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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97

       “선발대는 먼저 출발한다!”

        ​

        “혜령아, 목경아.”

        ​

        “네!”

        ​

        “네, 은공. 말씀하십시오.”

        ​

        “전쟁터는 다른 곳과는 다르니 평소처럼 챙겨주기는 힘들 거다. 살아남아도 오롯이 너희의 힘으로 살아남아야 해.”

        ​

        레이디를 지키는 게 기사의 낭만이라지만, 아쉽게도 전쟁터는 낭만이 통하는 곳이 아니었다.

       

       되려 낭만 생각하다가 모가지나 안 따이면 그만이니, 어느 정도는 자기 스스로 몸을 지킬 필요가 있었다.

       

       서련이야 맹주와 함께 있다지만 혜령이는 일단 후방이긴 해도 떨어져 있으니.

       

       그래도 해남검문 사람들이랑 같이 있는 게 다행인가.

        ​

        “…아저씨랑 떨어져 있어야 하는 건 슬프네요.”

        ​

        혜령이가 아쉬움 가득한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

        나와 목경이는 별동대로 따로 움직이다 나중에야 본대에 합류할 예정이니, 혜령이는 한동안 떨어져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

        ​

        혜령이야 나를 따라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겠지만, 전쟁터는 장난이 아니니 그럴 수가 없었다.

        ​

        큰 위험을 무릅쓰고 움직여야 하는 별동대 특성상 데리고 다니기도 쉽지 않고.

        ​

        초절정고수만 모인 곳에서 절정고수가 뭘 하기도 쉽지 않을 테니…

        ​

        “그래도 전장까지는 같이 가니 너무 서운해하지 마.”

        ​

        “아니에요. 아저씨는 위험을 무릅쓰고 싸우시러 가시잖아요. 그냥…몸 성히 돌아와 주시기만 하면 돼요.”

        ​

        “가능하면 지켜보마.”

        ​

        나는 우울한 표정을 지은 혜령이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장갑을 낀 탓에 평소처럼 부드러운 머리카락의 감촉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혜령이는 조금이나마 기분이 풀린 듯 미소를 지었다.

        ​

        “아저씨, 정말 다치면 안 돼요.”

        ​

        “걱정하지 마. 내가 전쟁터에서 잡병으로 시작해서 기사까지 올라간 사람 아니냐. 2년 동안 그 짓을 했으니 그렇게 쉽게 다치진 않아.”

        ​

        최소한 여긴 환경이 훨씬 나은 편이니, 파르스를 상대하는 것을 빼면 그렇게 까지 위험하진 않으리라.

        ​

        그때와 다르게 나는 마스터의 경지에 올라섰으니까.

        ​

        마스터.

        ​

        그 정도면 어떻게든 이 예정된 전쟁을 조금이나마 비틀 수 있겠지.

        ​

        가장 확실한 건 그랜드 마스터가 되는 거지만…그게 말이 쉽나. 서양 전체를 따져도 공식적으로 확인된 게 3명이고, 중원 전체를 따져도 채 내가 아는 고수는 다섯이 안 되는데.

        ​

        그나마도 오늘내일하는 노인들인데다 위치를 알기도 힘들었다.

        ​

        태허진인…은 그 봉우리에 있는 거야 알지만 무작정 데려오기엔 속세랑 연을 끊다시피 한 사람이고. 애초에 내가 처음 만난 시점에서도 나이가 어마어마하게 많았던 분이실 텐데.

        ​

        검성은 위치를 모르고, 권성은 북방에 있을 테고. 그나마 위치를 아는 소림사 방장은 전쟁에 참여하기는 했지만, 함부로 전면에 내세울 수는 없었다.

        ​

        화경이라도 나이를 완전히 거스를 수는 없는데다…기본적으로 스님이었기에 살생을 저지르는 데 거부감이 강한 게 컸다.

        ​

        그래도 자기도 참가하겠다며 방장직 내려놓고 참가해주신 게 다행이지. 

        ​

        스님이랑은 상성이 최악인 전쟁터인데 말이야.

        ​

        “…각원방장님이 파르스를 잘 막아 주실 수만 있다면 할만하겠지.”

        ​

        경지에 이른 고수는 같은 경지의 고수가 되어야 비로소 상대할 수 있는 법.

        ​

        철저하게 설계된 암습을 하거나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자기보다 윗줄의 고수를 2대1로 이기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우니, 각원 대사님은 파르스와 대치하기 위해 본대에 계속 남아있어야 했다.

