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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97

        

         “으으흠…♪”

         

         테이블 절반 이상이 찰 만큼 풍족하게 차려진 아담한 사이즈의 핑거 푸드, 입안 한가득 느껴지는 그 식감과 풍미를 한껏 즐기다가 이내 꿀꺽. 목을 타고 내려가는 캐러멜의 크리미한 질감과 그걸 깔끔하게 감싸며 정리해주는 버터스카치의 향이란.

         

         당장 이 순간만은 온갖 걱정들은 전부 내려놓은 채, 잠시나마 갖은 스트레스로부터 해방된 상태로 이 문란한 도박장 분위기를 즐길 수 있었다.

         

         왜? 그야 합법 사업장을 통한 크레딧 복사는 신이고… 나는 무적이니까…!

         

         커흠, 꼴랑 2천만의 수익만 가지고 무적이라 말하기엔 과장이 크게 가미되긴 했는데. 어쨌든 그 정도로 고양감이 차올랐다고 말하고 싶었다.

         게다가 이건 고작해야 첫 발자국에 불과할지니, 함부로 얕보다가는… 그쪽의 지갑이 대가를 치를 수 있다고 경고도 남기면 좋았고.

         

         – 확실히… 이러면 앞서 얻은 자잘한 소액 당첨들이 외려 아쉽게 되었습니다. 그런 것 없이 온전한 잭팟 보상을 수령하는 게 더 수익은 컸을 겁니다. –

         

         “글쎄, 그게 진짜로 두 번 연달아 터졌으면 이것마저도 없지 않았을까?”

         

         아쉬운 점이 없는 건 아니다만, 맛보기 슬롯 머신 체험으로 얻어낸 것치고는 준수한 결과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아직 미묘하게 남은 갈증이나 아쉬움은 지금부터 차차 해소할 만한 게임장을 찾으면 된다. 이런저런 조건을 따져가면서… 느긋하게 말이다.

         

         포옥!

         

         우선은 부드러운 쿠션에 온몸을 파묻은 뒤에 천천히 커뮤니티 게임 스테이지, 그러니까 즐기는 걸 넘어 타인의 판돈까지 쓸어 담기로 작정한 야생의 도박꾼들이 즐비한 개인전 경기장들을 훑었다.

         

         아까 일시적으로 내 쪽에 몰렸던 관심도 이제는 온데간데없었다. 다들 본인 몫의 칩을 움켜쥔 채로 자신의 처지를 결정해줄 게임 결과에 집중하느라 바빴으니까.

         

         응? 손님들은 몰라도 카지노 측에서 뭔가 의심하고 있는 와중 아니었냐고?

         그래서 나도 처음에는 조금 사리는 게 좋지 않을까 했는데, 눈 떴을 때부터 이미 사이버 엔지니어 겸 해커였던 내가 가진 뿌리깊은 편견을 살펴볼 기회로 작용할 줄이야.

         

         “……거, 그만 좀 쳐다보시죠?”

         “!! 이런 시벌.”

         

         순수한 호기심과는 다른 의도를 담아 이쪽을 힐끔거리던 아래층 손님 중 하나에게 코웃음을 쳐주자 시선이 후다닥 떨어져 나갔다.

         

         그래, 이걸 좀 짚고 넘어가도록 하자.

         나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 나, 아나스타샤 발렌타인을 보면 가장 먼저 무엇을 떠올릴까?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밉살스러운 동종업계 종사자들처럼 떠도는 소문을 들은 것도 아니요, 기업에 소속된 엘리트 마냥 여기저기 흩어진 단서를 모아 진실을 꿰뚫어볼 혜안이 있는 것도 아닐진대.

         

         시민권 검사조차 하지 않은 여기에서 대체 외형 이외의 무엇을 근거로 ‘아, 저 년은 해킹과 사이버 공학에 능한 용병이구나. 무슨 수작을 부리지는 않나 조심해야지.’, ‘메가코프와 모종의 끈이 있는 인물이니 선을 잘 타야겠군.’ 이라고 판단한단 말인가.

         

         결국 모든 집단이 다 도시 DB나 여타 수많은 인명 데이터에 접근 권한을 가진 것은 아니고.

