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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97

     

    “으으음…!”

     

    샤를에게 영혼을 공격당한 진조가 몸을 비틀거렸다. 라스와 거리를 벌리며 벼랑의 막다른 곳까지 몰렸다.

     

    발꿈치 뒤는 하수도 통로가 끝나는 곳. 바닥도 보이지 않는 공동의 시커먼 지하가 마치 그에게 닥쳐올 미래를 암시하는 듯했다.

     

    뒤통수에서 진조의 영혼이 산산이 부서지며 승화하는 모습을 그 자리의 모두가 볼 수 있었다.

     

    ‘샤를이 진조의 능력을 뺏었어.’

     

    라스가 진조의 본체를 돌아보았다.

     

    샤를이 진조의 본체를 점령했다. 리셰의 몸을 사용하듯, 복부를 관통한 성검을 통해 자신의 혼을 욱여넣었다.

     

    ‘느낌이 이상해.’

     

    샤를은 기묘한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다.

     

    성검이 낸 상처의 물리적인 통증은 그리 크진 않았다.

    마족의 몸이라 성검의 신성함이 오히려 불편하다.

    대가를 지불해 찾아오는 신체의 붕괴까지.

     

    그 모든 감각이 너무 생생하며 온전했다.

     

    마치 자기 자신의 것인 양.

     

    ‘…나, 지금.’

     

    여태껏 갇혀있던 자신의 영혼이 성검에서 분리된 게 확실했다.

     

    진조의 몸을 새 육체 삼아 완전히 떨어져 나왔다.

     

    감옥에서 탈출한 것이었다.

     

    샤를은 확신을 가지고 싶었다.

     

    복부에 박힌 성검을 뽑으면 이 위화감이 진짜인지 알 수 있을 터였다.

     

    만일 온전히 탈출한 게 아니라면 그 순간 다시 성검의 감옥에 혼이 갇히고 말 테니.

     

    하지만 그랬다간 기껏 붙잡은 진조를 놓치고 만다. 그럴 순 없었다.

     

    일단 진조를 쓰러트리는 게 먼저였다.

     

    ‘원인은 짐작이 가. 진조의 능력 때문이야.’

     

    진조에겐 영혼을 다루는 능력이 있었다.

     

    자신의 혼은 물론이고, 피를 빨아 표식을 남긴 자의 혼도 자유자재로 다룬다.

     

    하수인을 감염시키는 능력과 원리는 같았다. 혼에 감염되는 병원체나 마찬가지다.

     

    본체를 꿰뚫어서 그의 피가 성검을 적신 순간, 샤를의 영혼에도 진조의 표식이 새겨진 덕에 연결되었다.

     

    ‘진조와 싸운 적은 많았어도 이런 적은 처음이야.’

     

    여지껏 진조를 토벌할 땐 리셰의 몸을 사용하며 그를 베었다. 진조도 아무리 소체를 조종한다 한들 지금처럼 완전히 본체를 비운 적도 드물었다.

     

    리셰가 아닌 이의 손에 들린 채, 영혼이 빈 진조를 직접 찔러 몸을 빼앗는다.

     

    이런 특수한 경우를 경험할 일은 당연히 여지껏 없었다.

     

    ‘몸을 차지하니 능력도 빼앗아왔어.’

     

    샤를은 즉시 능력의 사용법을 깨닫고 진조의 혼을 조종하려 했다.

     

    저항은 강했다. 그 역시 장생종으로서 막대한 혼의 무게를 쌓아온 자였다.

     

    “그래도.”

     

    상처투성이로 미소 짓는 샤를.

     

    “내가 더 강해.”

     

    여지껏 겪어온 일에 비하면 그의 무게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주먹을 더욱 강하게 쥐어 반 바퀴 돌린다.

    진조가 괴로워하며 타냐의 몸에서 튕겨나가려 했다.

     

    “언니!”

     

    리셰가 샤를을 걱정하며 외쳤다.

     

    샤를은 슬쩍 시선을 돌려 눈짓으로 답했다.

     

    조금만 기다려. 언니라고 불렸으니 멋진 장면 한 번 정도는 보여줄 테니까.

