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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98

       사실 처음에는 앨리스가 어느 정도 황가의 이득을 위해서 그 영애를 협박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여전히 조금은 감정적이긴 했지만, 그래도 아카데미에 오고 난 뒤로— 아니지, 작년에 나와 함께 벨부르에 다녀온 뒤로는 ‘황녀로서’ 움직이는 모습이 자주 보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앨리스는 그 이후에 학생회실에 있는 내내 라셀 영애를 노려보고 앉아있었다.

        

       당사자인 내가 사과를 받아주고, 그 가문이 황가에 충성할 거라는 말까지 들었으니 일은 끝내는 것이 옳았겠지만, 아무래도 앨리스의 화는 고작 그런 것으로 진정되지 않을 모양이었다.

        

       “사과도 받아냈으니 그렇게 화를 내실 것까지는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너는 화도 나지 않아?”

        

       앨리스의 그 말에 나는 미간을 살짝 찡그린 채 생각에 잠겼다.

        

       음…….

        

       만약 상대가 머리 큰 어른이었다면 이야기가 달랐을 수 있다. 아무것도 모르는 것도 아닌 사람이 내 뒷담화를 까고 있다고 하면 일단 어이가 없었을 거고, 그 뒤로는 기분이 엄청나게 나빠졌겠지.

        

       하지만 그 애는 그냥 열다섯 살짜리 애였으니까.

        

       미아가 나한테 적개심을 보였을 때도 그렇게까지 화가 나지 않았던 것은, 그 아이가 아직 진실을 모른다는 점과 아직 어리다는 점이 모두 포함되었기에 그랬던 것이다.

        

       뭐 십 대 시선으로 보기에는 사람 죽여봤다는 게 영 꺼림직할 수도 있겠지.

        

       내가 그렇게 골똘히 생각에 잠겨있자, 앨리스는 손으로 얼굴을 한차례 쓸어내린 뒤, 방안 손님맞이용 테이블의 의자에 앉았다.

        

       “그럼 만약 내가 그런 식으로 욕을 먹고 있었다면 어쩔래? 그 상황에서 살인자라고 불린 사람이 네가 아니라 나였다면.”

        

       “…….”

        

       음.

        

       그건 확실히 화가 나긴 했을 것 같다.

        

       앨리스뿐만이 아니다. 만약 레오나 클레어 뒷담화를 까고 있었거나, 제이크나 로티의 뒷담화를 까고 있었어도 기분이 나빴을 것이다.

        

       미아나 레나도 그렇고…… 소피아는 아직 조금 미묘하고.

        

       직접 말로 하지는 않았지만, 앨리스는 내 표정을 보고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뭐, 너는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을 테니 내가 뭐라고 한다고 해도 큰 신경 안 쓰겠지만 말이야.”

        

       “…….”

        

       앨리스는 잠깐 눈을 굴리더니 말했다.

        

       “지금 이 상황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그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애가 황녀 뒷담화하는 귀족들을 그냥 내버려 둬?”

        

       “이런 상황이니까 괜히 적을 만들지 않으려는 겁니다.”

        

       ‘나는’ 적이 얼마나 늘건 괜찮다. 정 못하겠으면 시간을 돌려서 그 상황을 취소시켜버릴 수도 있고, 이미 유력한 가문의 뒤는 죄다 파헤쳐서 약점이 될만한 정보는 대충 다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면녀를 만난 이후로 시간을 돌리지 못하게 되었을 때를 대비해, 내가 가지고 있던 원작의 상식과 시간을 돌리는 능력을 모두 최대한 활용해 필요한 정보는 이미 모아두었다.

        

       그렇다고 그 가문들의 영지를 하나하나 다 들렀던 것은 아니라서 활용할 방법은 조금 좁기는 하지만.

        

       내가 그런 뒷이야기를 듣고 아무렇지도 않을 수 있었던 건, 이미 라셀 영애는 내 앞에서 몇 번 정도 눈물을 흘리면서 자기 가문의 정보를 줄줄 읊은 적이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

        

       내 표정을 보고 뭔가 느끼기라도 했는지, 앨리스는 그쪽의 질문은 더 하지 않기로 한 모양이다.

        

       “아무튼, 황실을 무시하는 귀족이 더 늘어나면 곤란하다는 말이야. 지금까지는 잘 억제되고 있었지만…… 너도 알잖아. 지난번에 있었던 북부 포격.”

        

       제이든이 모니터함 함대를 끌고 가서 국경째로 쓸어버렸다는 그 사건을 말하는 거겠지.

        

       “그 이후로, 주변 국가는 물론이고 지방 영주들도 제국군을 경계하는 눈치야. 그 모니터함들이 자기네 영지 위를 날아서 국경 근처까지 갈 동안 전혀 알지 못했으니까.”

        

       “그리고 지방 사병의 능력으로는 그 함대를 막을 방법도 없지요.”

        

       만약 모니터함이 영주성에 포격을 날리면 영주들은 그걸로 끝이다. 이후에 내전이 이어지겠지만, 제국군은 강하다. 반기를 든 가문이 있다면 그 가문부터 확실하게 짓밟힐 게 분명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게 가능하기에 오히려 반기를 들고 싶어 하는 가문들이 많아지는 것이다.

        

       제도가 아무리 크고 생산하는 물건이 많다고 하더라도, ‘제도만으로’ 국가가 굴러가지는 않는다. 그 많은 포탄과 총알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양의 화약과 납이 필요하다. 화약을 만들기 위해서는 초석이 필요하다. 그리고 제도에는 그 초석 광산이 없다.

        

       사실 게임에서도 이미 본편 이전부터 ‘우리가 제도를 먹여 살리고 있다’라고 공공연히 말하며 돌아다니는 귀족들은 이미 있었다. 다만 그 귀족들이 단체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 후반부일 뿐.

