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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99

       *

        겉으로 보이는 전투의 양상은 실비아의 압도적인 우세였다.

        ​

        날카롭게 벼려낸 호흡을 내쉬며 휘두르는 검은 흉물의 몸뚱이를 거칠게 꿰뚫고, 징그러운 촉수는 대부분 쳐내버린다.

        ​

        맞부딫히는 칼날도 없기에 날카로운 금속의 파열음조차 들리지 않았다.

        ​

        그저 무언가가 베이는 듯한 소리와 미처 막지 못한 촉수가 실비아를 스치는 질척한 소리만이 수없이 울려 퍼질 뿐이었다.

        ​

        몸 안에 스며드는 통증에도 불구하고, 아주 오랜 시간 단련되어온 실비아의 팔 근육은 폭발적인 열기를 내뿜으며 더욱 빠르게 움직였다.

        ​

        사정없이 마왕의 몸을 찔러대는 실비아의 장검은 잔상을 만들어 수십 개로 보일 정도였다.

        ​

        마왕은 촉수와 흉측한 팔 끝에 달린 날카로운 손톱으로 반항해 보지만 몇몇 공격은 반응조차 하지 못했다.

        ​

        과거에도 마왕은 강력한 주문을 사용하는 마법사였기에 접근전으로 붙으면 질 리가 없다는 실비아의 생각은 거의 그대로 들어맞은 듯 보였다.

        ​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실비아는 어떤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다.

        ​

        ​

        ​

        “… 빌어먹을,”

        ​

        ​

        ​

        마왕이 좀처럼 죽지 않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

        이미 목이 완전히 떨어지고도 멀쩡히 살아있었던 전적이 있던 만큼, 그를 죽이는 게 쉽지 않으리라는 것 쯤은 예상하였다.

        ​

        하지만 정말 이상한 점은, 그가 좀처럼 제대로 된 반격을 하고 있지 않다는 점에 있었다.

        ​

        주문을 사용하지도, 정령을 부리지도 않는다.

        ​

        전투의 기본은 상대의 공격 간격을 벗어나 자신의 간격으로 상대를 집어넣는 것이다.

        ​

        응당 검을 쓰는 실비아보다 사악한 술수를 부리는 마왕이 압도적으로 긴 사거리를 가지고 있을 것이고, 그렇기에 마왕이 취해야 할 기본적인 태도는 실비아를 밀쳐내던가, 물러나 거리를 벌리는 것이었다.

        ​

        하지만 마왕은 그 역겨운 노폐물들을 질질 흘리며 실비아를 향해 조금씩 다가왔다.

        ​

        예비동작이 훤히 보이는 저열한 휘두르기와 귀찮을 뿐인 촉수를 마구 흩뿌리는 마왕의 모습은 마치 자신을 베라고 도발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

        ​

        ​

        “그래, 어디 끝까지 버텨봐라.”

        ​

        ​

        ​

        실비아는 기꺼이 그 도발에 넘어가 주기로 했다.

        ​

        냉정함을 잃어버린 것은 아니었다.

        ​

        검을 휘두를 때마다 분명하게 느껴지는 손맛은 마왕의 몸이 베이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였고, 실비아의 검은 한번 휘두를 때마다 확실하게 목숨을 가져갈 위력이 있었다.

        ​

        아무리 마왕이 끊임없이 회복하고, 죽여도 죽여도 계속 되살아나는 것처럼 보인다 해도 그 능력엔 분명 한계가 있기 마련이었다.

        ​

        심지어 그 무시무시한 신성력을 두른 앨리스조차 제압해 본 적이 있었던 실비아는 이를 악물며 더욱 거칠게 마왕을 제압해 나갔다.

        ​

        하지만, 이 위화감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

        몰아치는 것은 분명 자신인데, 어째선지 점점 몰리는 기분이 드는 것은 왜일까.

        ​

        마치 그녀의 흔들거리는 내면을 은유하는 듯, 실비아의 귓가에는 바퀴벌레의 날갯짓과 비슷한 소름이 끼치는 소리마저 윙윙대고 있었다.

        ​

        실비아는 불안을 떨쳐내려 검을 더욱 단단히 틀어쥐었다.

        ​

        ​

        ​

        ‘정신 차려.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마.’

        ​

        ​

        ​

        실비아는 위화감과 불안감에서 억지로 눈을 돌리며 검을 쥔 손가락을 활짝 폈다가 다시 쥐었다.

