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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99

       주변 공기가 싸늘하게 얼어붙기 시작했다.

         

       아니, 어쩌면 그의 가슴이 얼어붙고 있어서 그렇게 느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녀가 내던진 말이 백우진의 머릿속을 뒤흔들었다.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이지만, 본능은 무언가 알아차린 듯 끊임없이 뭔가를 외치고 있는 듯한 느낌.

         

       “어째서 내게 용서를 구하지 않았냐고 물었다.”

         

       그녀가 재차 물었다.

         

       아니, 그것은 물음이라기보다 추궁에 가까웠다.

         

       백우진이 눈살을 찌푸리며 대체 무슨 말이냐고 묻기 위해 입을 떼려고 할 때.

         

       “대답해라, 이안 발데스.”

         

       더 이상 외면할 수 없게 만드는, 가슴 깊이 묻어두었던 이름이 그녀의 입에서 거론된 순간.

         

       백우진의 머릿속은 온통 백색으로 물들어버렸다.

         

         

       * * *

         

         

       그녀, 안젤리카 하츠는 모든 순간이 행복했다.

         

       아니, 정정하겠다.

         

       대부분의 순간을 행복하게 여겼다고 표현하는 게 옳을 것이다.

         

       동료를 잃게 되었을 때, 물도 식량도 없이 보름을 쫓길 때, 그가 사경을 헤맬 때.

         

       그때만큼은 자신이 무언가 큰 죄를 짓고 지옥에 떨어져 벌을 받고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고통스러웠으니.

         

       숱한 위기와 죽음의 순간을 떠올리며 행복했다 말할 수 있는 것은 단연코 그의 존재 때문이었다.

         

       이안 발데스.

         

       당대의 용사이자.

         

       자신의 연인이었던 그의 존재가 그때의 기억을 행복했던 순간으로 둔갑시켰다.

         

       지옥 같은 순간마저 행복한 순간으로 기억하게 만들어준 그였기에.

         

       그와 함께라면 언제까지고 행복할 수 있을 줄 알았건만.

         

       그녀의 행복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산산이 부서지게 되었다.

         

       이안 발데스.

         

       그가, 자신이 알고 있는 그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순간.

         

       지독한 분노가 그녀를 휘감았다.

         

       배신감.

         

       그래, 그때 느낀 감정은 분명 배신감이었다.

         

       차라리 그의 입으로 듣게 되었더라면 이렇게까지 분노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는 결국.

         

       “나를 믿지 못한 거겠지.”

         

       그녀를 제일 분노케 한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그가 자신에게 그러한 말을 꺼내지 못한 이유.

         

       그 말을 하는 순간, 자신이 떠나갈 거라고 멋대로 판단하고 자신을 믿지 못한 그가 미웠다.

         

       “아닌가?”

         

       그녀의 물음에 백우진은 반쯤 넋이 나간 얼굴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맞아.”

         

       버림받는 게 무서웠다.

         

       그 말은 곧 그녀를 믿지 못했다는 말과 다름없는 말이었으니.

         

       마왕의 목을 베고 돌아왔을 때, 모두가 그를 호의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때.

         

       유일하게 그녀만은 그를 바라보는 시선에 경멸과 증오를 담았다.

         

       그의 어리석은 행동 하나가 그녀가 행복하다 여겼던 모든 기억을 뒤바꿔버렸기에.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괴롭고, 고통스럽게 바꾸어 놓았기에.

         

       “나는 너를 증오했다.”

       “그랬지.”

         

       그를 증오했다.

         

       제 모든 삶을 송두리째 뒤흔든 그를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워했다.

         

       이와 동시에.

         

       “그럼에도 나는 기다렸다.”

         

       그녀의 마음 한켠은 그에 대한 사랑을 놓지 못했다.

         

       끔찍한 분노에 몸서리를 치면서도 그녀는 생각했다.

         

       그가 찾아와 자신에게 용서를 구한다면.

         

       다시 한번 그때처럼 제게 사랑을 고백한다면.