         마찬가지로 이들도 상대방이 그런 전문 기술자일 거라고 언제나 가정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자리가 자리인만큼 다 그냥 서로가 한 가닥 하는 인물이거나, 나름대로의 배경이 있는 사람이겠거니~ 하고 최소한의 존중을 가지고 대접하는 거지.

         

         하여간 도중에 잡소리가 많이 섞였는데 하고 싶은 말은 그거였다. 장소에 어울리게만 행동하면 다소 특이하고 특수한 경력, 사연을 많이 가진 나라도 그냥 무고한 시민 A이자 평범한 손님 A일 뿐 더도 덜도 아니라는 것이다.

         

         비슷한 이치를 통해 이루어지는 자연스러운 합석 게임도 거리낄 게 없었다는 거고.

         이것만은 개인 능력 편차치가 뒤지게 높고, 인구수도 더럽게 많은 네오 헤이븐에 감사해야 할지도?

         

         ……크흠! 그래도 물론, 아무 테이블이나 대충 찍고 들어가는 건 안 될 말씀이시다.

         

         “…야, 저기는 어때? 판이 좀 큰가?”

         

         – 이 각도에서 관측 가능한 칩의 합산은 총 65만 7천 크레딧입니다. 주변을 둘러싼 관객들의 시큰둥한 반응으로 보건대 몸으로 가려진 위치에 고가의 칩이 존재할 확률은 약 0.02%에 불과하고요. –

         

         “에이씨…! 텄다 텄어. 왜 다들 이렇게 겸손하게 노는 거냐고요….”

         

         일단 이걸로 아래에 배치된 포커 테이블은 모조리 내 기준치 밑에서 놀고 있음을 확인했지만. 왜인지는 참 설명하기 어렵게도 입에서는 자동으로 실망한 목소리가 주르륵 흘러나왔다.

         

         그야 행운 실험을 하는데 막대한 판돈과 부우우우우우우자 손님이 필수적인 건 아니다. 아니고 말고. 하지만 역시 수중에 있는 내 기본 시드 머니 칩만해도 천만 단위에서 시작하는데, 재미를 보거나 엇비슷한 밸런스 게임을 하려면 기울어진 저울에서 출발하는 게 맞는 것 같아서….

         

         “쓰읍.”

         

         난간 너머로 내밀었던 머리를 조용히 원위치로 돌려놓았다.

         

         얼핏 매정한 걸 넘어 선민의식에 찌든, 못돼먹은 평가라고 욕할 수도 있겠는데 오해하지 말고 들어주길 바란다. 난 사실 아래층 손님들은 대다수가 복장부터 굉장히 편해 보여서 살피기 전부터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다는 걸.

         

         아니, 폄훼하는 의도를 담은 게 아니라 다들 그냥 매 판마다. 작게는 오늘 저녁거리부터 크게는 이번 달 집세까지 사활을 걸고 플레이하는 모습을 봐 버려서 어쩔 수가 없었다.

         

         그리고 변인 통제가 확실하지 않으면 내가 이기더라도 진짜 운으로 이긴 건지, 개쩌는 실력으로 찍어 눌렀는지 알 수가 없지 않나? 기왕 테스트하기로 했으면 확실하게 해야지! 어??

         

         – 왠지 자신감이 엄청나십니다만. –

         

         “당연하지! 노름에서 돈은 곧 실탄이라고들 하던데, 2천만 발이면 그래도 사람 한 두 명쯤은 무너트리지 않겠어?”

         

         …반대로 세계 1차 대전이었나, 2차 대전 때 비행기 한 대를 잡으려면 대공 사격을 몇 만 단위로 부어야 했다는 일화가 뇌리를 스쳐 지나갔지만 어쨌든.

         

         단지 그럼에도 일부러 다시 한 번 로우 플로어를 살핀 이유는,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지랄하는 이 하이 플로어 손님들의 텐션을 따라가기도 벅찰뿐더러.

         자기들끼리 한창 즐기느라 바빠 보이는 사람들에게 어떤 식으로 말을 꺼내야 나도 한 자리 얻어 낄 수 있는지 감이 잡히질 않아서 나도 모르게 그만.

         

         “아하핫! 알프레드 영감은 진짜 가차없다니까? 블러핑이 뻔히 보이는데 그걸 굳이 돈으로 찍어 눌러??”

         “집문서라도 걸었다면 못이기는 척 져줄 생각이었네. ……그런데 자네는 왜 갑자기 친한 척인감?”

