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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98

       쌍둥이가 태어난 11월 20일.

         

       공작령의 특별한 기념일로 지정됐다.

         

       그 과정에서 가신들이 매번 아이가 태어날 때마다 기념일로 지정할 거냐며 다소 잡음을 일어났지만, 프란체가 완고히 밀어붙여 가능했다.

         

       이후 그녀는 아이들에게 엄마의 존재란 대체 불가능할 정도로 크다며 잠시 일선에서 물러나 육아에 집중했고, 자연스레 공작의 업무는 내가 보게 되었다.

         

       언제는 아무 일도 안 시키려고 아집을 부렸으면서, 아이가 태어나니 사소한 건 다 필요 없어졌나 보다.

         

       그렇게 1년 하고 조금 뒤. 우리는 여유를 가지고 육아에 전념했다.

         

       “엘, 에나? 여기 엄마가 있어요!”

         

       쭈그려 앉은 프란체가 두 팔을 벌리곤 환한 미소를 지었다. 앞에는 엘과 에나가 걸음마를 떼고 있었다.

         

       헬레나를 비롯한 프란체의 전속 사용인들이 붙어 아이들이 균형감각 키우는 걸 도와주었다.

         

       “으갸.”

         

       에나가 옹알거리며 걸음을 내디뎠다. 작은 다리, 발로 엄마에게 다가가는 이 광경은…….

         

       너무 행복한 순간이었다.

         

       “에나? 엘? 천천히!”

         

       아이들의 걸음이 다소 빨라지자 프란체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혹여나 넘어질까 싶어 노심초사한 것이다.

         

       “도련님, 아가씨. 너무 급하실 필욘 없어요.”

         

       부들부들 떠는 다리를 보며 헬레나가 싱긋 웃었다.

         

       이전까지는 다섯 걸음이 한계였는데, 지금은 일곱 걸음까지 왔다.

         

       앞으로 세 걸음만 더 걸으면, 아이들이 프란체에게 안길 수 있을 것이다.

         

       “으갸…….”

         

       슬슬 한계에 가까워진 것 같지만, 먼저 걸음을 내디딘 건 에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아이들의 성격을 볼 수 있었는데, 에나는 굉장히 활기차며 호기심이 많은 유형. 엘은 아이답지 않게 조용하며 생각을 알 수 없는 유형이었다.

         

       이러나저러나 둘 다 엄마인 프란체를 매우 사랑한다는 건 다르지 않았지만.

         

       “으갸!”

         

       마침내 걸음을 내디딘 에나가 먼저 프란체에게 안겼다. 아이를 품에 안은 그녀는 세상을 다 가진 듯한 미소로 눈을 반짝였다.

         

       “진, 이거 봐! 우리 에나가…!”

         

       감격에 말을 잇지 못하는 프란체. 나는 싱긋 미소지으며 에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를 닮은 검은 머릿결과 빛나는 금안이 일렁였다.

         

       “대단하네, 에나.”

       “부.”

         

       벌써 내 말을 알아들은 듯 의기양양한 얼굴로 고개를 주억이는 에나. 그 모습이 퍽 귀여워서 입꼬리가 멋대로 올라갔다.

         

       “부우!”

         

       이 광경을 볼 수만은 없었는지 엘도 속도를 붙였다. 헬레나와 레냐를 비롯한 사용인들이 전부 달라붙어 안전을 최우선시했다.

         

       “도련님! 잘못하면 넘어지세요!”

       “천천히, 천천히!”

       “으으!”

         

       결국엔 부들부들 떠는 다리로 사용인들의 도움을 받아 프란체 품에 안긴 엘. 다 같이 꺄르르, 하고 웃는 얼굴을 보니 가슴이 몽글몽글해졌다.

         

       “엘도 왔구나. 참 잘했어요.”

         

       프란체는 에나와 엘을 품에 안으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이들은 그런 엄마가 좋은 건지 밝게 미소지었다.

         

       “진…….”

         

       문득 프란체가 진지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굳건한 눈동자가 마치 무언가 결심한 듯했다.