     

    그때, 리셰와 조금 떨어진 곳에서 방금 올라온 황금의 마녀가 보였다.

     

    호위기사를 주렁주렁 달고 안전한 장소에 서 있는 모습이 마음에 안 들었다.

     

    그래도 여기까지 온 사실만으로도 칭찬 정도는 해 줄까.

     

    라스가 그렇게 보증했으니까. 설마 지금 나를 적으로 착각해서 방해하는 멍청한 행동은 안 하겠지.

     

     

    라스.

     

    그는 진조에게 물린 팔뚝을 어루만지며 품에서 무언가를 꺼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팔을 물린 지 수십 초도 지나지 않았다.

    당장 진조에게 몸을 뺏길지도 모르는데, 이럴 때도 침착한 걸 보면 참 강심장이지 싶었다.

     

     

    …라스는 왜 몸을 안 뺏겼지?

     

    샤를은 진조의 능력을 명확히 이해했다.

    이 능력은 자신보다 소위 격이 낮은 영혼만 가두거나 쫓아낼 수 있다.

     

    자신은 그럴 수 있다. 아무리 진조가 장생종이라도 죽음을 겪으며 필사적으로 싸워본 경험은 없을 테니.

     

    어깨에 짊어진 짐의 무게가 다르다.

     

    그런데 라스는.

    라스의 영혼도 그만한 무게가 있다면.

     

    …혹시 처음부터 미래의 기억을 가지고 있었던 걸까?

     

    …어쩌면 한 번이 아니라.

     

    모든 기억을 다 가지고 있을지도.

     

    그 정도는 되어야 최초의 흡혈귀를 기겁하게 할 혼의 무게를 지닐 수 있을 텐데.

     

    나야 성검이 부를 때만 나온다지만,

     

    설마 라스는 그 수많은 멸망을, 죽음을,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혼자서 겪고. 또 반복하고 있는 게.

     

    ‘말도 안 돼.’

     

    사람이 제정신으로 그런 걸 할 수 있을 리가 없어.

     

    나는 지금도, 지금 당장에라도 포기하고 싶은데.

     

    희망 같은 도움 안 되는 가짜 단어는 진작에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는데.

     

    하지만, 라스가 반복하고 있다고 하면.

     

    아니, 반복하고 있어야.

     

    …많은 게 설명이 돼.

     

     

    ‘그렇구나.’

     

    샤를은 납득했다.

     

    라스가 자신에게 회귀를 이야기하지 않은 건 당연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실패가 반복되면 변수를 줄일 수밖에 없다. 통제할 수 있는 건 자기 자신뿐이다.

     

    아무도 믿지 않아서 한 번도 털어놓은 적 없던 건 샤를 자신도 마찬가지였고.

     

    ‘어쩌면 나 때문에… 더 실패했을 때도 있었을까.’

     

    떠올려 보면 그런 적이 많았다.

     

    도중에 정말 힘들어졌을 때, 화가 많아졌을 때는.

     

    조금만 수틀려도 성검을 부숴서 빠져나가려 했었고.

     

    그걸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를 원망했을까.

     

    아무 기대도 안 하게 됐을까.

     

    이런 용사님이니 실망했겠지.

     

    ‘그런데도 너는 포기하지 않는구나.’

     

    리셰를 어떻게든 온전한 용사로 만들기 위해, 질병처럼 발생한 샤를이라는 요소에 최선을 다해줬다.

     

    저 악녀가 통제하고 있으니 손발이 묶여있었을 텐데도.

     

    그렇게 끈질기게 도전해왔으니 아셀라조차 반하게 만든 걸까.

     

    다시 한 번, 샤를은 자신에게 자격이 없다고 통감했다.

     

    왼손에 용사인지 뭔지 하는 징표가 깃들었을 때, 그 손을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말고 잘라버렸어야 했다고.

     

    후회가 들어찼다.

     

     

    “빈틈.”

     

    정신을 잃어가던 진조가 작게 중얼거렸다.

     

    “무릎을.”

     

    ―콰득!

     

    샤를이 갑작스레 힘을 잃고 바닥에 오른쪽 무릎을 처박았다.

     

    “윽?!”

     

    진조가 눈을 떴다. 동공에 생기가 돌아온다.

