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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99

    슬슬 햇빛도 점차 약해지자 그에 비례하여 바다에서 노는 사람들도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루크도 이제는 수영복차림에서 벗어나, 입고 온 원피스를 입고선 텐트에 들어와 간식을 먹는 중이었다.

     

    다프네가 가져온 간식은 수박이었다.

     

    다이튼이 자른 수박을 하나 집어 씹으니, 물을 베어먹는 것 처럼 달콤한 과육이 말 그대로 터져나온다.

    이 시대는 어떻게 입에 넣는 것마다 하나같이 진미가 아닐 수 없다.

    그렇게 수박을 먹으며 하늘을 올려다보니, 이미 하늘은 붉게 물들어있었다.

    마치 누군가 하늘에 불이라도 놓은 것처럼.

     

    루크는 그렇게 수박을 씹으며 붉게 타오르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제 곧……. 인가.”

     

    앞으로 조금 뒤면 일식이 시작될 것이다.

    루크는 그렇게 생각하며, 텐트 한켠에 자리잡고 수박을 들고서 허겁지겁 씹어삼키는 파이리스를 보았다.

    그것은 방금까지 모래성이 파도에 쓸려나가 울먹거리던 아이가 맞나 싶을 정도였다.

     

    “그렇게 맛있어?”

    “맛있어!”

     

    붉은 수박의 알맹이가 푸른 정령의 입 속으로 마치 빨려들어가듯 사라지는 장면은, 붉은 색에 먹혀버린 하늘과는 또 대비되는 풍경이다.

     

    또 다른 쪽을 바라보면, 누가 수박 씨를 더 멀리 날리나 같이 쓸데없는 짓을 하고 있는 소르비와 키르케가 있다.

     

    또 다른 한켠에는 여전히 예르나 앞에서 수박을 건네며 쭈뼛거리는 다이튼의 모습이 보인다.

     

    그 모습을 보니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오른 루크는 예르나를 불렀다.

     

    “예르나, 우리 조금 더 일식이 잘 보이는 곳으로 가는 게 어떨까?”

    “음, 그럴까? 어디로 갈까?”

     

    루크의 제안에 예르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고선 몸을 일으켰다.

     

    “어? 언니. 어디가?”

     

    디아나의 질문에 파이리스도 루크를 의문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기 시작했다.

     

    “잠깐 일식을 보러 갈 게다. 너희들은 잠시 텐트 안에서 기다리고 있거라.”

    “응.”

     

    아이들은 딱히 일식에 별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금세 수박으로 관심을 돌렸다.

     

    그리고 루크는 다이튼을 바라보았다.

    오늘하루, 디아나와 파이리스를 돌보느라 분주하게 움직인 다이튼은 예르나가 잠시 밖으로 나가 눈에 보이지 않자, 정말 축 늘어져서는 아무것도 하기 싫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루크는 다이튼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다이튼, 그대도 같이 가주겠느냐?”

    “뭐야, 부축해달라고?”

    “부탁하네.”

    “어이, 이제 나도 힘든데.”

     

    그렇게 루크는 그렇게 말함과 동시에 윙크로 남몰래 신호를 보내려 했으나……. 이미 한 눈이 안대로 가려져 있어서 하는 수 없이 턱으로 예르나를 가리키며 다시 한번 살짝 웃었다.

    그러나 다이튼은 그 사인을 알아보지 못했는지 손을 휘휘 저으며, ‘ 부축은 다른 사람한테 해달라고 해.’라고 대꾸했다.

     

    “흐음, 정말 그럴겐가?”

     

    그러자 루크의 모습을 함께 지켜보던 다프네가 그 사인을 눈치채고는 ‘아!’하는 감탄을 내뱉으며 다이튼의 등을 툭툭 쳤다.

     

    “다이튼. 잠시만.”

    “어, 왜요?”

     

    그렇게 잠깐 다프네의 귓속말을 들은 다이튼.

    그의 표정은 처음에는 당혹에서 점차 무언가를 결심한 듯한 남자의 모습으로 변해갔다.

    이내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하더니, 다이튼은 이미 밖으로 나간 예르나와 루크를 번갈아 바라보고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루크는 그 모습에 다시 미소지었다.

     

    ‘하하. 녀석. 이제야 눈치를 챘느냐.’

     

    케일이 항상 말하길, 고백은 타이밍이라고 말했었다.

