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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97

       늘 그렇듯, 행복한 시간으로 가득한 나날은 빠르게 흘러가 이윽고 계절이 변화했다.

         

       가을의 끝이자 겨울의 시작.

         

       공작령에 있는 나무들은 점점 잎들을 떨어트리고, 색을 잃어갔다.

         

       건조한 바람과 추위가 나날이 거세져 사람들의 옷은 두꺼워졌다. 숨을 내뱉으면 새하얀 입김이 나왔다.

         

       또한, 만삭에 가까워지며 프란체의 배는 크게 불러왔다. 우리 공작가 사람들의 극진한 보살핌으로 큰 문제는 없었다.

         

       그리고 도중에 안 사실이 있었는데, 우리 쌍둥이가 가진 성별이다.

         

       누가 먼저 태어날 진 알 수 없어 모르지만, 달리아의 말로는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태어날 것이라고 전했다.

         

       간절한 기도를 통하니 신께서 그리 답해주었다나, 뭐라나.

         

       성녀라는 직함을 버리며 여신에게 버려진 줄 알았는데, 세상에게 사랑받는 이는 무언가 달라도 다른가 보다.

         

       “이름은 정했니?”

       “당연하지. 고심 끝에 정했어.”

       “뭐야?”

         

       프란체가 눈썹을 살짝 올리며 물었다. 눈빛에 기대감이 가득했다.

         

       “남자아이는 엘 데카르트. 여자아이는 에나 데카르트. 둘 다 우리와 관련해서 지었어.”

         

       싱긋 웃으며 이름을 말해주자, 프란체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엘이랑 에나? 고대어인가?”

       “맞아. 엘은 별. 에나는 장미라는 뜻이야.”

         

       원래는 진과 프란체라는 이름과 엮을까 생각했는데, 긴 고민 끝에 우리의 인연을 말해주는 이름으로 정했다.

         

       내가 그녀를 처음 봤을 때 느낀 첫인상이 화원에 가득한 장미였고, 그날은 유독 짙은 밤하늘에 별이 반짝이던 날이었다.

         

       아이들의 이름은 나와 프란체의 인연이 시작됨을 증명해주는 뜻이었다.

         

       이러한 이유를 프란체에게 설명해주니, 그녀도 퍽 마음에 드는 듯 쿡쿡거리며 웃었다.

         

       “좋은 이름이야.”

       “그렇지?”

         

       사실 다른 이름도 많이 고민했는데, 저보다 좋은 건 찾을 순 없었다.

         

       사랑의 결실을 말하는 것에 우리의 인연보다 더 좋은 것이 어디에 있겠나.

         

       그리고 잘 보면, 심도 높고 깊이가 있으면서 데카르트와 어감이 잘 맞는 이름이다.

         

       이런 면에서 섬세하지 못한 내가 지은 것 치고는 굉장히 어울렸다.

         

       서로가 눈빛을 마주하며 시답잖은 잡담만을 나누던 때, 별안간 침실의 문이 열렸다. 달리아를 비롯한 사용인들이 들어왔다.

         

       달리아가 싱긋 웃으며 고개를 기울였다.

         

       “공작부군님? 지금 시간이라서 공작님의 상태를 확인해야 하니 잠시 옆으로 나와주세요.”

         

       나는 그래, 하고 자리를 옮겼다.

         

       그간의 검사로 신성력에 익숙해졌는지, 그녀는 한치의 표정 변화도 없이 얌전히 달리아의 신성력을 받아들였다.

         

       “음, 오러와 마력이 가득 차오른 것이 곧이네요. 짧으면 1주일. 늦으면 2주일이에요.”

         

       이미 만삭이고 전부터 출산 예정이라 말한지라 알고는 있었는데, 정말 코 앞이었다.

         

       기쁨과 동시에 확고히 표현할 수 없는 이상한 감정이 들었다.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무언가 간질간질한 기분.

         

       아빠가 된다는 것은 정말 많은 생각을 들게 하는 일이었다.

         

       “이대로 안정을 취하시면서 때를 기다리면 되겠네요. 공작부군님은 공작님 곁에서 자리를 지켜주세요. 그게 가장 마음이 편하실 테니까요.”

         

       그것으로 달리아의 진료는 끝이었다. 지금은 그저 기다림이 답인지라, 프란체의 안정과 현상을 유지하는 것 이외에는 딱히 할 건 없었다.

         

       “잘 알아들으셨죠?”

       “그래.”

       “그럼 잘 부탁드려요.”

       “고마워.”

         

       검사를 끝낸 달리아는 분위기를 읽은 탓인지 먼저 자리를 비웠다. 남은 사용인들은 빠르게 침실의 정리를 시작했다. 출산 직전 청결을 유지해야 하는 까닭이었다.

         

       잠시 기다리자 사용인들도 자리를 비웠고, 침실에는 다시 나와 프란체만 남게 되었다.

         

       “많이 아프다던데, 살짝 무섭네…….”

