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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99

       

       ‘놈의 능력…… 실시간으로 떠오르는 생각을 읽는 것 뿐인가?’

       

       순간순간 떠오르는 생각이랄까, 의념을 읽는 능력인 것 같았다. 그 외로 당장 떠올리고 있지 않은 기억을 뒤지는 능력은 없는 듯 보였다. 

       

       ‘신체 접촉의 필요는 없는 것 같고, 거리는…… 대상이 가까이 있어야만 발동되는 건가? 일정 거리 이상 떨어지면 무효화 되나?’

       

       “흐흐. 내 능력을 탐색하고 있는 건가?”

       

       지금도 내 생각을 읽고 있는지 염안호가 웃으며 말했다.

       

       “그러든지 말든지 상관은 없어. 그나저나, 아까 네 생각을 읽었는데, 너 김구의 특명이니 뭐니 다 거짓말인가 보더라?”

       “…….”

       “그래도 상관은 없지! 김구의 특명은 거짓말인 것 같지만 그래도 네가 조선을 위해서 이런저런 일을 하는건 사실인 것 같고, 경찰은 내 증언을 믿을 테니까…… 자아, 또 무얼 알아낼까? 생각해 봐, 백 동지. 조선의 독립을 위해 또 무엇을 하였— 어이쿠야!”

       

       나는 머릿속에서 잡생각을 지우려 노력하며 놈에게 검격을 연거푸 날렸다. 

       

       이 자리에서 도망치는 것은 소용없었다. 놈의 증언을 들은 경찰이 나를 추적하기 시작하면 나로서는 피할 수 없겠지. 

       

       내가 살 길이란 이 녀석을 죽여서 입을 막는 것 뿐. 하지만 놈은 내 생각을 읽으며 얄밉게도 전부 한걸음 먼저 피해내고 있었다.

       

       “엇차차! 이거, 피를 그렇게 흘리면서 지치지도 않는군!”

       

       놈은 이번에도 내 검격을 우습게 피해내며 말했다.

       

       “가만히 있을 것이지, 자꾸 그렇게 발버둥치면 나도 어쩔 수 없단 말이야!”

       

       놈은 권총을 들어 다시 한 번 나를 쏘았다. 

       

       —탕! 타앙-!

       

       이번에도 피할 수 없었다. 내가 움직이려는 경로를 미리 예측하고 총을 쐈으니 애초에 피하는 것은 불가능했던 것이다. 

       

       다만 녀석의 사격 실력은 형편없는지, 혹은 일부러 제압만 하려고 한 것인지 총탄은 내 오른쪽 어깨와 다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커헉!”

       

       오른팔에 힘이 풀리며 결국 손아귀에서 검을 놓치고 말았다. 칼을 놓치고 무릎을 꿇은 나에게 다가온 염안호는 내 머리에 손을 얹었다.

       

       “하핫—! 드디어 무릎을 꿇었구만! 그럼, 그 머릿속에 또 뭐가 들었는지 볼까.”

       “그, 그만 둬…… 큭, 으윽!”

       

       염안호가 내 머리에 손을 얹자, 뭔가가 머릿속을 헤집는 것이 느껴졌다. 그 감각이 고통스럽기 그지없었고, 마치 전기에 감전되기라도 한 듯이 손가락 끝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홍옥례가 이거에 당했구나! 

       

       “떠올려 봐! 떠올리란 말이다!” 

       

       신체접촉을 하면 이렇게 뇌를 장악해 움직임을 제압하고, 더 명확하게 생각을 읽는 것이 가능한 것인가. 나는 손가락 끝도 움직일 수 없는 상황에서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이런, 무의미한 저항이야! 백 동지가 그렇게 저항을 해 봤자 알아내는건 식은 죽 먹기지. 자아, 네가 절대로 들켜서는 안 될 것이 뭐지? 응? 그걸 생각하면 안 되겠지?” 

       

       그랬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라’ 라고 하면 머릿속에 코끼리가 떠오르는 것을 막을 수 없는 것처럼.

       

       “다 털어놓아! 흐흐, 털어놓으면 편해진답니다, 형제여!형제의 죄를 고하십시오!” 

       “으으윽……!”

       “이야아, 참으로 대단한 일들을 했군! 어디보자. 대동아공영회……?가 뭔지는 몰라도 애국으로 똘똘 뭉친 집단인 것 같은데, 네가 사사건건 방해하고, 육군 소좌도 죽이고…… 얼씨구, 이건 또 뭐야? 총독을 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용해먹을 생각으로 가득했군! 경찰서장의 부탁을 들어주는 척하며, 실은 미국으로 갈 생각만 가득했어! 적성국가인 미국으로 도주하는게 목적이라니! 비국민이 따로 없잖아, 이거!”

       

       염안호는 여전히 내 머리에 손을 얹은 채 웃으며 말했다.

