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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97

        

         

       꽃은 사시사철 색을 뽐내며 향기를 퍼뜨릴 수 있을 줄 알고, 젊은 사람은 자신의 젊음이 영원할 것으로 여기는 법.

       권력자의 성질 역시 이와 같아 자신이 권력을 잃어버릴 때를 생각하지 않으며, 시간이 지나면 꽃이 떨어지듯 자신 역시 볼품없이 떨어져 내린 모습을 쉽게 상상하지 못한다.

         

       우치카와 료스케 역시 마찬가지였다.

         

       “파면 팔수록 추문이 나오는 사람이었지요.”

         

       리세는 우치카와 료스케를 떠올리자 슬쩍 인상을 찌푸렸다.

         

       우치카와 료스케의 권력을 없애버리고 정치인으로서의 생명을 없애버리기 위해 이리저리 정보를 모으는 과정에서 어마어마한 양의 추문을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말 그대로 ‘어마어마하다’라는 수식어가 붙어도 전혀 모자람이 없는, 끔찍할 정도의 추문들.

         

       이력서에 써낼 그럴듯한 한 줄을 만들기 위한 활동과 공부로만 점철된 무미건조하고 힘들었던 학창 시절을 보상받으려 하듯, 우치카와 료스케는 정치인이 되자마자 온갖 짓을 벌이고 다녔다.

         

       여자를 사귀지 못했던 과거를 잊어버리기라도 하듯 온갖 여자를 끼고 다녔고, 그것만으로 부족했는지 무라타 류노스케에게 접촉해서 클럽에 가입해서 문란한 생활을 즐기기까지 했다.

         

       가정?

       당연히 박살이 난 상태였다.

         

       정략결혼으로 아내로 맞아들인 여자와는 쇼윈도 부부가 된 지 오래였고, 한 건물에서 살다 뿐이지 아예 다른 층을 쓰고 있었다. 게다가 서로서로 애인을 집으로 끌고 와서 즐기는데도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을 정도로 마음이 멀어진 상태였다.

         

       아이?

       어린 아들 하나를 낳아놓기는 했다.

       하지만 우치카와 료스케의 아내는 아들의 얼굴에서 보기도 싫은 남편의 얼굴이 보인다며 제대로 돌보려고 하지 않았고, 우치카와 료스케 역시 별로 정이 가지도 않아서 정치인으로서 활동이 바쁘다는 핑계로 아이를 친가로 보내버렸다.

         

       그나마 최근에 모종의 사건을 겪고 마음이 변하기라도 한 것인지 친가를 자주 들락거리며 아들에게 얼굴을 비추고 있다고는 하지만….

         

       글쎄….

       그것이 진정 부정(父情)이 샘솟아서 그런 것일까?

         

       “아마 벌려놓은 것이 너무 많아 제 뒤에 어떤 소문이 따라다니는지도 모를 것이니라.”

         

       진성이 보기에 아들을 보기 위해 친가로 계속해서 찾아가는 우치카와 료스케의 모습은, 부정에 눈을 뜬 아비의 모습이라기보다는 점차 잃어가는 권력을 어떻게든 되찾기 위해 친가의 힘을 빌리려 하는 것으로만 보였다.

         

       권력.

       지위에서 나오는 권력.

       우민한 백성들의 위에 서서 그들을 이끄는, 정치인이라는 이름에서 오는 권력.

         

       “게다가 소문에 신경 쓸 여력 역시 없을 것이니라.”

         

       정치인에게 있어 권력이라는 것은 절대적이었다.

         

       무엇이든 할 수 있었으니까.

       권력만 있다면 모든 것을 손에 넣을 수 있었으니까.

         

       말초적인 쾌락부터 황금처럼 번쩍이는 부까지.

       젊음이 한껏 피어난 여자에서부터 기꺼이 자기 말에 조아리며 힘을 발휘할 부하까지.

         

       그 모든 것을, 사람이라면 누구나 얻고 싶어 하는 그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권력으로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은, 권력이 없으면 그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는 말과 같았다.

         

       자신이 골라잡을 수 있는 여자들은 코웃음을 칠 것이고, 아양과 아첨을 하던 사람들은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떠나갈 것이며, 모아놨던 재산은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모래처럼 흐트러져 그에게 빠져나가게 되리라.

         

       “제가 이룩하고 있는 것이 모두 부서져 내리고, 탄탄하게 가꾸어놓았던 미래가 박살이 나는 와중에 고작 제가 저질렀던 일이 소문으로 오는 것이 신경이나 쓰이겠느냐?”

       “후훗. 그렇겠네요.”

         

       리세는 진성의 말에 눈웃음을 쳤다.

