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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97

       

       

       

       

       

       “정말 사랑스럽네요.”

       

       실비아는 내게 안겨 잠든 아르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이렇게 섬세하고 마음이 예쁜 드래곤이 또 있을까요?”

       “글쎄요. 아마 보기 힘들지 않을까요.”

       

       드래곤이 아니라 이 대륙에 존재하는 사역마 전체를 놓고 봐도 없을 거다. 

       

       아니, 사역마가 아니라 그냥 모든 종족의 모든 개체를 통틀어도…. 그 정돈 아닌가?

       

       ‘적어도 나한텐 유일무이한 존재지. 아르는.’

       

       덩치는 나보다 커졌지만, 여전히 자는 얼굴을 보면 갓 태어났을 때의 순수함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큐우우….”

       

       그 큰 덩치로 나에게 기대 안겨 있으니 좀 무겁긴 했지만….

       

       이럴 때 쓰라고 단련한 게 힘 스탯 아니겠는가. 

       

       아르가 좋아하고 편안해 한다면 이 정도쯤은 얼마든지 버틸 수 있다. 

       

       “뀨웅…. 레오온….”

       

       아르는 벌써 잠꼬대를 하며 내 품에 얼굴을 묻었다. 

       

       “진짜 귀엽네….”

       “레키온 네가 왜 귀여운 거에 빠졌는지 나도 좀 알 것 같다.”

       

       알렉스는 흐뭇한 눈빛으로 아르를 보며 말했다. 

       

       “데보라, 그러고 보니 너도 뭐 귀여운 거엔 하나도 관심 없더니 아르한텐 좀 관대하더라?”

       “…뭐, 보다 보니 좀 귀여운 거 같더라고.”

       “캬. 천하의 데보라를 감화시킨 아르라니! 아니면 데보라도 이제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인가?”

       

       알렉스는 씩 웃으며 데보라를 놀렸다. 

       

       하지만 데보라는 웬일로 맞받아치는 대신 조용히 잠든 아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입을 열었다. 

       

       “알렉스, 너 아르가 인간 모습 된 거 못 봤지?”

       “어? 어. 남부에서 아이 모습으로 다녀서 딸 역할을 했다는 건 알고 있긴 한데, 실제로 본 적은 없어. 근데 갑자기 그건 왜?”

       “난 봤는데 진짜 예쁘더라고. 그렇게 예쁘면서도 이렇게 착하기까지 한 아이라니. 보면서 나도 저런 딸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더라. 진짜 나이를 먹긴 했나 봐.”

       

       알렉스는 그 말에 입을 떡 벌렸다. 

       

       “맙소사. 데보라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오다니.”

       

       그러고는 데보라의 진지한 표정을 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뭐, 어쨌든 너도 이제 앞으로 결혼할 일만 남았으니 딸이든 아들이든 생기겠지. 딸이길 기원해 주마.”

       “결혼…?”

       “그 반응은 뭐야? 레키온이랑 결혼 안 하려고?”

       “아, 아, 아니. 그게 아니라….”

       

       데보라는 그제서야 자기가 지금까지 한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달은 듯, 얼굴을 붉혔다. 

       

       그리고 레키온을 홱 돌아보았다. 

       레키온도 어느새 귀가 빨개져서 시선을 슥 피했다.

       

       “어, 음…. 데비. 나도 당연히 너랑 결혼하고 그, 아이 만드는 걸 하고 싶긴 한데. 아직 마왕 세력들이 남아 있는 이상 그 계획은 조금 미루는 게 낫지 않을….”

       “꺄아악! 당연하지! 누가 지금 하쟤?”

       “진정해, 데비! 아르 깰라.”

       

       그 와중에도 아르 걱정을 하는 레키온을 보며, 알렉스도, 나도. 실비아도 웃음을 터뜨렸다. 

       

       “큐우우…. 큐우….”

       

       물론 아르는 여전히 취한 상태로 꿀잠을 자고 있었다. 

       

       “포도쥬…. 마시쩌…. 뉴움….”

       

       ***

       

       알렉스는 차려진 만찬을 간만에 배불리 먹고 돌아갔다. 

       

       아르 많이 먹으라고 많이 준비해 둔 음식이었는데 막상 아르가 잠들어서 음식이 많은 탓에 다들 부지런히 음식을 먹어치웠다. 

