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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98

       창밖은 푸르스름하게 어둠이 깔린 것이 해가 뜨기 직전이었다.

       나는 잠에서 깨고도 한동안 가만히 침대에 누워 있었다.

         

       꿈을 꾼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이 세계로 넘어오고 나서 나는 한 번도 꿈을 꾸지 못했다.

         

       꿈이라는 것도 결국 뇌 안에서 일어나는 화학 작용이었다.

       강제적으로 평정심을 유지하는 ‘웃는 남자’의 힘 때문일까.

       나는 원더스타인의 몸으로 한 번도 꿈을 꾼 적이 없었다.

         

       그런데 오늘은 평소와 달랐다.

       아마도 어제 자기 전에 먹은 것의 영향일 확률이 높았다.

         

       나는 지난 2주 동안 내 몸을 대상으로 한 가지 실험을 해왔다.

       병 속의 악마를 물리치고 얻은 트릴의 파편, 즉, ‘별빛’을 매일 양을 늘려가며 조금씩 섭취한 것이다.

         

       처음에는 거의 변화를 느끼지 못했다.

       그러던 게 1주일 전부터 뭔가 느낌이 오더니 어제는 이런 메시지를 받기에 이르렀다.

         

         

       [고유 특성 ‘웃는 남자’가 해제됩니다.]

         

         

       나는 메시지가 뜨기 전부터 느낄 수 있었다.

       내 감정과 사고를 붕 뜨게 만들던 부유감이 사라지는 것을.

         

       웃는 남자에 묶여 있는 동안 나는 항상 구름 위를 걷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런데 지금은 단단하게 땅을 디디고 선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은 오래가지 못했다.

       1분도 되지 않는 시간에 ‘웃는 남자’는 다시 돌아왔다.

         

       바로 한 번 더 시도를 해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실험의 일관성을 위해 내일 같은 시간에 시도하기로 했다.

         

       그러다 얼마 안 있어 잠들었는데, 그만 꿈을 꾸게 된 것이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나는 머리맡에 둔 물을 따라 마셨다.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하필 보육원에서의 기억을 떠올리다니.

         

       나는 그곳에서 구조된 뒤로 그곳에서의 일을 잊으려고 애썼다.

         

       물론 보육원 생활이 힘들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분명 즐거운 일도 있었다.

         

       그러나 비극으로 끝나는 것을 뻔히 아는 희극만큼 즐기기 불쾌한 것도 없었다.

       함께 나눌 사람이 없는 추억만큼 공허한 것도 없었다.

         

       그렇기에 오랫동안 떠올리지 않았던 기억이었다.

         

       나는 침대에 걸터앉아 창가를 바라보았다.

       바깥 풍경만으로 시간을 짐작하기는 어려웠다.

         

       이곳 예테린푸르크는 극지방에 가까운 곳이라서 그런지 한 주가 지날 때마다 눈에 띄게 낮의 길이가 줄어들었다.

       우리가 이 도시에 도착하기 전에는 24시간 내내 해가 지지 않는 백야 현상도 나타났다는데, 지금은 절반 이상이 밤이었다.

         

       상태창을 열어 시간을 확인해보려는 순간, 멀리서부터 사람들이 웃고 떠드는 소리가 가까이 다가오는 것이 들렸다.

         

       새벽 시장에 나갔던 단원들이 돌아오는 모양이었다.

       나는 옷을 챙겨 입고 식구들을 맞이하러 나갔다.

         

         

       ***

         

         

       단체 외출은 괴물 단원들에게 있어서 낯선 경험이었다.

         

       길을 이동할 때면 그들은 항상 마차나 우리 안에 들어가 있어야 했다.

       도시나 마을에 도착하면 숙소에 박혀 밖으로 나올 수 없었다.

         

       특히, 세쌍둥이나 우몬 같은 경우는 신체적 특징이 워낙 눈에 띄어서 다른 단원들처럼 옷으로 몸을 가리고 돌아다니는 것도 불가능했다.

         

       그런데 오늘 그들은 사람들이 북적이는 거리를 거닐었다.

       자신의 몸도 있는 그대로 드러냈다.

         

       그들의 외모는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지만, 그들을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은 없었다.

       다들 가장행렬이겠거니 하고 지나쳤다.

         

       선두에 선 엘라가 입은 연미복과 클라라의 레카체프 교복이 그러한 착각을 더 부추겼다.

         

       오늘은 10월 1일.

       할로윈 축제가 시작되는 날이었다.

         

       할로윈은 10월 31일을 말했지만, 축제는 그 이전부터 진행되었다.

       시골에서는 며칠 전에 시작하는 게 보통이었고, 도시는 1주일 전부터 시작하는 곳이 많았다. 대도시는 2주 전부터 시작하기도 했다.

         

       그런데 예테린푸르크는 무려 한 달 전부터 거리에서 괴물 분장을 한 사람을 찾아볼 수 있었다.

