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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97

    <197 – 철인삼종경기 개시>

     

    작전은 실패했다.

     

    “면목이 없습니다, 성녀님.”

    “아니에요. 암흑상회에 그 정도의 역량이 있으리라고 예상치 못한 제 실책이었어요.”

    “유피님의 너그러운 용서에 감사드립니다.”

     

    유피도 이해는 했다.

    지젤.

    일개 평민치고 그의 수완은 보통이 아니었다.

    아카디아 공녀와 손을 합쳐 사업을 한다.

    그 기회만 꿈꾸며 그녀의 곁을 맴도는 추종자만 세 자릿수에 달한다.

    그중 한 번이라도 제대로 말을 붙여볼만한 이들은 손에 꼽고, 아카디아의 부름을 받아 그녀의 일을 돕는 실질적인 친위대는 한자릿수에 불과하다.

    그런 한 자릿수 정예 추종자들로 이루어진 친위대들도 해내지 못한 <동업자>로서 대등하게 선택받은 남자가 바로 지젤이니 당연히 얕볼 수 없는 사내다.

    하지만 그것이 용사의 실패를 의미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순순히 포기하지는 않겠죠?”

     

    유피의 눈에 맹수처럼 샛노란 광채가 아른거리자 스콜라가 흠칫 놀랐다. 성녀에게 압도당한 자신이 수치스러웠는지, 실패가 수치스러웠는지.

    제 입술을 깨물며 굴욕을 다지던 스콜라가 고개를 숙이며 저자세를 보였다.

     

    “설욕의 기회가 있다면 부디 베풀어주십시오.”

    “연습은 끝났어요. 다음은 중간고사 실전이죠. 다음 상급반 시험에서 보여주세요. 당신의 주특기를.”

    “…성녀님. 저번에도 말했지만 직접적인 저격은 들어드릴 수 없습니다.”

    “오크노디 본인을 공격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에요. 달리 있잖아요? 쏠 수 있는 대상이.”

     

    유피의 정정에 스콜라도 그녀가 말하는 표적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오크노디의 골렘을 노리란 말이십니까?”

    “탑승물을 공격하지 말라는 규정은 없었죠. 이 아카데미는 규정에 느슨해요.”

    “골렘은 바위생명체입니다. 저는 궁수고요.”

     

    스콜라는 망설였다.

    오크노디의 범상치 않았던 재주와 그녀를 감싼 비호세력, 실력자들과의 두터운 친분.

    누구든 그녀를 노리는 사람이라면 이 사실을 떠올리면서 자신이 정말 그녀를 계속 노려야하는지 충분히 재고해야만 했다.

    유피도 그런 스콜라의 심리를 이해했다.

    겁쟁이 같은 사내.

    하지만 그 실력마저 거짓은 아니다.

     

    “그리고 당신은 신궁의 제자이죠. 신궁의 화살은 세상에 뚫지 못할 금속이 없다고 들었는데, 신궁의 제자는 바위도 뚫지 못하나요?”

     

    자존심을 노린 유피의 도발은 그대로 적중했다.

    스콜라의 눈빛이 달라졌다.

     

    “보여드리죠. 제 화살이 어디까지 뚫을 수 있는지.”

     

     

    * *

     

     

    화요일 오전 5시 40분.

    평소보다 부쩍 빠른 시간부터 상급반 학생들은 산 초입에 모였다.

    철인삼종경기를 모두 펼치기 위해 평소 강의시간보다 6시간 앞서 시험을 치르기 때문이었다.

     

    “오크노디는 좋겠다아. 탑승물도 말 잘 듣고.”

    “그러는 도로시도 꽤 능숙하잖아. 모두가 탐내는 말도 탑승물로 골랐고!”

    “우리 루돌프?”

    “어때? 루돌프 컨디션은?”

    “몰라. 이상한 걸 먹었는지 계속 우울해. 시무룩하다고 할까…? 다른 말들이 사료를 뺏어 먹었나봐.”

