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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98

    따뜻한 기운이 온몸을 감싸고 있었다.

    정말 편안하고 행복한 기운.

    황금 사신은 그런 따뜻한 기운 속에서 눈을 뜰 수 있었다.

    눈을 뜨니 무표정한 얼굴로 주변을 돌아보는 엄마가 보였다.

    그리고 그 너머로 불길한 빛을 뿌리는 노란 달이 떠올라 있었다.

    그 불길한 달을 보는 순간, 황금 사신은 자신이 어디에 있었는지 떠올릴 수 있었다.

    애착 인간은 괜찮을까? 

    황금 사신은 엄마의 손바닥 위에서 몸을 일으키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러자 바닥에 주저앉은 채, 약간 얼떨떨한 표정으로 주변을 보고 있는 애착 인간이 보였다.

    히히, 이상한 표정이네.

    애착 인간의 안전을 확인하자, 황금 사신은 자기 몸을 점검했다.

    분명 멀쩡한 곳 하나 없이 너덜너덜해져 있었는데, 전부 고쳐져 있었다.

    엄마 대단해!

    이제 공간을 싹둑싹둑 자를 수 있게 되었지만, 엄마만큼 대단해지려면 얼마나 수련해야 할까?

    아무리 생각해도 아직은 머나먼 일처럼 느껴졌다.

    황금 사신은 자신이 새롭게 얻어낸 ‘공간’을 보는 눈으로 엄마를 바라보자, 그 사실을 더욱더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자신과 비교도 안 되는 양의 장작.

    그리고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공간을 일그러트리는 존재감.

    엄마는 미니 사신들과 비교하는 것조차 힘든 막대한 힘을 품고 있었다.

    황금 사신은 그 모습을 보면서 주눅 들기는커녕, 양 주먹을 꼭 쥐면서 다짐했다.

    ‘언젠가 엄마보다 강해져서, 엄마를 지켜줘야지!’

    엄마는 강했지만, 황금 사신이 보기에는 조금 미덥지 않았다. 

    엄마는 몸도 제대로 못 가누고, 사소한 격투기 같은 내기를 해도 매번 지기만 했으니 말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몸 상태가 멀쩡해진 황금 사신은 엄마의 손바닥에서 뛰어내려서, 주변을 천천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황금 사신이 주변을 둘러보자, 엄마의 주변은 적진 한가운데라고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평온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동생들이 사방으로 뛰쳐나가서 난장판을 피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언제나 숨어다니는 푸른 동생들이 즐거운 얼굴로 허공에 문자열을 수놓고 있었다.

    <세상에서 제일 강한 엄마 골렘 펀치!>

    <펀치!>

    거대한 엄마 골렘이 거대 검은 사신과 함께 물리 면역을 가진 살인범들을 후려쳐서 날려버렸다.

    물리 면역이라서 타격을 주진 못했지만, 그들은 거대한 질량의 펀치를 견디지 못하고 구석진 골목으로 몰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한곳에 몰아진 살인범들의 머리 위로 황금 동생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그러자 살인범들은 모두 황금 동생 모양의 구멍이 뚫려 죽어버렸다.

    ‘제1 검의 복수!’

    시합을 통해 뽑힌 4명의 용사는 각자의 광선검을 부여잡고, 골목 구석구석을 뛰어다니며 살인범들을 토막 치고 있었다.

    그리고 붉은 동생은 다른 동생들과 달리 시무룩한 표정으로 바닥에 누워 있었다.

    아마 물리 면역을 가진 상대에게 무력해서 그런 것 같았다.

    붉은 동생은 겹치기도 없고, 거대한 질량도 없었다.

    황금 사신은 자신의 검술을 좀 가르쳐주면 괜찮아질 거로 생각하고 다가가던 도중, 엄마가 붉은 동생에게 다가가서 소근소근 뭔가를 이야기 해주는 것이 보였다.

    엄마가 뭔가 가르쳐줄 만한 게 있었던가?