         

       문득 그녀가 말했다. 입술은 웃고 있지만, 눈빛은 전혀 아니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 내가 옆에 있으니까.”

       “그래, 그랬지…….”

         

       나름대로 건넨 위로의 말이 힘이 되었는지, 그제야 프란체는 완전한 미소를 지었다.

         

       “그 어떤 것도 걱정하지 않아도 돼. 다 잘 될 거야. 모든 게 끝난 이후,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나와 프란체는 고난과 역경이라면 지긋지긋할 정도로 충분히 겪었다.

         

       비록 지금은 이렇게 미소가 가득한 삶을 보내고 있다지만, 과거는 지울 수 없는 법. 우리의 기억 속에선 여전히 고통스럽고 끔찍했던 일들이 생생했다.

         

       그러니 이제는 행복을 누릴 차례가 되었다.

         

       여신이 이 세상을 지켜보고 있는 것이라면, 분명 우리의 행복을 바라줄 것이다.

         

       “그러니 안심해. 사랑해, 프란체.”

       “…응. 나도.”

         

       불안으로 가득한 그녀에게 입술을 맞췄다. 프란체는 그게 좋은지 쿡쿡거리며 웃었다.

         

       그저 서로 바라만 봐도 행복한 시간이었다.

         

         

       * * *

         

         

       일주일 좀 넘었을 시점에 프란체의 산고가 시작되었다.

         

       “끄으으으윽!”

         

       사용인들이 분주히 움직였다. 계속 뜨거운 물과 소독한 수건을 가져와야 했던 이유였다.

         

       달리아가 프란체에게 꼭 붙었다.

         

       “흐, 흐으으으윽!!”

         

       프란체의 고통 섞인 신음이 저택을 울렸다. 우리 모두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가득 서려 있었다.

         

       “케일, 라데아. 기사들을 총 소집하여 저택의 경비를 전시 상태로 돌려라.”

       “알겠다. 따라와, 라데아.”

         

       침실의 문을 지키고 있던 케일은 고개를 끄덕이곤 바로 움직였다. 라데아는 처음 겪는 상황에 혼란이 온 듯했지만 금방 그를 따라 나갔다.

         

       “카자르, 전에 말했던 대로 감시 마법의 역장을 최대로 펼쳐.”

       “네.”

         

       이어서 카자르도 역장을 펼치러 자리를 옮겼다. 이거로 혹시 모를 대비는 끝. 나는 프란체에게 말했다.

         

       “프란체. 여기, 손을 잡아.”

         

       크기 차이가 많이 나는 손. 프란체는 그런 내 손을 꾹 쥐었다. 잔뜩 인상을 찡그리고 식은땀을 흘렸다.

         

       “흐, 흑!”

         

       이를 악물며 고통을 참아내는 프란체. 이렇게 될 걸 알고 있었다만, 막상 두 눈으로 보니 마음이 심란했다.

         

       그러나 아빠가 되는 사람으로서 정신을 퍼뜩 차려야 했다. 나와 프란체의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이니 말이다.

         

       “프란체, 우리는 존재가 엮여 있으니 참을 수 없으면 고통을 보내는 거야. 힘이 없으면 내 힘을 가져가고. 알겠지?”

         

       이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이 외에는 그저 옆에서 손을 잡아주는 것뿐.

         

       “달리아도 있고 내가 있어. 절대 아무 일도 없을 거야. 아이도 건강할 거고.”

         

       두 손으로 떨리는 프란체의 손을 부여잡았다. 이것이 안심으로 다가왔는지 그녀는 힘겹게 미소를 지었다.

         

       “끄으으으윽!!”

         

       순간, 프란체가 내 손을 꽉 쥐며 몸을 크게 들썩였다. 그녀의 비명이 저택을 울렸다.

         

       “다들 시간이야! 이전에 말했던 것처럼 움직여!”

         

       달리아의 명이 내려지자 사용인들이 더욱 분주히 움직였다.

         

       우리 저택은 물갈이를 통해 다들 젊고 어린 사람들뿐이라 허둥지둥할 거라고 생각했건만, 다들 제 역할을 충실히 이행했다.

         

       “끄으으윽!”

       “공작님, 심호흡! 전에 알려드렸던 거!”

       “흡, 후읍! 끄으윽!”

       “천천히! 침착하게!”

       “흐읍, 흡! 흐으윽…!”

       “호흡! 호흡이 중요해요!”

         

       이러한 와중에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그저 입술을 머금은 채 고통에 몸부림치는 그녀를 지켜보는 것밖에 없었다.

         

       프란체는 오로지 이 고통을 혼자 가져갈 생각인지, 고통을 보내오거나 힘을 흡수하려는 시도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어서.

         

       “꺄아아아아악!”

         

       프란체의 비명이 크게 울려퍼졌다.

         

         

       * * *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나까지 정신이 혼미해질 때쯤, 갓난아이의 울음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프란체의 안색이 조금 좋지 않았지만, 달리아의 주도하에 아이들은 무사히 건강하게 태어났다. 사용인들도 이 광경을 보면서 환히 미소지었다.