     

    샤를은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정신력이 밀리고 있었다. 마음에 틈새가 생겼다. 집중력이 산만해진 탓이다.

     

    하필 자신이라 그랬다.

    라스였다면, 아니. 차라리 리셰였어도 겨우 저런 놈에겐 지지 않았을 것을.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점점 몸이 둔해진다. 진조의 영혼이 자신을 쫓아내고 몸을 되찾으려 압박해오는 게 느껴졌다.

     

     

    하.

     

    겨우 마족 한 마리 가지고 이렇게 끙끙 매다니.

     

    한심해 죽겠어.

     

     

    안이했던 자신을 탓한들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점점 눈꺼풀이 무거워지고 다시 진조의 본체를 뺏기기 직전.

     

    “샤를.”

     

    자신의 뺨을 잡는 손이 있었다.

     

    커다랗고 따뜻한 감각. 언젠가 정신을 차리라며 붙잡힌 적 있는 손이었다.

     

    라스가 두 눈을 똑바로 마주치며 샤를에게 말했다.

     

    “카운슬링이야.”

     

    “카운… 슬링.”

     

    기분 좋은 단어였다. 샤를에겐 라스와 이야기할 때마다 좋은 기억만 남아있었으니.

     

    라스가 말했다.

     

    “사람의 희망에 관해서인데.”

     

    “희망.”

     

    샤를이 그 단어에 눈을 깜빡였다.

     

    “정확히는 동기부여라고 할 수 있겠어. 처음부터 태산 정상에 오르자는 목표를 잡았다고 하자.”

     

    라스가 시선 높이 손바닥을 세워 보였다.

     

    “시간이 오래 걸릴 거야. 오랜 기간 힘들고 지치기만 하겠지.”

     

    “그건… 맞아.”

     

    “하루아침에 태산을 오르는 건 아무도 못 해. 설령 용사님이라도. 너라서 못 한 게 아니야. 사람의 정신과 신경계는 그걸 버틸 수 있게 만들어지지 않았어.”

     

    또박또박, 라스가 샤를에게 말하며 손바닥의 위치를 아래로 내렸다.

     

    “짧은 목표를 세워서 그때마다 보상을 줘야 해. 사람은 신경계의 도파민 보상 체계가 작동해야 동기를 유지할 수 있어.”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어.”

     

    “그러니까, 지금은 세상의 멸망을 막느니 마왕군과 싸우느니 다른 건 됐고.”

     

    라스가 씨익 웃으며 샤를에게 말했다.

     

    “쟤 이기면 올라가서 기가 막히는 한 잔 말아줄게.”

     

    그 말을 듣자 샤를의 눈동자에 힘이 돌아왔다.

     

    “그게 희망 아니겠어.”

     

    샤를은 자기도 모르게 입맛을 다셨다.

     

    라스가 저렇게 자신할 정도면 얼마나 맛있는 술일까.

     

    “진짜지.”

     

    “그럼, 믿고 있어.”

     

    라스가 툭툭, 샤를의 어깨를 쳤다.

     

    …신기하게도 어디에도 없는 줄 알았던 기운이 솟아났다.

     

    그녀의 무릎에 힘이 들어간다.

    다시금 일어서서 눈매를 바로 고친다.

     

    콱, 주먹을 쥐고 당기면.

     

    마치 진조는 직접 멱살을 잡힌 듯 숨이 옥죄이며 힘을 잃어간다.

     

    “…으음.”

     

    신음을 흘리는 진조.

    그가 이를 악물었다.

    조금 전까지 역전할 기회가 있었다. 다시 몸을 찾을 수도 있었건만.

     

    고트베르크가 수작을 부리니 다 꺼져가던 용사의 영혼이 불이 붙은 듯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와 반대로 한계를 맞은 자신의 영혼은 소멸해간다.

     

    “아름답군.”

     

    진조는 만족했다.

     

    마족이기에 자신이 마지막까지 이해할 수 없었던 인간들의 감정 교류.

     

    수많은 인간의 육체와 영혼을 먹어치운 끝에도 알 수 없었던.

    그 아름다움의 편린을 눈앞에서 목격하며, 진조는 깔끔하게 패배를 인정했다.