    절대로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혹시라도 위로를 해주는 걸까? 

    도대체 어떤 이야기를 하는 건지 궁금해서 다가가 보니, 엄마가 소근소근 주변에 퍼지지 않을 정도로 작게 이상한 의지를 불어넣고 있었다.

    ‘물리 면역을 부술 수 없는 자들이여, 단결하라!’

    ‘이것은 최후의 투쟁이니, 모두 단결하라!’

    엄마는 그런 알 수 없는 말을 하면서 붉은 동생의 양손에 들린 낫과 망치를 서로 교차해서 들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황금 사신은 엄마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는 잘 몰랐지만, 분명 시답지 않은 장난이 분명해 보여서 고속으로 뛰어가서 엄마의 뱃살에 박치기를 날렸다.

    ***

    얼마 전까지 쓰러져 있던, 황금 사신은 금세 정신을 차리고 일어났다.

    ‘다행이야.’

    학생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다가, 깜짝 놀랐다.

    오브젝트를 걱정하다니!

    학생은 인간에게 우호적인 오브젝트는 위험하다는 당연한 상식을 떠올렸지만, 이내 피식 웃으며 넘겨버렸다.

    이미 몇 번을 죽었어야 했는데, 황금 사신의 도움으로 겨우 살아남은 상태에서 하기엔 좀 웃긴 생각 같았다.

    ‘황금 사신이는 그렇게나 무해하고 헌신적인데, 일반적인 오브젝트처럼 생각하지 않아도 괜찮겠지….’

    정신을 차린 황금 사신은 주변을 뚜방뚜방 돌아다니다가, 갑자기 회색 사신을 들이박아 버렸다.

    “!”

    그리고 회색 사신과 황금 사신은 서로 작은 주먹을 말아쥐고 투닥거리기 시작했다.

    도대체 왜 저러지? 

    학생은 이 골목에 주저앉아서 사신들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했지만, 이해하기 힘든 점이 많았다.

    이유도 없이 즐거운 표정으로 돌아다닌다던지, 서로 눈빛만으로 대화를 나누는 것 같기도 했다.

    가장 이해하기 힘든 것은 회색 사신이었는데, 아무 이유 없이 미니 사신의 발을 거는 등, 장난을 안 치면 죽는 것처럼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했다.

    황금 사신의 급작스러운 공격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기운이 없어 보이는 붉은 사신을 위로해 주는 것 같은 회색 사신을 갑자기 공격하다니!

    게다가 공간을 손쉽게 찢어버릴 정도로 강력한 회색 사신에게 황금 사신이 싸움을 걸다니, 너무 무모해 보였다.

    투닥투닥.

    하지만 의외로 주먹으로 이루어진 승부의 승자는 황금 사신이었다.

    회색 사신은 조금 슬픈 얼굴로 붉은 사신 옆에 쓰러져 있었다.

    황금 사신은 양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었다.

    왠지 ‘엄마 약해!’라고 외치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황금 사신은 학생 쪽을 돌아보더니, 해맑게 웃었다.

    그 웃음은 즐거운 감정이 정말로 티 없이 맑게 드러난 것 같아서, 학생도 절로 웃음이 났다.

    ***

    황금 사신과의 승부에서 패배한 나는 붉은 사신의 옆에 나란히 누웠다.

    이길 수가 없네….

    황금 사신 제1 검은 정말로 잘 싸웠다.

    나처럼 격투기 초보가 보기에도 보통의 황금 사신과는 차원이 달랐다.

    다른 황금 사신은 내 주먹을 요리조리 피해 가며 싸웠는데, 제1 검 황금 사신은 그 조그마한 손바닥으로 내 주먹을 흘려냈다.

    제1 검이 내 주먹을 툭 건드릴 때마다, 나는 무게중심을 잃고 골목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거인이 내리치는 주먹을 인간이 비껴내다니?

    물리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분명 오브젝트적인 무언가가 작용했겠지.

