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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98

    <198 – 교수의 함정을 돌파하는 방법>

     

    지젤은 초조함을 느꼈다.

     

    ‘내 생각이 짧았구나.’

     

    오크노디를 위해 외부의 인맥까지 동원해서 재단의 어둠을 파헤치겠다.

    미래를 설계했지만 정작 눈앞의 현재에 예상치 못한 난관이 들이닥쳤다.

     

    “지젤, 뒤처지지 마. 여기는 무리해서라도 속도를 올리지 않으면 안 돼!”

    “알고, 있습니다, 이사벨!”

     

    지젤의 체력은 상급반에서도 최하위.

    딱 잘라 단언해서 꼴지에 해당한다.

    안 그래도 느린 그였지만 믿는 구석은 있었다.

    설령 이번 강의에서 꼴지를 하더라도 충분히 만회할 수 있는 학점을 다른 강의에서 따내는 것!

    하지만 변수가 발생했다.

    2학년들의 대거 참전.

    명찰을 빼앗기며 발생할 미지의 페널티.

    어쩌면 학점을 추가로 잃을지도 모른다.

    그로서는 뼈아픈 실책이다.

     

    <평정심의 브로치>

    <호흡보정의 내의>

     

    철인삼종경기의 첫 종목 달리기의 중반부까지는 가져가야 했을 밀반입 아티팩트들은 벌써부터 하나씩 빛을 깜빡이며 작동을 개시했다.

    혼란스러웠던 머리가 진정되고 숨통이 트일수록 그의 마음은 역설적으로 더욱 무거워졌다.

     

    “이사벨. 먼저 가십시오.”

    “손오천이야 혼자 신나서 뛰쳐나갔지만 나까지 그렇게 가버리면 지젤 넌 어쩌려고?”

    “이대로는 사이좋게 2학년들 좋은 짓만 하게 될 뿐입니다. 아니면 사이좋게 함께 페널티를 받기를 원하는 겁니까?”

    “크읏… 비겁하잖아. 동료인데도 도움을 줄 수 없게 하다니.”

    “제 몫까지 완주하십시오. 저로 인해 능력이 되는 사람이 탈락했다는 마음의 짐을 짊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 절 도와주는 겁니다.”

     

    이사벨의 내면에서 지젤의 곁을 지킴으로써 입게 될 손실과 의리가 팽팽하게 저울질을 했다.

    어린 나이부터 모험단의 일원이 되어 어른들을 따라다녔던 그녀에게 동료란 서로 의지할 수 있는 안식처이며 모든 것.

     

    “…미안.”

    “괜찮습니다.”

     

    이사벨이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바닥을 보며 다리에 힘을 실었다.

    속도를 높이며 가속하려는 순간, 그녀의 옆으로 흙먼지가 튀며 누군가가 가까워졌다.

    들리지 않았다.

    눈치 채지 못했다.

    이렇게나 가까운 곳까지 접근했는데.

    심지어 두 발로 달리기를 하고 있는데.

    마치 혼자만 다른 공간에 있는 것처럼 조금도 소리를 내지 않고 가까워진 기척!

     

    ‘2학년인가!?’

     

    유령이라도 본 것처럼 기겁하며 고개를 든 그녀가 발견한 것은 눈을 깜빡이며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는 오크노디였다.

     

    “오크노디! 왜 아직까지 이런 곳에 있는 거야? 선두그룹에서 경쟁을 해도 모자를 판에!”

    “제가 이대로 그냥 가버리면 도로시는 몰라도 이사벨이랑 지젤은 틀림없이 탈락하는걸요.”

     

    이사벨은 수치심을 느꼈다.

    이 기특한 아이는 1등 경쟁을 할 실력을 지니고도 동료들을 위해 상급반 최후미까지 내려왔는데 정작 자신은 지젤을 포기하려고 결단을 내렸다.

    하지만 현실이 그랬다.

    포기하지 않으면 같이 탈락할 뿐이다.

