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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98

       수아의 입술이, 내 뺨을 스쳤다.

        

       무척이나 부드럽고, 따뜻했다. 어쩌면 조금은 달라붙는 느낌이었으려나. 수아도 입술에 립글로스를 발랐으니까.

        

       역시 평소에는 절대로 그냥 넘어가지 못했겠지만, 바로 조금 전에 이것보다도 훨씬 강한 자극을 받았던 나는 그래도 어느 정도 이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래, ‘어느 정도’는.

        

       두 명의 미소녀에게서 몇 번이고 키스를 받은 나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익숙해졌다는 말은 절대로 아니었다. 전생의 나는 여자와 키스는커녕 연애도 해본 적이 없었고, 그래서 이런 쪽으로는 내성이 무척 낮았으니까.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채 고개를 돌리자, 마찬가지로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수아가 있었다.

        

       “좋아해.”

        

       금방이라도 눈물이 흘러넘칠 것 같은 그 표정에, 나는 말을 잃었다.

        

       수아는 허리를 숙여서 내 어깨 너머로 나를 보고 있었고, 나는 고개를 돌려 수아를 보고 있었다. 서로가 서로의 눈을 그대로 들여다본다.

        

       수아의 맑은 호수 같은 눈동자에는 비가 쏟아지기 직전이었다.

        

       어쩌면, 수아도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을 극한까지 느끼고 있는지도 모른다. 울음을 터뜨릴 정도로.

        

       물론, 수아는 잘 참아내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 가련했다.

        

       “하늘이에게 무슨 대답을 했는지는 모르겠어. 하지만, 네가 무슨 대답을 했건, 하늘이와 무슨 관계가 되었건, 나는 네가 좋아. 아마 하늘이보다도, 내가 먼저 너를 좋아했을 거라고 생각해.”

        

       마치 먼저 나간 하늘이가 무슨 일을 했는지 알고 있는 것처럼 말한다.

        

       아니,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늘이가 들어오고 얼마 있지 않아 수아도 들어왔으니까. 그리고 내 왼손에 끼워진 ‘우정 반지’를 봤으니까. 어떤 상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래, 딱 그 정도로는 머리가 돌아갔다.

        

       하지만, 수아가 어떤 오해를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 오해를 쉽게 풀어줄 수 없었다.

        

       왜냐하면, 목구멍이 꽉 막힌 듯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으니까.

        

       수아가 볼에 뽀뽀한 것은, 하늘이가 몇 번이나 겹쳐왔던 입술보다는 덜 자극적이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두 여자가 하루 만에 나한테 고백했다’는 개념은 그 행위를 뛰어넘을 정도로 자극적이었다. 전생에 여자들에게 인기라는 것을 얻어본 적이 없었던 나였기에.

        

       게다가……

        

       게다가, 수아가 나한테 뭐라고 했지?

        

       그래, ‘하늘이가 좋아하기 전부터’라고 했다.

        

       물론 그 말은, 수아만의 생각일지 모른다. 하늘이가 나를 연애 대상으로서 좋아하게 된 시점이 어느 시점인지, 나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니까. 수아도 마찬가지일 거다.

        

       어쩌면 누군가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그런 감정을 공감하고 느꼈는지도 모르겠지만.

        

       하늘이는 ‘사라’를 만나기 전부터 나를 좋아했다고 한다. 아주 짧은 기간에 반했다고 가정하고— 아니, 아예 첫눈에 반했다고 가정하면—

        

       수아도 그렇다는 말이 된다.

        

       ……그 말은, 내가 아니라 사라에게 반했다는 말이 되지 않을까?

        

       사라는 예쁘니까. 얼굴만 보고 호감을 느끼는 사람도 아주 많을 테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마음을 정리하려는데,

        

       “처음, 너와 대화하면서 느꼈어. 너에게 처음 말을 걸어준 나에게 아무런 편견도 없이 대해준 건 너야. 주변 사람들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았으면서도, 그 안에 내가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준 너를 동경했어.”

        

       “어, 아니, 수아야, 잠깐만.”

        

       그렇게 따지면, 그 이전에 있던 건 내가 아니라 사라가 된다.

        

       수아가 사과해야 할 대상이 사라였듯, 나의 태도와 사라의 태도가 상반된 반응인 것을 보고 수아가 착각했다는 말이 된다.

        

       하지만, 수아는 그런 나의 말이 나오기 전에,

        

       “알고 있어.”

        

       그렇게 얼른 중간에 잘라버렸다.

        

       “알고 있어. 그게 착각이었다는 거. 내가 너에게 처음 느낀 감정은 그저 나의 착각이고, 사실은 진짜 ‘사라’가 따로 있었다는 것도, 이제 와서는 알고 있어.”

        

       말하는 동안 서서히 진정했는지, 눈에서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던 눈물도 이제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 그 푸른 눈 너머에는, 어떤 의지가 자리 잡았다.

        

       아마 그 의지는, 나에게 자기 마음을 그대로 부딪치겠다는 의지일 것이다. 드디어 얻은 둘만의 자리였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후회하지 않아. 그 이후의 너를 봤으니까. 내가 좋아한 사람이 어떤 일을 해왔는지 봤으니까. 얼마나 착하고……”

        

       수아는 마른침을 삼켰다.

        

       “……또, 얼마나 멋진 사람인지 봤으니까.”

        

       “…….”

        

       이제는 멍하니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를 않는다. 턱 근육이 고장이라도 난 모양이다.

