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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97

       내가 이쪽 세상에 살면서 나에 대해서 한 가지 확실하게 알게 된 것이 있다면, 나는 의외로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큰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 그러니까, 내가 유지하려는 캐릭터성을 제외하면 그렇다. 이거야 내 개성을 위해서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거지만, 그 외에 다른 부분, 특히 내 주변 사람들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의 눈을 나는 생각보다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내가 ‘살인자’라는 뒷담화가 수개월째 돌고 있다는 것을 최근 들어서야 알았다는 것만 해도 그렇다.

        

       게다가 나는 그 뒷담화를 듣고도 그냥 그러려니 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사실이지 않은가. ‘일단은’ 비밀인 크로우필드 백작 암살 건은 뒤로 미뤄두더라도, 나는 전장에 나가서 이미 사람을 쏘아본 적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것도 한두 명이 아니다. 내가 전부 기억하지 못할 만큼 많은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수십 명 단위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사방에서 총탄이 날아다니고, 폭탄이 터지고, 저 멀리서는 기관총 소리와 돌격하는 소리가 마구 뒤섞인 상황에서 시간을 수백 번씩 되돌리며 싸우다 보면 내가 쏜 사람의 수를 기억할 틈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솔직히 이해는 간다.

        

       아무리 이 아카데미가 사관학교를 겸하고 있고, 여기를 졸업해 군대에 들어갈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사람을 죽여본 이는 거의 없을 테니까. 있다면 오히려 그쪽이 이상한 일이고.

        

       이러니저러니 해도 이쪽 세상에서도 전쟁은 어른들의 일이라는 상식 정도는 존재한다.

        

       어디까지가 어른이고 어디까지가 아이인지 제대로 구분도 하지 않는 주제에 그런 선만큼은 미묘하게 나누어 생각하는 것이 종종 역겹게 느껴지긴 했지만, 아무튼 그런 선이 있었기에, 그 선을 넘어서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을 쏘아버린 나는 학생들에게 ‘살인자’라는 말을 듣고 있는 것이다.

        

       그래, 객관적으로 보면 맞는 말이지. 그걸 진짜로 적용하면 이 나라에서 ‘영웅’이라고 치켜올려 주는 수많은 군인에게도 그 말이 똑같이 적용되는 게 문제일 뿐.

        

       내가 그 말을 들은 것은 전적으로 우연이었다.

        

       나 혼자 그 이야기를 들은 거라면 그냥 가뿐하게 무시하고 넘어갔겠지만—

        

       “너, 방금 뭐라고 했어?”

        

       문제는, 내가 학생회실 문을 열 때 내 바로 옆에 다른 사람이 서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도 신체 능력으로만 보면 나보다 훨씬 뛰어난 앨리스가.

        

       문 바로 앞에 있던 내 귀에도 선명하게 ‘살인자 실비아’라는 말이 들렸으니, 앨리스는 그 앞뒤의 말까지 다 들었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조금 전에 했던 말, 내 앞에서 한 번 더 해 봐.”

        

       내가 문을 다 열기도 전에 그 틈으로 샥 들어간 앨리스는 곧장 그 말소리가 들린 쪽으로 가며 말했다.

        

       아무래도 앨리스는 그 목소리의 주인까지 이미 특정한 모양이었다. 귀족들이 무슨 대화를 하건 별로 신경도 쓰지 않던 나와는 다르게, 앨리스는 아카데미에 온 뒤에는 나름 사교활동에도 힘을 쓰고 있었다. 목소리의 주인을 판단하는 것 정도는 그리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학생회실에는 테이블이 몇 개 있었다. 이런 회의실을 상상하면 으레 떠오르는 대기업 임원들이 둘러앉는 데 쓸 것 같은 거대한 테이블은 없다.

        

       그보다는 오히려 다과회에 더 어울릴 듯한, 한 테이블에 네 명에서 다섯 명 정도가 앉기 좋은 테이블이 몇 개로 나뉘어서 놓여있었다.

        

       규정상 발표나 제안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자리에서 일어나 샴페인 잔을 스푼으로 두드리거나, 목소리를 조금 크게 해서 사람들의 시선을 자신에게 주목하게 하는 식으로, 그러니까 말하자면 전형적인 귀족 사교회 식으로 학생회는 굴러간다.

        

       당연히 그런 회의 시간이 아니라면—아니, 엄밀히 따지자면 그 회의 시간조차도—학생회실은 거의 항상 학생회 회원들의 사교의 장으로 쓰인다는 말이다.

        

       “아, 저, 그게……”

        

       아무리 좋게 들어주어도 살인자라는 말은 절대로 긍정적인 의미를 담은 단어는 아니었다.

        

       그 단어를 황녀의 이름 앞에 붙여서 이야기하던 그 소녀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는 것도 당연하다. 연한 하늘색이라는, 솔직히 주인공 일행 중 하나가 그런 헤어스타일로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개성적인 헤어스타일의 그녀의 얼굴은 자기 머리카락 색깔만큼이나 파랗게 질렸다.

        

       앨리스보다는 조금 늦게, 학생회실 안으로 들어갔다.

        

       학생용 로퍼의 발소리가 뚜벅뚜벅 크게 들렸다.

        

       학생회실에 있던 일곱 명의 학생의 시선이 내 쪽으로 몰리는 것이 들렸다.

        

       내가 화라도 낼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음, 솔직히, 그 정도 단어로 화가 나지는 않았다.

        

       귀족반 아이들의 이름을 모두 알고는 있었고, 그 뒷배경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메인 스토리에 관여하지 않을 아이들과 굳이 친해질 생각은 없었다.

        

       “앗.”