       

       그중 아르가 좋아하는, 몇몇 포장해 둘 수 있는 음식들은 남겼다. 

       

       “뀨우우….”

       

       아르는 일단 레키온이 마련해 준 빈 방에서 재우기로 했다. 

       

       “제가 업고 갈게요.”

       “둘이 같이 드는 게 낫지 않을까요?”

       “괜찮아요, 이 정돈.”

       

       잠든 아르는 실비아가 업어서 옮기겠다고 했다.

       

       아르만 한 강철 덩어리도 들어올릴 힘이 있는 9성 검사라 그런지, 책가방 메듯이 아르를 쉽게 들쳐 업었다. 

       

       다행히 파메라 성의 문은 기사들이 평소에 갑옷을 입고 다니기도 하고, 무기 상자 같은 걸 옮기기도 해야 해서 그런지 아르를 업고 지나가기에 충분히 컸다. 

       

       깔끔한 방, 넓고 푹신한 침대에 아르를 뉘이자 아르는 베개를 껴안고 쿨쿨 잘도 잤다. 

       

       다만, 안타깝게도 여관이 아니다 보니 침대가 넓어 봐야 2~3인용 침대였기에 나와 실비아는 옆방에서 묵기로 했다. 

       

       “야경이 참 좋네요.”

       

       어느새 해가 기울고 별이 반짝이는 창밖을 내다보며, 나와 실비아는 경치를 즐겼다. 

       

       “별이 정말 많네요. 정말 하늘에서 쏟아질 것만 같아요.”

       “레온 씨가 살던 곳에는 별이 별로 없었나요?”

       “음, 뭐라고 해야 할까. 별은 많은데 잘 안 보였죠.”

       

       나는 과학 기술이 발달해 공장과 자동차 매연 등 대기를 가리는 것들이 생긴 일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 주었다. 

       

       “자동차라…. 참 신기하네요. 가끔씩 레온 씨가 살던 곳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언젠가 한번 직접 구경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하하. 저도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한 번쯤은 가 보고 싶긴 하네요. 요즘은 세상이 어떻게들 돌아가고 있나 구경해 볼 겸요.”

       “레온 씨는 원래 세계로 돌아가고 싶으세요?”

       

       실비아는 내 손을 부드럽게 잡으며 말했다. 

       나도 실비아의 손을 마주 잡으며 고개를 저었다. 

       

       “딱히 다시 돌아가서 살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들어요. 여기에서 보낸 시간은 저쪽에서 보낸 시간보다 짧지만, 여기에서 겪은 일들은 저쪽에서 보내던 단조로운 삶보다 훨씬 저한테 깊게 물들었거든요.”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무한 경쟁 속에서 치열하게 석차와 등급을 놓고 정해진 루트를 따라 공부를 해야 하며.

       

       그토록 열심히 달려서 결국 입학한 대학교에선 또 학점을 위해 달려야 하고.

       

       그 이후에는 경쟁률이 하늘을 뚫는 취업 전선에 뛰어들어 이력서만 수십 개, 수백 개를 넣는 현대 학생의 삶.

       

       ‘음…. 사실 나는 중고등학교 때 게임을 열심히 하느라 모니터 속 사람들과 무한 랭킹 경쟁을 하긴 했는데.’

       

       하여튼.

       

       적당한 대학의 문과 계열을 졸업해 되지 않는 취업을 뒤로 하고 고시원에서 알바를 하며 동물 뉴튜브 영상 보는 걸 낙으로 살았던 나였기에, 페룬 대륙에 떨어져 하루 하루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고 살아가기 위해 나 자신을 단련해 왔던 나날들은 내 영혼 더욱 깊숙이 박혔다.

       

       “그리고, 말씀드렸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부모님과 떨어져 산 지 오래됐거든요. 도시에서 살아 주변에 사람은 많았지만, 세상에 홀로 남았다고 느껴진 적이 많았죠.”

       

       그래서 어쩌면 더더욱 동물 영상을 보면서 혼자이고 싶지 않다는 욕구를 충족시키려고 했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여기선 달랐어요. 바냐스 마을이 습격당했을 때는 하늘을 원망했지만 곧 아르를 만나게 됐으니까요.”