         

       이 끓어오르는 분노와 증오 모두 지워내고 그와 함께 할 수 있으리라고.

         

       그렇기에 그녀는 언제나 그의 손이 닿을 듯, 말 듯한 거리에 머물러 있었다.

         

       멀리 떠나가면 그가 찾아오지 않을까 염려되어 애매한 거리에서 그를 지켜보았다.

         

       그리하면 그가 자신을 찾아오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너는 끝까지 비겁했지.”

         

       그는 찾아오지 않았다.

         

       아니, 그 어떤 말도 남기지 않고 떠나버렸다.

         

       허망했다.

         

       그를 증오하면서도 다시 사랑하길 꿈꾸며 기다렸던 그 모든 시간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그리 쉽게 떠나갈 만큼, 자신은 그에게 아무것도 아닌 존재였던가.

         

       궁금했다.

         

       그에게 자신은 어떤 의미였으며, 존재였는지.

         

       “그러니 대답해.”

         

       그것이 그녀가 이곳에 있는 이유였다.

         

       “왜 내게 용서를 구하지 않았지?”

         

       그리고 왜.

         

       “왜 나를 믿지 못했지?”

         

       태산보다 무거운 물음들의 그의 앞에 차곡차곡 쌓였다.

         

       과거의 그가 미루고 또 미루었던 것들이 되돌아온 것인니, 이는 어쩌면 물음이라는 단어보다 업보라는 단어가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후우….”

         

       한숨을 내쉬는 백우진.

         

       그 깊은숨에는 억지로 묻어두었던 과거의 감정들이 끈적끈적하게 묻어 있었다.

         

       그때 왜 자신은 그녀에게 용서를 구하지 못했는가.

         

       “내 낯짝이 그리 두껍지는 못했거든.”

         

       그럴 엄두조차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백우진이 빙의한 소설 속 인물, 이안 발데스는 그녀와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낸 소꿉친구였다.

         

       그리고 그녀는 어릴 때 자신을 구해주었던 이안 발데스를 마음속으로 깊이 좋아하고 있었고.

         

       발데스 가문의 장남으로 태어났지만, 전무하다시피 한 재능 탓에 동생인 차남에게 밀려나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하는 그를 모두가 멀리할 때, 오히려 더욱 가까이 다가와 그를 보듬어준 것은 그러한 이유 때문이리라.

         

       만약 자신이 끼어들지 않았다면 그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연인이 되어 사랑을 나누었겠지.

         

       “네게 이 모든 걸 설명하고, 납득시킬 자신이 없었어.”

         

       함께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백우진은 그녀를 속절없이 좋아하게 되었다.

         

       그것이 마침내 임계점에 다다랐을 때, 그는 횡설수설하며 제 마음을 내비쳤고, 그녀는 멋대가리라곤 하나도 없는 그 고백을 받아주었다.

         

       행복했다.

         

       그녀와 함께하는 모든 순간이 더없이 행복하고, 따뜻했다.

         

       차가운 골방에 혼자 틀어박혀 있을 때는 알지 못했던 온기에 흠뻑 취했다.

         

       그러나 동시에 불안했다.

         

       그녀가 멋없는 고백을 흔쾌히 받아들인 건 자신이 이안 발데스의 몸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녀는 자신이 빙의하기 이전의 이안 발데스를 사랑하고 있었으니까.

         

       “네게 나란 사람이 소중한 사람을 빼앗아 간 원수로 내비치는 게 무서웠기도 했고.”

         

       이안 발데스가 사경을 헤매고 있을 때, 그의 몸을 꿰찼다.

         

       당시의 그는 원주인이 죽었기에 가능한 빙의였을 거라 생각했지만, 지금은 모르겠다.

         

       과연 자신이 빌어먹을 삼류 작가의 눈에 띄지 않아 빙의가 되지 않았다면.

         

       그는 기적적으로 생환하여 안젤리카와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았을까.