        

       한참을 멍하니 수아를 보고 있는데, 수아가 허리를 들었다. 그리고 천천히 돌아와서 내 앞에 섰다. 나의 시선도, 고개도, 당연히 수아의 얼굴을 따라갔다.

        

       이제 우리는 마주 보고 있었다.

        

       평소에는 수아가 나보다 아주 약간 작았지만, 지금은 내가 의자에 앉아있었기에, 나는 수아를 한참 올려다보고, 수아는 나를 한참 내려다보는 각도가 되었다.

        

       “그러니까, 좋아해.”

        

       수아는 빙긋 웃었다.

        

       조금 전까지의,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표정은 더 없었다.

        

       마치 나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그만큼 행복하다는 듯.

        

       수아는 활짝 웃고 있었다.

        

       “좋아해.”

        

       그리고, 수아의 얼굴이 내 쪽으로 다가왔다.

        

       이번에는, 볼이 아니라 입술이었다.

        

       *

        

       “…….”

        

       쪽, 하고, 아주아주 짧은—하늘이나 사라보다도 더 짧은—입맞춤하고, 수아는 얼른 몸을 돌려서 후다닥 나가버렸다.

        

       한참이나 의자에 그대로 앉아있던 나는, 다시 한번 손에 얼굴을 묻었다.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었다.

        

       아니, 공포심이나 그런 것 때문은 아니다. 그보다는, 부끄러움에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 내 주변에 있는 여자애들이 나를 이렇게 좋아해 주고 있는데, 나는 아무것도 몰랐으니까.

        

       아니, 그보다, 지금 상황이 말이 안 된다. 분명히 이 세계의 모티브가 된 게임에선 유하늘이 주인공이다. 온갖 미소녀와 미소년들을 선택지만으로 이리저리 꼬시면서 돌아다니는 것이 그 게임의 묘미가 아니던가. 당연히, 이 세계도 유하늘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돌아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만약 하렘을 차려도 유하늘이 차릴 거라고.

        

       하지만, 하늘이의 선택은 나였다.

        

       그래서 나는 수아가 들어오기 전 까지만 해도, 일종의 변형된 사라 루트를 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는데……

        

       정작 하렘 루트는 내가 타고 있었다는 건가?

        

       ……아니, 잠깐만.

        

       순간 내 머릿속에서 어떤 생각 하나가 번뜩였다.

        

       그러니까, 보통 이런 하렘물에서는, ‘하렘’이 갖추어지기 시작하는 순간을 주인공이 짐작하는 순간은 아주 뒤다. 사실 그 이전에 하렘은 완성되어있고, 한 번 고백을 받기 시작하면 정신없이 고백받기 시작한다. 결과적으로 주인공은 누구와도 사귀지 못하는 총체적인 난관에 부딪히게 된다.

        

       그러니까, 어쩌면.

        

       “……에이, 설마.”

        

       제일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언제나 같이 다니는 소희였다. 나에게 굉장한 호의를 보이며, 내가 원하는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서주는 아이.

        

       ……그러고 보니, 다른 사람 앞에서는 아주 대놓고 무서운 양아치였으면서도 내 앞에만 있으면 덩치 큰 강아지처럼 굴긴 했다.

        

       수아와 내가 목욕할 때도 엄청나게 질투했었고…….

        

       …….

        

       아.

        

       목욕.

        

       …….

        

       그러니까, 나는 요즘엔 ‘샤워실이 하나뿐’이라는 이유로 하늘이, 수아, 소희, 이렇게 번갈아 가면서 함께 몸을 씻고 있었다.

        

       그중 두 사람이 나를 좋아하고 있다고 하면……

        

       나는, 나를 좋아하는 여자애들이랑 목욕한 건가?

        

       “아, 아아아…….”

        

       으아아! 하고 소리를 지르지는 않았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저 문 너머에서는 아직 파티가 진행되고 있었으니까.

        

       “…….”

        

       혹시 몰라, 그 문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누가 또 들어오나? 또 선물 주겠다고 들어와서 고백이라도 할까?

        

       …….

        

       하지만 거의 오 분 넘게 들여다본 것 같은데도, 다른 사람이 들어올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후우.”

        

       나는 숨을 크게 내쉬고, 가슴에 손을 얹었다.

        

       마구 뛰던 심장도 서서히 진정되어간다.

        

       그래, 두 사람이 나에게 고백한 것은 일단 오늘 저녁에 해결하도록 하자.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어째서 나를 좋아하게 되었는지 이성적으로 분석해보기로 하고.

        

       ……아무리 그래도, 내 정신은 아직 20대 남성이었다.

        

       이렇게 예쁜 아이들이 나를 좋아해 주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선을 넘을 수는 없으니까.

        

       ……어떻게든, 이 부분만큼은 납득시켜야지.

        

       나는 심호흡을 하고, 파티장으로 나가려다가,

        

       내가 아직도 손가락에 하늘이의 우정 반지를 끼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걸 그냥 뺄 수는 없다. 그래도 하늘이의 마음이 담긴 선물이었으니까.

        

       그렇기에, 일단은 궁여지책으로 반지를 새끼손가락 쪽으로 옮겼다.

        

       네 번째 손가락만큼 딱 맞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빠질 일은 없을 것 같다. 나는 의식적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

        

       절대로 잃어버리는 일은 없도록 해야지.

        

       적어도, 나에게 준 그 소중한 마음을 무시해서는 안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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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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