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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97

    육지에서 태어난 수많은 존재들이 육지에서 살아가는 것과 같이, 바다는 다른 자들에게는 또 다른 세계다.

     

    그러므로 바다는 또 하나의 우주이기도 하다.

    육지와는 전혀 다른 법칙이 적용되는 거대한 푸른 우주.

     

    육지의 존재들에게는 그 깊은 심해는 단지 죽음과 어둠을 상징하지만, 그곳의 원주민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니 말이다.

    그들에게는 오히려 육지가 그들이 살아갈 수 없는 끔찍한 죽음의 공간일 터.

     

     

    그렇기에 바다위에 부유한다는 행위는, 세계의 경계선에 부유한다는 것과 마찬가지.

     

     

    쏴아아.

     

    파도가 푸르게 달려와 스스로 부숴지는 소음을 세상에 흩뿌린다.

     

    그리고 그 짙푸른 색에, 찰팍찰팍하는 물장구 소리가 하얗게 자신의 색을 더했다.

     

    “그래, 발을 그렇게 움직이는 거야!”

    “이렇게……. 말이지.”

     

    루크는 예르나의 가르침대로 정직하고 부지런하게, 최선을 다해 발을 놀렸다.

     

    일단 마음먹은 것은 있는 가능한 자원과 능력을 총동원해 그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루크의 성격이기도 했던 데다가, 예르나가 직접 나서서 가르쳐주고 있는데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은 실례가 아닌가 하는 생각 탓이었다.

     

    그 덕에 루크의 작은 몸이 조금씩 바다를 가르고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 발전에 조금 성취감이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다.

    비록 튜브와 구명조끼의 도움이 없었다면 물에 뜨지도 못 했겠지만, 아무렴 어떠한가.

     

    본래는 단순한 흐름조작으로 간단히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으니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순수하게 육체의 능력으로 수면을 이동하는 것은 또 다른 감상이 드는 것이다.

     

    “맞아, 정말 잘 하네. 재미있지?”

    “하하……. 나쁘지는 않구나.”

     

    루크는 살짝 미소지었다.

    물놀이는 어린아이들이나 좋아하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물장구가 즐거웠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그동안 얼마나 많은 일이 단지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다’라며 시도조차 되지 않고 기피되었단 말인가?

    아마도 짊어지고 있는 것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에 자신은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 아닐까?

     

    다행히 지금은 어린 아이의 몸이기도 하니, 자신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

     

     

    무릇, 사람은 육신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나비는 애벌레와 동일한 삶을 살아갈 수 없는 것이다.

     

    육신의 변화는 생물에게 있어서 가장 큰 변화이다.

    육신이 달라지는 것으로 생활과 환경, 입장과 능력도 함께 달라지기 때문이다.

     

     

    남성과 여성의 삶이 다르고, 어른과 아이의 삶이 다르며, 인간과 키메라의 삶이 다르다.

    뿐만 아니라, 생사를 걸고 투쟁해야했던 과거와 지금의 환경 또한 다르다.

     

    다르다.

     

    그러니 과거의 루크 이루시와 자신은 분명 다른 존재이다.

    진작에 알고는 있었으나, 그것을 인정해도 정말 괜찮은 것인가 많은 고민을 했다.

     

    자신은 루크 이루시로서 이 시대에 눈을 떴으며, 그러니 눈을 감는 그 순간까지 자신은 ‘루크 이루시’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과거의 ‘루크 이루시’에 대한 예우이며, 스스로를 잃지 않을 방법이고, 그 이름만이 자신에게 남은 유일한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자신은 자신이고, 루크 이루시는 루크 이루시인 것이다.

     

    끊임없이 발을 찰팍거리고 있었더니, 예르나는 미소지으며 루크의 작은 손을 이끌어 방향을 바꾸었다.

    굳은 살로 딱딱했던 예르나의 손바닥은 물을 머금어 약간은 부드러웠다.

     

    “루, 어때? 해보니까, 수영도 재밌지?”

     

    루크는 자신의 왼손을 맞잡은 예르나의 오른손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자신을 구하기 위해 입은 화상이었다.