         

       “공작님, 고생하셨어요. 이제 치유의 술을 시작할게요.”

         

       황금빛으로 반짝이는 가루들이 프란체에게 스며들고, 그녀의 표정이 조금 풀리며 안색이 돌아왔다. 이어 하녀장인 헬레나가 핏물을 닦아낸 아이들을 데려왔다.

         

       “공작님 보세요! 너무 예쁜 아이들이에요!”

         

       자연스레 모성애가 피어난 것일까. 프란체는 아이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의식이 혼미한 와중이라 그저 본능인 듯했다.

         

       “아…….”

         

       두 아이들이 프란체의 곁에 붙자, 그녀는 울먹이며 나를 바라봤다. 행복과 감격으로 젖은 얼굴이었다.

         

       “진, 우리 아이 봐… 너무 예뻐…….”

       “그러네. 세상 그 어떤 것보다 아름다워.”

         

       나는 식은땀으로 젖어 달라붙은 붉은 머리를 쓸어넘기곤 이마에 입술을 맞춰주었다.

         

       “하하…. 검은 머리 봐. 진이랑 똑같아…….”

       “동생인 엘은 붉은 머리네.”

         

       누나인 에나와 남동생인 엘.

         

       아직 피부도 붉고 쭈글쭈글하면서 눈까지 감고 있던지라 누굴 닮았는지 확신할 수 없지만…….

         

       부모라서 그런 것일까? 우리는 자연스레 누가 누굴 닮았는지 알 수 있었다.

         

       “에나는 아빠를 꼭 닮았네…….”

       “엘은 엄마를 닮았고.”

         

       픽 웃으며 프란체를 바라보자 그녀도 감격에 젖은 미소를 지었다.

         

       이것으로 세상 밖으로 나온 우리의 아이.

         

       아이들의 얼굴에선 나를 볼 수 있었고, 프란체를 볼 수 있었다. 우리의 아이란 건 누가 봐도 알아챌 정도였다.

         

       “…….”

         

       가슴이 시려왔다. 이전처럼 묘한 감정들이 휘몰아쳤다. 기쁨에 가까우면서 즐거운 감정이었다. 또한, 감격스러워 울컥하면서도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쉴 틈 없이 움직이는 심장의 주인인 나마저도 내가 무슨 기분인지 확고하게 판정을 내릴 순 없었지만, 행복에서 비롯하여 나온 감정이라는 건 다름이 없었다.

         

       아이를 쓰다듬는 프란체의 입가에 웃음기가 걸렸다. 이 광경을 지켜보는 나 또한 미소가 떠올랐을 것이다.

         

       “후, 됐다. 축복과 신성의 술은 끝났어요.”

         

       의식을 마친 달리아가 숨을 헐떡이며 땀으로 젖은 이마를 쓸어넘겼다. 황금빛 가루들이 휘날리며 몸에 스며들고 있었다.

         

       마음이 편안해지고 따스한 기운이었다. 성녀의 힘을 잃은 줄 알았는데, 달리아의 신성력은 기존과 완전히 달랐다.

         

       “고생하셨어요, 공작님. 공작부군님.”

         

       달리아가 방긋 웃으며 우리를 둘러봤다. 나는 옅게 미소지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고생은 프란체가 다 했지.”

         

       그러고는 그녀의 손을 꼭 쥐었다. 아까와는 달리 떨림이 멈춰 있었다.

         

       “다… 행복하게 해줄 거야…….”

         

       그리 말한 프란체가 옅게 웃더니 내 뺨을 쓰다듬었다.

         

       “내가 바랐던 사랑을 아이들한테 줄 거야…….”

       “그래.”

       “내가… 원했던 따스함을 느끼게 해줄 거야…….”

       “…그래야지.”

       “…이 세상에 태어나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게끔, 열심히 할 거야…….”

         

       그녀의 눈동자의 눈물이 맺었다. 고통이라든지, 후유증이라든지. 그러한 이유는 아닌 듯했다. 입가에 미소가 걸쳐져 있었으니 말이다.

         

       “다, 행복하게……. 만들어 줄 거야…….”

         

       말하면서 그간의 설움과 기억들이 단번에 스쳐 지나갔는지, 프란체는 하염없이 흐느끼며 울었다.

         

       “흐, 흐윽…! 정말, 행복하게…! 만들어 줄 거야… 흐읍!”

         

       나는 그런 프란체와 두 아이를 꼭 껴안았다. 마치 울타리를 치듯, 두 팔을 넓혀 품에 넣었다.

         

       꼭 안아주자 그녀는 내 가슴팍에 얼굴을 파묻곤 끊이지 않고 새하얀 눈물을 흘렸다.

         

       우리가 바랐던 가정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사함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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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악역 영애를 키우고 도망쳤다
Score 8.6
Status: Ongoing Author:
I made a villainess destined for death into the most powerful person in the empire and then f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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