    나는 허탈한 마음을 담아 ‘만국의 회색 사신들이여, 단결하라.’라고 중얼거리고 있었더니, 붉은 사신이 나를 보면서 즐거운 것처럼 키득키득 웃었다.

    ‘엄마 약해!’

    붉은 사신은 물리 면역에 마땅한 공격 수단이 없어서 우울해 보였는데, 기운을 되찾아서 다행이었다.

    즐거운 것처럼 웃는 붉은 사신의 옆에서 일어나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지금 미니 사신들이 토막 낸 오브젝트만 해도 만 마리는 될 것 같았는데, 아직도 노란 달의 존재감은 약간 약해졌을 뿐 건재했다.

    이 정도로 잔뜩 썰어버렸으면, 미니 사신들이 다친 제1 검에 대한 복수는 충분히 했겠지.

    나는 이질적으로 보일 만큼 커다랗게 변한 노란 달을 올려다보며, 파괴 조건을 확인했다.

    <일주일 동안 광기의 밤에서 희생자가 발생하지 않게 한다.>

    음.

    광기의 밤은 저 노란 달이 뜬 밤을 뜻하는 것일 테고.

    즉, 노란 달이 일주일 동안 아무도 못 죽이게 만들면 되는 것 같네.

    생각보다 귀찮은 조건이었다.

    일주일이나 마포구에서 머물면서, 저런 물리 면역 오브젝트들을 때려잡으라니.

    나는 괜히 화가 나서 노란 달을 향해 ‘뀩’을 날렸다.

    검은 구체는 노란 달을 깔끔히 먹어 치웠지만, 결국 다시 하늘에 멀쩡해 보이는 노란 달이 떠올랐다.

    ‘뀩’으로는 안되네.

    역시 조건을 채울 수밖에 없겠어.

    ***

    이른 아침 햇살이 창문의 커튼 사이를 뚫고 어두운 방 안을 밝히고 있었다.

    그와 함께 들려오는 지저귀는 참새 소리와 맛있는 향기.

    잠에서 깨어난 학생은 일어나야 했지만, 너무 피곤해서 이불을 끌어안고 다시 잠들려고 했다.

    하지만 그러려고 이불을 끌어당기는 순간 뺨 위로 찰싹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때찌때찌.

    황금 사신이 잠에서 깨어난 학생의 뺨을 작은 손바닥으로 마구 때리고 있었다.

    “알았어. 일어날게.”

    학생이 눈을 비비며 일어나자, 황금 사신이 허리에 양손을 올리고 ‘어서 빨리 준비해!’라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침대 밖으로 나오자, 약간 으스스한 기온이 느껴졌다.

    학생이 터덜터덜 걸어서 방 밖으로 나서자, 황금 사신은 폴짝폴짝 뛰어서 학생의 어깨 위로 올라간 뒤, 잘했다고 칭찬하는 것처럼 뺨을 토닥였다.

    거실로 나오자, 학생의 부모님은 모두 일어나 계셨는데, 그들의 어깨 위에도 황금 사신이 하나씩 올려져 있었다.

    학생과 눈이 마주친 황금 사신들은 해맑게 웃으며 한 손을 높이 들고 인사하는 것처럼 흔들었다.

    노란 보름달이 떠오르고 여학생이 습격해 온 날부터 3일이 지났다.

    처음에는 ‘무더기로 죽었다, 살아나기를 반복하던 수많은 사람이 어쩌면 죽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결국 아무 일도 없었다.

    아마 보름달이 만들어 낸 허상 같은 것들이었겠지.

    그로부터 3일이 지나자, 마포구의 일상은 완전히 변해버렸다.

    회색 사신의 변덕인지, 아니면 무슨 이유 때문인지. 

    마포구 구석구석으로 황금 사신들이 퍼져나가서, 모든 인간을 1:1로 전담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거부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결국 귀여운 황금 사신이의 매력에 모두 흠뻑 빠져버렸다.

    그렇게 마포구는 황금 사신이 가득한 오브젝트 자생 지역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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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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