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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98

       오랜만에 귀티 나게 차려입은 백우진은 곧장 만마전으로 걸음을 옮겼다.

         

       근처를 순회하는 무사들이 그를 볼 때마다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짓곤 했다.

         

       허구한 날 꾀죄죄한 행색으로 여기저기 시비 걸고 다니던 인간이 말끔하게 차려입은 모습에 놀란 듯한 모양새다.

         

       만마전에 당도하자 이를 지키고 선 무사들이 미리 이야기를 전달받은 듯, 별다른 확인 없이 곧장 길을 터주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시비 한 명이 나긋한 걸음으로 이쪽을 향해 걸어왔다.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그녀의 뒤를 따라 만마전 내에서도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한 전각으로 향했다.

         

       “들어가시지요.”

         

       백우진은 곧장 안으로 들어섰다.

         

       희미한 불빛만이 유일한 광원인 어둑한 내부.

         

       다른 시비의 안내를 받아 도착한 곳엔 천마가 다소곳이 앉아 있었다.

         

       백우진은 그녀의 반대편에 자리했다.

         

       “꽤 늦었군.”

         

       앉기가 무섭게 들려오는 그녀의 평이한 말투에 백우진은 가볍게 웃으며 답했다.

         

       “저녁 먹기 딱 좋은 시간 같은데.”

       “하하, 그런가.”

         

       그녀는 소탈하게 웃으며 그의 말을 받았다.

         

       처음 만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백우진은 그런 그녀의 태도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너그럽다.

         

       적이 아닌 손님이라고 해도 무례할 만한 짓을 그리도 저질렀는데 그녀는 그러한 행동에 어떠한 책임도 묻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무마시켜주었다.

         

       ‘대체 왜일까.’

         

       그뿐만이 아니었다.

         

       사실 모든 게 의문이다.

         

       천마신교 내에 교인이 아닌 자가 발을 들인 건 무려 백 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

         

       그녀는 대체 왜 아군도 아니고 적에 불과한 자신을 이곳에 들였을까.

         

       자신이 온갖 패악질을 부리고 다녀도 묵인한 이유는 무엇일까.

         

       시종일관 자신을 향해 내비치는 저 너그러움과 따뜻함은 대체 무엇 때문인가.

         

       “후우.”

         

       짧게 숨을 내쉬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들을 접어두었다.

         

       제법 긴 시간 자신을 방치해둔 그녀가 비로소 불렀음은 무언가 할 말이 있어서일 터.

         

       ‘일단 들어봐야겠지.’

         

       그녀의 말을 듣다 보면 몇 개의 답은 찾을 수 있겠지.

         

       “그대의 말대로 저녁 먹기 딱 좋은 시간이니, 식사부터 하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시비들이 양손 가득 음식을 쥐고 날랐다.

         

       기다란 직사각형의 식탁이 중원 각지에서 먹을 수 있는 산해진미들로 가득 채워졌다.

         

       “뭘 좋아할지 몰라 이것저것 차려봤는데, 어떤가.”

       “웬만한 건 가리지 않고 먹는 편이라 뭐든 상관없어.”

         

       퉁명스럽게 대답한 그는 젓가락을 손에 쥐며 한마디 덧붙였다.

         

       “오이만 빼고.”

         

       백우진은 지구에 있을 때부터 오이를 싫어했다.

         

       정확히 말하면 그 특유의 냄새를 맡는 것을 힘들어했다.

         

       그래서 샌드위치나 김밥을 먹을 때면 꼭 오이가 들지 않은 것으로 주문하곤 했었더랬다.

         

       이를 들은 천마가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재차 물었다.

         

       “오이를 싫어하나?”

         

       그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답했다.

         

       “응, 싫어. 정확히는 냄새가 너무 싫어.”

       “…그런가.”

         

       그녀는 어색하게 웃다가 이내 손을 들어 식사를 권유했다.

         

       “일단 들게. 음식이 식으면…, 맛이 없어지니까.”

       “잘 먹을게.”

         

       마침 배고플 때였다.

         

       백우진은 주변에 있는 음식들을 빠르게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

         

       “자, 이것도.”

         

       천마의 허공섭물에 둥실 떠오른 음식들이 그의 접시 위에 차곡차곡 쌓였다.

         

       하나같이 백우진이 팔을 길게 뻗어도 닿지 않을 곳에 있던 음식들이었다.

         

       남편에게 내조하는 듯한 아내의 모습에 백우진은 경계심을 드높였다.

         

       ‘이 요망한 것이 설마?!’

         

       어쩌면 제 얼굴에 반한 그녀가 자신을 유혹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맞네, 맞아!’

         

       만약 그렇다면 지금까지 쌓인 모든 의문이 해소된다.