    “…그거 참 큰일이네!”

    “뭐야, 방금 그 망설임은?”

    “…뭐라고 위로해야할지 고민했어!”

     

    잘도 뻔뻔하게 거짓말을 하는 오크노디.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사벨이 지젤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괜찮을까? 오크노디.”

    “변명이 어설프기는 해도 들키지는 않을 겁니다. 입학시험에서도 보았다시피 도로시양은 속임수에 약한 순진한 성격이니까요.”

    “그게 아니라 시험. 아까부터 사방에서 시선들이 장난이 아니잖아.”

     

    요전에 탑승물 보관소에서 오크노디의 사료도둑질을 교수에게 일러바쳤던 스콜라도 신경 쓰이지만 그밖에도 사방에서 눈초리가 쏟아진다.

    매스각키 2황녀와 그녀를 따르는 일파들도 그렇고, 이슈타르 용사를 선망하는 일파들도 그렇다.

    변방에서도 압도적 1위가 예상되는 오크노디를 견제하려고 눈에 불을 키는 학생들이 많다.

     

    ‘스커트 자락이라도 붙들고 늘어져주마!’

    ‘오크노디. 골렘에는 절대로 타게 두지 않아.’

    ‘누가 상대적 허접인지 이 기회에 겨뤄주겠어♡’

     

    표정들만 봐도 빤히 보이는 속마음들.

    이사벨의 우려와 달리, 지젤은 천하태평했다.

     

    “걱정이 되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그럴 필요는 없을 겁니다.”

    “집중견제를 당할 게 뻔한데?”

    “우리도 남 걱정을 할 정도로 느긋한 상황은 아니니까요.”

    “우리까지 견제를 당할까?”

    “우리만 견제를 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플라톤 교수님이 감쪽같이 상급반 전원을 속이셨습니다.”

     

    땅이 울리며 모래알갱이와 자갈이 튀어 올랐다.

    굉장히 많은 수의 무언가가 몰려오고 있다.

    쿵. 쿵.

    가까워지는 소리들.

    이른 새벽부터 벌레들이 울음소리를 멈추고 새들이 지저귐을 그친다.

    구구궁… 쿵!

    급기야 나무 몇 그루까지 무너진다.

    바위지대 저 너머에서부터 가까워지던 행렬이 끝내 숲 너머로 나오자 갑작스러운 소란의 원흉이 무엇인지 비로소 알아볼 수 있었다.

     

    “학생들?”

    “옷깃을 보십시오. 2학년의 휘장입니다.”

    “뭐, 뭐야! 저 말도 안 되는 수는!”

     

    눈대중으로 봐도 천 명이 넘는 학생들.

    그것도 하나같이 눈에 독기를 가득 담았다.

     

    “게으름뱅이들. 드디어 왔구나.”

     

    플라톤 교수가 핀잔을 주자 학생들 사이에서 갑옷을 걸친 기사가 철컥철컥 갑주소리를 내며 나왔다.

     

    “올해는 다를 거다. 이날만을 위해 빡세게 단련을 시켜왔으니까.”

    “하하하! 딱하게 됐구나. 앤드류 콘라드. 올해의 상급반은 역대 상급반을 통틀어 수위권에 달하는 실력을 지녔지. 네게 승산은 없다.”

     

    기싸움을 하는 두 교수.

    저 낯선 교수는 누구고 2학년들은 왜 1학년 상급반의 시험장에 몰려왔는가.

    막연히 몰려오는 불안한 예감.

    애써 모른 척 하고 싶은 잔혹한 진실.

    2학년들을 인솔하던 교관들이 다가와 1학년 상급반 앞에 서고 입을 열었을 때, 모두가 피하고 싶었던 현실을 강제로 깨우칠 수밖에 없었다.

     

    “1학년 상급반의 중간고사는 2학년 하급반 학생들과 동시에 치른다.”

    “예에에!?”

