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99

       재료를 갖춘 단원들은 본격적으로 별장을 꾸미는 작업에 착수했다.

         

       마야도 오랜만에 밖으로 불려 나왔다.

       그녀는 불만스러운 눈빛으로 자신의 팔을 잡아끄는 엘라를 흘겨봤다.

       한창 연구에 매진하던 중이었는데…….

         

       호텔에서 돌아오고 나서 2주가 흘렀다.

       그날 이후로 그녀는 부쩍 혼자 있는 시간이 늘었다.

       가끔 찾아오는 카렌을 제외하고는 사람도 거의 만나지 않았다.

         

       그만큼 그녀가 파는 새로운 연구 과제는 난해하면서도 흥미로운 것이었다.

         

       데볼루트.

       그것의 정체는 오랫동안 학계의 수수께끼였다.

         

       마야는 지난 2주 동안 방안에서 그것에 관한 논문들을 모두 읽었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이 그것의 정체를 밝혀내기 위해 도전했으나 알아낸 것은 얼마 없었다.

       아니라면 그녀가 아무리 똑똑하다고 해도 고작 며칠 만에 지난 세월 쌓인 자료들을 모두 독파해낼 수 있을 리 없었다.

         

       “여기서부터 부탁해. 벽면 하나당 할로윈 복장을 갖춘 단원 한 명이 들어가면 좋겠어.”

         

       엘라는 그녀에게 벽화를 그릴 것을 지시했다.

       축제에 맞춰 으스스한 그림들로 별장을 장식하고 싶다는 것이다.

         

       마야는 단원들의 복장이 그려진 도면을 보며 염동력으로 붓과 물감을 움직였다.

       그녀는 작업하면서도 연구에 관한 생각을 놓지 않았다.

         

       그녀는 지난 며칠 동안 정리한 내용을 하나하나 복기해보았다.

         

       1. 데볼루트는 저주 역병의 원인 물질이다.

       2. 그것의 구조는 사중 나선 형태다.

       3. 연금술 길드는 데볼루트를 파괴할 수 있는 ‘은하수’라는 약을 보유하고 있다.

       4. 그것은 ‘역병 군주’라는 악마의 등장 이후 퍼지기 시작했다.

       5. 빅터라는 사람이 그 악마를 물리치고 성자의 칭호를 받았다.

         

       여기까지는 세상에 알려진 내용이었다.

       그리고 다음 사실은 오직 그녀와 단장님만이 알고 있었다.

         

       6. 성 빅터가 테트로미노 광장에 남긴 위령비는 데볼루트의 형태를 본 따 만들었다.

       7. 광장 바닥에는 데볼루트의 화학적 구조가 담긴 암호가 남아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연구 기관은 아니지만 얼마 전, 정교회에서 흘러나온 소식 하나.

         

       8. 데볼루트는 ‘검은 마도사’와 관련이 있다.

         

       마야는 그 이름을 떠올리며 주먹을 꽉 쥐었다.

         

       그녀의 기억력은 저주받을 정도로 뛰어났다.

       세간에서 말하는 완전기억처럼 모든 것을 기억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일단 기억하고 있는 순간의 이미지는 아무리 오래된 것이라도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그녀가 태어난 지 반년이 되었을 때였다.

       엄마가 없다고 칭얼대는 자신에게 아빠는 엄마는 이제 없다며 그녀를 안고 울었다.

         

       경박하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유쾌하기만 하던 아빠였다. 그분이 그렇게 절망하는 표정을 짓는 것은 이전에도 이후에도 본 적이 없었다.

         

       어렸던 그녀에게 있어서 엄마가 죽었다는 사실보다 아빠의 그 표정이 더 비극적으로 다가왔었다.

         

       그녀는 그 기억들을 구석으로 밀어 넣었다.

       필요한 건 검은 마도사에 대한 자신의 감정이 아니라 그에 대한 정보였다.

         

       안타깝게도 검은 마도사에 대해서는 이 이상 알아낼 수 있는 게 없었다.

       십수 년간 전 세계의 추적을 따돌린 인물이었다.

       저주 역병과 관련이 있다는 것도 얼마 전에 밝혀진 것이었다.

         

       대신 마야에게는 그보다 더 조사하기 쉬운 대상이 있었다.

       성 빅터와 역병 군주.

       둘에 대해서는 공식적인 자료뿐만 아니라 민간의 떠도는 이야기도 많았다.

         

       이미 많은 학자가 조사했겠지만, 그녀에게는 그들이 모르는 ‘데볼루트의 구조식’이 있었다. 이걸로 테트로미노 광장의 위령비처럼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는 것들을 볼 수 있을지 몰랐다.

         

       마야는 원더스타인이 그것을 설명할 때를 떠올렸다.

       그분은 과연 그것이 데볼루트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까?

         

       사실 그것은 말할 것도 없는 질문이었다.

       당연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마야는 그가 드발체프에서 저주 역병을 치료하는 모습을 봤다.

       연금술 길드의 은하수보다 더 효과적이고, 정교회 사제들의 말뚝보다 더 부작용이 없는 방법이었다.