        ​

        손에서 난 땀 때문에 검을 놓치기라도 한다면 그 때문에 마왕에게 당하기라도 한다면 그것만큼 웃긴 일도 없을 것이다.

        ​

        실비아는 어느새 발치에 수북이 쌓인 잘려 나간 촉수다 발들을 짓밟으며 팔꿈치로 마왕의 얼굴을 내리찍었다.

        ​

        주춤거리는 마왕의 겨드랑이 아래쪽으로 빠르게 밀어 넣은 검을 힘껏 들어 올리자 단숨에 마왕의 팔 한 짝이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

        마왕은 비명을 지르며 잘려 나간 어깨를 부여잡으면서도 그 파충류의 것 같은 얼굴을 히죽이며 입을 열었다.

        ​

        ​

        ​

        “여기를 베는 걸 좋아하는 모양이지? 애쉬라는 저 꼬마의 어깨도 베었잖나.”

        ​

        “입 닥쳐”

        ​

        ​

        ​

        실비아는 건틀릿의 손등 부분으로 마왕의 턱주가리를 깨버릴 듯 후려쳤다.

        ​

        ​

        ​

        “내가 분노 때문에 정신적으로 동요하는 걸 노리는 건가? 그럴 일은 없다.”

        ​

        “하,”

        ​

        ​

        ​

        실비아의 검이 그 기다란 마왕의 주둥이를 밑에서부터 꿰뚫었다.

        ​

        실비아가 그대로 팔을 들어 올리자 마왕은 날카로운 검에 찔린 채로 발이 공중에 띄워지기 시작했다.

        ​

        날카로운 검에 온몸의 무게가 실리는 고통은 괴물에게도 견디기 어려운 것일까.

        ​

        마왕은 그 창백하고 앙상한 다리를 버둥거리며 신음을 흘려댔다.

        ​

        ​

        ​

        “난 이미 너를 넘치게 증오하고 있거든.”

        ​

        ​

        ​

        실비아가 간단하게 손목을 돌리는 것만으로 마왕의 주둥이를 꿰뚫은 검은 그대로 한 바퀴를 회전했다.

        ​

        커다란 절단면을 드러내며 얼굴이 잘려 나간 마왕이 무게에 의해 바닥에 넘어지는 것과 동시에 실비아는 그의 등을 짓밟고 울퉁불퉁 튀어나온 그의 징그러운 척추 사이로 검을 찔러 넣었다.

        ​

        마왕은 땅바닥에서 버둥거렸다.

        ​

        실비아는 그런 마왕의 몸을 꾹꾹 눌러 밟은 채 기이한 소리 때문에 간질거리는 귓가를 툭툭 치면서 말했다.

        ​

        ​

        ​

        “어디 더 해봐. 더 까불어 봐. 얼른.”

        ​

        “케에엑”

        ​

        “이 개 같은 소리도 다 네가 한 짓이지?”

        ​

        “켁케케게”

        ​

        ​

        ​

        마왕은 목구멍에서 역겨운 액체를 토해내며 소리를 내었다.

        ​

        그 소리가 마치 자신을 비웃는 것처럼 들린 실비아는 천천히 심호흡하며 그의 척추를 찌른 검을 비틀었다.

        ​

        숨을 삼키는 소리와 함께 버둥거리던 앙상한 다리가 실 끊어진 인형처럼 축 가라앉았다.

        ​

        ​

        ​

        “안 통한다고 했지. 도발도, 성가신 소리도, 좆같은 말로 내 신경 긁으려는 그 모든 시도도 다 안 통한다고. 이 개새끼야.”

        ​

        “크히히헤헤”

        ​

        “다 실패하고 짓밟힌 주제에 뭐가 웃기지?”

        ​

        ​

        ​

        마왕은 부들거리던 얼굴을 천천히 돌렸다.

        ​

        리자드 맨 특유의 얼굴 탓에 눈이 양옆으로 박혀있던 마왕은 어렵지 않게 자신의 뒤에 서 있던 실비아와 눈을 마주칠 수 있었다.

        ​

        실비아는 자신의 것과 똑같은 그 붉은 눈을 보며 이를 갈았다.

        ​

        마왕은 그런 실비아를 비웃으며 어눌한 발음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

        ​

        ​

        “충분히… 통한 것 같은데?”

        ​

        “뭐?”

        ​

        “그래, 그 소리는 내 정령들의 날개짓 소리지. 내 주변을 항상 날아다니는 충실한 종.”