       

       사람은 지켜야 할 게 있을 때 강해진다고 했던가. 

       

       만약 지켜야 할 게 내 목숨 하나뿐이었다면 이렇게 험난한 세계관에서 살아가는 건 절대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아르를 만나고, 아주 작고 연약한 갓 태어난 해츨링을 지키기 위해 몸부림치면서,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즐거웠던 것 같아요.”

       

       신뢰의 계약.

       

       자신에 대한 상대의 신뢰도가 백 퍼센트를 달성했을 때 할 수 있는 영혼의 계약.

       

       “그 작은 해츨링이 제가 뭐라고 그렇게 완전히 신뢰해 주고 계약까지 해 버렸는지….”

       

       그때의 나는 레벨도 낮고 몸도 약해서 잘못하면 나와 함께 아르 자신도 위험해질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말이다. 

       

       “여튼, 저는 아르와 만나고, 또 실비아 씨와 만나고 나서…. 솔직히 힘들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그만큼 보람차게 살고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이야 돈이 많아 삶이 편해졌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나는 매일같이 수련을 해 스탯을 쌓아야 하고, 여전히 어둠 속에 도사리고 있는 마왕 세력들과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한다. 

       

       하지만, 이런 위험한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대신 원래 세계로 다시 돌려 보내 준다고 누군가가 얘기한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그걸 거절할 것이다. 

       

       “소중한 것들을 지키는 거야말로 정말 행복한 일이라는 걸 깨달았거든요.”

       

       거기까지 말한 나는 문득 너무 나오는 대로 말했다는 생각에 헛기침을 했다. 

       

       “별을 보다 보니 저도 모르게 좀 감상적이게 됐나 봐요. 어쨌든 다시 말하면, 전 지금 여기서 아르랑 실비아 씨랑 사는 게 좋다는 거죠.”

       

       나는 그렇게 말하고, 옆에서 별 반응이 없자 고개를 돌려 실비아를 바라보았다. 

       

       실비아는 조용히 미소를 지은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실비아 씨…?”

       

       일순 우리의 주위에 기묘한 기류가 흘렀다. 

       

       침묵 속에서 우리는 눈빛을 교환했고, 우리의 얼굴이 점점 가까워졌다. 

       

       그리고.

       

       곧 실비아의 부드러운 입술의 감촉이 느껴졌다. 

       

       눈을 감고, 손을 잡은 채.

       

       세상에 둘만 남은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시간이 이대로 멈춰 버리면 좋겠다고 생각할 무렵.

       

       “…….”

       “…….”

       

       우리는 묘한 기척을 느끼고 눈을 떴다. 

       

       어디선가 꼴깍, 하고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입술을 떼며 동시에 바라본 그곳에는, 어느새 흥미진진하다는 표정으로 콧김을 뿜으며 우릴 보고 있는 아르가 있었다. 

       

       “…아르야. 언제 깼니?”

       “방금 깨써! 이러났는데 레온이랑 온니 안 보여서 놀랐는데 요기서 말소리가 들려써. 구래서 블링크 써서 와써. 히히.”

       “…….”

       

       아무래도 드래곤이라 술이 빨리 해독된 모양이었다. 

       

       “쀼웃! 드디어 레온이랑 실비아 온니 키쓰 하는 거 바따! 히히히. 쪼끔 더 오래 하면 조아쓸 텐뎅.”

       “…너어!”

       

       젤리로 입을 가리고 얄밉게 히히 웃는 아르를 보며,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랬다 이거지?”

       

       내 표정이 심상치 않자 아르는 헛기침을 하더니, 슬슬 뒷걸음질을 쳤다.

       

       “큐훔. 구럼 아르는 잠시…!”

       “어딜!”

       

       내가 도망가려는 아르를 향해 달려들자.

       

       “삐유우! 블링쿠!”

       

       아르는 블링크로 순식간에 도망쳤고. 

       

       “어쭈?”

       

       [스킬 동기화를 통해 ‘블링크’ 스킬을 공유 받습니다.]

       

       “잡히기만 해 봐, 간지럼 10분형이다! 블링크!”

       

       나는 곧바로 아르를 추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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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Picked Up a Hatchling

I Picked Up a Hatchling

해츨링을 주웠다
Status: Ongoing Author:
But this guy is just too c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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