       

       단장님은 연구에 연구를 거듭해서 데볼루트를 통제할 방법을 찾은 것일 것이다.

         

       심지어 그것을 이용해 사람을 치료하기까지 했다.

       자신이 자카누바에게 당했을 때도, 카렌이 죽은 거나 다름없었을 때도 그 힘을 이용한 게 틀림없었다.

         

       물론 그것에는 희생 역시 따랐다.

       그분은 몸에 데볼루트를 흡수하고 괴로워했었다.

         

       그래서 그녀는 그 이후로 한동안 그분의 건강 상태를 살폈었다.

       다행히 큰 이상은 없어 보여서 안심했다.

         

       그러나 지난 2주 동안 저주 역병에 대한 자료들을 너무 많이 읽어서일까.

       묻어두었던 불안감이 다시 솟아났다.

         

       논문에 보고된 데볼루트의 강력함과 위험성에 대한 문구가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데볼루트를 통제할 수 있다고 자신했던 많은 연구자가 놈의 희생양이 되었다.

       자신도 모르는 새 역병에 당해 몸 안이 다 망가져서 죽은 학자도 있었고, 실수로 연구실 밖으로 그것이 누출되어 황폐해진 지역도 있었다.

         

       그런 위험한 것을 단장님은 몸 안에 담아두고 있었다.

         

       그분은 자신의 파피락스를 고쳐주기 위해서라고 장난스럽게 포장했지만, 그분은 그 시점에 이미 이것이 데볼루트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분의 그것을 자신에게 가르쳐준 이유.

       어쩌면 그것은 바람일지도 몰랐다.

       자신이 당신이 알아낸 것을 발견해주기를 바라는.

         

       “내가 요구한 건 아니지만, 이 무늬도 괜찮은데?”

         

       엘라의 말에 마야는 생각하던 것을 멈췄다.

       옆을 돌아봤다.

       그곳에는 어느새 다가온 원더스타인과 엘라가 나란히 서서 자신의 작업을 지켜보고 있었다.

         

       마야는 자신이 방금 벽화에 그린 그림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지난 2주 동안 수천 번은 환상으로 만들었다 지운 것이 있었다.

         

       이중의 이중 나선.

       데볼루트였다.

       그것이 수십 개나 빼곡히 벽을 채우고 있었다.

       상념에 빠지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염동력으로 붓을 움직이고 만 것 같았다.

         

       마야는 원더스타인의 눈치를 살폈다.

         

       그는 그녀의 시선을 슬며시 피했다.

       분명 그것을 봤음에도 못 본 척을 했다.

       그리고 엘라가 그림에 대해 이런저런 감상을 늘어놓는 동안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제자를 자처하고 싶으면 혼자 힘으로 풀어보라는 것일까.

       마야는 도전 의식이 더욱 불타오르는 것을 느꼈다.

         

       원더스타인은 그녀의 눈동자가 이글거리는 것을 보고 시선을 피했다.

         

       그녀가 그린 사중 나선들을 보니, 2주 동안 방에 박혀 있던 건 역시 그때 일 때문인 것 같았다.

         

       그녀만 한 천재가 심마에 빠질 정도로 심취했던 문제였다.

       그런데 자신은 그녀를 생각한답시고 조언이나 유도를 해주는 것도 아니고 그냥 답을 있는 그대로 풀어주고 말았다.

         

       그녀가 보기에 얼마나 맥빠지고 화날 일이었는지 호텔을 나서면서야 알아차렸다.

         

       마치 열심히 탐험 게임을 하고 있는데, 옆에서 온갖 숨겨진 장소와 스토리, 결말까지 다 훈수를 받은 기분일 것이다.

       자신도 시청자들에게 당한 적이 있어서 그녀의 심정이 이해가 갔다.

         

       사실 맨 처음에는 그렇게 대놓고 답을 던져줄 생각은 없었다.

       주기율표 정도까지만 말해줄 생각이었다.

       그걸로 그녀가 영감을 받으면 충분히 심마를 극복할 수 있으리라 여겼다.

         

       그런데 오랜만에 아는 게 나왔다고 신나서 떠들고 말았다.

         

       그는 얼마 전에 그녀가 논문과 자료들을 한 아름 안고 복도를 지나가는 것을 봤다.

         

       이중 나선이 유전물질이라는 것은 과학자들이 20세기 후반에 가서야 밝혀낸 것이었다.

       아무리 그녀가 천재라고 해도 혼자 힘으로 그것이 뭔지 알아내는 것은 무리였다.

         

       그렇다고 또 “그것은 DNA라고 유전 정보를 담은 것입니다!”라고 깨방정을 떨어서 그녀의 원망을 살 수는 없었다.

       그저 지켜볼 수밖에.

         

       원더스타인은 그녀가 마법을 쓰는 것을 유심히 살폈다.

       그는 아르노로부터 마법사가 파피락스에 빠졌을 때 나타나는 증상에 대해서 들었다.

       그녀가 저것을 파헤치다가 또 심마에 사로잡히지는 않았을까 걱정되었다.

         

       다행히 별문제는 없어 보였다.