    지금도 느껴지고 있다.

    저 뒤에서 쫓아오는 2학년들의 기척이.

    다리에 힘을 풀고 조금만 페이스를 늦추어도 따라잡히는 것은 필연이다.

    1학년과는 급이 다른 각오로 무장한 저들은 결코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명찰을 빼앗고 그들을 집단의 뒤편까지 낙오시킬 것이다.

     

    “앗, 거기 조심하세요.”

    “나무괴물!?”

     

    바람에 흔들거리던 나뭇가지가 쑥 내려오며 진로를 방해한다.

    기겁하며 몸을 뒤틀어 피하고 보니 그제야 시야가 넓어지며 보이는 것이 있었다.

    꿈틀.

    근방 나무들의 나무기둥에 파인 옹이구멍이 사람의 눈처럼 움직이는 광경!

    연습 때와 달리, 중간고사 실전에서는 경기를 방해하는 요소까지 추가된 것이다.

     

    “저런 방해물이 있다면 2학년들도…”

    “2학년이나 3학년은 이미 알고 있어요. 장애물이 있음을 모르는 건 1학년뿐이에요!”

    “…그 정보를 어디서 얻었는지는 묻지 않을게. 지젤이 탈락하지 않을 방법이 있을까?”

    “물론 있죠! 저도 같이 이용하러 온 거고요.”

     

    지젤은 오크노디에 대한 소문 중 하나를 떠올렸다.

    하급반 기사학부 지망생 모브.

    일명 흑기사 모브라 불리는 결코 갑옷을 벗지 않는 학생의 이야기를.

    노력은 가상하지만 짐이 된 건 사실이다.

    그는 모브의 선례를 따르고 싶지 않았다.

     

    “꼬마숙녀. 저를 위로하기 위한 변명이라면 괜한 수고입니다.”

     

    자존심을 부리는 지젤에게 오크노디는 간단히 그의 고집을 굽혔다.

     

    “어깨에 짊어지고 갈까요?”

    “…그냥 제 발로 따라가겠습니다.”

     

     

    * *

     

     

    헤스티아는 성가심을 느꼈다.

    앞을 막는 나뭇가지는 보이는 족족 꺾고 부수며 돌파했으니 나무괴물이 성가신 건 아니었다.

    선두에 나선 그녀를 괴롭히는 것은 뜻밖에도 후방에 있어야 할 2학년 선배들이었다.

     

    “분명 우린 선두에서 달리고 있었는데. 저 선배들은 무슨 수로 자꾸 우리 앞에서 나타나지?”

     

    전장에서 단련된 그녀의 넘치는 체력이라면 절대로 후방의 2학년들에게 따라잡히는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20분쯤 달리기를 하다 보니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선두를 달리던 학생들은 어느덧 눈앞에서 나타나거나 나무 위에서 뛰어내려 덮치고, 바위 뒤에서 불쑥 튀어나와 기습하는 선배들에게 시달렸다.

     

    “갸하하! 이유 따윈 아무래도 상관없어. 쏴도 되는 표적이 잔뜩 늘어났을 뿐이라고!”

     

    탕탕!

    신이 나서 리볼버의 방아쇠를 당겨대는 지고쿠.

    드래곤 교장의 강의에서 조를 짠 이래로 함께 다니게 된 지고쿠는 호쾌하게도 길을 열었다.

    헤스티아 또한 선배들이 덤벼드는 족족 주먹으로 후려치거나 망치로 후려쳐서 저 멀리 시원스레 날려버리기는 마찬가지.

    하지만 수가 많다.

    더욱이 2학년들은 한 번 나가떨어지면 꽥 하고 기절하는 1학년들과 달리 끈질긴 구석도 있었다.

     

    “배리어 활성화!”

    “근육기억술 낙법 발동!”

     

    온갖 방어수단을 활용해서 즉시 리타이어를 방지하며 경주를 속행하는 2학년들.

