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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98

    바다에 왔음에도 더위는 여전했다.

     

    그러나 같은 날씨라도 어디에서 맞이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법.

     

    지금 이 해변가에서 밝게 내리쬐는 햇살은 정말이지 따스하게만 느껴진다.

     

    소리드는 얼굴에 그늘을 드리우는 낚시모자를 살짝 들어올리며 자신의 손자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시루드는 낚싯대를 쥐고는 가만히 찌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썩 나쁜 표정은 아니었다.

    치어라도 몇 마리 낚았기 때문일까?

     

    소리드는 어쩌면 손자가 크면 본격적으로 자신의 취미에 어울려 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까지 건강하게 잘 살아있다면 말이다.

    소리드는 즐거운 듯 웃으며 말했다.

     

    “어떠냐, 이제 기분이 좀 풀리지?”

     

    “네, 할아버지.”

     

    소리드의 물음에 시루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은 낚시를 할 때도 좋지만, 일식을 볼 때도 꽤 좋단다.”

     

    “일식…….”

     

    시루드는 조금 시선을 멀찍이 던지며 물었다.

     

    “할아버지, 따라오면 알려주신다고 하셨죠? 매번 이렇게 일식을 보러 오는 이유요.”

    “아아, 그랬었지.”

     

    소리드는 시루드의 눈을 내려다보며 조용히 대답했다.

     

    “그리운 사람을 보기 위해서란다.”

    “그리운 사람이요?”

    “그래.”

     

    소리드는 저 멀리 수평선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말을 이었다.

     

    “시루드, 원래 일식은 산 자가 죽은 자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유일한 날이었다고 한단다. 그것은 일식이 낮과 밤, 삶과 죽음의 경계가 흐려지는 유일한 날이었기 때문에.”

    “삶과 죽음이 흐려져요? 그런 이야기는 처음 들어봐요.”

    “하하. 그럴 수도 있지. 1000년도 더 된 옛날 이야기니까. 할아버지도 할아버지에게 전해들은 이야기란다.”

     

    소리드는 즐겁게 웃었다.

     

    “1000년 전엔, 지금처럼 바다로 모여 일식을 보는 문화가 아니었단다. 그때는 정말 죽은 사람들을 보기 위해서 다들 묘지를 찾았거든. 각자 가면을 쓰고 말이다.”

    “왜 가면을 써요?”

    “그야, 경비병에게 들키고 싶지 않아서. 그 틈을 타서 나쁜 짓을 하려는 사람도 많았어.”

    “그럼 경비병에게 잡히면 어떻게 되나요?”

    “글쎄……. 아주 큰 벌을 받았을게다. 그래서 그때 사람들은 일부러 이미 죽은 사람처럼 보이려고 기괴한 화장을 하거나 가면을 쓰는 것도 유행했단다.”

    “으흠. 정말요? 다들 그렇게 묘지로 갔다고요?”

    “뭐, 그래. 사실은 그냥 그렇게 입고 놀래키는 장난을 치는 경우가 대부분이긴 했지. 일식에 그런 장난을 치면 굉장히 실감이 났으니까.”

    “아하.”

     

    원래 일식은 괴물 분장을 하고 사람들을 놀래키는 날이었구나!

     

    잠깐 그 모습을 상상해본 시루드는 그것이 살짝 무섭긴 해도 꽤 흥미로운 옛날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재미있을 것 같은데, 왜 지금은 그렇게 안 하는 걸까요?”

    “옛날에도 그렇게 실제로 죽은 자를 볼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였던 데다가……. 유행이 지난게지. 언제나 세상은 변하는 법이란다.”

    “에이…….”

     

    시루드는 살짝 실망한 듯 다시 낚싯대를 바라보았다가 문득, 처음에 소리드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아, 그럼 그리운 사람을 보기 위해서라는 건…….”

     

    “그래.”

     

    소리드는 시루드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밀레나, 네 할머니는 엘프이면서도 바다를 참 좋아했지. 이 푸른 풍경을 보면 언제나 마음이 차분해진다고 했어.”

