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99

       ​

        “아! 자네로군! 연회는 잘 즐기고 있나?”

        ​

        “예, 성주님. 덕분에 여독을 풀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나는 의례적인 감사 인사를 내뱉곤 연회장을 둘러보며 묘한 표정을 짓는 성주가 말을 꺼내기를 기다렸다. 다행스럽게도 그는 나를 오랫동안 방치하지는 않았다.

        ​

        “이렇게 보니 마치 어디 팔순 잔치라도 연 것 같군…”

        ​

        “저희 별동대원들이 나이가 많긴 합니다.”

        ​

        나랑 목경이 빼면 평균 연령이 최소 60대 근처까지 올라가니 뭐.

        ​

        사실 따지고 보면 금분세수해도 이상하지 않은 나이대인데 이렇게 전장에 나와준 게 고마울 따름이었다. 솔직히 나이를 이유로 참가 안 해도 이해할만한 나이잖아.

        ​

        21세기면 모를까, 중세 중국이면 평균 연령이 그리 높은 시대는 아닐 테니까. 

        ​

        워낙 자연사하기 힘든 요소가 많은 시대기도 하고, 틈만 나면 쌈박질을 하는 게 무림인이니.

        ​

        당장 나도 몇번의 사선을 넘은 건지 세기도 힘들 정도로 굴러댔으니, 이제 와서 생각하면 사지 멀쩡하게 살아있는 게 기적에 가까웠다.

        ​

        “노인들로 만들어진 부대라, 내가 무림인이 아니었다면 농담인 줄 알았을 걸세.”

        ​

        “무림인들도 놀라곤 합니다. 노익장이라곤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

        “허허. 그렇지.”

        ​

        우리는 잡담을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연회장에서 일 이야기를 꺼내긴 좀 그렇고, 그렇다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을 수는 없었으니까.

        ​

        대부분의 질문은 별동대에 관한 이야기였지만, 그 사이에 나에 대한 호기심을 푸는 질문도 많았다.

        ​

        색목인이 무림맹에서 중원을 지키는 행렬에 동참하다니,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좋은 소재였으니까.

        ​

        나는 천자께 했던 이야기를 떠올리며 적당한 답변을 던졌다.

        ​

        가능하면 발언에 통일성을 유지하는 게 내 신상에 좋아질 테니.

        ​

        “자네 같은 색목인은 또 없을 걸세.”

        ​

        “시간이 지나면 또 나오지 않겠습니까?”

        ​

        “지금까지 나오지 않았단 게 무슨 뜻이겠나? 아주 드물 거란 뜻이지.”

        ​

        그렇긴 하네.

        ​

        나는 성주의 말에 납득하며 곁눈질로 목경이를 살폈다.

        ​

        목경이는 연회를 즐기기는커녕 긴장한 얼굴로 술잔을 만지작거리는 중이었다.

       

       술 좋아하는 애가 술도 제대로 못 마시는 걸 보니 사람이 많아서 긴장한 모양이다.

        ​

        뭐라고 해야 할까.

        ​

        물가에 애 내놓은 것 같은 기분이네. 

        ​

        “허허, 내가 눈치 없이 자네를 너무 붙잡았군. 자네도 슬슬 연회를 즐기러 가게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

        “배려는 무슨, 이 늙은이가 눈치 없이 잡아둔 거지. 가보게나.”

        ​

        나는 성주에게서 벗어나 어쩔 줄 모르는 얼굴로 술잔만 깨작거리는 목경이 옆에 앉았다.

        ​

        “목경아, 연회니까 너무 긴장하지 말고 즐겨.”

        ​

        “어, 어떻게 즐겨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저, 저는 이런 곳이 처음이라…”

        ​

        “취하지 않을 정도로만 마시고, 적당히 음식 맛도 좀 보고…대화를 나누면 좋지.”

        ​

        “대, 대화라니…”

        ​

        얘가 음침하게 왜 이러지. 나는 대화라는 말에 얼굴이 새하얘진 초절정고수를 보며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원래부터 소심한 면이 있긴 했지만 좀 더 심해진 것 같은데.

        ​

        사회생활이라도 빡세게 시키는 게 맞았나.