        

       그렇게 친해질 생각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얼굴을 전혀 보지 않을 사이는 아니지.

        

       이렇게 같은 학생회이기도 했고.

        

       나는 그 애 근처에 갈 생각은 없었지만, 앨리스가 곧장 그쪽으로 간 이상 내가 아무런 반응도 안 할 수는 없었다.

        

       귀족 간의 대화라는 것은 마치 수학 공식과 같아서, 자신이 느끼는 감정과는 별개로 ‘공식적인 감정’을 따로 다루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별로 화를 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일이더라도 ‘화를 내는 것’이 귀족 사이에서 호평을 끌어내기에는 더 유용할 때가 있고, 개인적으로 무척 화가 나는 일이더라도 ‘화를 내지 않는 것’이 당연할 정도로 보편적인 일이 있다.

        

       주로 전자는 자신과 가문의 명예와 관련된 일이고, 후자는 자기 피붙이나 배우자에 관련된 일이다. 아주 비슷해 보이지만, 그 종이 한 장의 차이로 대응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이다.

        

       그리고 진짜 능력 있는 귀족이라면 그 두 가지의 위치를 자유자재로 바꾸면서 훌륭하게 잘 활용한다.

        

       “죄, 죄송합니다!”

        

       나와 눈이 마주친 그 여자애의 얼굴색이 더 파리해지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내 쪽으로 허리를 푹 숙였다.

        

       그러니까…… 저 애는 백작가 애던가. 학생회에 들어온 이상 그냥 그저 그런 귀족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팬그리폰 황가에 대적할 수준도 아니겠지만.

        

       별다른 말 없이 빈 자리에 가서 앉으려고 했던 나는, 한숨이 나오려는 것을 꾹 참은 채 그 학생들이 있던 테이블로 다가갔다.

        

       “제국을 위해서 목숨 바쳐 싸우는 행위를 ‘살인자’라고 비난하다니, 제국에 대한 가문의 충성심이 의심되는 말이네.”

        

       앨리스가 그렇게 말하자 안 그래도 침묵에 잠겨있던 학생회실이 더욱 침묵에 잠기는 것 같았다. 조금 전이 수심 10미터 정도였다면, 지금은 거의 심해에 가까워서 그 압력만으로도 사람이 죽을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기분.

        

       “아, 아닙니다. 저는 그저……”

        

       백작가의 여식은 열심히 눈을 굴리면서 변명거리를 찾았지만, 마땅한 말이 떠오르지 않는 모양이었다.

        

       “실비아가 ‘살인자’라면, 이 아카데미의 학장인 윈터필드 공작도 살인자겠네, 그렇지?”

        

       앨리스가 입가에 미소를 지은 채 그렇게 채근하자, 상대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시선을 슬쩍 돌려보니 학생회장도 찻잔을 든 자세 그대로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이 방 안의 다른 사람들은 그 말에 얼마나 동의하는지 모르겠네. 내가 이 방 안에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분위기가 꽤 화기애애했는데. 혹시 우리가 없을 때마다 그런 대화를 아무렇지도 않게 나누던 거야? 제국의 기둥인 줄 알았던 가문들이 사실 제국이라는 이름에 빌붙어 사는 기생충들이었다니, 나도 놀랐는걸?”

        

       “아, 그게……”

        

       그때까지도 입을 헤 벌리고 굳어있던 학생회장의 턱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조금 전의 그 말은, 라셀 영애의 개인적인 발언으로……”

        

       학생회장이 천천히 말을 꺼내자, 라셀 영애의 시선이 학생회장 쪽으로 돌아갔다. 그 눈에는 간절함이 담겨있었다. 그냥 버리지 말아 달라는 표정이라고 해야 할까.

        

       한순간이지만, 학생회장의 눈에서 계산이 굴러가는 것이 보인 것 같다.

        

       “앞쪽의 ‘살인자’라는 단어와 뒤쪽의 ‘실비아’라는 단어는 사실 서로 다른 말을 이어서 하다가 우연히 붙은 것입니다.”

        

       그리고 한순간에 계산을 마쳤는지, 학생회장은 그렇게 말했다.

        

       아무래도 라셀 가에 빚을 지워두는 쪽이 더 유리할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계속해보시죠.”

        

       앨리스는 라셀 영애를 가만히 바라보면서 말했다.

        

       “당시 실비아 팬그리폰 황녀님은 전장에 계셨지요. 상대는 극악무도한 군벌 무리였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살인자와 강간범 무리였죠.”

        

       학생회장은 천천히 말을 이어 나가며 변명거리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실비아’ 팬그리폰 황녀님은 그 ‘살인자’ 무리를 소탕하는 데 큰 공을 세우셨습니다. 비교적 자리가 떨어진 곳이었고, 이 안에는 다른 학생들도 몇 명 있어서 제대로 들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적어도 제가 얼핏 들은 바로는 라셀 영애는 실비아 팬그리폰 황녀님을 모략하려던 것이 아닌, 그 공에 대해서 감탄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느 곳 하나 확실하게 말하는 구석은 없었지만, 그래도 변호 정도는 될 말이었다. 공작가의 장남이 하는 말이면 그 말이 가볍다고는 할 수 없으니까.

        

       라셀 영애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렇습니까.”

        

       그때까지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나는 입을 열었다.

        

       “그 칭찬에 감사드리는 바입니다. 저를 개인적으로 지지해주시는 만큼, 라셀 가도 후에 황실이 할 일에 보탬이 되어주시기를 바랄 뿐입니다.”

        

       “존경하는 팬그리폰 황가를 위해서 제가 뭐라도 못할까요. 그 말씀에는 반드시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내 말에, 라셀 영애는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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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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