    “시험은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총 12시간에 걸쳐서 치러지며 달리기, 수영, 기승 3종경기의 기록 및 완주유무에 따라 점수가 달라진다.”

    “잠깐만요, 저흰 1학년이라고요! 사전고지도 없이 갑자기 2학년들이랑 겨루라고 해도!”

    “침묵은 금이요, 여기 금이 있나니. 황금의 신의 이름을 빌려 명하노니, 빈자의 입을 막을지어다.”

     

    교관이 주머니에서 금박을 집어 허공에 내던지자 항의를 하던 1학년 상급반 학생의 입에 금색의 X자 표식이 떠올랐다.

    입을 뻐끔뻐끔 벌리며 당황하다가 목을 움켜쥐고 안절부절 못하는 학생에게 교관은 무심히 말했다.

     

    “교무행정을 방해한 죄, 10포인트 감점. 5분간 다물고 있어라.”

     

    5분간 소리를 못 내는 것보다 감점이 더욱 두려웠던 학생들이 입을 꾹 닫았다.

    이사벨은 흘끗 오크노디를 훔쳐보다가 이럴 때 곧잘 나서서 페널티 받기 딱 좋은 성격의 도로시의 입을 진즉 손으로 틀어막은 오크노디를 발견했다.

    …역시.

    모르는 것이 없는 아이답다.

    이 시험도 재단에서 몰래 전해줬나 보다.

     

    “참고로 너희의 상대는 2학년 필수강의 심화체력단련을 듣는 하급반 학생들이다. 부족한 실력을 신앙의 힘으로 메우려 드는 졸렬한 녀석들이지.”

     

    노골적인 비난에도 교관에게 소리 높여 항의하기는커녕 조용히 적의를 불태우며 도열한 2학년들.

    그 진지함은 앞서 마나검증시험을 앞두었던 1학년 하급반들과는 급이 달랐다.

     

    “이 졸렬한 것들에게는 한 가지 특별규칙이 있다. 너희 1학년 상급반의 명찰을 습득하면 무조건 이번 시험에서 최고학점을 받는다.”

    “!!”

    “명찰을 빼앗긴다고 너희의 학점이 감소하지는 않는다. 다만 멍청이같이 명찰을 빼앗긴 것을 실컷 한탄하고 싶어지는 불이익이 있을 것은 약속하지.”

     

    상급반 내에서의 경쟁.

    이를 뛰어넘는 2학년 하급반의 대거 참전.

     

    “추가로 이 시험에는 <제네거의 전술학> 강의를 듣는 3학년들도 참여한다. 달리는 경쟁자로서가 아니라 학점순위를 예측하고 자신의 예측을 실현시키도록 간접적인 개입을 허가받은 3학년들이.”

     

    멀리 하늘 위에서 빗자루에 탄 선배들이 손을 붕붕 흔들었다.

     

    “믿는다, 정배! 용사 이슈타르!”

    “지젤! 너의 지략을 믿어. 역배충의 오명을 씻어줘!”

    “제국삼대공신가문의 저력을 보여주어라!”

     

    하나의 시험에 1학년, 2학년, 3학년이 동시에 참여하는 흡사 운동회를 방불토록 하는 대규모 인원의 학점이 걸린 중간고사!

     

    “호각을 불면 1학년이 먼저 출발하고 두 번째 호각을 불면 2학년이 뒤따라간다. 1학년들은 죽을 각오로 달리는 게 좋을 거다.”

     

    교관의 입꼬리가 흉측하다 못해 무섭다 싶을 정도로 크게 올라왔다.

     

    “따라잡히면 험한 꼴을 당할 테니까.”

     

    꿀꺽!

    긴장감에 목울대를 움직이는 1학년들.

    오전 6시.

    예정된 경기시간이 되자 호각이 울렸다.

    철인삼종경기.

    예상과는 사뭇 다른, 훨씬 고난이도가 예상되는 시험이 시작되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1학년끼리 싸울 때가 아니었던 시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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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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