    그것을 보는 루크는 언제나 예르나에게 미안함을 느끼곤 했다.

     

    그것은 자신이 그녀에게 자신의 능력을 속였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기에.

    어쩌면, 그녀가 자신에게 ‘마법을 쓰지 말아줘’라고 부탁을 한다면 지금처럼 자유롭게 마법에 대해 연구하고 서클을 운용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예르나, 그대는 나를 언제나 애칭으로 부르곤 했지.”

    “응……. 그런데 갑자기 왜 그래? 혹시 그동안 맘에 들지 않았어?”

     

    루크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앞으로도 그렇게 불러주세요. 이제는 꽤 맘에 들거든요.”

     

    ‘루크 이루시’가 자신을 이런 몸으로 만든 이유는 무엇인지, 과연 정말로 루크 이루시가 만든 것이 맞는지는 여전히 모르겠으나.

     

    어쩌면.

     

    삶의 모든 순간을 ‘루크 이루시’로 살아갈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가끔은, 머리가 아닌 마음에 내키는대로 행동해도 괜찮지 않을까?

     

    그러니까…… 마치, 어린아이처럼 말이다.

     

     

    그 순간, 루크는 서클에서 ‘찰칵’ 하고 마치 시계의 톱니바퀴가 맞물리는 듯 한 느낌을 받았다.

     

    나쁜 징조는 아니었다.

    단지 서클이 자신의 몸에 더욱 최적화된 형태로 변화했을 뿐.

     

    ‘그런가.’

     

    그저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던 것이다.

    자신은 고작 껍데기를 지키려, 그토록 고집을 피웠던건가.

     

    시가르마타, 그대가 옳았다.

     

    알은 결국 깨져야 하는 존재이구나.

     

    비록 영웅일지라도 말이다.

     

    “예르나.”

     

    “응, 말해.”

     

    “언니……라고, 저희 둘만 있을 때는 가끔 그렇게 불러도 될까요?”

     

    ‘언니’.

     

    그 단어에 예르나는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 금세 만면에 미소를 가득히 머금은 채로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야 물론이지!”

     

    예르나는 드디어 루크가 언니라는 말의 거부감을 씻어낸 것은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지금의 루크에게는 그것이 훨씬 더 잘 어울리니까.

     

    어린아이가 어른의 흉내를 내는 것이 마냥 쉬울 리가 없다.

    루크가 지금에 와서야 그 두꺼운 가면을 한겹 벗어낸 것 같아 정말로 기뻤다.

    언젠가 그런 날이 오리라 생각은 했지만, 그것이 지금이 될 줄은 몰랐는데…….

     

    그렇게나 수영이 좋았던걸까.

     

    오늘은 굉장이 마음이 뿌듯해지는 날이다.

     

    예르나가 그렇게 웃으며 루크의 눈을 마주치고 있을 때, 시야 한 켠에 무언가가 보인다.

     

    무언가 검은 그림자가…….

     

    “어? 근데 저게 뭐지?”

     

    “응? 뭐가요?”

     

    예르나의 시선을 따라 루크도 뒤를 돌아보았다.

     

    내리쬐는 햇살에 살짝 눈매를 찌푸리며 그 실루엣을 살피던 루크는 그것이 과연 무엇인지 깨닫고 중얼거렸다.

     

    “파이리스?”

    “아, 그러네. 파이리스야. 그런데 대체 무슨 튜브를 타고 있는 거지?”

     

    예르나는 파이리스가 타고 있는 무언가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지, 뿔 달린 돌고래? 저런 튜브를 우리가 가져왔던가?”

    “아니, 저건 일각고래……. 그리고 저건, 튜브가 아니라, 실제 동물이지 않은가!”

     

    루크는 경악했다.

    파이리스가 타고 있는 일각고래는, 바다의 왕자라고도 불리우는 극도로 희귀한 개체였다.

     

    일각고래는 인간도 소통할 수 있을 정도로 지능이 높아서, 인어들의 친구로 종종 설화에 등장하곤 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것이 일각고래가 가진 능력의 전부는 아니다.

     

    일각고래의 뿔은 파도를 조종하는 힘이 담겨져 있다.