        ​

        그놈이 얼마나 강한지는 모르겠지만 각원방장님이 발을 묶어놓으시는 동안 상대의 본대를 기습해야지.

        ​

        다 같이 달려들기엔 파르스라는 놈이 원체 영악한 놈이라, 그렇게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을 거고 도주 방법 하나 정도는 확실하게 만들어두었을 터.

        ​

        아마 그놈 주변에 고수가 깔려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

        “각원 대사님이면 누가 오든 안심이에요.”

        ​

        “그렇게 됐으면 좋겠는데. 전쟁터라는 게 원체 변수가 많아서.”

        ​

        차라리 소림사가 아니라 다른 문파였으면 괜찮았을 것 같은데, 소림이라서 약간 불안하네.

        ​

        …뭐, 지금 내가 남 걱정할 때인가.

        ​

        나 자신부터 걱정해야지.

        ​

        “혜령아, 슬슬 위치로 돌아가라.”

        ​

        “아저씨, 잠깐만요.”

        ​

        “왜?”

        ​

        “잠깐만 귀 좀 대주세요.”

        ​

        나는 혜령이의 말대로 몸을 기울여 혜령이 쪽으로 귀를 내밀었다.

        ​

        그러자 혜령이의 손이 내 얼굴을 붙잡더니, 얼굴이 급격하게 가까워졌다.

        ​

        입술에서 느껴지는 부드러운 감촉.

        ​

        가벼운 입맞춤. 

        ​

        얼굴을 떨어트린 혜령이는 자기도 부끄러운지 수줍게 웃으며 말했다.

        ​

        “아저씨, 힘내요.”

        ​

        “…그래, 너도 힘내라.”

        ​

        ——————————–

        ​

        거의 한 달이 걸려 도착한 청해성의 날씨는 정말 건조했다.

        ​

        사실상 서장이나 다름없는 곳이니 만큼 사막이 가까이 있는 탓도 있을 테고, 요 근래 이 근방에서 비가 내리지 않은 것도 연관이 있겠지.

        ​

        그나마 날씨 자체는 선선하다는 게 위안이었다.

        ​

        “은공, 여기 물입니다.”

        ​

        “고맙다.”

        ​

        나는 목경이가 건네준 물통의 물을 한 모금 마셨다. 

        ​

        평소라면 좀 더 많이 마셨겠지만, 전쟁터는 언제 보급이 끊길지 모르니 가능하면 아껴 먹고 아껴 마시는 쪽이 나았다. 

        ​

        내가 후방에서 뻗대는 역할이었으면 이야기가 다르지만, 나는 최전에서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별동대였으니까.

        ​

        “이제 곧 국경에 도착하게 되겠군요.”

        ​

        “그렇겠지. 이 빌어먹을 전쟁이 시작되는 곳에 말이야.”

        ​

        청해성.

        ​

        여긴 마교와 파르스를 제하더라도 아주 어지러운 곳이었다. 

        ​

        티베트 산맥의 동북부 쪽이 몰려있어서 해발고도가 드럽게 높고, 그 와중에 서장의 세력들이 자리를 잡고 있는 곳이라 중원도 청해성 지역의 동부만을 확고한 영토로 지정해두고 있을 뿐, 그 이상 나아가질 못했다.

        ​

        그리 비옥한 땅도 아닌데 굳이 무리해서 먹을 필요가 없으니, 실크로드로 이어지는 관문을 적당히 지키는 선에서 땅을 먹어둔 상태.

        ​

        파르스의 목표는 이곳이 될 확률이 높았다.

        ​

        그놈이 원하는 건 전쟁이지, 숨어들어 가서 난리를 치는 게 아니니까.

        ​

        그놈들이 빈집 털이 시도를 아주 안 하진 않겠지만, 그것 때문에 중원의 문파들도 청해성 위아래로 경계망을 구축한 상태이니 뭔 일 생기면 전서구를 보내겠지.

        ​

        최소한 물량은 이쪽이 훨씬 많으니 할 수 있는 작전.

        ​

        나는 끝도 없이 이어진 티베트 산맥을 보며 전략을 고민했다.

        ​

        아무리 초절정 고수라도 산을 계속 타면 지치는 법이니까. 

        ​

        “고지대를 먹어두면 훨씬 유리할 것 같긴 한데.”

