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97

   EP.197

     

   남궁명이 처음 김시인의 검을 봤을 때, 그는 그것이 꿈인 줄만 알았다.

     

   「어?」

     

   익숙한 검이다.

   사실 그 검을 수련해 본 적도, 목격한 적도 없었지만 그저 김시인의 움직임을 통해 그것이 남궁의 마지막 절기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중重, 강强, 그리고 쾌快.

     

   이유 따윈 몰랐다.

   그저 자신이 바래왔던 목적지의 끝자락이 어렴풋이 보였다고 생각했을 뿐.

   하지만 한 번 본 것만으로 뭔가를 깨닫기에는 그 초식의 경지가 너무나도 까마득했다.

     

   「스승님.」

     

   그래서 부탁했다.

   조금 전에 보여줬던 그 검을 한 번만 더 보여 줄 수 있냐고.

     

   그것이 남궁의 절기인 제왕검형이 아니라도 좋았다. 그저 자신이 언젠간 올라야할 산의 높이를 알게 된다면 그 꿈이 언젠가는 현실이 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다시 그의 검을 봤을 때, 남궁명은 절망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한 거지?」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았다.

   그의 수준으로는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는 일검이 폭발적으로 쏟아졌다.

     

   「모든 내공을 온몸으로 고르게 펼치고 다음엔……」

     

   검을 휘두르는데 움직이는 모든 근육을 사용해 일격을 날린다.

     

   어깨를 든다.

   여기까지는 어렵지 않다.

     

   다음으로 오른발을 앞으로 내민다.

   그리고 그 순간 온몸으로 퍼트렸던 내공을 발끝으로 압축한다.

     

   물 흐르듯 이어지는 자연스러운 동작.

     

   허리를 편다. 앞으로 나아가며 발에 있던 기운을 다리에서 무릎으로, 무릎에서 허벅지로 그리고 허리를 타고 자연스럽게 몸에 있던 모든 내공을 검까지 끌어올린다.

     

   하지만 그 타이밍이 예술이었다.

     

   「어흑! 꺼어어……」

     

   그가 알려준 방식에 맞춰 똑같은 동작을 반복했다.

   하지만 펼쳐진 것은 궁극의 오의라 불릴만한 초식이 아닌 땅에 엎어진 자신의 몸이었다.

     

   주화입마라 불리는 형태의 초기 단계.

     

   내공을 다루는 능력이 미숙했기 때문인지 발에서부터 급하게 치솟은 내공이 혈관을 긁으며 기공을 막아 버렸다.

     

   김시인이 보여 준 무공에는 이렇다 할 요령이 없었다.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그냥 ‘잘’해야 했다.

     

   천천히, 하지만 몸의 움직임보다 두세 수는 빠르게 내공을 컨트롤해야 했고 모든 내공을 혈관 곳곳을 통과할 수 있을 정도로 가늘게 만들어 내공이 흘러가는 길을 타격하지 말아야 했다.

     

   「이래서 특별한 내공심법이 필요했던 거구나……」

     

   제왕검형을 배우기 전에 익힐 천뢰제왕신공은 낙뢰를 직격으로 맞아도 버틸 육체를 가지기 위한 단계라고 보는 것이 옳았다.

     

   인간의 육체로는 감당하지 못할 무공.

   시전자의 신체가 하늘이 내린 천무지체가 아닌 이상 그것을 감당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완전히 불가능하지는 않아……」

     

   제왕검형에 대해 말로만 들었을 때는 그것이 그저 사람들의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영역이 아닌가 생각했다.

     

   하지만 김시인이라는 고수의 손에서 그 불가능은 이루기 어려우나 실현이 가능한 하나의 목표가 되었다.

     

   「해 보자.」

     

   불가능할 것 같았던 일이 목표가 되었다.

     

   나 자신에 대한 신뢰를 잃으면 온 세상이 나의 적이 된다.

   하지만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이 있다면 세상의 일부는 나의 이정표가 된다.

