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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98

     

    ※ 어제까지 있었던 198화가 삭제되었어요. 다른 시간선의 이야기가 잘못 올라왔었다지 뭐예요.

     

    새 198화를 다시 읽어주세요. 독자님들께 혼란을 드려 죄송해요!

     

    ―――――――――――

     

     

     

     

     

    어둠 속에서 빛무리가 피어오른다.

     

    쓰러진 진조의 아래에 떨어져 있는 성검.

     

    “…샤를.”

     

    무심코.

    내 입에서 허망한 숨과 함께 그녀의 이름이 흘러나왔다.

     

    아니.

     

    이제 그녀를 그 이름으로 부르는 건 실례이겠지.

     

     

    용사 리셰.

     

    우리를 위해서, 시민들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해 마족과 동귀어진한 영웅의 이름이다.

     

    “리셰.”

     

    빛을 잃어 평범한 철 덩어리가 된 성검 앞에 무릎을 꿇었다.

     

    도신을 아무리 쓰다듬어봐도 아무런 감각은 느껴지지 않았다.

     

    …오랜 친구를 잃은 기분이다.

     

    성검이라는 강력한 신비 그 자체라고 여기고 있어서 그랬을까.

     

    이렇게 갑작스럽게 떠날 줄은 몰랐다.

     

    …조금 얼떨떨했다.

     

    의사가 아무리 죽음과 가까이 있는 직업이라도 해도, 여태 동료들의 죽음을 수도 없이 봐왔어도.

     

    진짜로 끝.

     

    이게 진짜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어쩐지 가슴 속에서 뜨거운 게 차올랐다.

     

    비록 세상에 불평불만은 많았어도, 이미 다 포기한 것처럼 달관한 태도였어도.

     

    그녀는 마지막에는 어엿한 용사였다.

     

    “아직 치료가 안 끝났는데.”

     

    덕분에 의사 경력에 흠집이 났잖아.

     

    아직 너 때문에 만들어 둔 포션이 주머니에 한가득 들어있는데.

     

     

    상태창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

    No. 073 : 뱀파이어의 밤 62% → 0%

     

    3개 엔딩이 삭제되었습니다.

    ―――――――――――

     

     

    진조에게 패배하는 3개 엔딩의 삭제 메시지를 보며, 나는 정신을 다잡았다.

     

    ‘리셰가 준 기회야.’

     

    허투루 낭비하지 않겠다고 다시 한 번 다짐했다.

     

    품에서 병을 하나 꺼냈다. 진조를 토벌하면 그녀에게 줄 리퀴르였다.

     

    아낌없이 뿌려 성검의 날을 깨끗이 닦는다.

     

    나는 깔끔해진 검을 들어 건네주었다.

    이쪽 리셰에게였다.

     

    그녀는 조심히 검을 받아 들었다.

     

    “…텅 비었네요.”

     

    리셰는 터질 것 같은 울음을 간신히 참느라 주먹을 꽉 쥐었다.

     

    “선생님, 언니는… 저희를 구하느라.”

     

    리셰가 차마 말을 마치지 못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했다.

     

    “제 실수였습니다. 놈이 오러를 쓸 줄 알았으면 샤를에게 맡기기보다 다른 작전을 짰어야 했는데.”

     

    “언니는 어쨌든 똑같이 행동했을 거예요.”

     

    리셰가 성검을 잡은 손에 힘을 꽉 주었다.

     

    “저보다 훨씬 훌륭한 용사였으니까요.”

     

    “두 분 다 훌륭한 용사예요.”

     

    나는 리셰의 등을 두드리며 대답했다.

    리셰가 피식 웃었다.

     

    “…언니는 항상 불평하곤 했었는데요. 귀찮으니 싸울 땐 부르지 말라고.”

     

    씁쓸하게 웃는 리셰.