        

       황제가 세계 정복을 하겠다고 생각하지 않더라도, 귀족들의 생각은 변하지 않는다. 귀족들은 나의 ‘능력’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반란이 일어날 일은 없을 겁니다.”

        

       “그걸 어떻게 확신하는데?”

        

       “황제 폐하께서 군사력을 외부로 투사할 생각이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원작에서의 반란은 ‘빈집 털이’였다.

        

       아무리 제국과 주변 국가의 전투력에 큰 차이가 난다고 하더라도, 전 세계를 상대로 전쟁을 하기 위해서는 군사력을 확실하게 투사해야 한다.

        

       제도를 지킬 전함은 국경 근처로 이동하고, 모니터함도 최전선에 배치된다. 공군은 육군을 지원하기 위해 최소한의 수비병력만을 두고 죄다 전방으로 이동한다. 충성파인 윈터필드는 북부에 군사력이 거의 다 묶여있고, 황실과 사이가 나쁘지 않은 린드버러는 그때쯤 일어난 식민지 반란에 정신이 없다.

        

       제국이 자랑하는 군사력과 최강의 병기들이 제도에서 빠져버렸으니, 역심을 품은 영주들이 움직이기에 딱 좋은 순간이 아니겠는가.

        

       물론 황제는 바보가 아니다.

        

       그런 정황 자체는 이미 알고 있었고, 그랬기에 제국 내외로 확실하게 기강을 잡기 위해서 역적 가문 몇 곳을 지정해 확실하게 짓밟아버린다. 공작들이 암살당하고, 그 자식들이 대낮에 영지 한가운데서 타죽어 버리는 일이 발생하면 그 가문에서도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거기에, 제국의 끄트머리, 즉 국경에는 제국 직할령이 아닌, 백작이나 공작가의 영지가 대부분이었다.

        

       한창 전쟁 중일 때 제국군이 군대를 빼버리면, 잔뜩 화가 난 상대 국가의 군인들이 땅을 짓밟으며 들어오게 된다. 그리고 제국군에게 동료를 몇이나 잃어버린 적군은 상대가 ‘황제파’니, ‘귀족파니’하는 것에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

        

       결국 그 사실 때문에 국경 인근의 영주들은 눈물을 머금고 황제파가 될 수밖에 없었고, 이는 귀족파가 결국에는 패배하게 되는 원인이 된다.

        

       하지만 그 모든 과정의 시발점은 제국군이 국경을 향하는 것이다.

        

       “지방 영주들은 제국의 군사력을 두려워합니다. 반란을 일으켜봐야 얻는 것은 까맣게 타버린 영지와 산산이 조각난 자식의 시체뿐이겠죠. 자기 머리라도 지킬 수 있다면 지독하게 운이 좋은 사람일 겁니다.”

        

       “하지만 영주들 사이의 공기가 불온한 건 사실이잖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것도 영원하지는 못할 겁니다.”

        

       결국에는 귀족이니 절대 황권이니 하는 것들은 영원할 수 없다.

        

       언젠가는 다 무너지기 마련이니까.

        

       앞으로 백년쯤 지나면 시민들이 통치하는 시기가 올 것이다. 그건 피할 수 없는 순리다. 귀족계급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굳어질 수는 있어도, 국가의 공화국화 자체를 막을 수는 없다. 게다가 제국에는 이미 명목상으로나마 의회도 존재하니까.

        

       괜히 막으려고 나서봐야 목이나 잘리지.

        

       “……너는 뭔가 알고 있는 거라도 있어?”

        

       “……사실은, 잘 모르겠습니다. 이미 제가 알고 있던 것과는 너무 많이 달라졌으니까요.”

        

       그런 예측을 할 수는 있다. 내가 살았던 세상을 생각하면, 실제 역사에서 어느 정도 따온 이 세계의 미래는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제작진 인터뷰에서도 종종 나오던 소리였고.

        

       문제는, 그건 백 년 단위의 미래라는 것이다. 세세한 부분에 대해서는 내가 어떻게 확실히 말할 수 있는 부분이 거의 없었다.

        

       나라는 존재 때문에 이미 이야기는 원작과는 너무 많이 틀어졌다.

        

       황제는 훨씬 더 내치에 집중하고 있었고, 귀족들의 불온한 움직임마저도 아직은 확실하게 나타나지 않았다. 법국은 원작에서보다 훨씬 더 조심해서 움직이고 있었고, 벨라는 살아있었다.

        

       거기에 루카스나 가면녀 같은 사람들까지 생각하면.

        

       차라리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나았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가끔 들 정도였다.

        

       “뭐, 좋아.”

        

       앨리스는 별일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하지만 아마 속으로는 생각이 복잡할 거다.

        

       “그럼 어떻게 다가올지 모르는 미래에 대해서는 잠시 접어두기로 하고, 바로 코앞까지 다가온 미래에 관해서 이야기해볼까.”

        

       앨리스는 팔짱을 낀 채 말했다.

        

       “샤를로트의 아이디어, 어떻게 생각해?”

        

       “실습 장소로 루테티아를 제안한 것 말씀이십니까.”

        

       ……원작에서 벨부르 왕도로 가는 것은 고작 실습을 위해 가는 것이 아니었다.

        

       샤를로트를 설득해 함께 하기 위해서. 세상 모든 것을 자기 아래 두려는 황제에게 대항하기 위한 동료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폐허가 되어버린 루테티아에 몰래 들어가서 샤를로트를 찾는 것이 원작의 스토리였는데.

        

       아니, 뭐, 좋게 바뀐 거긴 한데 말이야.

        

       나는 괜히 머리를 쥐어뜯고 싶어졌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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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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