       

       “이것 참 재밌어. 나는 겉으로는 불령선인들과 노닥거리고 속으로는 일본을 위하고 있지만, 너는 반대로 겉으로만 일본을 위하고 속으로는 비국민, 불령선인 그 자체로군!”

       “크윽……”

       “이걸 폭로하면 어떻게 될까?” 

       

       염안호는 눈을 감고 상상하듯이 말했다.

       

       “아마 특고의 높은 자리에는 나 같은 능력을 가진 사람도 있겠지. 그런 사람이 백 동지를 취조하면, 다 까발려지는 거야. 그러면 백 동지는 어떻게 될까? 응? 지금까지 일본을 향해 ‘애국’을 하는 척하며 쌓아온 것이 전부 물거품이 되는 것은 당연하고, 그야말로 대역죄인이 되는 거지!”

       

       그랬다. 겉으로는 친일적인 행동을 하며, 뒤에서는 일본 놈들이 하는 짓거리들을 이래저래 방해해 온 나였다.

       

       “백철연 네 놈은, 조선 총독과 종로경찰서장까지 기만한 대역죄인이 되는 거란 말이야!”

       

       이런저런 거짓말로 지금의 ‘시라바야시’라는 신분을 아슬아슬하게 유지하던 나에게 있어서, 내 생각을 읽는 이런 타입의 적은 내 사회적 생명을 죽이기에 부족함이 없는 것이다.

       

       “하하! 몇 분 뒤면 경찰이 들이닥칠 텐데. 나야 강 형사와의 거래가 있었으니 금방 풀려나겠지만, 백 동지는 과연 어떨까? 정말 큰일이겠는걸!” 

       

       염안호는 주머니에서 회중시계를 꺼내 시간을 확인해보고는 말했다. 아마 자정이 가까운 시간인 듯 했다.

       

       “그러게 편을 잘 서지 그랬어? 남부러울 것 없는 녀석이 왜, 옛저녁에 망한 조선의 편에 서고, 적성국가인 미국으로 도망칠 생각이나 하냔 말이야.” 

       “…….”

       “내가 지금은 예수쟁이인 척을 하고 있지만 말이야, 푸흣! 우습지도 않지! 세상에 신 따위가 있겠냐고! 신? 일본이야말로 신이다! 오직 일본이야말로, 우리같은 조선인이 믿고 따라야 할 가미사마(神様)요 주님이란 말이다!”

       

       염안호는 마치 신의 계시라도 받은 듯이, 저 스스로 감격에 차서 부르르 떨며 외쳤다.

       

       “암흑천지였던 조선에, 더 나아가 아시아에 빛을 가져다 준 일본! 그런 일본이야말로 영원불멸할 신의 나라다! 너 백철연은, 대대로 이어질 대일본제국의 역사에 영원히 반역자로 기억될 것이야!”

       

       곧, 자정이 되면 경찰들이 들이닥쳐 나를 체포할 것이다. 정말 여기서 끝인 걸까? 이렇게 허무하게?

       

       나는 불령선인으로 잡혀들어가는 걸까? 어쩌면 형무소에서 처형될지도 모른다. 나도, 그리고 나와 함께하기로 약속한 친구들도……

       

       ‘아니야.’ 

       

       나는 작게 고개를 저었다. 여기서 끝날 수는 없지. 

       

       나는 조용히 내뱉듯 중얼거렸다.

       

       “글쎄. 역사에 반역자로 기억되는 건 너일걸.”

       “하하…… 뭐?”

       

       내 뜻밖의 중얼거림에 놈은 정색하며 되물었고, 나는 씩 웃으며 말했다.

       

       “너 말야, 내 생각을 읽는다고 했지.” 

       

       생각을 읽는다—그것은 물론, 감추고 있는 정보가 많은 나에게는 치명적인 능력이었지만, 

       

       ‘역이용해주마.’ 

       

       문득, 놈의 능력을 역이용할 방법이 떠올랐다. 지금의 내 생각을 읽은 염안호가 나에게 물어왔다.

       

       “뭐? 역이용하겠다니, 어떻게—”

       “역사 수업이야.”

       

       그렇게 말하고는, 나는 머릿속에 떠올렸다.

       

       진주만에 폭격을 하는 일본 전투기들.

       드넓은 태평양에서 침몰하는 일본 군함.

       미국 군함에 자살공격을 하는 일본 전투기. 

       반자이 돌격을 했다가 미군의 기관총에 갈려나가는 일본군 병사들.

       미 공군 참모총장의 굳은 얼굴.

       하늘을 나는 미군 폭격기.

       불타는 도쿄 시내.

       울부짖는 일본인들.

       히로시마의 상공에 투하되는 원자폭탄.

       하늘로 치솟는 버섯구름.

       익어버린 시체들. 불타버린 잔해들.

       잿더미가 된 된 일본의 도시들.