        ​

        “언제까지고 피할 순 없잖아. 최소한 초절정고수 되는 것보다 사람이랑 대화하는 게 훨씬 쉽잖아. 안 그래?”

        ​

        “어…”

        ​

        ‘친구 만드는 것보다 초절정고수되는 게 더 쉬운데요?’ 같은 얼굴로 올려다보지 마라. 

        ​

        한 대 쥐어박고 싶어지잖아. 

        ​

        “어쩃든, 즐겨라.”

        ​

        “…같이 술 마시시겠습니까?”

        ​

        결국 결론은 그건가.

        ​

        뭐, 그러라는 연회니까.

        ​

        나는 목경이와 마주 본 상태로 술잔을 들었다.

        ​

        ———————-

        ​

        연회가 끝난 다음 날, 나는 별동대원들을 불러 모았다.

        ​

        배분으로나 실력으로나 내가 막 부를 위치는 아니지만, 그래도 일단 내가 대장이라는 직함을 달고 있었기에 고수들은 내 말을 들어주었다.

        ​

        “에고고, 오랜만에 즐겼더니 머리가 아프구나.”

        ​

        “팽 장로, 벌써 노망났소?”

       

        “에라이! 장무곡 네 놈의 걸걸한 입은 여전하구나. 나 때는 말이다-”

        ​

        “나 때는 무슨, 우리 배분도 같지 않소?”

        ​

        “내가 너보다 다섯 살은 많아 이녀석아!”

        ​

        “무림에서 다섯 살이면 별 차이도 아니지.”

        ​

        그런…가?

        ​

        나는 말다툼을 벌이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며 한숨을 쉬고는, 둘에게 다가갔다.

        ​

        어쩃든 별동대장으로서 둘의 사이가 험악해지지 않도록 조율해야 했으니까.

        ​

        “팽 장로님. 장 대협. 일단 진정하시지요.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정찰을 나서야 하니 말입니다.”

        ​

        “흠흠, 알았네.”

        ​

        “이 녀석이 말하니까 여기서 멈추는 거다, 이 노인네야.”

        ​

        “뭐?”

       

        “장 대협. 이제 등을 맡겨야 할 사람끼리 그러면 되겠습니까.”

        ​

        내가 다시 한번 말을 꺼내고 나서야 칠성검왕은 시비 걸기를 멈추고 나를 쳐다보았다. 다른 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

        나는 9명의 초절정고수의 시선을 받은 채로 입을 열었다.

        ​

        “저희는 이제부터 꽤 오랜 시간을 서장의 산맥에서 보내게 될 겁니다.”

        ​

        “말년에 고생 좀 하겠군.”

        ​

        천매신검 백자기가 꺼낸 말에 다른 노고수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

        초절정고수이니 만큼 어지간해서 힘든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그의 나이에 사실상 최전선에 서는 건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으니까.

        ​

        단지 각자 싸워야만 할 이유가 있었기에, 맹주의 제안을 수락했을 뿐.

        ​

        “가장 중요한건 적들이 세운 야영지를 찾는 겁니다.”

        ​

        “야영지를 찾는다라…찾은 다음엔 어쩔 생각인가?”

        ​

        “저들도 정찰대를 보낼 겁니다. 그놈들을…”

        ​

        나는 손가락으로 내 목에 수평으로 선을 그었다.

        ​

        내 손짓에 모두가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

        “중요한 건 저놈들이 야영지 바깥에 함부로 빠져나가지 못하게 만드는 겁니다.”

        ​

        “그렇게 하는 의미가 있나? 우리 정도라면 야영지를 몰래 기습해서 막대한 피해를 주는 것도 가능하거늘.”

        ​

       “물론 그것도 유의미한 전략입니다. 하지만…상대는 그리 만만하지 않습니다. 최소한 저희가 지금 서역의 맘루크들을 만나서는 안 됩니다.”

        ​

        “맘루크?”

        ​

        “발음하기 어려운 이름이로구나.”

        ​

        “그놈들이 뭐 어쨌다고?”