     

    소리드는 다시 수평선 너머를 바라보며 말했다.

     

    “할머니의 서클은 나처럼 튼튼하지 못하고 꽤 불안정했거든. 원래 몸도 그리 좋지 않았던 여자라, 조금만 긴장해도 쓰러질 정도였으니까. 그래서, 대부분의 삶을 이 별장에서 지냈지. 저 바다를 보면서.”

     

    하지만 그럼에도 밀레나는 서클에 잡아먹히고 말았다.

     

    그녀의 유언은 자신의 뼛가루를 자신이 항상 보던 바다에 뿌려달라던 것.

     

    하지만 그것은 전통적인 장례방식이 아닌데다, 바다로는 세계수의 영향이 미치지 않는다는 종교적인 믿음 때문에 엘프들 사이에서는 극히 꺼려지는 장례방식이었지만, 소리드는 그녀의 뼛가루를 바다에 보내주었다.

     

    “저 바다는 네 할머니의 무덤이란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항상 일식을 보러 오는 것이었군요?”

     

    “그래, 그랬단다.”

     

    “할아버지는 그럼 일식의 날에 할머니를 보신 적이 있나요?”

     

    시루드의 말에, 소리드는 잠깐 눈을 감더니,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던 것 같구나. 아마도.”

     

    ———-

     

    “디아나. 예르나 언니랑 텐트 들어가서 물기 닦고 쉬고 있어. 이따가 밥 먹자.”

    “응…….”

     

    그렇게 디아나를 텐트로 들여보낸 다이튼은 텐트와 상당히 떨어진 자리에 돗자리를 깔고 누워 햇빛을 만끽하고 있을 뿐인 소르비와 키르케에게 다가와 묻는다.

     

    “너흰 여기까지 왔는데 바다 안 들어가냐? 아까부터 계속 누워있기만 하네.”

     

    소르비와 키르케는 푹 젖어서 물기를 뚝뚝 떨구는 다이튼을 살짝 올려다보았다가 다시 눈을 감으며 대꾸했다.

     

    “아까 살짝 들어갔다 나왔잖아.”

    “맞아, 바다에 안 들어가진 않았지.”

     

    당당하게 말하지만 그녀들이 말하는 잠깐은 정말 찰나의 순간.

     

    말 그대로, 바닷물로 몸을 살짝 적셨다는 뜻이다.

    그것도 다이튼이 잠깐 화장실 간다고 자리를 비운 사이 디아나와 파이리스를 돌보기 위해 살짝 하체를 담갔을 뿐, 물놀이를 하거나 한 것은 딱히 아니었다.

     

    “그러면 정말 그렇게 누워 있기만 하다가 가게?”

    “그럼 뭘 해야 하는데?”

    “뭐, 여러가지 있잖아. 비치발리볼이라던가, 뭐. 그런 것들? 저거 봐. 솔직히 너희가 나가면 상품도 노려볼 만 할 것 같은데.”

     

    이래보여도 이들은 무려 그 루크 숲의 숲지기들이다.

    그것은 그녀들이 일반인들과 비교하기 어려운 육체적 능력을 지녔다는 뜻.

    비록 육체강화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일반인들을 운동경기에서 이기지 못할 리가 없다.

     

    저런 행사에서 인형 한둘 따내는 건 사실 그다지 어렵지도 않은 일.

     

    소르비는 해변가 한켠을 가리키며 하는 다이튼의 말에 그쪽을 살짝 보더니 질색하며 고개를 저었다.

     

    “귀찮아. 상품도 별로 안 끌리고.”

    “맞아, 피곤해. 나는 이번에 쉬러 온거지, 특별히 열정적으로 놀러 온 게 아니라서.”

     

    드물게도 키르케까지 맞장구쳤다.

    역대급이라던 웨이브를 막아내고 얻어낸 모처럼의 여름휴가다.

    업무외 노동은 바라지 않는 것이다.

     

    이미 저 커다란 텐트를 치는 것 만으로 충분히 제 할 일을 다 했다고 본다.

     

    그리고 그 인형이나 기념품 몇개 따봤자 쓸 데도 없다.