     

    그게 도대체 무슨 뜻인지, 당시에는 그다지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으나.

     

    지금은, 어쩐지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할아버지가 식사와 미끼를 챙기러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시루드는 그렇게 한동안 생각에 잠긴 채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으니,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일식의 날, 그리운 사람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정말로 사실일까?

     

    어쩌면, 아빠를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이제는 얼굴도 가물가물하다.

    다시 본다고 할 말이 있는 것도 아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빠는 원래 원망하고 있었다.

    별로 가정에 충실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사고로 돌아가시면서 가족에게 커다란 상처와 짐 만을 떠안겼으니까.

     

    그래도, 다시 한번 보면 좋을 것 같은데.

     

    수평선에 진 노을빛에 검은 그림자가 점차 드리우기 시작한다.

     

    점점 일식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시루드는 멀리 드리워진 낚싯대를 바라보며, 오래전 아빠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시루드, 너는 장차 트리핀드 가문의 기둥이 될거다. 그러니 명심해라, 트리핀드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 한다는 걸.’

     

    오래 전이라서, 대체 어떤 상황에서 어떤 이유로 그런 말이 나왔는지는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 말이 시루드의 기억에 깊게 틀어박힌 이유는 간단했다.

     

    그때 아빠의 표정이 굉장히 진지하고 또 심각해보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웃기지 않은가, 얼굴은 기억나지 않는데 표정은 기억하고 있다니.

     

    ‘그리운 사람…….’

     

    자신은 정말로 아직 아빠를 그리워하고 있는 것이 맞을까?

    일식이 시작되면 알 수 있지 않으려나.

     

    그렇게 생각하며 낚시줄을 바라보고 있을 때, 갑작스럽게 등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시루드? 이런 곳에서 보게 되는구나. 하하, 이런 우연이 다 있나.”

     

    이 목소리는 설마…….

     

    “뭐, 뭐야?”

     

    루크 이루시였다.

    ————-

     

    시루드는 크게 당황했다.

    오랜만에 본 루크의 모습이 자신의 기억과는 거의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루크가 자신을 먼저 알아본 것과, 평소 들어오던 루크의 목소리가 아니었다면 아마도 루크인 줄도 몰랐을 것이다.

     

    시루드는 반갑다는 인사도 잊은 채 질문부터 쏟아내었다.

     

    “대체 학교에 안 나올 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대체 그 안대는 뭐야? 뿔은 또 어디로 사라졌어?”

    “아, 이것들 말인가.”

     

    하하, 사실은 이런 반응이 있을까봐 아카데미에 갈 수 없었던 거다.

    애초에 꽤 오랫동안 병원에서 의식을 잃은 상태이기도 했고.

    아무래도 신체를 대가로 사용한 마법은 성공해도 후유증이 심각하니 말이다.

     

    루크는 어깨를 한번 으쓱, 하고는 시루드의 곁에 앉으며 말했다.

     

    “그냥, 옛 지인과 만나서 다퉜다네.”

     

    꽤 많은 생략이 들어가긴 했지만, 역시나 거짓말은 아니었다.

     

    “네가 싸움을? 누구랑 싸웠는데?”

     

    루크가 싸움을 하다니.

    평소에 루크가 딱히 남에게 화를 낸 적도 없었고.

    딱 한번, 자신에게 화를 낸 적이 있기는 했지만, 그건 게임 속 이야기를 현실이랑 착각해서 그랬던 거지, 평소엔 거의 인자한 할아버지나 다름이 없었다.

    그런데 그런 루크가 싸움을 했다고?

     

    평소라면 그거 상대가 지금 살아있긴 한지 모르겠다고 생각할 테지만, 루크가 이렇게 다칠 정도였으면 뭔가 엄청난 일이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걱정 말거라. 네가 신경 쓸 만한 일은 아니야.”

    “정말 괜찮은 거 맞아?”

    “그렇대도.”

    “뭐, 네가 그렇다면야…….”

     

    하지만 루크는 시루드의 걱정에 별 것 아니라는 듯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시루드는 잠시 루크의 지팡이에 시선이 갔다.

    걸어다닐 때 저런 걸 써야 할 정도로 다쳤는데, 어떻게 별 일이 아닐까?

    하지만 루크가 저렇게 말하는데 더 캐묻기도 애매해져서 이내 낚싯대로 다시 시선을 보냈다.