     

    “저, 사실 속으로는 언니를 인정하지 않고 있었어요. 실력이 그렇게 좋으면서 용사로 싸우기 싫어하는 모습이 이상해서. 제가 언니처럼 된다고 믿을 수가 없었거든요.”

     

    리셰는 두 손으로 받쳐 든 성검을 바라보며 눈매를 굳혔다.

     

    “저, 이제는 확실히 알겠어요. 언니도 분명히 저였다고. 언니처럼 될 생각은 없지만, 절대 잊지는 않을 거예요.”

     

     

    ―――――――――――

    No. 014 : 공명 해제 8% → 0%

    No. 042 : 용사의 최후 16% → 0%

    No. 010 : 성검 파괴 12% → 0%

     

    8개 엔딩이 삭제되었습니다.

    ―――――――――――

     

     

    샤를이 소멸하며 리셰의 성장을 가속한 것일까. 그녀와 관련된 배드엔딩도 상당히 삭제됐다.

     

    일단은 반가운 일이었다.

     

    “용사여.”

     

    아셀라가 우리에게 다가와 말했다.

     

    “마족 토벌의 공을 치하하마. 고트베르크 주치의, 그대도.”

     

    나는 리셰와 함께 아셀라에게 고개를 숙여 예를 표했다.

     

    “황공합니다, 황녀 전하.”

     

    철컥, 착검한 리셰의 눈빛은 한층 단단해져 있었다.

     

    뚜벅뚜벅 걸어나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본 후, 아셀라가 내 옆구리를 몰래 찔렀다.

     

    “너 또 맘대로 뛰어나갔지.”

     

    “에이, 그 정도도 막으시려면 아예 목줄을 채우세요.”

     

    “진짜 채운다?”

     

    농담이 아닐 것 같아서 무섭네.

     

     

    나는 마저 기절한 타냐의 상태도 진단으로 체크했다.

     

    진조에게 혼을 감염당했던 것 치고는 놀랍도록 건강했다.

    증상은 모두 없어졌다. 원체 튼튼한 덕에 전투의 부상도 거의 없었다.

     

    “월광궁, 복귀하겠다. 불의의 습격에 대비하거라.”

     

    아셀라의 명령에 따라 기사들이 전진한다.

     

    그때 상태창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자이언트 포션의 부작용이 발동합니다]

     

     

    “흠, 황녀님.”

     

    “응?”

     

    “어깨 좀 빌려주시죠.”

     

    “뭐? 야…!”

     

    나는 아셀라에게 몸을 기대며 힘을 뺐다. 전신의 근육이 마비되는 게 느껴졌다.

     

    아셀라는 나를 받치느라 어쩔 줄 몰라 하면서 힘을 주느라 필사적이었다.

     

     

     

    ***

     

     

     

    다음 날, 월광궁을 위해 마련된 임시 거처 앞에는 인파가 벌떼같이 몰려들었다.

     

    “여기 고트베르크 선생이 계시오?”

    “잠깐만 인사를 드리게 해주시오!”

     

    사람들이 하도 북적이자 통제를 위해 촥, 천막을 걷으며 안에서 몇 명의 경호원이 밖으로 나왔다.

     

    “오, 드디어!”

    “말씀 좀 전해주시오. 어제 하늘에서 치료제의 비를 뿌린 게 고트베르크 선생 맞소?”

    “여기 감사 선물 좀 전해주시오.”

    “여기도!”

     

    일부는 어제 난리통에서 진조의 하수인이 되었던 이들이었다.

     

    의사 고트베르크의 치료제가 아니었으면 그들이 영영 사람으로 되돌아올 수 없었단 소문이 이미 쫙 퍼진 후였다.

     

    “왕국의 밴더르 백작이오. 부디 약품 거래를 트고 싶소만.”

    “더 중요한 얘기요. 선생께서 법국의 성녀 후보를 제치고 성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있소.”

    “이미 계시를 받았다는 얘기도 있던데, 그게 사실이오?”