         

       왜 데려왔는가? 남편감으로 삼기 위해서.

         

       왜 깽판치는 걸 봐줬는가? 천마의 부군 될 사람이니 그 정도야 뭐.

         

       왜 자신을 볼 때마다 너그러운 미소를 짓는가? 좋아하니까.

         

       “쿨럭! 쿨럭!”

         

       온몸에 소름이 쫙 돋는 듯했다.

         

       “괜찮나?”

         

       백우진이 기침을 토해내자 천마가 걱정어린 표정으로 물잔을 건넨다.

         

       안에 담긴 물을 벌컥벌컥 들이켜 막힌 목구멍을 뚫어내는 데에 성공한 백우진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그녀를 쳐다봤다.

         

       “체하지 않게 천천히 먹도록.”

         

       안도의 한숨을 내쉰 천마는 그리 말했다.

         

       백우진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자리에 앉아 음식을 입에 넣었다.

         

       대충 씹다가 목구멍으로 삼키려 하자, 천마가 손을 들었다.

         

       “잠깐.”

       “……?”

       “열 번 더 씹도록 해.”

         

       백우진은 어이가 없었다.

         

       “아니, 내가 무슨 애도 아니고….”

       “스읍.”

       “…….”

         

       그는 군말 없이 열 번을 더 씹은 뒤 목구멍으로 음식물을 삼켰다.

         

       천마가 스읍, 하는데 이걸 누가 이길 수 있을까.

         

       “옳지.”

         

       이러다 정말 애가 될 것만 같은 기분이다.

         

       식사는 그 뒤로 제법 길게 이어졌다.

         

       백우진은 빠르게 먹어 치우려 했지만, 천마의 스읍에 번번이 가로막힌 탓이었다.

         

       “어우, 배부르다.”

         

       볼록하게 튀어나온 배를 퉁퉁 튕기는 백우진.

         

       식탁에 있는 음식들 대부분이 그의 뱃속으로 들어갔다.

         

       천마는 고작 몇 젓가락 깨작거리곤 남은 시간 전부를 그의 식사를 도와주는 데에 썼다.

         

       “하하…, 정말 많이도 먹는군.”

       “음식 남기면 벌 받아.”

         

       반쯤은 억지로 먹기도 했다.

         

       백우진은 배고픔이 주는 고통과 서러움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가 자란 고아원은 풍족하지 않았기에 언제나 허기를 가시는 정도로만 먹어야 했다.

         

       이세계에서도 마찬가지.

         

       식량이 모두 떨어진 채 몇 날 며칠을 마왕군에 쫓기며 배를 쫄쫄 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때의 서러움과 고통을, 그는 여전히 또렷하게 기억한다.

         

       그래서 웬만하면 음식을 남기지 않으려 애쓴다.

         

       “후후…, 그렇지. 음식을 남기면 안 되지.”

         

       그녀는 잔잔한 웃음을 흘리며 그의 말을 수긍했다.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시비들이 들어와 빈 접시들을 가지고 나갔다.

         

       널따란 식탁에 놓인 건 마지막으로 들어온 시비가 남기고 간, 따뜻한 김이 피어오르는 찻잔이 전부가 되었다.

         

       백우진은 찻잔에 담긴 연한 갈색빛이 도는 찻물을 입에 머금었다.

         

       구수한 찻물이 입가에 남은 기름기를 말끔히 닦아주었다.

         

       중국의 차 문화는 기름진 음식을 자주 먹는 식습관 때문이라더니, 과연 그게 맞는 듯했다.

         

       반쯤 비운 찻잔을 내려놓은 백우진이 조용히 고개를 들어 반대편에 앉은 천마를 보았다.

         

       “배도 채웠고, 입도 가셨으면 슬슬 얘기할 준비는 끝난 것 같은데.”

       “후후, 그런가.”

         

       천마는 웃으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러자 백우진이 손을 들어 올리며 입을 열었다.

         

       “아, 그 전에 미리 말해두겠는데.”

       “음?”

         

       백우진은 조금 전의 식사를 통해 확신하게 되었다.

         

       천마가 자신을 좋아하고 있음을.

         

       사람의 마음이란 건 참으로 불가사의하다.

         

       어디로 향할지, 또 언제 돌아설지 모르니.

         

       그것은 천마 또한 마찬가지.

         

       그녀가 자신을 좋아한다고 해서 그것이 절대 이상한 일은 아니다.

         

       다만 애석할 따름이다.

         

       그녀와 자신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이기에.

         

       “미안하지만, 내게는 이미 혼인을 약속한 여인이 둘이나 있어.”

       “…그래서?”

       “또한 당신은 천마고, 나는 정파의 후기지수야.”

       “그렇지.”

       “그러니까…, 우리는 어떻게 해도 가까워질 수 없는 사이라는 거야.”