     

     

     

    인정했기에, 의무를 다하기로 했다.

     

    마족으로서, 마왕군에 소속된 자로서의 의무다.

     

    목숨이 위험한 순간이 다가오면 한 명이라도 많은 인간을 길동무로 삼는다.

     

    마왕군의 대의를 위해.

     

    “오오오오!!”

     

    진조가 마지막 힘을 짜냈다.

    영혼 깊은 곳에 감춰둔 한계의 제약을 풀어낸다. 평생 쌓아올린 자신의 모든 것을 대가로 환원한다.

     

    ―파아아앙!!

     

    타냐의 몸에서 거친 오러가 터져 나왔다.

    서풍. 하늘 끝까지 솟구쳐 태풍을 일으킬 수도 있을 위력의 바람이다.

     

    “뭣…!”

    “위험합니다!”

     

    호위기사들이 즉시 방어 포진을 펼쳐 아셀라를 막아섰다.

     

    아셀라 역시 위험성을 깨닫고 방어마법진을 구축하지만 늦을 게 분명했다.

     

    라스.

     

    라스는 진조와 가까워도 너무 가까이 있다. 휘말릴 게 분명했다.

     

    “오러…!”

     

    즉시 반응해서 진조에게서 검을 뺏어들기 위해 달려드는 리셰.

     

    라스 역시 판단은 별다르지 않았다. 검이 없다면 오러는 방출할 수 없다.

     

    설마 이판사판으로 자폭해 올 줄이야.

     

    소드마스터의 오러를 쓸 정도로 대가를 바쳤으면 이놈도 이 일격과 함께 소멸할 게 분명하거늘.

     

     

    샤를도 상황은 빠르게 파악했다.

     

    저 오러가 터지면 이 지하도가 붕괴해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이 죽는 건 일단 당연하다.

     

    지하도는 연무회 경기장의 지반을 넓게 퍼진 구조로 되어있다.

     

    아래에는 동굴도 있었으니 그곳까지 붕괴하면 도시 전체가 가라앉을지도 모른다.

     

    희생자는 수만 명에 다다를 게 분명했다.

     

    ‘…응.’

     

    왜 그랬냐고, 물으면.

     

    샤를이, 아니.

     

    리셰라는 인간이 그런 사람이라서 그랬다고밖에 대답할 수밖에 없겠다.

     

    호구같이 의무는 다 지면서, 권리는 하나도 안 챙기고.

     

    용사가 뭐라고.

     

    ―파악!

     

    샤를이 자신에게 박혀있던 성검을 뽑아 들었다.

     

    여기까지, 진조의 폭주로부터 0.7초.

     

    익숙한 팔놀림으로 일격을 준비한다.

     

     

    마지막 순간.

     

    진조에게 달려드는 라스와 눈이 맞았다.

     

    어차피 나는 포기한 지 오래니까, 너는 꼭 도착하라든지.

     

    여동생을 돌봐달라든지.

     

    하고 싶은 말은 몇 가지가 더 있었지만.

     

    “술 못 마신 건 좀 아쉽네.”

     

    미소와 함께 그런 말을 전하고.

     

    ―스릉!

     

    성검으로 깔끔한 궤적을 그었다.

     

     

     

    털썩.

     

    진조의 본체가 양단되어 바닥에 쓰러졌다.

     

    그와 동시에 전원이 꺼진 듯, 타냐가 정신을 잃고 무너졌다.

     

    당장에라도 폭발하려던 오러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도 동시였다.

     

    “샤를.”

     

    달려들다가 타냐의 몸을 받쳐 든 리셰는 라스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고개를 돌렸다.

     

    “…언니?”

     

    미동도 하지 않는 진조의 시체.

     

    그 아래, 성검 만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새하얗게 반짝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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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굿엔딩

     

    [영웅의 길]

    · 용사와 ■자 62% → 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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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작가님들사랑해요님 후원 감사합니다. 저도 항상 읽어주시는 독자님들 모두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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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주치의는 악녀를 고치고 도망쳤다
Score 3.6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Becoming the physician of the villainess who brought about the world’s destruction, I tried to escape to survive, but the reactions were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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