    “진짜라면 부디 축복 좀…”

     

    쾅!

    경호원이 머리 위에서 도끼를 부딪쳐 위협했다.

     

    “시끄럽다! 선생님께서 휴식을 취하고 계시다! 물럿거라!”

     

    군중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야만족 경호대의 우락부락한 근육을 보니 잘못 건드렸다간 뼈도 못 추리겠다 싶었다.

     

    천둥족 경호대가 군중을 몸으로 압박하니 인파가 슬금슬금 밀려난다.

     

    기슈타는 콧김을 뿜어내 위협하니 결국 그들은 마지못해 돌아갔다.

     

    임무를 수행한 후, 기슈타는 간이 숙소로 들어가 복도를 걸었다.

     

    ‘어제 라스에게 큰일이 있었다지.’

     

    타냐에게 들은 바로는 마족과 싸우다가 사상자도 나오고 라스도 부상을 입어서 병상에 들었다고 했다.

     

    그녀가 보기에도 반 시체가 되어서 온 그였다. 월광궁 의사들은 물론이고 후작령 병력도 죄다 달라붙은 상황이었다.

     

    자신은 그동안 임무를 받은 대로 천둥족과 네리아를 수호하고 있었다. 진조의 하수인이 그녀에게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하도록 했다.

     

    전처럼 라스와 함께 싸우고도 싶었지만 지금은 그게 자신의 역할이었다.

     

    오랜만에 어제의 일을 이야기하며 회포를 풀어볼까. 라스가 별로 기분이 안 좋아 보였으니 말 상대를 해주면 좋아하겠지.

     

    그리 생각한 기슈타는 라스의 방 앞에서 들려오는 말소리에 발걸음을 멈추었다.

     

    “자, 아앙 하렴.”

     

    “무슨 아앙이에요. 세상에 주치의를 간호하는 담당 환자가 어디 있습니까.”

     

    라스의 목소리. 다른 쪽은 황금의 소녀였다.

     

    아니, 이제는 소녀라는 표현이 어색한 성숙한 여성이 되었다.

     

    어느 마물보다도 강대한 마력과 위압감이 느껴지는 인외의 존재. 그게 기슈타가 아셀라를 다시 봤을 때 느낀 첫인상이었다.

     

    저런 여자가 곁에 있으면 그야, 다른 건 눈에 안 들어올 만하지.

     

    기슈타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네리아를 찾으러 발걸음을 옮겼다.

     

     

    ***

     

     

     

    “제가 먹는다니까요.”

     

    “왜, 제국의 황녀가 먹여주는 식사가 불만이니?”

     

    아셀라가 라스를 놀리며 물었다.

     

    “진짜 애완견이 된 기분입니다만.”

     

    “말한 건 지켜야지. 네 목줄도 준비해 둘 거야.”

     

    “농담이시죠.”

     

    아셀라가 라스에게 악마 같은 미소로 답했다. 침상에 누워있는 라스는 다 포기했다는 듯 양팔을 축 내려놓았다.

     

    자이언트 포션의 부작용으로 몇 시간 근육이 마비되는 바람에 쓰러져 있었더니 아셀라가 딱 달라붙어 감시를 해왔다.

     

    라스로서는 부담될 수밖에 없었다.

     

    “부담 갖지 마, 라스.”

     

    아셀라가 생각을 읽었다는 듯 말했다.

     

    “너도 내가 아플 때 옆에서 이렇게 해줬잖니.”

     

    “그야 그게 제 일이니까요. 이건 황녀님의 일이 아닙니다.”

     

    “재밌잖아. 네가 마른 육포처럼 축 뻗어있는 모습을 구경하고 있자니 즐겁거든.”

     

    “그러시다면야.”

     

    대답은 그렇게 했어도 라스는 어느 정도 아셀라의 의도를 유추할 수 있었다.

     

    이건 그녀 나름의 위로였다.