         

       “무라타 류노스케 원로의 끈이 닿는 사람들은 그 작자를 상대도 하지 않고 있고, 그것을 본 다른 정치인들 역시 뭔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서 그와 친교를 다지려 하지 않고 있지요. 게다가 그러한 모습이 은근히 퍼짐에 따라 돈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 역시 외면을 하는 상태고….”

         

       권력에 빌붙는 사람들은 그 무엇보다 권력의 동향에 민감한 사람들이다.

         

       당연히 힘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는 사람, 끈이 떨어져 버린 사람, 쓸모가 없는 사람은 기피하는 것이 정상이었다.

         

       “게다가 그 작자는 한때 잘나갔던 만큼 더 상실감을 느끼고 있답니다.”

         

       게다가 높은 곳에 올라갈수록 떨어질 때의 충격이 더 커다란 법.

         

       막후에서 강한 권력을 휘두르던 무라타 류노스케 원로의 끈을 잡았던 만큼 그에게 수많은 사람이 모여 떨어지는 콩고물을 받아먹기 위해 온갖 재롱을 부리곤 했었다. 값비싼 선물은 기본이었고, 아예 지금의 아내를 버리고 자신의 가문에 있는 여식과 재혼하는 게 어떠냐는 제의까지 받은 적이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은?

         

       바글바글 몰려들었던 사람들은 그림자조차 찾아볼 수가 없고, 값비싼 선물은커녕 의례적인 연락조차 오지를 않는다. 수치를 무릅쓰고 만나려 하면 곤란한 얼굴로 돌려보내거나 얼굴도 보여주지 않고 문전박대를 하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게다가 새로운 인맥을 쌓으려고 해도 누가 흘리는 것인지 우치카와 료스케가 모두에게 외면받고 있다는 사실이 그들에게 넌지시 들어가기까지 한다.

         

       그렇게 우치카와 료스케는 만들어놓은 인맥은 모조리 박살이 나고, 인맥을 만들려 하더라도 완성 직전에 박살이 나거나 완성 직후에 끊겨버리는 것이 반복되었다.

         

       그리고 상황이 이렇게 되니 당연히 가문에서도 우치카와 료스케를 꺼릴 수밖에 없다.

         

       가문을 높은 곳으로 이끌어주기는커녕 저 심해 밑바닥으로 가라앉혀버릴 것 같은 무능하기 짝이 없는 사람을 환영할 수가 있겠는가.

         

       그 때문에 가문에서는 우치카와 료스케가 아들을 보러 왔다는 핑계를 대고 방문해도 차갑게 대하고 있으며, 점점 나빠지고 있는 상황을 가만히 지켜보며 필요하다면 절연까지도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전부 다 자업자득이었다.

         

       “그 멍청한 작자는 신주님을 배신한 대가를 치러야 해요.”

         

       리세는 우치카와 료스케가 몰락하고 있는 것을 떠올리며 음산하게 웃었다.

       하지만 이내 자신의 옆에 진성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재빠르게 표정을 관리하였고, 좋지 않은 모습을 보인 것이 민망했는지 멋쩍게 웃었다.

       그러더니 애교를 살짝 섞은 눈웃음을 치고는 기다란 자기 머리카락 일부를 잡아 손가락에 비비 꼬며 눈을 피했다.

         

       “그래. 배신한 대가를 치러야지. 다만, 미끼로 하기로 하였으니 그만한 가치를 증명해야 할 것이니라.”

         

         

         

        * * *

         

         

         

       몰락이 다가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는가?

       절망이 시간에 얽히며 다가와 목을 옥죄는 감각을 느낀 적이 있는가?

         

       우치카와 료스케는 실시간으로 그 끔찍하기 짝이 없는 미래에 숨이 턱 막힐 것만 같은 감각을 느끼고 있었다.

         

       가슴에 천 근이 넘는 바윗덩이를 얹어놓은 것처럼 먹먹하였고, 음식을 먹어도 모래를 씹은 것처럼 아무런 맛이 느껴지지 않는다. 머리를 슬쩍 긁어내리면 수많은 머리카락이 손가락 끝에 얽혀있고,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려고 한다면 스트레스 때문에 피가 섞인 새빨간 오줌이 나온다.

       물을 마시다가도 누군가 목을 옥죄는 느낌에 제대로 넘기지도 못하고 사레가 들리는 것이 태반이요, 친정으로 돌아간 아내 때문에 오직 자신만이 남아있는 건물에서는 이곳저곳 돌아다니는 귀신만이 간간이 보일 뿐이다.

         

       “흐, 흐흐흐흐흐.”

         

       이것을 불행이라고 해야 할까,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본래라면 넓은 공간에 혼자만 있을 때 오는 외로움과 상실감에 짓눌려 있어야 했다.