       그녀는 염동력으로 붓과 물감을 띄우고, 환상을 만들어 엘라의 지시를 확인해가며 그녀의 요구대로 그림을 척척 수정해냈다.

         

       파피락스를 이겨낸 덕분일까.

       그녀의 실력은 이전보다 발전한 것 같았다.

         

       원더스타인은 안심하고 그녀가 그림에 집중할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주었다.

         

       “그럼 우리도 이만 가볼까요?”

         

       단원들이 별장을 꾸미는 데 힘을 쏟는 동안 그는 시내에 갔다 오기로 했다.

       며칠 전, 재단사를 별장으로 불러 단원들은 할로윈 전용 복장을 맞췄다. 그걸 찾으러 가는 것이다.

         

       상태창에 의상실 기능이 있긴 했지만, 돈을 쓰면 되는 일에 굳이 데볼루트를 낭비할 이유는 없었다.

       무엇보다 의상실은 한 번 본 옷을 복제해 낼 수 있을 뿐, 아이디어를 스케치한 것을 옷으로 짜내는 능력은 없었다.

         

       “빨리 갔다 오자. 오늘 할 일이 많잖아.”

         

       엘라도 그의 뒤를 따라나서려 했다.

       그러나 그는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일이 많으니까 엘라 양은 여기 남아야죠.”

       “어……그, 그럼 혼자 갔다 오게……?”

         

       그녀는 주춤한 태도로 말했다.

       그의 입에서 나올 말이 뭔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싫었기에 괜히 물어보는 것이었다.

       과연 그의 입에서는 예상했던 대답이 흘러나왔다.

         

       “아뇨. 클라라 양과 같이요.”

       “단장님, 마차가 도착했어요!”

         

       별장 입구 쪽에서 아직 성인이 안 된 것으로 보이는 파란 머리카락의 여인이 불쑥 고개를 내밀고 외쳤다.

         

       “그럼 갔다 오겠습니다.”

         

       그는 제자리에 가만히 서서 눈을 깜빡이는 엘라를 두고 클라라와 함께 별장을 나섰다.

         

       예전이었다면 이런 일에 엘라가 따라나섰겠지만, 클라라가 들어온 뒤로 단장을 보좌하는 일은 모두 그녀가 가져가 버렸다.

         

       엘라는 멍하니 두 사람이 떠나는 모습을 바라봤다.

         

       클라라는 원더스타인 옆에 딱 달라붙어서 활달한 표정으로 뭔가를 얘기하고 있었다.

       원더스타인은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난감한 미소를 짓더니 고개를 저었다.

         

       둘의 사이는 가까워 보였다.

         

       클라라.

       그녀가 들어온 뒤로 엘라의 일은 많이 줄어들었다.

       덕분에 예전보다 상당히 편해졌다.

       하지만 어딘가 허전했다.

         

       사실 그동안 그녀는 너무 많은 일을 맡았다.

         

       단원들에게 전달사항을 알리거나 단장의 잡무를 보조하는 일은 원래 부단장씩이나 되는 인물이 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따로 사람을 두는 게 맞았다.

         

       클라라는 그런 기대에 부응하는 유능한 비서였다.

       학생 대표를 맡아본 경험 때문인지 아는 것도 많았고, 다양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아이디어도 풍부했다.

         

       무엇보다 그녀는 단원들의 생김새를 조금도 의식하지 않았다.

       힘든 일은 안 해본 얌전한 모범생처럼 보이는 그녀였지만, 성격은 전혀 달랐다.

         

       일할 때 조금 약게 구는 구석이 있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친화력도 좋았고 사람 간에 벽도 세우지 않았다.

         

       업무를 할 때는 머리가 잘 돌아가고 똑똑하던 그녀가 일상에서는 어딘가 허술하고 어수룩한 구석이 많았다.

         

       스벤의 헛소리도 진지하게 받아들이거나, 우몬의 질문을 전혀 엉뚱한 소리로 답해 그들을 당황하게 만들곤 했다.

         

       거기다 처음 들어왔을 때, 별장에서 기숙사에서 생활하던 것처럼 티셔츠에 팬티만 입고 돌아다니다가 유라크네에게 끌려가 훈계를 들었다.

       클라라는 그녀에게 복장 교육을 받은 두 번째 학생이 되었다. 첫 번째는 일주일 내내 같은 옷을 입고 다녔던 마야였다.

         

       이런 친근한 면모 덕에 그녀는 단원들과 빨리 친해졌다.

         

       단장을 보좌하는 일도, 단원들의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어주는 역할도 원래 엘라가 하던 것이었다.

       그녀는 두 가지 다 잘 해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도로시 님, 50코인 후원!

    -자살엔딩 님, 130코인 후원!

    두 분 다 휴재 기간에 후원을 해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일러스트도 계속 고민하고 있었는데, 레이나로 결정지었습니다.
    역시 나오는 데는 시간이 또 걸릴 것 같습니다!

    1주일 만에 복귀했습니다.
    마지막 연재 날 기준으로 하면 거의 10일 만이네요.

    통원치료도 마쳤고, 이사도 마무리했고
    그럼 다시 열심히 달려보겠습니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