         

       “우리 아이들은 천재가 틀림없어. 이걸 기념해서 공작령에 축제를 열자. 비용은 전부 우리가 처리하는 거로 하고, 마탑의 마법사들을 대거 초빙해서 불꽃놀이까지 여는 거야.”

         

       매번 그랬던 것처럼, 상당히 아들, 딸 바보가 된 프란체였다.

         

       “…아직 축제를 열기엔 아쉽지 않을까? 에나와 엘이 엄마, 아빠도 불러주지 않았잖아.”

         

       나는 프란체의 어깨를 당기며, 픽 웃었다.

         

       “그 영광스러운 순간을 위해 축제를 아껴두는 건 어때?”

       “그때도 열고 지금도 열면 안 돼? 공작가에 남아도는 게 돈인데…….”

         

       이러한 설득에도 넘어오지 않는 프란체.

         

       쌍둥이가 처음 태어났을 때, 옹알이를 시작했을 때, 처음 아이들이 기어 다니기 시작했을 때도 이러했다.

         

       “프란체. 원래 이런 축제는 딱 한 번 여는 거야. 매번 열면 흥미가 떨어지잖아?”

         

       옅게 웃으며 그녀의 어깨를 쓸어넘겼다. 여전히 아쉬운 듯한 프란체였지만, 이내 고개를 주억였다.

         

       “알겠어…….”

       “…….”

         

       매번 이렇게 풀이 죽은 모습을 보면 다 해주고 싶어지는데.

         

       “그러면 에나와 엘이 엄마, 아빠를 불러주는 순간 축제를 열자. 기간은 한 달이야.”

         

       그리 말하자 프란체의 얼굴이 조금 밝아졌다.

         

       “정말이지? 매번 반대만 해서 애정이 없는 줄 알았는데.”

       “무서운 소리를. 나는 언제나 아이들이랑 너만 생각할 뿐이야.”

         

       능청스럽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이자 프란체는 어깨를 두드리며 꺄르르 웃었다. 그녀의 미소는 아이들과 닮아있었다.

         

       이래서 피는 물보다 진한 거구나.

         

       “그러면 그때를 대비해서─”

       “어마.”

       “…?”

         

       순간 잘못 들은 건가 싶어 에나와 엘을 바라봤다. 둘은 시선을 프란체에게 고정한 채 입을 열었다.

         

       “어마.”

       “어…마.”

         

       우리의 얘기를 이해한 것일까? 갑자기 엄마라고 불러준다니? 그런데 딱히 이상할 건 없었다.

         

       옹알이를 반복하며 걸음마도 뗀 시기인지라, 언제 엄마, 아빠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았으니까.

         

       “진, 우리 아이들이 설마 얘기를 알아들은 걸까?!”

         

       프란체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어떡해! 우리 아이들 진짜로 천재인가 봐!”

         

       이윽고 품에 안은 채 아이들과 뺨을 비비는 프란체. 그 모습이 너무 웃겨서 미소가 끊이질 않았다.

         

       “에나, 엘? 엄마라고 다시 말해볼래?”

         

       프란체가 아이들을 바라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기대감과 긴장감이 섞여 조화를 이루었다.

         

       “우… 어마…!”

       “어마!”

         

       아직 발음까진 무리였어도 똑똑히 들었다. 아이들이 프란체를 인식하고 엄마라고 불러준 것이다.

         

       “!!!”

         

       그 말을 들은 프란체의 표정은 가히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짙은 행복감에 젖어 녹아내린 얼굴.

         

       “진… 역시 우리 아이는 천재가 틀림없어…….”

         

       그녀의 말이 맞았다. 우리 아이는 천재들이 틀림없다.

         

       “그럼, 누구 아이인데.”

         

       나는 픽 웃곤 쭈그려서 아이들과 시선을 마주했다.

         

       “아빠라고도 해볼래? 아빠.”

       “…….”

       “…….”

         

       빛나는 금안으로 응시할 뿐, 묘하게 말이 없다. 분명 프란체를 부를 땐 열정과 노력이 가득했던 거 같은데…….