     

   남궁명은 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조심스레 앉았다.

     

   스승의 경지에 도달하기에는 한참 부족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

     

   남궁명이 검이 허공을 갈랐다.

     

   깨끗하고도 정갈한 일격. 하지만 누군가가 보기에는 그저 느릿느릿하게 들어 올린 검을 적당히 내리 그은 것에 지나지 않았다.

     

   피잇-

     

   바람에 의해 풀이 휘날린 소리 같았으나 그것은 검에서부터 흘러나온 날카로운 무언가였다.

     

   찰나에 지나간 자그마한 소음이 적막한 가주전의 마당을 휘어잡았다.

   한 줌의 바람도 일으키지 않은 일격에 허무하다는 생각마저 들 지경이었고 그것은 남궁명의 일격을 본 다른 형제들 또한 같은 마음이었다.

     

   “명아, 지금 무얼 한 것이냐?”

   “하, 천월문이니 뭐니 하며 남궁을 떠날 때부터 알아봤어야 하는 것인데……”

     

   남궁의 성을 가진 배다른 형제들이 그저 검을 들었다 내린 남궁명을 보며 핀잔을 던지기 시작했다.

     

   부끄럽지도 않냐는 말이 오갔고 재능이 부족하면 노력을 하라는 헛소리가 오갔다.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두 사람이 있었으니.

     

   당연하게도 한 명은 나였고 다른 한 명은 남궁세가의 가주 남궁학이었다.

     

   ‘이런 미친.’

     

   내가 남궁학과 비무를 하며 은근슬쩍 훔쳐 배운 제왕검형이라는 절기는 아무나 따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성좌의 몸을 가지고 있었기에 어렴풋이 흉내를 낼 수 있는 수준이었다.

   탑의 이능으로 얻게 된 압도적인 신체 능력이 ‘몸의 내구성’마저 올려주었기에 각혈을 하며 엇비슷한 모양이나 따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다들 조용히 하거라.”

     

   그리고 그 진가를 알아본 남궁학 또한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들려온 소리를 좀 과장하자면 그것은 풀에 무언가가 베이는 소리와 흡사하다고 봐야 했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지만 왠지 그런 소리가 날 것 같은 의태어 말이다.

     

   그 증거로 남궁명의 발아래에 검의 흔적이 깊게 새겨져 있었다.

   검은 땅에 닿지도 않았다.

   하지만 마치 공간 자체가 절단이 난 듯, 바닥이 갈라져 있었던 것이다.

     

   “무엇을 한 것이냐?”

     

   상황이 상황인지라 불호령이 떨어질 것 같았던 남궁학의 입에서 당황스러움이 묻어 나오자 남궁진아가 기다렸다는 듯 운을 띄웠다.

     

   “가주님, 녀석에게 따끔하게 한마디 하시지요. 남궁의 검을 무시하고 다른 문파에 고개를 숙이고 배운 것이 고작 내려치기라니…… 이건 너무하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말에 다른 형제들 또한 약간의 첨언을 하려는 듯 입을 달싹였다. 하지만 이어진 것은 다른 형제들의 말이 아닌 남궁명의 일격을 정확히 알아본 남궁학의 말이었다.

     

   “진아. 더 이상 나를 실망시키지 말거라. 너의 눈에는 진정 명이의 검이 보이지 않았더냐?”

     

   남궁학이 뱉은 말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 둘째가 당황하며 ‘어어.’ 따위의 바보 같은 탄성을 흘린다.

   하지만 이미 세상으로 뱉어낸 말은 주워 담을 수 없는 법.

     

   “조금만 더 생각하면 네가 얼마나 못난 말을 했는지 알 수 있을 게다. 조금 전의 검이 내려졌을 때, 너희는 어떤 소리를 들었느냐.”

   “……”

   “……”

     

   “아무 소리도 못 들었지?”

     

   상식적으로 철검이 휘둘러지면 ‘후웅-’이라거나 ‘쐐액-’ 따위의 파공음이 생기기 마련이다.

