

     

    플라톤 교수는 행복에 겨워하는 탑승물들의 모습을 보고는 머리를 긁적거리다가 말했다.

     

    “가산점 줘.”

     

    스콜라의 의도와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와버렸다.

     

     

    * *

     

     

    갑작스러운 지젤과 이사벨의 등장.

    그 내막은 이랬다.

    스콜라의 침투에 영락없이 사료도둑질 현장을 발각당한 오크노디.

    그 사실을 지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급보입니다. 1학년 출입금지구역에 들어간 오크노디의 뒤를 같은 상급반 학생 스콜라가 따라갔습니다.”

     

    침입로에 암흑상회 비밀조직원을 세워두고 오가는 사람을 감시하던 지젤은 정보망에 걸린 스콜라의 존재를 통해 오크노디가 미행당했음을 간파했다.

     

    “재주도 좋군. 당장 아카디아와 이사벨을 이곳으로 불러주십시오. 무엇을 하고 있던 즉시 와야 합니다. 이는 최우선 사항입니다.”

     

    야생동물보다 감이 민감한 오크노디를 속여서 원거리에서 미행에 성공하다니.

    스콜라의 재주는 놀랍지만 오크노디가 위기에 처한 와중에 방관만 할 수는 없었다.

     

    “최우선사항이라니, 무섭게 왜 그래? 교수님들의 실험실에서 탈출한 3학년 선배가 1학년 구역에 숨어들기라도 했어?”

    “이사벨. 당장 대량으로 조리 가능한 요리를 만들어주십시오. 오크노디를 구해야 합니다.”

    “오크노디? 어디 산에 놀러갔다가 조난당했어?”

    “상급반 탑승물 보관소에서 사료를 훔쳐 먹고 다니는 기행이 제국진영 학생에게 발각 당했습니다.”

     

    각오했던 것보다 훨씬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아니… 넌 그걸 어떻게 알았어?”

    “미리 사람을 심어서 감시하고 있었습니다.”

    “알고도 안 말렸어?”

    “제가 말린다고 그만 둘 꼬마숙녀가 아닌 건 아시잖습니까. 다음부터는 더 은밀하게 제 감시망마저 피해서 일을 저지르겠죠.”

    “골 때리네. 그 건은 나중에 따로 얘기해. 일단 애부터 구하고 봐야하니까. 언제까지 만들어야해?”

    “가급적 30분 내로 끝내주십시오. 스콜라가 교수나 교관을 부르지 못하도록 제가 퍼뜨린 가짜 아카데미 괴담을 이용해서 그의 발을 묶어두겠습니다.”

    “혼자 충분한 양을 만들기엔 시간이 부족해.”

    “마침 잘됐군요. 아카디아가 왔으니 재료와 필요한 보조 인력은 그녀가 지급해드릴 겁니다. 부담 없이 지시하고 이용하십시오.”

     

    이 사람, 아카데미에 너무 잘 적응하지 않았어?

    같은 편인데도 섬뜩해질 정도로 황당한 수단을 구사하는 지젤.

    이사벨은 괜히 따져봤자 안 듣느니만 못한 지식만 늘어날 것 같아서 그냥 아카디아의 추종자들을 부려먹는 일부터 신경 썼다.

     

    “소금을 뿌려서 깨끗이 씻은 손으로 잘 버무려 염장고기를 만들고 주먹밥을 빚는 것쯤은 너희도 간단히 할 수 있을 거야. 서둘러.”

    “어… 저기, 이사벨? 손을 깨끗이 씻으니까 들고 있던 소금이 다 사라졌는데. 이거 마법이야?”

    ‘당장 재료 다 내려놓고 포대나 날라요.’

    “나가 죽어.”

     

    너무 당황한 나머지 겉으로 나오는 말과 속마음이 반대가 되어버린 이사벨.

    그 아카디아의 추종자라는 것들이 귀족이며 생활력이 저조하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은 흠이었다.

    그래도 어떻게든 시간에 맞춰 요리를 바리바리 싸들고 상급반 탑승물 보관소에 침투해서 탑승물들에게 요리를 나눠줄 수 있었다.

     

    덜컹

     

    “꼼짝 마라! 침입자 녀석들!”

    “어? 교수님. 제보 받은 내용이랑 조금 보이는 광경이 다른데요?”

     

    3분도 지나지 않아 들이닥친 교수와 교관들, 스콜라 때문에 정말 제 명을 못 살 것처럼 심장이 요동쳤다.

    그래도 결과는 순탄.

    지젤의 순발력과 이사벨의 눈치.

    두 사람의 적절한 변명 덕분에 오크노디는 동정의 아이콘이 되었다.