        ​

        파르스라면 무조건 저 산맥을 활용하려 들겠지.

        ​

        “은공, 저기 성벽이 보입니다.”

        ​

        고민에 빠져있던 나는 목경이가 꺼낸 말에 앞을 바라보았다. 우리의 시야가 닿는 지평선을 끝자락에서 거대한 성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

        “저곳이 청해성이로군요.”

        ​

        “수성하기 좋은 구조로군.”

        ​

        “흠…저기가 내가 묫자리를 세울 곳인가.”

        ​

        “당 장로님, 그런 소리 하면 정말 제 명에 못 사십니다.”

        ​

        “에잉, 난 이미 여기에 묫자리를 세울 각오로 왔다. 장로 직함도 버렸으니 그냥 당 노야라 부르거라.”

        ​

        “…예. 당 노야.”

        ​

        “수십 년 동안 갈고닦은 암기술을 보일 때가 됐구나.”

        ​

        “이런 말 하긴 뭣하지만 실험 대상이 썩어 넘칠 테니 마음껏 펼치셔도 됩니다.”

        ​

        “내 자네에게 만천화우를 보여줌세.”

        ​

        “만천화우…말입니까?”

        ​

        그거 당주만 쓸 수 있는 비전초식 같은 거 아니었나?

        ​

        “1차 정마대전 시절에 소실된 무공을 내가 오랜 세월에 걸쳐 복원했지. 할 일이 없어 복원에만 매달렸는데, 이제 다시 한번 실전에서 만천화우를 써볼 수 있겠구나.”

        ​

        당노야의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기대감이 서려 있었다.

        ​

        가문의 비전을 되살려 실전에서 써볼 기회가 온다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니 흥분한 것일지도 모른다.

        ​

        기분이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네.

        ​

        나도 신기술 배우면 전장에서 한 번쯤 써먹었으니까.

        ​

        “실전에서 몇 번 쓰다 보면 온전한 만천화우를 복원하실 수 있을 겁니다.”

        ​

        “끌끌, 그렇고말고…”

        ​

        “꽃하나 피우기 쉽지 않은 땅이로구나…”

        ​

        나는 백자기가 불쑥 말을 꺼내자 그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는 미묘하게 간사해 보이는 얼굴로 염소수염을 쓸어내리며 산맥을 둘러보고 있었다.

        ​

        “화산도 돌산이지 않습니까?”

        ​

        매화가 흐드러지게 피니 뭐니 하지만 화산도 돌산 아니었나.

        ​

        “그게 무슨 소린가? 화산은 매화가 흐드러지게 피는 산이라네…1년의 대부분은 돌산에 가깝지만 말일세.”

        ​

        꽃은 짧게 피니 뭐.

        ​

        나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뒤로 고개를 돌렸다.

        ​

        귀에는 조용히 우리를 따라오는 별동대의 일원들이 보였다.

        ​

        권왕 황보승.

        ​

        창천일검 남궁원.

        ​

        삼절도 팽성운.

        ​

        무영창 단사영.

        ​

        칠성검왕 장무곡.

        ​

        무당검귀 무연.

        ​

        하나하나가 무림에서도 알아주는 고수들.

        ​

        맹주가 직접 부른 별동대들은 내가 뒤를 돌아보자 나를 쳐다보았다.

        ​

        “여러분, 이제 곧 청해성입니다. 이는 곧 저희가 움직일 시간이 되었단 뜻입니다.”

        ​

        “그래, 별동대장. 뭐부터 할 생각인가?”

        ​

        “손무가 말하길 지피지기 백전불태 부지피이지기 일승일부 부지피부지기 매전필태라 하였으니, 적들을 알아볼 생각입니다.”

        ​

        “허어. 색목인이 손자병법을 입에 담다니, 기묘하구나.”

        ​

        별동대의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

        아니 왜.

        ​

        이 정도면 평범하잖아.

        ​

        소울만은 나도 동양인이야.

        ​

        “…흠흠. 그러니, 저희는 정찰작전부터 시작하겠습니다.”

        ​

        어디 마교 놈들 견적 좀 내보자.

        ​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장염이…도져써…

    살려조…

    설사 몇시간 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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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dieval Knight in a Martial Arts Novel

Medieval Knight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소설 속 중세기사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fter two years of being reincarnated as a medieval knight, he finally realizes that he's been reincarnated into a martial arts no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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