       바다를 뒤덮은 미국 함대.

       이름모를 섬의 산봉우리에 꽂히는 성조기.

       미국 전함 위에서 굴욕적인 항복 서명을 하는 일본 외무대신.

       해방된 조선에서 거리로 몰려나와 만세를 부르는 조선인들……

       

       나는, 21세기 학생 시절 배운 것들과, 이따금씩 봤던 다큐멘터리, 영화, 만화, 동영상 등의 이미지를 머릿속에 잔뜩 떠올렸다.

       

       “봤지? 몇 년 뒤에 조선은 해방되고, 너같은 친일파들은 죄다 나무위키에 박제…… 아니,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되거든.”  

       “뭣……! 너, 너는 뭐냐! 뭐, 뭐 하는 놈이야—!!”

       

       염안호는 여전히 내 머리 위에 손을 얹은 채였지만, 크게 기겁하고 적잖이 당황했는지 부들부들 떠는 목소리로 외쳤다.

       

       “어째서, 어째서 그런 기억이……? 망상! 망상이다! 너는 망상병 정신병자야!”

       “아니.” 

       

       나는 말했다. 

       

       “이게 진짜 기억이란 걸 알잖아. 그런 능력을 가진 녀석이 설마 망상과 기억을 구분할 수도 없나?” 

       “미, 미래가…… 어, 어째서 그런 미래가! 영원불멸해야 할 일본이 패망한다니! 히, 히익! 그런 무서운 폭탄으로! 그런, 그런—!”

       

       염안호는 받아들일 수 없는 미래의 모습에 울부짖었다.

       

       ‘맵지?’

       

       생각을 읽는 놈의 능력을 역이용하는 방법—그것은, 놈이 감당할 수 없는 기억을 놈에게 보여주는 것이었다. 

       

       일본이 패망하고 해방된 조선이 번영한다는 것은, 일제의 번영을 믿어 의심치 않으며 골수 친일파인 염안호로서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미래.

       

       일본을 신으로까지 여기는 놈이었으니, 지금까지 믿어왔던 모든 것이 무너지는 듯한 좌절감을 느끼고 있겠지.

       

       염안호의 능력은 생각을 읽는 것이었기에 나에게 몹시 치명적인 능력이었지만, 반대로, 그런 능력을 가진 녀석이기에 내가 이렇게나 효과적인 카운터 펀치를 먹이는 것이 가능했던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기왕 여기까지 보여준 거, 좀더 보여줄 생각이었다.

       

       ‘자…… 국뽕티비 맛도 좀 봐라.’

       

       21세기의 대한민국.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올라선 대한민국.

       SAMS○NG GAL○XY.

       소○시대. 카○. 트와○스. 방○소년단. 

       일본열도를 점령한 케이팝.

       기○충. 

       오○어게임.

       치즈닭갈비.

       김치나베.

       한류에 빠진 일본인들……

       

       “말도 안돼! 조선이! 우매한 조선 놈들에게 그런 미래가 가능할 리가 없어! 위대한 일본이 조선 놈들 따위에게……”

       “대한민국.”

       

       나는 놈의 말을 정정했다.

       

       “대한민국. 그게 ‘우리나라’다.”

       “뭣—”

       “우리나라가 일본보다 작을 수는 있어도, 우리나라 역시 위대한 나라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휴대전화와 자동차를 만들고, 세계 피겨 스케이팅 챔피언 김연아와, 박지성의 오른발과 왼발이 있는 나라라고.”

       “그, 그게 누구— 아악! 생각하지 마! 생각하지 마!”

       “다시는 한국을 무시하지 마라.”

       

       나는 머릿속에 떠올렸다. 대한민국의 국가(國歌), 애국가의 노랫말을.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만-세—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보전하-세-

       

       나는 그런 노랫말과 함께 또 무언가를 떠올렸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나부끼는 태극기를. 

       

       —펄럭-!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결국, 염안호는 내 머리에서 손을 떼고, 

       

       “그, 그만! 그만 생각해! 그런 것은 보고 싶지 않아! 듣고 싶지도 않아!”

       

       하고 울부짖었다. 그리고는 내 머릿속의 이미지가 마치 눈 앞에 보이고 귀에 들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두 눈을 감고 두 귀를 틀어막았다. 

       

       그는 결국, 내 생각을 읽기를 그만두었다. 

       

       그것은 달리 말하면 더 이상 나의 검격을 피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나는 발치에 떨어진 검을 주워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네 놈은 여기까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역사를 배우는 이유 콘)

    오늘은 여기까지!! TMI는 따로 없습니당!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드리며, 저는 다음주 월요일에 돌아오겠습니당!! 즐거운 주말 되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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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yeongseong’s Hunter Academy

Gyeongseong’s Hunter Academy

경성의 헌터 아카데미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Native Language: Korean

I woke up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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