    그 집요함에 처음에는 손발을 써가며 무투가 특유의 민첩성을 선보이던 롯토는 체력이 잔뜩 털려 울상이 된지 오래였다.

     

    “히이익! 제발 저 버리고 가지 말아주세요!”

    “하아? 알게 뭐야. 약한 놈의 사정 따위.”

    “지고쿠. 너무 그러지마. 지금은 같은 1학년끼리 경쟁할 때가 아니잖아.”

    “쯧. 시시하기는.”

    “오크노디를 생각해서라도 참아.”

    “걔가 뭔 상관인데.”

     

    시큰둥하게 쏘아붙이듯 대꾸하는 지고쿠.

    이내 그녀가 눈치를 보며 슬그머니 물었다.

     

    “롯토를 버리고 가면 오크노디가 싫어할까?”

    “싫어하진 않겠지. 그 아이는 약한 사람에게는 대체로 자비가 없는 편이니까.”

    “뭐야. 그럼 상관없잖아.”

    “그래도 좋아하지도 않을 거야. 네 모습을 보고 배우기도 할 거고. 오크노디를 모두가 멋대로 떠들어대는 나쁜아이처럼 만들고 싶어?”

    “그럴 리가 없잖아. 쥐새끼처럼 뒤에서 떠들어대는 놈들 좋을 짓은 절대 못 하지.”

     

    내키지는 않지만 롯토의 페이스에 맞춰 끝날 줄 모르는 숲을 달리던 세 사람.

    귀찮은 짐만 된다고 생각했던 롯토가 지고쿠와 헤스티아에게 솔깃한 가설을 내놓았다.

     

    “이거, 아무래도 같은 장소를 맴도는 것 같아요.”

    “뭐? 그럴 리가 없잖아. 코스는 이미 몇 번이고 몸으로 익혔다고.”

    “같은 코스를 계속 익혔던 것이 함정이라면 더 설득력 있지 않아요?”

     

    보통의 경기라면 어림도 없는 소리다.

    기프트 아카데미에서라면?

    설득력이 있다!

     

    “저기다! 1학년이 셋이나 있다!”

    “덮쳐!!”

    “일제공격이다!!”

     

    길을 벗어나서 달려보자 간간히 나타나는 나무괴물과 2학년, 세 사람만의 질주가 이어지던 숲에 변화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기다렸다는 듯이 근처에서 우르르 튀어나오는 수어 명의 2학년들.

     

    “이겼다, 짜식들아!”

     

    쓰러진 2학년의 엉덩이를 걷어차며 갸하하 웃음을 터뜨리는 지고쿠.

    다시 숲속을 나아가는 그녀들의 앞에 이번에는 십수어 명의 2학년들이 나타났다.

     

    “슬슬 총알이 딸리는데.”

     

    웃음이 그치고 떨떠름한 기색을 보이기 시작하는 지고쿠.

    다시 숲속을 나아가는 그녀들의 앞에 이번에는 이삼십 명의 대규모 2학년 무리들이 나타났다.

     

    “이거 좆된 것 같은데?”

     

    방아쇠만 당기면 행복한 지고쿠도 차마 방아쇠를 당기지 못할 정도로 저 앞에 진을 친 2학년들의 숫자는 심상치 않았다.

    심지어 저것이 끝이라고 장담조차도 할 수 없다.

     

    “…잠깐 나무타기로 정찰해줄 수 있겠어?”

     

    헤스티아의 요청에 롯토가 낑낑거리며 팔다리를 놀려 나무를 타고 올라갔다.

    튼실한 허벅지를 감싼 스타킹이 나무껍질에 걸려 찢어지고 구멍이 뚫렸지만 상위권 달리기페이스에 맞추랴, 연이은 교전을 벌이랴 체력이 털릴대로 털린 롯토는 스타킹 따윈 아무래도 좋았다.

    높은 곳에 올라가서 주변을 돌아본 뒤의 소감은 더더욱 그랬다.