         

       “에나? 엘? 아빠라고─”

       “으갸.”

       “우.”

       “…….”

         

       왜 나만…?

         

         

       * * *

         

         

       프란체와 했던 약속대로, 아이들이 엄마라고 불러줬으니 축제를 열기로 했다.

         

       나는 아빠라고 불러주지 않은 게 정말 아쉽고, 슬프고, 서럽고, 씁쓸하고, 눈물이 다 나올 것 같지만…….

         

       ‘약속은 약속이니까.’

         

       아무튼, 축제에 들어가는 모든 금액은 모두 공작가에서 부담하기로 했으며, 주말의 끝인 일요일마다 마탑의 마법사들이 모여 불꽃놀이까지 일정을 잡아뒀다.

         

       또한, 불꽃놀이 전날은 신비로운 경험을 시켜주기 위해 어렵게 데려온 사람이 있다.

         

       바로…….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데카르트 공작부군님. 판테온에서 파견 온 종원 컴퍼니의 애니메이션 총 책임자, 이리전나 피고네입니다.”

         

       장종원의 문화 사업을 운영 중인 임원이다. 그에게 편지를 보내니 바로 파견을 해주겠다며 승낙했다.

         

       ‘그런데 종원 컴퍼니?’

         

       나름 괜찮은 이름이군. 프란체 코퍼레이션보단 아니지만.

         

       “반갑네, 이리전나 피고네.”

         

       일단 말없이 있는 건 예의가 아니라 생각해 손을 내밀었다. 이리전나는 방긋 웃으며 악수했다.

         

       그를 초빙한 이유는 다름 아닌, 이전에 판테온에서 봤던 환영 마법 애니메이션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무대도 많이 만들어뒀으니 공작령의 주민들이 빠짐없이 구경할 수 있을 터.

         

       “생각보다 출장 시간이 길어진지라 준비 시간이 촉박하네요. 바로 일정부터 얘기하고 싶은데, 괜찮으실까요?”

         

       그에 나는 흔쾌히 수락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배를 타고 왔다지만, 여기서 판테온까지 거리가 꽤 있으니까.

         

       “그럼 응접실로 가지.”

         

       나는 그와 함께 이동해 응접실에 마주 보며 앉았다. 헬레나가 벌꿀차를 내주던 사이, 이리전나 피고네는 회장님이 보낸 선물이라며 한 상자를 꺼냈다.

         

       “술과 각종 조미료입니다. 공작부군님께서 굉장히 기뻐하실 거라고 하시더군요.”

       “고맙군. 그대가 돌아갈 땐 두둑하게 챙겨주도록 하지.”

       “하하, 감사할 따름입니다.”

         

       받은 선물은 헬레나에게 넘겼다. 그 중에선 그녀도 좋아했던 알로에 차가 있던지라, 얼굴에 미소가 돌았다.

         

       “그러면 이제 일정 이야기로 넘어가겠습니다.”

         

       이리전나 피고네는 자신들이 준비한 일정을 읊었다.

         

       상영회는 매주 토요일마다 시행하는데, 무대마다 나오는 애니메이션이 달랐다. 상영되는 환영 마법은 전부 장종원의 창작물.

         

       지구에 존재하던 창작물과 별반 다르지 않지만, 이상하게 현대 배경으로 한 사냥꾼 장르가 인기가 많았다.

         

       “이 정도입니다.”

       “흠.”

         

       나는 그가 건넨 서류를 받아 목록을 읽어봤다.

         

       ────────

       -애니메이션 목록-

       나 혼자만 강해짐.

       전지적 종원 시점.

       재벌집 막내 고명딸.

       SSS급 죽었더니 살아난 헌터.

         

       상영 시간은 모두 3시간 이내.

       ────────

         

       “…….”

         

       이거, 잘 모르는 나도 알 정도로 유명한 작품들인데. 대놓고 표절한 거잖아.

         

       “상영에 들어갈 애니메이션은 이 정도입니다. 회장님께서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라 하셨기에, 최고 인기를 끌던 작품으로만 준비했고요.”