    플라톤 교관은 다음부터는 정식으로 허가를 받고 음식을 나눠주라는 말로 상점과 충고를 동시에 주고 훈훈하게 상황을 정리하였다.

    상황이 끝나자 요리를 나눠주고 남은 자루를 들춰매고 나르던 이사벨이 한적한 곳에서 자루를 풀었다.

     

    꿈틀꿈틀…

    쏙!

     

    자루 밖으로 튀어나오는 작은 금발의 머리통!

    밀가루를 뒤집어 조금은 하얘진 머리칼이나 한층 더 뽀얀 볼따구는 그녀의 귀여움을 망치기는커녕 도리어 배가시켰다.

    지젤은 그 귀여운 낯짝과 눈망울에 속지 않고 이 장난꾸러기를 달달 볶았다.

     

    “오크노디. 위험하게 왜 그런 짓을 하셨습니까? 저희가 돕지 않으면 정말 큰일이 날 뻔했습니다.”

    “죄송해요…”

    “사과는 됐고 이유나 들어봅시다.”

     

    아무리 오크노디에게 약한 지젤이라도 이번만큼은 사태의 심각성이 컸던 탓일까.

    엄히 그녀를 추궁하는 지젤.

    이에 맞서 “힝” 하고 티토소가를 닮은 소리를 내며 칭얼거리는 오크노디.

    그녀의 시선이 이사벨과 아카디아에게 향했지만 두 사람은 어림도 없다고, 이번만큼은 애교를 부려도 봐주지 않을 거라며 어리광을 받아주지 않았다.

     

    “미안해요, 디. 이게 다 당신을 위해서 그런 거니 이해해주세요.”

    “11살이면 다 큰 성인이잖아. 어른답게 말해.”

    “힝 입니다.”

    ‘하, 미치겠네. 너무 귀엽잖아요.’

    ‘…오크노디의 훈육을 위해서라도 참아야해.’

     

    부채로 급히 얼굴을 가리며 입술을 잘근 깨물어 입을 막는 아카디아와 등 뒤로 돌린 손을 꽉 쥐며 그녀를 안아주고 싶은 마음을 꾹 참는 이사벨!

    자신을 도와줄 아군이 없음을 깨달은 오크노디는 마지못해 보관소에 침입한 본 목적을 실토하였다.

     

    “본 시험 전에 조금이라도 도감수집률을 더 높여서 강해지고 싶었어요.”

     

    도감수집률.

    강해지고 싶다.

    도무지 알아먹을 수가 없는 영문 모를 소리.

    아이들은 으레 그들만의 세계 속에서 산다고 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오크노디의 말은 더욱 알아듣기가 어려웠다.

    성격 나쁜 사람이 보면 머리가 조금 나쁜 거 아니야? 소리가 나올 정도!

    하지만 지젤은 오크노디의 편이었다.

    그녀를 추궁하고 재촉해도 그의 마음의 본질에는 그녀를 이해하고 도우려는 마음이 있었다.

    동시에 재단에 학대당하는 불쌍한 아이를 동정하는 마음도 있었다.

    그것이 논리의 공백이라는 구멍에 개인의 추측이라는 단추를 끼워 맞췄다.

     

    “어렸을 때에 큰일을 앞두고 겪은 경험은 시간이 지나서도 하나의 루틴이 되어 반복하는 일종의 의식이 되기도 합니다.”

    “?”

    “우리 꼬마숙녀도 그랬던 겁니까? 중대한 시험을 치르기 전마다 먹을 수 있는 건 뭐든지 먹어야만 했던 겁니까?”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는 오크노디.

     

    “역시 지젤은 알아주는 거예요?”

    “…가엾게도. 이제 괜찮습니다.”

     

    손을 벌린 지젤에게 머뭇거리다가 와다다 달려가 품에 안기는 오크노디.

    그녀의 머리를 쓸어내리며 손으로 살살 밀가루를 털고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아주는 지젤.

    그의 마음은 착잡하게 가라앉았다.

     

    ‘재단 녀석들. 아직 가치가 증명되지 않았던 시절의 어린 아이들에게는 식량도 제대로 챙겨주지 않고 동물사료나 먹게 만들다니. 그것도 힘겨운 시험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 악물고 열량을 채우기 위해 먹어야 했던 불우한 과거라니.’

     

    우리 꼬마숙녀는 대체 언제까지 이런 비참한 과거를 계속 드러내는 건가.

    재단은 왜 이렇게까지 아이들에게 가혹해야만 했는가.

    그들에게 인간성이 있기는 할까.

     

    ‘안되겠어. 이번 시험이 끝나면 그때는…’

     

    결심이 굳었다.

    기프트 아카데미의 바깥.

    암흑가의 인맥을 사용해서 재단의 어둠을 본격적으로 들춰내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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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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