     

    그 모습을 보더니 루크가 물었다.

     

    “많이 놀란 것 같던데. 너야말로 괜찮은가?”

    “응……. 나는 괜찮아.”

    “그건 다행이로구나. 이제 서클을 제어하는 것은 상당히 익숙해진 모양이지?”

    “당연하지. 나도 이제 삼중서클이야. 우리 할아버지랑 똑 같은.”

     

    소리드 할아버지가 그 소식을 듣고 얼마나 놀라고 또 기뻐했는지 모른다.

    삼중서클부터는 마나의 조작이 훨씬 수월해져서 이제 서클폭주로 목숨을 잃을 확률은 거의 없다 수준으로 낮아지며, 평소에도 간간히 심장을 옥죄는 듯 한 고통도 느끼지 않게 되니까.

    어린 나이에 서클이 발병한 환자는 다른 사람들이 여러모로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가끔 서클이 주는 고통은 꽤 심각한데, 엘프는 장수종인 탓에 더 오랫동안 서클을 품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삼중서클이 되었으니 이제는 그 걱정을 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서클이 없는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생활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 그랬지. 그건 다시 한번 축하한다. 시루드.”

     

    시루드는 루크의 축하에 그저 뒤통수를 긁으며 말했다.

     

    “뭘, 다 네 덕분인데.”

     

    아마 루크가 없었다면, 이렇게 빨리 삼중서클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어쩌면 진작에 서클폭주로 세상을 떠났을지도 모르고.

     

    그런데 루크 때문에 폭주한 서클을 생각해보면 또…….

     

    ……결과적으로 보면 말이다.

     

    곧 시루드는 생각했다.

    일식의 날에는 그리운 사람을 볼 수 있다는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뭐, 솔직히 ‘조금’ 그립긴 했다.

    아카데미는 원래 재미가 없는데, 그나마 루크가 있으면 정신없긴 해도 나름대로 즐거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리웠던 거지, 그렇게 엄청 보고 싶다는 생각은 아니었단 말이다.

     

    그래서 루크를 만나는 것은 전혀 상정하지 않았다.

    이런 곳에서 만날 수 있을 거라고는 당연히 생각도 못했고.

     

    그럼 정말 이게 일식 때문인가?

     

    시루드는 루크를 바라보며 말했다.

     

    “처음엔 진짜 누군가 했다니까. 알던 모습이랑 너무 많이 달라서.”

    “하하. 그랬느냐? 역시 그렇겠지.”

     

    루크는 손을 들어 자신의 짧아진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다가, 잘린 뿔의 단면을 더듬어보았다.

    시루드 같은 어린 아이에게 자신의 변화는 너무나 큰 변화이긴 하다.

    특히나, 뿔이 갑자기 사라진 것이 크겠지.

    가끔 미용이나 실생활의 불편 개선을 목적으로 잘라내기도 한다고 하지만 말이다.

     

    “네가 보기에 지금의 나는 많이 이상한가?”

    “아, 아니! 그건 아닌데…….”

     

    루크가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고민스런 표정을 지은 모습을 본 시루드는 크게 고개를 저었다.

    솔직히 그 뿔, 옆에 앉아있으면 찔릴까봐 좀 무섭긴 했으니까.

    그리고 허리를 덮던 머리를 깔끔히 쳐낸 단발도 꽤 어울렸다.

    원피스도 예쁘게 잘 어울리고…….

     

    “잘……. 어울려.”

    “그런가? 칭찬 고맙구나.”

     

    루크는 답례로 씨익 웃어주었다.

    시루드는 왠지 모를 부끄러움에 고개를 바다 밑으로 돌렸다.

     

    평소엔 잘 몰랐는데, 이렇게보니 루크도 엄연한 여자애였다.

     

    그렇게 할아버지가 얼른 돌아왔으면 하는 생각을 하며 바닷물의 흐름을 바라보고 있는 시루드.

    그런 시루드를 잠시 바라보다가 눈을 뗀 루크는 입을 열었다.

     

    “이제 곧 시작되겠구나.”

     

    해가 어둠에 먹혀가는 장면을 눈에 담으며 루크는 생각했다.

     

    지금쯤 다이튼은 자신이 만들어준 이 기회를 잘 사용하고 있을까, 하고.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드디어 만나긴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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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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