         

       뭔가 기분이 조금 그렇지만…….

         

       ‘…여긴 다른 세계니까, 뭐.’

         

       적당히 넘어가기로 했다.

         

       “환영 마법사들은 전부 데려온 건가?”

       “물론입니다. 핵심 인력으로 데려왔습니다.”

       “좋네. 출장비와 보너스는 확실히 치르지.”

         

       분명 종원이라면 ‘우리 사이에 무슨, 아이들 돌잔치 축하 선물이야.’ 이러면서 보답을 거절할 게 뻔한지라, 선물과 같이 일방적으로 보내야 한다.

         

       “이거로 당장 필요한 얘기는 끝인가?”

       “예. 바로 준비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아까 시간이 촉박하다 했으니. 나는 고개를 주억이며 대답했다.

         

       “알겠네. 아, 그대들의 안내는 우리 가문의 집사장인 플뤼겔이 안내해줄 예정이니 그 외 무대 준비에 필요한 게 있다면 그에게 말하도록.”

         

       이리전나 피고네는 “배려에 감사드립니다.”하곤 정중히 인사한 뒤 자리를 비웠다.

         

       ‘이거로 준비했던 상영회는 됐고.’

         

       남은 건 축제 점포 섭외인데 이는 엘반 자작이, 불꽃놀이는 마탑의 총 책임자인 카자르가 준비하고 있다.

         

       ‘이제 남은 건…….’

         

       치안 문제.

         

       비록 공작령이 엑시드의 영향으로 다른 영지에 비해 깨끗하고 안전하다곤 하지만, 사람들이 몰리는 곳은 언제나 안전과 치안 문제가 골칫덩이로 꼽힌다.

         

       ‘흠.’

         

       가문의 기사들을 동원하고 싶진 않았다. 그들도 가족들과 축제를 즐기고 싶을 테니 되도록 휴가를 주고 싶다.

         

       ‘그러면 엑시드가 좋겠군.’

         

       셀다스는 축제 같은 건 딱 질색이라고 느끼는 타입이니 적임자라 볼 수 있겠다. 지금까지 경험하고 느낀바, 그를 따르는 어쌔신들도 다르진 않을 거다.

         

       ‘바로 보내자.’

         

       나는 전서를 통해 셀다스에게 의뢰를 넣었다. 내용은 알다시피 곧 열릴 데카르트 후계자 탄생 기념 축제의 치안을 맡아달라는 것이었다.

         

       ‘만약 얼굴 본다면 오랜만에 보겠군.’

         

       저번 이후로 1년 이상을 못 보긴 했는데, 자기 앞가림은 누구보다 잘하는 놈이라 딱히 근황이 궁금하진 않았다.

         

       ‘이거로 다 됐네.’

         

       일을 전부 끝내고, 집무실에서 나왔다. 빨리 우리 쌍둥이 보러 가야지.

         

       ‘오늘은 아빠라고 불러주겠지…?’

         

       아이들의 놀이방으로 들어오니 우리 쌍둥이는 프란체와 같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왔어?”

       “응. 우리 쌍둥이들!”

         

       프란체에게 안긴 아이들과 뺨을 비볐다. 엘과 에나도 그게 좋은지, 꺄르르하고 웃었다.

         

       다만…….

         

       “엘? 에나? 아빠가 왔어요.”

       “…우.”

       “부우.”

         

       웃으며 반겨주기만 할 뿐, 아빠라고 불러주진 않았다.

         

       “엘, 에나? 아빠라고 불러볼래? 아- 빠-.”

       “부.”

       “우.”

       “…….”

         

       돌아오는 건 그저 웃음뿐. 얘네들, 알면서 날 놀리는 게 틀림없다.

         

       “언젠가는 불러주겠지. 그렇지? 엘, 에나?”

       “부.”

       “우.”

       “…….”

         

       나도 아빠 소리 듣고 싶어…….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사함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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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악역 영애를 키우고 도망쳤다
Score 8.6
Status: Ongoing Author:
I made a villainess destined for death into the most powerful person in the empire and then f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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