    때문에 일각고래의 뿔로 조각한 선수상은 수많은 뱃사람들이 눈독들이던 꿈의 아티팩트였으며, 고가의 함선에 장식되곤 했다.

     

    그렇다.

    파도를 조종하는 것이다.

     

    “언니! 이거 봐! 나 친구 만났어!”

     

    파이리스가 파도를 부르는 일각고래의 등에 탄 채로 자신을 향해 돌진하고 있었던 것이다.

     

    “루, 빨리 도망쳐!”

    “아, 알겠네!”

     

    그 광경을 본 예르나는 곧장 루크의 등을 밀며 해변가로 헤엄치기 시작했다.

    루크도 열심히 발을 놀렸으나, 닥쳐오는 파도로부터 피하기란 역부족이었다.

     

     

    “으아아!”

     

    콰곽!

     

    파도가 결국 모두를 덮쳤고, 루크는 물에 빠졌다.

     

    파이리스에게 물고기를 타지 말라는 규칙을 정하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뒤늦게 후회하며.

     

     

    —–

     

    좋은 날, 화를 내지 않으려고 했건만 어쩔 수가 없다.

     

    파이리스는 결국 잔뜩 분노한 루크의 앞에 무릎을 꿇고 손을 든 채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루크는 그런 파이리스를 쏘아보며 말했다.

     

    “그대는 디아나랑 노는 것이 아니었나? 왜 갑자기 이쪽으로 온 게지?”

    “디아나가 힘들다고 텐트에 들어가서, 언니랑 놀려고…….”

     

    그래, 거기까진 훌륭하다.

    물놀이가 계속 하고 싶었지만, 일단은 혼자서 하지 않기 위해 한 것이 아닌가.

    규칙을 지키려고 한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말해보게, 대체 그 일각고래는 어디서 났나?”

    “파랑이는 그냥 중간에 만났어. 그래서 친구 했어.”

    “뭐? 친구? 파랑이? 설마 이름까지 붙여줬나?”

    “아니야, 원래 그런 이름이었어.”

    “허.”

     

    루크는 이마를 짚었다.

    설마하니 네임드.

    정령이 그 이름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라면, 분명 그리 부르는 존재가 한둘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는 이야기는 바로 그렇게 불리울 정도로 타 지성체들과 교류하는 개체라는 뜻인데 일각고래와 교류하는 지성체는 보통 ‘인어’를 뜻하니, 인어의 반려동물이거나 또는 그 사이에서도 특별히 유명할 정도로 특출난 개체라는 것이 된다.

     

    그저 그런 수많은 일각고래들 중에 하나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어쩐지, 도망치는 속도가 재빠르더라니…….’

     

    그런데 그런 일각고래가 어째서 이런 바닷가에 그냥 있단 말인가?

    도무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하아…….”

     

    뭐, 그래.

    일단 있다고 치자.

     

    “그렇다면 파도는 왜 불렀나?”

    “파도를 타면 더 빠르대서…….”

     

    루크는 또 한번 이마를 짚었다.

    고작 그런 이유로 해변가에 파도를 들이박은 것이란 말인가.

     

    파도가 덮친 뒤에 상황은 꽤 난장판이었다.

    난데없이 닥친 파도에 많은 사람들이 물벼락을 맞아야 했던데다…….

    자신은 튜브가 뒤집어지는 바람에 예르나가 다시 뒤집어줄 때 까지 꼴사납게 버둥거려야 했는데, 그게 우스워보였는지 파이리스는 그 모습을 보고 깔깔댔으니까.

    어쩌면 그것 때문에 더 화가 난 것이 아니라고는 전혀 장담하지 못하겠다.

     

    “파이리스.”

     

    “응……?”

     

    “그대는 이제 바다 금지일세. 그리고, 다른 동물들과 친구하는 것도 안돼.”

     

    “히잉…….”

     

    “대답.”

     

    파이리스는 한동안 우물쭈물거리다가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루크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바다는 금지 빼 주면 안대?”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파이리스, 친구도 잘 사귀어야한다!

    ps. 당연히 현실의 일각고래는 그런 힘 없습니다. 저렇게 생기지도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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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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