       이것은 이 도시가 가지고 있는 두 가지 특징 때문이었다.

         

       첫 번째는 레카체프 서커스 학교였다.

       그들은 할로윈 기간에 학교 축제를 열었다.

       축제는 2주 전부터 벌어지기 때문에, 학생들은 한 달 전부터 동아리별로 모여 특별 행사나 공연을 준비했다. 10월 초면 커다란 호박 장식들이 교정을 굴러다녔다.

         

       두 번째로 슬라그보르트 제과가 있었다.

       그곳은 괴물 분장을 하고 공장을 찾는 아이들에게 무료로 과자를 나누어주었다.

         

       겨울이 시작되면 제국의 무역 수요가 부동항으로 몰리기 때문에 예테린푸르크의 창고 비용과 유통 비용은 11월 말부터 급증했다. 그래서 이곳 상인들은 겨울이 되기 직전에 재고품들을 싸게 풀어버렸다.

       말 그대로 ‘창고 정리’였다.

         

       다만, 식품이자 기호품으로서의 성격을 동시에 가지는 과자는 그런 식으로 재고를 모았다가 풀어버리는 게 불가능했다. 그래서 아예 10월부터 미리 재고를 조절하는 전략의 한 방편으로 할로윈 과자 선물을 뿌리는 것이다.

         

       이 두 가지가 예테린푸르크가 다른 곳들보다 일찍 할로윈을 시작하는 이유였다.

         

       이 기간에 사람들이 자주 찾는 곳 중 하나로 집시들의 ‘주술 시장’이 있었다.

       그들이 파는 으스스한 주술 도구들과 이국적인 잡동사니들은 가격도 싼 편이었고 할로윈 느낌을 내는 데 좋았다.

         

       괴물 서커스단이 오늘 새벽에 방문한 곳도 그곳이었다.

         

       주술 시장에는 저주 역병에 걸린 동물 박제를 파는 곳도 있었고, 말린 페어리 시체나 랫맨의 잘린 앞발 따위를 걸어놓은 곳도 있었으며, 마귀의 조각상을 즉석에서 깎아주는 곳도 있었다.

         

       그런 곳이라 그런지 괴물 단원들의 생김새도 크게 이목을 끌지 않았다.

         

       덕분에 단원들은 별다른 문제 없이 쇼핑을 즐기고 숙소로 돌아올 수 있었다.

         

       골목길을 오르면서 제일 흥분한 목소리로 떠드는 사람은 우몬이었다.

       그는 산골 깊숙한 곳에 엄마랑 둘이서 살았던 터라 할로윈 축제를 처음 경험했다.

         

       주술 시장에 대한 소감을 늘어놓던 그는 이제 거리에서 보았던 할로윈 복장에 대해 떠들어댔다.

         

       “진짜 무섭고 이상한 분장을 한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의 말 상대를 해주는 것은 세쌍둥이였다. 그들 역시 이렇게 밖을 돌아다닌 것은 오랜만이라 잔뜩 흥분해 있었다.

         

       “특히 그게 무서웠지. 팔과 다리를 몇 미터 길이로 흐느적거리는 거.”

       “나는 그 마임 펼치던 사람. 통에 꽉 끼인 흉내가 얼마나 진짜 같던지.”

       “나는 피부를 보라색으로 칠한 여자가 무섭던데.”

         

       그들은 자신들이 그들 이상으로 무서워 보인다는 것은 생각 못 하고 몸을 부르르 떨어댔다.

         

       “저는 몸에 불이 붙은 사람이요. 그건 무섭다기보다 신기했어요. 어떻게 한 거죠?”

       “환상이 아닐까?”

       “아니, 진짜 연기 냄새가 났는데…….”

         

       그때, 뒤편에서 호박들을 잔뜩 안고 있던 엘라가 외쳤다.

         

       “그건 아마 마술일 거야. 진짜 불이 아니라 금속 가루들이 산화할 때 내는 불꽃과 운무 장치들을 조합한 거지. 이 도시에 모인 서커스단 사람 중 한 명이 한 거 아닐까? 그건 그렇고 나는 너희가 말한 사람들을 왜 한 명도 못 봤지?”

       “아까 누나가 호박 사러 갔을 때 왔거든요.”

         

       그들이 별장 입구에 들어섰을 때, 원더스타인도 막 건물에서 나오던 참이었다.

       엘라는 그를 보고 반갑게 외쳤다.

         

       “단장!”

         

       그녀는 들고 있던 호박들을 내려놓고 그에게 달려들어 품에 안겼다.

       그녀는 그의 허리를 꽉 끌어안고 가슴에 얼굴을 비벼댔다.

         

       단원들도 이제 그런 그녀의 모습에 익숙해졌는지 피식 웃기만 했다.

         

       원더스타인은 요즘 따라 그녀가 더 엉겨 붙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녀가 왜 그러는지 그 마음은 짐작이 갔다.