     

   하지만 남궁명의 검에서는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기운을 갈무리한다고 좀 느려지긴 했지만 음소거를 한 것처럼 고요한 것은 이질적이게 보일 상황이었다는 말이다.

     

   모든 것을 벨 수 있는 남궁의 검.

   세상을 그 어떤 금속도 진심으로 휘둘러진 남궁의 검을 막을 순 없었고 심지어 공중에 머물러 있던 공기마저 그의 검에 절단이 됐다.

     

   “어디에서 배웠느냐.”

   “……”

     

   남궁학의 말에 땀을 뻘뻘 흘리던 남궁명이 숨을 고르며 고개를 들었다.

     

   단 일격으로 모조리 완전히 녹초가 된 입이 열리는 데에는 약간의 여유가 필요했다.

     

   “스스로 깨우쳤습니다.”

   “스스로……?”

   “……네 그렇습니다.”

     

   녀석은 내가 지시했던 대로 제왕검형을 독학했다고 뻥을 쳤다.

   하지만 이것은 녀석의 아버지가 남궁의 가주임을 몰랐기에 내가 지시했던 것.

   이미 며칠 전의 복면인이 나라는 것을 가주가 눈치챈 상태였기에 별 의미 없는 거짓말이었다.

     

   “잘하였다.”

     

   하지만 남궁학은 녀석의 깨우침에 대해 자세히 캐묻지 않았다.

   그저 믿어 주고 녀석의 무단한 노력을 알아줬을 뿐.

     

   “그런데 왜 중간에 포기하지 않았느냐.”

     

   제왕검형을 익히며 동반하게 될 고통을 잘 알고 있기에 할 수 있는 말.

     

   지금 이 자리에서 저 말뜻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남궁학과 남궁명,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 전부였다.

     

   “그저 그만두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죽을 수도 있었을 텐데.”

     

   “검을 쥐는 순간 언젠가 그 검 때문에 생사의 기로에 서게 된다고 배웠습니다. 그리고 그건 타인의 검이 아닌 자신의 검 또한 포함된다는 의미로 알고 있습니다.”

   “옳다.”

     

   녀석은 포기하지 않았다.

   까딱하면 검을 휘두르다가 혈관과 장기가 다 뒤틀려 죽은 멍청이가 될 수도 있었지만 녀석에게는 목숨보다 중요한 무언가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래, 포기하지 않는다는 건, 아무런 힘이 없음에도 계속 나아간다는 것을 의미하지.”

   “……”

   “그리고 포기하지 않았던 굳은 의지는 언젠가 자신에게 돌아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강인한 힘이 되어 준다.”

     

   인생의 진리.

     

   삶은 탄생과 죽음 사이의 선택이라는 말이 있다.

     

   내가 가는 길이 옳은 길이라면.

   내가 저지른 선택이 뒤를 돌아보았을 때, 부끄러움이 없는 합당한 선택이었다면.

   그것은 언젠가 단단한 검과 방패가 되어 나를 보호할 영원의 무기가 될 것이다.

     

   “명아, 우리 막내야.”

   “……예, 아버지.”

     

   “더없이 훌륭한 일격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말은 중요치 않다. 그저 내가. 이 남궁의 가주가 무인 남궁명의 검을 인정했다는 사실만 기억하거라.”

   “……”

     

   그의 말에 남궁명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처음으로 받은 가족의 인정.

     

   형제들이 뭐라고 할지언정, 진정으로 그의 재능을 알아봐준 사람이 존경하는 남궁의 가주라면 더 이상 남궁명에게 두려울 것은 없었다.

     

   척-!

     

   남궁명이 무릎을 꿇으며 강하게 포권을 취했다.

     

   아버지와 아들로서.

   남궁의 가주와 남궁의 식솔로서.

   그리고 무인 대 무인으로서 인정받은 남자의 고요한 외침이었다.

   

다음화 보기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