       

       “제국이라 불러도 이상하지 않은 국가에서 작정하고 재능있는 놈들을 골라 키운 괴물들입니다. 그놈들의 수장인 파르스는…천마와 비교해도 그렇게까지 큰 차이가 없을 겁니다.”

        ​

        실제로 얼마나 강할지는 모른다. 하지만 최소한 내가 처음 봤던 시점에서 단장님과 동수를 이루다시피 했으니, 지금쯤이면 화경 쯤 되겠지.

        ​

        이것도 말이 안 되지만, 그게 가능한 괴물이 아닌가. 

        ​

        “자칫 잘못하면 그놈에게 심대한 피해를 입고 야영지 위치를 알려주러 가기도 전에 전멸당할 수도 있습니다. ”

        ​

        “뭐 그런 놈이 서장에서 튀어나오는 건지 모르겠구나.”

        ​

        “원래 무공이란 게 실전을 거치면서 성장하는 법이니 말입니다. 지옥 같은 전쟁터를 찾아다니면서 싸움을 거는 괴물이 성장하질 않을 수가 없죠.”

        ​

        정파의 무공처럼 심대한 깨달음을 얻어야만 하는 무공이라면 모를까, 서양의 아츠는 죄다 실전 지향에 가까운 무예라 실전을 겪으며 성장하는 경향이 강했으니.

        ​

        꼭 그런 아츠가 없는 건 아니지만 주류 아츠들은 대체로 그랬다.

        ​

        “생각보다 재미없는 임무가 되겠구나.”

        ​

        “그래도 여러분들의 활약으로 하여금 수많은 희생을 막을 수 있을 겁니다.”

        ​

        상대가 강군인 만큼 어중간한 정찰대는 포착되는 순간 전부 끝장날 뿐.

        ​

        그러니 확실하게 기동성이 보장되면서, 전투력이 뛰어나고 유사시에 적들을 물리치고 도망칠 수 있는 고수들로 작전을 진행하는 편이 효율적이었다.

        ​

        “제자들이 죽는 것보다야 낫구나.”

        ​

        “세가의 아해들이 다치는 것보단 노구를 움직이는 게 낫겠지.”

        ​

        대부분의 정파의 명숙들이라 그런지 납득이 빠르시네. 물론 다들 알고 온 거니 당연한 일이지만.

        ​

        여기서 가장 망나니 기질이 강한 편인 칠성검왕도 별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우선, 서장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사막을 우회해서 산맥을 탈 겁니다.”

        ​

        하나하나가 더럽게 높은 산들이지만, 전쟁에서 이기려면 타야지.

        ​

        자고로 전쟁은 고지대를 차지하고 있는 쪽이 유리한 법이니까. 

        ​

        당장 청해성 자체도 고지대에 있으니, 우리가 청해성에 틀어박히면 놈들은 큰 희생을 각오하고 들어서야 할 터였다.

        ​

        …일단 관군이 도착해서 방어선을 구축한 다음이지만.

        ​

        우리가 이렇게 나서는 것도 관군이 도착할 시간을 벌어두려는 것도 있었다.

        ​

        우리에게 모든 주의가 쏠리는 동안 적들은 출정을 나갈 수 없을 테니까.

        ​

        “마지막으로 물건을 다 챙기셨습니까?”

        ​

        “에잉, 누굴 노망난 노인으로 보느냐?”

        ​

        “아니었소?”

        ​

        “이놈이!”

        ​

        “장 대협.”

        ​

        “알았다 알았어.”

        ​

        “이놈한테 비무에서 졌다더니, 아주 얌전하게 구는구나.”

        ​

        팽 장로는 놀릴 거리가 하나 생겼다는 듯이 낄낄댔다. 

        ​

        …임무만 제대로 하면 됐지.

        ​

        “문제없으시면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

        어디 오랜만에 파르스 얼굴이나 볼까.

        ​

        나는 허리춤에 매달린 롱소드의 손잡이를 만지작거리며 선두에 섰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저는 제사 지내러 갑니닷….

    나중에 뵈어욧.

    다음화 보기


           


Medieval Knight in a Martial Arts Novel

Medieval Knight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소설 속 중세기사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fter two years of being reincarnated as a medieval knight, he finally realizes that he's been reincarnated into a martial arts novel.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