       아마 기억이 돌아오는 것에 대한 불안감 때문일 것이다.

         

       가스통이 말한 엘라의 기억이 돌아오는 기한까지 이제 한 달도 남지 않았다.

         

       그녀는 때때로 뭔가 떠오르는지 갑자기 탄식을 내뱉거나 머리를 부여잡고는 했다.

       그때마다 그녀는 식은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그러나 끝까지 무엇을 봤는지는 말해주지 않았다.

         

       원더스타인은 그녀의 뒤통수를 살짝 쓰다듬었다.

       그때가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즐거운 시간이 끝나가고 있는 것은 확실했다.

         

       “어땠나요, 새벽의 주술 시장은?”

         

       그녀는 여전히 그에게 딱 달라붙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되게 재밌는 거 많던데. 당신도 가면 좋았을걸. 아, 맞다. 당신 주려고 조각상도 하나 샀어. 원하는 마귀를 말하면 즉석에서 깎아주더라”

         

       원더스타인은 그녀가 내민 팔뚝만 한 조각상을 보고는 웃음을 터뜨렸다.

         

       사슴의 뿔이 달린 토끼 머리에 원숭이의 몸, 산양의 다리를 가진 마귀가 거대한 낫을 어깨에 짊어지고 있었다.

         

       사신 누아-자카누바였다.

         

       실제와 다른 점이 있다면 사신의 등에 박쥐의 날개 같은 것을 달아놓았다는 것이다.

       많은 책에서 사신을 그렇게 묘사했지만, 실제 사신의 등에는 날개 대신 펄럭이는 검은 천 같은 것을 두르고 다녔다.

         

       “호박들은 작은 것밖에 못 구했어.”

         

       그녀가 바닥에 놓인 호박들을 가리키며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확실히 호박들은 생긴 것도 그렇고 크기도 영 볼품이 없었다.

       전부 모양이 일그러진 데다 사람 머리통보다 작았다.

         

       그때, 숙소에서 가스통이 하품을 쩍 하며 걸어 나왔다.

       시끄러움 때문에 잠에서 깬 모양이었다.

         

       그는 단원들을 둘러보다가 호박을 발견하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너희들 뭐하냐?”

       “오늘부터 할로윈 시즌이잖아요. 그래서 장 좀 봐왔죠.”

         

       엘라의 말에 가스통은 고개를 내저었다.

         

       “그건 아는데 호박은 뭐하러 사 왔냐는 말이다. 그것도 그런 불량품들을.”

       “아니, 이것밖에 안 팔던데…….”

       “이리 와봐라.”

         

       그는 그녀에게 손짓했다.

       엘라는 설마 하는 마음에 발걸음을 옮겼고, 단원들 역시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그 뒤를 따랐다.

         

       가스통이 그들을 데리고 간 곳은 후원이었다.

       그곳은 그가 밭을 일구겠다고 거름을 잔뜩 뿌린 뒤로 단원들이 냄새난다고 가까이 다가가지 않는 곳이었다.

         

       오랜만에 후원에 들어선 단원들은 입을 쩍 벌렸다.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텅 빈 곳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곳에는 커다란 호박들이 수십 개나 굴러다녔다.

       엘라가 사 온 것보다 몇 배는 컸다.

         

       “어떻게 한 거죠?”

       “할로윈 전에 정원을 꾸밀 호박들을 키워내는 것도 내 일이었어. 이번에도 필요할 것 같아서 진즉에 심었지.”

         

       엘라는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한 달 만에 이만큼이나 컸어요?”

       “연금술 길드의 비전이니라.”

         

       가스통이 짐짓 거드름을 피우며 말했다.

       평소라면 그의 식물 사랑을 못마땅하게 바라봤을 엘라였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영감님 제법이네. 센스 있잖아?”

         

       물론 가스통도 호박을 공짜로 내주지는 않았다.

       그는 원더스타인에게 한 달 동안 자신을 훈련에서 면제시켜 줄 것과 그가 덩굴식물 다루는 법을 배우길 요구했다.

         

       원더스타인은 속으로 탄식을 내뱉었다.

       진짜 끈질긴 영감이다.

         

       한 달 동안 뒤에서 몰래 이런 수를 준비해 놓다니.

       마음 같아서는 단칼에 거절하고 싶었다.

         

       사실 이깟 호박 따위 베르그송 상회의 도움을 받으면 쉽게 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단원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자 그것을 위해 한 달간 열심히 호박을 가꾼 노인네의 정성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것은 능글능글한 겉모습과 달리 그가 의외로 성격이 무르다는 것을 꿰뚫어 본 가스통의 노림수이기도 했다

       

       “알겠습니다.”

         

       정원사는 희희낙락하며 제자를 끌고 호박밭 사이를 다니면서 덩굴식물을 재배할 때 필요한 것들을 가르쳐 주었다. 원더스타인은 무성의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스승이 불러주는 내용을 그대로 메모장에 옮겨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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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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