        ​

        ​

        ​

        실비아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

        ​

        ​

        “뭐, 그런 거겠지. 보는 것만으로 두렵게 만든다는 네 위용도 결국 남의 신경을 어지럽게 만드는 이런 속임수에 불과한 것뿐. 너한텐 바닥을 기는 꼴이 딱 어울려. 이 빌어먹을 도마뱀아.”

        ​

        “그런데… 그거 알고 있나?”

        ​

        “뭘, 시발이.”

        ​

        ​

        ​

        마왕은 킥킥대며 말했다.

        ​

        분명 자신의 발아래 짓밟힌 상대인데도, 실비아의 몸에 소름이 끼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

        ​

        ​

        “내가 왜 정령들에게 그저 내 주변을 날아다니라고 시킨 걸까? 충분히 정령술로 반격할 수도 있었을 텐데?”

        ​

        “안 궁금해.”

        ​

        “예전에 내 앞에 마법사와 함께 도착했던 너는 이런 소리 같은 건 못 들었을 테니.”

        ​

        “안 궁금하다니까? 이 병신 새끼야.”

        ​

        ​

        ​

        실비아는 그의 목을 부러트릴 기세로 짓밟았다.

        ​

        하지만 마왕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

        ​

        ​

        “정령을 볼 수 있게 된 것이 도리어 약점이 되었구나.”

        ​

        “뭐래,”

        ​

        “주변을 살피는 능력도 줄었고, 정신력도 닳아버렸지. 넌 약해졌다. 내가 약해진 것만큼이나.”

        ​

        “패배자가 할 말이 아니다.”

        ​

        ​

        ​

        마왕은 키득거렸다.

        ​

        ​

        ​

        “패배?”

        ​

        ​

        ​

        그리고는 천천히 자신을 짓밟은 실비아의 발을 밀어내며 마왕은 몸을 일으켰다.

        ​

        실비아는 갑자기 자신의 힘을 이기고 일어나는 마왕의 모습에 당황하며 황급히 그의 몸에 박힌 검을 옆으로 뽑아냈다.

        ​

        갈라진 복부 사이로 왈칵 쏟아지는 싯누런 진물과 내장들을 거칠게 손으로 쓸어 옆으로 털어낸 마왕은 천천히 그 징그러운 얼굴을 이죽거렸다.

        ​

        ​

        ​

        “나는 시간을 끈 거란다. 당연하게도.”

        ​

        ​

        ​

        뭔가, 다르다.

        ​

        이상하다. 

        ​

        마왕이 자신의 속셈을 털어놓는다.

        ​

        저 흉물이 바보도 아니고, 자신의 작전을 적에게 술술 읊어댈 리가 없다.

        ​

        뭔지는 모르겠지만 상황이 이미 그가 바라는 대로 진행되었다는 뜻이리라.

        ​

        실비아는 자기 이마에 흐르는 식은땀을 애써 무시하며 억지로 입꼬리를 치켜올렸다.

        ​

        ​

        ​

        “시간을 끌어? 뭐 하러? 고통받는 게 네 작전이었나? 말하지 그랬어. 얼마든 베어줄텐데.”

        ​

        ​

        ​

        마왕은 말없이 웃으며 손가락을 튕겼다.

        ​

        실비아의 귓가에 윙윙대던 날개짓 소리가 딱 멈추었다.

        ​

        ​

        ​

        “…?”

        ​

        ​

        ​

        그리고 동시에, 날카로운 마리아의 비명이 들렸다.

        ​

        ​

        ​

        “실비아!”

        ​

        ​

        ​

        실비아는 반사적으로 몸을 돌려 뒤를 돌아보았다.

        ​

        ​

        ​

        “… 애쉬?”

        ​

        ​

        ​

        애쉬가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땅바닥에 처박고 있었다.

        ​

        마리아는 한쪽 무릎을 꿇어앉은 채 쓰러진 애쉬의 몸을 받쳐 주고 있었다.

        ​

        쓰러진 애쉬의 입에서 시커먼 핏물이 쿨럭이며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

        ​

        ​

        “이게 무슨…”

        ​

        “설명할 시간 없어… 그러니까,”

        ​

        “당장 튀어와!”

        ​

        ​

        ​

        마리아의 말을 이어받듯이, 피아가 소리를 질렀다.

        ​

        그 순간, 실비아는 깨달을 수 있었다.

        ​

        마왕이 말한 시간 끌기가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지.