    그녀들의 소녀스러운 감수성은 이미 완전히 메말라버린지 오래.

    차라리 압도적인 상금이 걸려있었다면 참여했을지도 모른다.

     

    키르케는 다이튼을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 했다.

     

    “그럼 네가 나가던가?”

    “아니, 나도 근육통 때문에…….”

     

    솔직히 애들 보는 것도 버거운데, 비치발리볼이 무슨 말이냐.

    그렇게 고개를 젓다가 문득 이제 수영은 안하겠다던 루크가 떠올라서 묻는다.

     

    “아 맞다. 너희, 루크는 잘 보고 있었어? 걔 지금 뭐해?”

    “저기. 봐.”

     

    소르비의 손가락을 따라 이동한 시선에는 뭔가 엄청난 것이 있었다.

     

    “뭐야. 쟤 지금 뭐하고 있는 거냐?”

     

    다이튼은 신기하다는 듯 루크를 바라보았다.

    루크가 모래성을 지으면서 논다고?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

     

     

    루크는 거의 완성되어가는 모래성을 바라보았다.

     

    태양의 빛을 받아 황금색으로 빛나는 해변가.

     

    그곳의 모래로 지어진 모래성은 그야말로 기억 속의 황금빛의 찬란한 아린세이아의 왕성과 꼭 닮아있었다.

     

    “마지막으로 이걸 얹으면 완성이다.”

    “완성?”

     

    루크는 조개껍데기를 들어 성 꼭대기에 깃발 대신에 얹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모래성 짓기.

     

    유치한 어린아이들의 장난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이번엔 꽤 진심으로 임했다.

    그전에는 해본 적이 없는 일이었으니까.

     

    “별 것 아닌 일이지만, 그래도 뿌듯하긴 하군.”

     

    그것을 도운 파이리스도 꽤 즐거웠던 모양이고.

     

    “루크 언니, 우리 이거 집에 가져갈까?”

    “아니, 아무래도 그건 좀 아니지 않느냐…….”

     

    파이리스는 처음으로 만들어본 모래성이 꽤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야! 루크! 그거 다 지었으면 와서 밥 먹어!”

     

    “알겠다, 바로 가지!”

     

     

    ——————-

     

    식사를 마친 후, 디아나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언니랑 네가 지은 모래성, 기대된다!”

    “완전 예쁘게 지었어!”

     

    친구에게 자랑할 생각에 잔뜩 기대감에 부푼 파이리스는 경쾌하게 걸음을 옮겼다.

    그런 파이리스의 모습을 보며 루크는 그게 그리도 신이 날까, 하는 생각을 하며 둘의 뒤를 따랐다.

     

    그러나.

     

    “어?”

     

    도착한 장소에 모래성은 없었다.

     

    파이리스는 크게 당황하여 주변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분명 여기에 있었는데…….”

    “파이리스, 잠깐만 진정하고 바닥을 보거라.”

     

    루크가 가리킨 방향을 바라본 파이리스.

    모래성이 있었던 장소에는 이제 그것의 흔적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누가 부쉈나봐.”

    “뭐? 누가!”

     

    디아나의 말에, 파이리스는 경악해 외쳤다.

     

    “잠깐만, 진정하거라. 흔적을 한번 살펴볼 테니.”

     

    그에 루크는 흔적을 자세히 살피기 시작했다.

     

    ‘흐음, 근처에 모래가 상당히 젖어 있는데, 발자국이나 다른 흔적은 남지 않았다……. 장식해둔 조개껍데기에 모래입자가 충격에 의한 것이라고 보기엔 힘들고…….’

     

    루크는 금방 결론을 내렸다.

    “누군가의 소행은 아니다. 파도에 쓸려나갔군. 아쉽게도.”

     

    “파도!”

     

    그 말에 파이리스는 주먹을 쥐고 손을 떨었다.

    아무래도 화가 단단히 난 듯 하다.

    하긴, 어린아이라고는 해도, 쏟아부은 노력이 그토록 산산히 부서지면 그럴 수밖에.