         

       받아줄 수 없는 마음은 일찌감치 끊어내는 게 옳다.

         

       희망고문이란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여지를 줌으로써 희망을 남겨두면 그것이 훗날 더 큰 고통이 되어 돌아올 테니.

         

       천마는 입가에 미소를 지운 채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하나만 물어도 되겠나?”

         

       백우진은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묻는 건 마음대로 해. 물론 대답하냐, 마냐는 내 마음이고.”

       “하하, 그거 공평하군.”

         

       천마는 작게 웃은 뒤 물음을 입에 담았다.

         

       “그 여인들을 좋아하는 이유는? 단순히 예쁘기 때문만은 아닐 듯한데.”

       “그렇지.”

         

       예쁜 여자를 싫어하는 남자는 없다.

         

       그것은 백우진도 마찬가지.

         

       허나, 그것만으로 혼인 상대를 정했다면 이미 그의 곁에는 수십이 넘는 여인이 있었을 거다.

         

       숱한 여인들을 마다하고 그가 두 여인에게 마음을 내어준 이유는 단 하나.

         

       “언제, 어느 상황에서도 내 편이 되어줄 여인들이니까.”

         

       설령 자신이 억울한 누명을 써 무림 공적이 된다고 해도 자신을 믿고 따라줄 이들이기에.

         

       외모만큼이나 중요한 게 그거였다.

         

       절대로 자신을 배신하지 않을 믿음을 자신에게 심어주는 사람.

         

       “…좋은 여인들이군.”

       “그렇지.”

         

       백우진은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만큼은 조금의 거짓 없는 사실이기에.

         

       천마는 조금 전보다 가라앉은 목소리로 백우진에게 다른 물음을 던졌다.

         

       “첫사랑은 두 여인 중에 누구지?”

         

       그러자 백우진의 얼굴도 살짝 굳었다.

         

       무언가 두려운 듯한 표정.

         

       “그…, 이건 비밀인데.”

       “음…?”

       “두 여인 중에 첫사랑은 없어.”

       “…그러고 보니 파혼을 한 번 했다고 하던데.”

         

       백우진은 잠깐 망설였다.

         

       이 몸으로만 따지자면, 유화연 그녀가 첫사랑이 맞다.

         

       하지만 영혼으로 따지면 아니었다.

         

       잠시 고민하던 백우진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보다도 전에 좋아하던 여자가 있었어.”

       “그 여자와는 잘 안됐나 보군.”

       “뭐, 그렇지.”

         

       굳이 떠올리고 싶지 않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씁쓸한 추억이다.

         

       허나 천마는 그것이 궁금한 듯했다.

         

       “이유는?”

       “이유….”

         

       헤어지게 된 이유.

         

       그녀와 헤어지게 된 것은 복합적인 문제가 얽히고설켰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하나하나 풀어헤쳐 근본에 도달하면….

         

       “내가 잘못을 저질렀거든.”

         

       자신의 탓이었다.

         

       딴에는 마왕을 무찌른 뒤에 그녀에게 모든 걸 고백하겠다고 했지만, 글쎄.

         

       ‘과연 내가 모든 걸 털어놨을까.’

         

       현재로부터 도피하기 위한 수였다.

         

       막상 마왕을 무찌른 순간이 현실로 다가왔을 때, 자신은 그녀에게 모든 걸 고백했을까.

         

       그랬을 거라 자신 있게 말할 확신이 서질 않았다.

         

       자신은 그녀를 믿지 못했던 거다.

         

       모든 걸 고백해도 자신을 떠나가지 않을 거라고 믿었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다.

         

       “내 잘못된 판단이 그녀를 아프게 했어. 그래서 헤어졌어.”

         

       백우진은 덤덤한 표정으로 말을 끝맺었다.

         

       그래, 그뿐이다.

         

       자신이 잘못 생각했고, 행동했기에 그녀를 아프게 만들었다.

         

       그가 고개를 떨구자, 천마는 오히려 고개를 더욱 치켜들었다.

         

       “…알긴 아는구나.”

         

       날이 선 예리한 목소리가 귀를 베었다.

         

       놀란 백우진이 힘없이 떨군 고개를 들어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까지의 미소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북풍한설보다 차갑고 매서운 표정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천마는 무시무시한 기세를 흩뿌리며, 그를 향해 시리도록 차가운 분노를 토해냈다.

         

       “그런데 어째서 내게 용서를 구하지 않았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 하루도 고생 많으셨고, 저는 내일 또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매번 감사합니다.

    편안한 밤 되셔요. (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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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Completed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sent a 5,700-character message and ended up transported into a novel world once. Then after returning, I got reincarnated into a second martial arts novel by the same damn author. Only this time, I really didn’t write an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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