        ​

        ​

        ​

        “마기…”

        ​

        ​

        ​

        농도가 짙다.

        ​

        소용돌이 숲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짙고 탁한 마기.

        ​

        앨리스와 비교하면 적을 뿐, 제법 든든한 양의 신성력을 몸에 품은 실비아는 멀쩡했다.

        ​

        정령인 피아와 마리아도 마기의 영향을 크게 받지는 않는다.

        ​

        그렇기에 간과했다.

        ​

        마왕이 무엇을 노리고 시간을 끌던 크게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

        하지만 아니었다.

        ​

        이곳에는 마기에 영향을 받는 인간이 딱 한명 있었다.

        ​

        ​

        ​

        “안돼!”

        ​

        ​

        ​

        앨리스는 분명 애쉬의 몸에 신성력을 나눠 주었다.

        ​

        실비아의 눈에도 꽤 많은 양의 신성력이었다.

        ​

        하지만 실비아나 앨리스와는 달리 애쉬의 몸에 깃든 신성력은 한번 소비되어 버리면 다시 회복되지 않는다.

        ​

        그리고 이곳은 앨리스가 보았던 숲속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짙은 마기로 가득 차 있었다.

        ​

        이 짙은 마기가 애쉬 몸속에 깃든 신성력을 빠르게 태워버린 것이리라.

        ​

        ​

        ​

        “애, 애쉬!”

        ​

        ​

        ​

        실비아는 지면을 디딘 발끝에 힘을 바짝 주었다.

        ​

        단 한 번의 도약만으로 애쉬에게 닿기 위해, 모든 힘과 의식을 발끝에 집중했다.

        ​

        하지만, 그 짧은 순간.

        ​

        마왕을 향한 의식이 끊긴 아주 짧은 그 순간.

        ​

        실비아는 등 뒤에서 자신의 가슴팍을 뚫고 나오는 커다란 촉수를 발견했다.

        ​

        ​

        ​

        “크억!”

        ​

        ​

        ​

        실비아 본인이 스스로 생각해봐도 참 바보 같은 실수였다.

        ​

        적을 등 뒤에 두고도 정신을 빼앗기다니,

        ​

        ​

        ​

        “빌어… 먹,”

        ​

        ​

        ​

        내내 무기력하게 압도당하던 마왕을 우습게 본 것일까.

        ​

        그렇다면 여태껏 실비아의 검에 무참히 베여온 마왕의 계략이 통한 것이었다.

        ​

        쓰러진 애쉬를 보고 혼란스러워진 것일까. 

        ​

        그렇다면 마왕이 말한 대로 그가 자신의 약점이라는 뜻이었다.

        ​

        지난 몇 년간 자신을 죽일만한 위협이 모조리 차단되었기 때문에 방심한 것일까.

        ​

        병신, 그건 마왕이 남긴 저주다. 마왕의 공격마저 보호해 줄 것이라는 생각은 진작 버렸어야 했다.

        ​

        ​

        ​

        “어, 허억,”

        ​

        ​

        ​

        폐를 찢어버린 촉수에 의해 숨이 쉬어지질 않았다.

        ​

        죽음.

        ​

        한때 그토록 애타게 찾아 헤매던 그 죽음이 지금, 이 순간 실비아의 눈앞에 넘실거렸다.

        ​

        안돼, 왜 하필 지금. 그토록 찾아 헤매일 때엔 없더니, 왜 하필 지금!

        ​

        ​

        ​

        “큭!”

        ​

        ​

        ​

        실비아는 양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뚫고 나온 촉수를 붙잡았다.

        ​

        그러나 그 촉수는 악랄하게도 실비아의 몸을 꿰뚫은 채 그 안에서 역겹게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

        그 움직임만으로 실비아의 피로 흠뻑 젖은 촉수는 실비아의 손안에서 미끄러지며 잡히질 않았다.

        ​

        ​

        ​

        “예나 지금이나 저 가문이 네 가장 큰 약점이구나.”

        ​

        ​

        ​

        마왕은 등 뒤에서 실비아를 조롱했다.

        ​

        마치 조금 전까지의 그녀가 그러했듯이.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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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Can’t Run Away from the Woman Who Saved Me.

I Can’t Run Away from the Woman Who Saved Me.

나를 살려준 그녀에게서 도망칠 수 없다.
Score 4.2
Status: Completed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Having lost all my family, I fled. As I was running away, she saved me when I was on the brink of death due to an accident. The moment our eyes met, I knew I couldn’t leave 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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