       하지만 차기 신관, 혹은 신주라고 부르는 그 기묘하기 짝이 없는 사람에게 선물 받은 ‘영안’으로 인해 귀신이 돌아다니는 것을 볼 수 있어 외로움만은 느끼지 않고 있었다.

         

       물론 외로움 대신에 그 자리에 나도 저 영혼들처럼 변할 수 있다는 끔찍한 상상이 들어차기는 했지만….

         

       그게 무슨 상관인가.

       그 어떤 것보다 자신이 가진 것을 잃어버리는 미래에서 오는 공포가 가장 끔찍한 것인데.

         

       “나는 대체, 대체….”

         

       우치카와 료스케는 멍하니 화장실 쪽을 바라보았다.

       그가 고개를 돌려서 화장실을 바라보자 묘한 푸른빛을 품은 눈동자는 어둠이 들어찬 화장실과 그 어둠 속에서 이리저리 흐느적거리는 무언가를 비춰주었다.

         

       “대체….”

         

       어디에서 왔는지 모르는 빼빼 마른 남자가 세면대 앞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뼈에다가 가죽을 씌운 듯 깡마른 몸으로 기괴하게 흐느적거리며 남자는 계속해서 춤을 추었고, 오물이 가득 묻어있는 맨발을 벽 이곳저곳에 부딪치며 제 흔적을 남기려 애를 쓰고 있었다.

         

       우치카와 료스케는 그것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시선을 돌려 창문을 바라보았다.

         

       그가 창문으로 시선을 돌리자 두꺼운 암막 커튼이 이리저리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창문을 꽉 닫았음에도 마치 거센 바람이 부는 것처럼 암막 커튼의 가운데와 윗부분이 불룩 튀어나왔다가 사그라들기를 반복하였고, 때로는 사람의 얼굴의 형상 같은 것이 튀어나와 이리저리 방 안을 살피듯 좌우로 움직이기도 하였다.

         

       “난 대체 무엇을 잘못한 거지.”

         

       료스케는 적막 속에서 귀신들의 재롱을 보며 후회가 가득 담긴 언어를 내뱉었다.

         

       하지만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는 것이 아니던가.

         

       료스케는 사무치는 후회와 확정되어버린 자신의 미래에 몸을 떨었다.

         

       주위에 귀신이 가득해서 추운 것일까?

       난방을 켜지 않아서 추운 것일까?

       아니면 이제는 따스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자신의 미래를 떠올렸기 때문일까?

         

       그는 자조 섞인 웃음을 흘렸다.

         

       “흐흐흐흐….”

         

       무라타 류노스케 원로의 힘이 닿는 모든 사람이 그를 외면했다.

       힘이 닿지 않는 사람들 역시 처절할 정도로 몰락하는 그에게서 거리를 벌렸다.

         

       정치인들이 그를 외면했다.

       권력자들이 그를 외면했다.

       기업인들이 그를 외면했다.

         

       한때는 그의 애인을 자처했던 사람들도.

       그의 입맛에 맞는 기사를 내어주었던 기자들도.

       어린 시절부터 친교를 나눴던 화족들도.

       그가 커리어를 관리하면서 만났던 수많은 사람도.

         

       전부 그와 연락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게다가 그가 이렇게 된 원인 역시도 그를 외면했다.

         

       아니, 어쩌면 외면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애초에 음양사들과 직접 접촉한 것도 아니었고, 협력을 약속받았던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냥 어설프게 간을 보려다가 신주에게 걸렸던 것이 아니던가.

         

       음양사 입장에서는 웬 정치인이 혼자서 이상한 짓을 하다가 고꾸라진 것으로만 보일 것이다.

         

       “흐흐….”

         

       게다가 음양사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의미가 없다.

         

       우치카와 료스케는 그들에게 큰 의미가 없었으니까.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쓸모가 없었다.

       

       휘두를 수 있는 권력이라도 많으면 도와줄 수 있으련만.

         

       쓸모도 없고, 인망도 인맥도 없고, 도와줘도 제대로 써먹기도 힘들어 보인다.

       그렇다고 특출난 재주가 있어 보이는 것도 아니고, 대체할 수 없지도 않다.

         

       음양사들이 그를 도와줄 이유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우치카와 료스케를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오직 하나.

         

       평소에 그토록 무시했던 사람들과 같은 위치로 내려가는 일뿐이다.

         

       “누가, 누가 나를 구해준다면…. 기꺼이 어떤 일이라도 할 텐데….”

         

       그렇기에 그는 갈망했다.

       자신이 가진 우월감이 사라지지 않기를.

       자신이 그토록 무시했던 사람들과 똑같이 변하지 않기를.

         

       누군가가 이 절망밖에 없는 미래에서 자신을 구해주기를.

         

       “아무나 날 구해줘…. 그럼 뭐든지 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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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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