         “뭐 어때! 간만에 착석한 새로운 멤버도 이렇게 말수가 적으니, 단골끼리라도 떠들어야지.”

         

         “…….”

         

         현재 하이 플로어에서 유일하게 활성화된 커뮤니티 포커 테이블을 노려보았다.

         

         멀리서 힐끔거리는 구경꾼과 딜러(Dealer; 카드 게임에서 카드를 섞고 나눠주는 사람), 게임과 직접적으로 관계없는 부외자를 제외하면. 짙은 화장의 시끄러운 여자, 허허롭게 가면 쓴 노인, 무표정하고 조용한 아저씨까지 묘하게 밸런스가 잡힌 4인조 플레이어들.

         

         방금 막 라운드가 종료된 듯 잡담과 박수 소리가 간간이 들렸고, 칩 무더기가 새 주인 앞에 정리되는 소음까지 났으니. 딱 뉴 페이스인 내가 다가가서 슬쩍 끼기에 좋은 타이밍일지도 모른다.

         

         음, 그래. 서럽게 울면서 퇴장하는 웬 아가씨만 없었다면 말이다.

         

         “씨발… 흑, 씨발!!”

         

         “으음…….”

         

         4인조라 말해 놓고 그 중에서 셋의 인상착의만 골라 소개한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먼지투성이 신발로 바닥을 걷어차다가, 직원에게 제지당해서 끌려 나가는 그녀는 더 이상 플레이어의 일원으로 취급할 수가 없었으니까.

         

         아무리 도박은 본인 선택이며 그 결과를 이해하고 임했다지만.

         이런 식으로 탈탈 털린 채 계단 밑으로 무자비하게 연행되는 모습을 구경하려니, 테이블에 쌓인 칩이 몇 천만 어치는 우습게 넘어 보여도 선뜻 참가하겠다는 신호를 보내기가 좀….

         

         굳이 저런 사람의 쌈짓돈까지 아득바득 털어먹어야 했나?

         부자들은 이런 여가 생활에 쓰는 돈은 더 쿨하게 지출하리라고 상상했는데 말이지, 아니면 저렇게 악착같이 모으니까 부자가 된 걸지도.

         

         하지만 요행인지 불운인지, 내 고민과 망설임을 금방 해결되었으니.

         

         “……이크! 이게 하필 딱 눈이 마주치냐.”

         

         아마 그대로 가게 바깥까지 쫓겨날 여성을 전송한 다음, 무심코 고개를 돌리다가 무표정 아재와 정확하게 시선이 교차했다.

         

         당연히 어깨를 나란히 하고 앉은 인간이 다른 곳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는 만큼 화장녀나 가면 노인 씨의 관심 또한 머지않아 이쪽을 향해왔고.

         

         허나 돌발적으로 흥미가 이끌렸다 해도 그들이 풍기는 건 사냥꾼과 사냥감 같은 살벌한 분위기는 전혀 아니었다.

         

         내 테이블에 놓인 칩 케이스나 제로를 살피고 있음에도, 오히려 반가운 난입자를 맞이하는 듯한 가벼운 느낌? 하여간 뒤를 이은 권유 자체도 그만큼 가볍게 이루어졌기에, 나로서도 한결 편하게 응할 수 있던 건 뜻밖의 이득이었다.

         

         “거기 아가씨도, 포커 몇 게임 쳐보겠나? 메인 게스트가 막 탈락해서 자리가 비었거든.”

         

       

       

         아유, 그럼요. 물론 해봐야죠!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커뮤니티 포커 = 참가자들끼리 경쟁해서 싸우는 게임
    울티메이트 포커 = 딜러와 싸우는 게임

    본문에서 설명하기가 애매했네요.
    덤으로 이전 작가 후기에서 ‘왜 팡파레가 아니고 팡파르(Fanfare)가 표준어냐, 국립국어원 일해라~’ 라던가.
    ‘잭팟이 잭팟(Jackpot)인 이유가 잭과 콩나무에서 유래한 거였구나! 여러분은 아셨나요!?’ 같은 시시콜콜한 얘기를 하려고 했었는데 완전히 까먹었습니다.

    그리고 진도를 두 배는 뺐어야 하는데 왜 저는 이것밖에 못 썼을까요. 더위, 제발 멈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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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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