     

    “파랑이가 한 게 분명해! 파랑이는 이제 내 친구 아냐!”

    “파랑이? 그게 누구야? 새로 사귄 친구야?”

    “이제 친구 아냐!”

     

    이해할 수 없는 설명에 디아나는 고개를 갸웃거렸으나, 파이리스는 제대로 대답해줄 생각이 없는 듯 했다.

    아니면, 제대로 대답할 줄을 모르거나.

    그렇다고 디아나에게 파이리스의 정체에 대해 설명하면 굉장히 난처하고 과도한 관심을 보일 것이 분명해서, 디아나에게는 미안하지만 잠시 무시하고 파이리스를 달래는 것에 집중하기로 했다.

     

    “모든 파도를 전부 파랑이가 일으키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

    “하지만, 파랑이가 아니면 이런 거 못 하는데!”

     

    확실히 일리는 있었다.

    이곳은 파도가 자주 들이치는 장소는 아니었으니.

     

    “하지만 파랑이가 그럴 이유가 없지 않은가?”

    “걔가 나쁜 장난을 친 거야!”

    “흐음…….”

     

    장난이라…….

    뭐, 그렇게 생각하면 납득이 안 가는 것은 아니다.

    언제나 모든 행동에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니까…….

    루크는 앉아서 모래성에 장식으로 사용했던 조개껍데기를 집어올리며 생각했다.

     

    뭐, 처음부터 모래로 지은 성이다.

    무너지는 것은 예정된 일이지.

    과거, 그 레니에가 있던 아린세이아조차도, 이제는 흔적조차 남지 못했거늘.

    적어도 이 모래성만큼은 자신이 있었다는 흔적이라도 남기지 않았는가.

     

    “되었다. 어차피 영원히 남아있을 것도 아니었잖느냐. 즐거웠다면 된거야. 안 그래?”

    “…….”

     

    파이리스는 여전히 눈썹을 한껏 찌푸린 분한 표정이었다.

    툭 건드리면 울어버릴 것 같이 위태로웠다.

    루크는 그런 파이리스를 향해 조개껍데기를 내밀며 말했다.

     

    “자, 이것을 받거라. 이것은 우리의 모래성을 지었다는 흔적이고 기억이니. 곧, 이것이 네 마음 속의 추억으로 쌓은 성이 될 것이다. 그러니 울지 말거라.”

    “……그치만.”

     

    파이리스는 조개껍데기를 받아 바닥에 팽개치고선 울음을 참으며 말했다.

     

    “……그치만, 모래성 디아나한테 보여주고 싶었단 말야……!”

     

    ‘아차…….’

    안 통했다.

    어떻게한다…….

     

    루크와 디아나는 둘 다 당황해서 파이리스의 등을 토닥거리는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슬픈 정령의 서러움은 그것만으로는 달랠 수가 없었다.

     

    “흐윽, 흐으아앙…….”

     

    파이리스가 거의 울고 있을 때, 소르비가 나타나 외쳤다.

     

    “중간에 언니가 사진으로 찍어 놓은 게 있으니까, 디아나한테는 그걸 보여주면 되지!”

     

    그러자 뚝, 멈추는 울음소리.

    이내 파이리스는 소르비를 올려다보고선 말했다.

     

    “……진짜?”

    “그래, 이거 봐!”

    “진짜다……! 디아나! 이거야!”

     

    파이리스는 곧장 소르비의 손에서 그 마도기기를 받아가 디아나와 돌려보기 시작했다.

    꽤 많은 사진이 담겨 있어서, 멋진 모래성을 다양한 각도로 바라볼 수 있었다.

     

    “우와, 진짜 잘 만들었네!”

    “그치! 나 엄청 잘했어!”

     

    루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소르비의 혜안에 감탄을 표했다.

    정령이 진심으로 분노한다면 상당히 골치아파질 테니까.

     

    헌데, 저 마도기기.

     

    어딘가 루크에게 낯이 익었다.

     

    “그런데 잠깐만. 소르비. 저게 사진기였나? 내게는 그냥 장난감이라면서?”

    “아.”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열심히 지은 모래성이….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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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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