     

    “세상에.”

     

    둥글게 원형으로 자리한 숲의 길.

    중앙에 듬성듬성 뚫린 공터마다 1학년들을 찾아 대기한 2학년들이 잔뜩 보였다.

    1학년들이 원형트랙의 길에 낚여 헤매는 사이 2학년들은 재빨리 진출로를 차지한 것이다.

    숲을 나가는 길은 황당하게도 숲 정중앙의 거대한 나무에서부터 지상 저편의 강으로 이어지는 공중계단에 있으니, 저기까지는 어떻게 뚫고 가나 절로 가슴이 막막해졌다.

     

    “어때?”

    “이런 구조에요.”

     

    나무를 내려온 롯토는 헤스티아와 지고쿠가 볼 수 있도록 자신이 본 숲의 구조와 2학년들의 매복위치를 나뭇가지로 그렸다.

    12시간이나 되는 장기전 경기는 과연 시간이 길게 잡힌 이유가 있었다.

    헤스티아는 문득 떠올렸다.

    힘으로는 자신보다 약하고, 궁술로는 스콜라보다 못하고, 많은 부분에서 늘 1위라고 하기에는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2위 포지션의 오크노디.

    그 아이가 학년공동수석으로 올라갔던 비결은 뛰어난 전투력이 아닌 뛰어난 지혜였음을.

     

    -너희들 중 누군가는 합격한 이들보다 힘이 세고, 뛰어난 기술을 지니고, 전투력이 출중할지도 모른다. 그런 것들은 모두 본 시험관의 관심 밖이다.

    -강한 자보다 지혜로운 자가 앞서나가고, 지혜가 부족하다면 누구보다 뛰어난 전투력이 있어야 앞서나가는 법. 100점의 점수가 이를 증명하는 징표다.

     

    입학시험 2차관문 시험관 미네르바도 말했었다.

    지혜는 힘보다 중요하다고.

    자신들은 체력만 믿고 무작정 달렸지만 지혜가 뒷받침되지 않은 체력은 오히려 그들을 누구보다 빠르게, 누구보다 멀리 숲을 돌게 만들었다.

    덕분에 2학년들의 움직임을 읽지 못했다.

    상황을 파악했을 때는 선두라고 생각했던 그들이 뒤처지는 신세가 된 것이다.

     

    “오크노디도 숲 어딘가에 갇혀있는 거 아니야?”

    “그럴 것 같지는 않은데.”

     

    입학시험에서도 A그룹 변방출신 참가자 사이에서 가장 지혜로웠던 사람은 오크노디였다.

    헤스티아의 생각은 곧 숲 저편에서 일어나는 황당한 광경으로 증명되었다.

     

    “어어? 자, 잠깐만. 숲이 움직이고 있어요.”

    “숲이 움직이다니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 우리가 지금 장난 칠 기분으로 보여?”

    “진짜라니까요!”

     

    할 일도 없고 나무에 올라 정찰이나 다시 하던 롯토의 말에 헤스티아는 뛰어난 도약실력으로, 지고쿠는 배의 돛대mast를 타던 선원시절의 감각으로 롯토보다 훨씬 빠르게 나무꼭대기에 올라왔다.

    그 꼴을 본 롯토는 엉금엉금 기다시피 나무를 타던 고생은 대체 뭐였냐고 억울한 마음에 눈앞이 캄캄해졌지만 두 사람의 관심사는 그녀를 떠났다.

     

    “나무괴물이잖아. 저게 왜 움직여?”

    “저길 봐. 앞에서 누가 나무괴물들을 인솔하면서 2학년들을 쳐부수고 길을 열고 있어.”

    “응? 저건…”

     

    전장의 흐름에 익숙한 헤스티아는 가장 중요한 선두를 찾아내었고, 해적 노릇을 하며 시력강화마법을 터득한 지고쿠는 그 정체를 식별해내었다.

     

    “오크노디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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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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