     

     

    실제로 아셀라는 어제 진조와의 공방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확하게는 알지 못했다. 리셰와 샤를의 상태에 대해서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으니.

     

    ‘라스가 이유도 없이 내게 몸을 기댈 리가 없지.’

     

    아셀라는 그것을 일종의 신호로 받아들였다. 용사의 태도도 이상했던 걸로 봐서 라스의 정신상태가 어떤 이유로 구석에 몰린 건 분명했다.

     

    ‘아냐, 어쩌면 반대일지도.’

     

    라스는 지금까지 벼랑 끝에 몰려있었고, 이제야 발밑을 목격한 걸지도 모른다.

     

    아셀라는 전부터 그게 이상하다고는 생각했다. 항상 의연한 라스의 태도는 대체 어디서 나온 걸까.

     

    아셀라가 모르는 그의 어릴 적 경험과 관계가 있는 건지.

     

    의사회 때문인지, 그가 가진 병마 때문인지, 죽을 뻔한 경험 때문인지.

     

    그를 지금처럼 만든 경험을 하게 한 사람이 누구인지도 궁금했다.

     

    “라스.”

     

    “예, 황녀님.”

     

    “너는 뭐가 가장 무서워?”

     

    아셀라의 질문에 라스의 동공이 살짝 흔들렸다.

     

    샤를을 떠올린 라스는 다시 한 번 확실하게 자각했다.

     

    이번이 진짜 마지막 기회라고.

     

    더 이상의 회귀는 없다.

     

    이번에 죽은 사람은 다시는 만날 수 없다.

     

    그리고 자신 역시 죽으면 그걸로 끝이다.

     

    의사로서 그 손에 쥐고 있는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는 항상 잊어버리지 않을 생각이었건만.

     

    자신이 얼마나 안이했는지, 수백 번이나 반복한 회귀 때문에 스스로의 목숨을 얼마나 가볍게 보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오랫동안 애써 가둬뒀던 기억이 살짝 스치고 지나갔다.

     

    “…읍.”

     

    구역질이 올라올 뻔한 걸 입을 틀어막아 간신히 참았다. 라스가 아셀라의 얼굴에서 시선을 돌렸다.

     

    “라스.”

     

    아셀라는 역시 라스가 어제 전투에서 큰 부상을 입었다고 판단했다.

     

    치유사를 들이려는 찰나, 호위기사가 들어와 그녀에게 보고했다.

     

    “전하, 귀빈께서 찾아오셨습니다.”

     

    “나중에 오라고 해.”

     

    “폐하십니다.”

     

    황제가 직접 찾아올 정도면 큰 사건이었다. 아셀라는 준비할 수밖에 없었다.

     

     

    얼마 안 있어 황제가 위엄 있는 걸음걸이로 방에 들어왔다. 앰브로시아도 함께였다.

     

    어제의 사건에서 심력을 꽤 썼는지 조금은 지쳐 보였지만 그 눈에서는 아직 생기가 불타고 있었다.

     

    “3황녀 아셀라, 의사 고트베르크.”

     

    “존안을 뵙습니다, 폐하.”

     

    “마족을 토벌하고 민중을 치료하여 대혼란과 학살을 미연에 방지한 그대들의 공로는 이루어 말로 다 칭찬할 수 없도다.”

     

    “과찬이십니다.”

     

    황제는 두 사람의 공을 치하한 후, 의외의 발언을 했다.

     

    “고트베르크, 그대에게 부탁이 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뭷뷃님 후원 : D : D : D !!!!
    Ayanami님 응원 감사해요오!@!@!! 덕분에 살아남았어요!!
    비공개 독자님 결말은…! 정해져 있답니다…! 사실 비밀인데 일러스트도 이미 다 나와있는데…! 전개가 묘하게 안 빠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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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주치의는 악녀를 고치고 도망쳤다
Score 3.6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Becoming the physician of the villainess who brought about the world’s destruction, I tried to escape to survive, but the reactions were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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