         

       어쩌면 자신은 그녀의 소중한 사람을 빼앗은 원수가 아닐까.

         

       반대로 생각해서 자신이 만약 그런 상황에 놓였다면, 그 사람을 용서할 수 있을까.

         

       이안 발데스의 얼굴로 그녀에게 용서를 구하는 게 그녀에게 더 상처가 되진 않을까.

         

       “네게서 보이지 않는 게 더 낫다고 판단했어.”

         

       또한.

         

       “더 이상 널 보고 있을 자신이 없었기도 했고.”

         

       두 가지 생각이 맞물리니 결심은 생각보다 빨리 섰다.

         

       그곳은 그가 쭉 살아가기에 너무나도 좋은 세계였다.

         

       용사의 과업을 성공적으로 달성했으니, 평생을 구국의 영웅으로서 살아갈 수 있을 테니.

         

       “그런데 전부 부질없게 느껴지더라고.”

         

       그녀는 그가 찾아올 수 있게 적당한 거리에서 지켜본 거였지만, 백우진에겐 아니었다.

         

       빼앗은 몸뚱어리로 얼마나 즐기며 사는지 감시하고, 경멸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때의 그는 세상 모든 사람의 시선보다, 그녀의 시선 한 쌍이 더 무섭고, 무거웠다.

         

       그녀에게 용서를 구할 수도 없고, 그 시선을 감내하며 살아갈 자신도 없었다.

         

       “그래서 돌아갔어. 내가 원래 살던 세계로.”

         

       백우진은 쓰게 웃으며 두 팔을 벌렸다.

         

       “또 이런 신세지만.”

         

       그녀는 이런 자신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또 누군가의 몸을 빼앗고, 그 몸으로 다른 여인과 연을 맺은 자신을 어떻게 바라볼까.

         

       궁금했지만, 궁금해하고 싶지 않았다.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천마가 입을 열었다.

         

       “내겐 네가 한 말이 전부 변명처럼 들린다.”

         

       용서를 구하기엔 낯짝이 두껍지 않았다고?

         

       “진정 날 사랑했으면 어떻게든 두껍게 만들었어야지.”

         

       모든 상황을 설명하고, 납득시킬 자신이 없었다고?

         

       “진정 날 사랑했다면 일 년이 걸리든, 십 년이 걸리든, 날 납득시켜야 했다.”

         

       사랑하는 사람에서 소중한 사람을 빼앗아 간 원수가 되는 것이 싫었다고?

         

       “적어도 진짜로 내가 널 그리 생각하는지, 한 번이라도 물어봤어야 했단 말이다.”

         

       그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고통, 슬픔, 절망, 분노, 실의.

         

       그가 떠난 이후 그녀를 지독하게도 괴롭힌 감정들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러지 않았음은, 단순히 네 사랑이 그만큼 깊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의 두 눈에서 눈물이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그것은 턱밑에 닿기도 전에 증발하여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눈물을 메마르게 한 것은 끓어오르는 그녀의 기운이었다.

         

       천하제일인이라 칭하기에 한 치의 부족함 없는 거대한 기운이 그녀의 몸에서 터져 나왔다.

         

       “그러니 묻겠다.”

         

       그녀의 몸에서 흘러나온 검붉은 기운이 한데 뭉쳐 하나의 형상을 이루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검이었다.

         

       마음만 먹으면 세상 전체를 도륙 낼 것만 같은 흉흉한 예기를 머금은 검.

         

       그 끝이 백우진을 향해 겨누어졌다.

         

       “네놈은 진정 날 사랑했느냐?”

         

       그와 동시에 검붉은 검의 끝부분이 백우진의 목 안으로 파고들었다.

         

       “사랑한다고 말하면 죽일 것이고, 그렇지 않다고 하면 살려주마. 또한 네놈이 원하는 대로 이곳을 벗어나게도 해주겠다.”

         

       그녀는 반드시 듣고 싶었다.

         

       “다시 묻겠다.”

         

       저 가증스러운 입에서 나오는 진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을.

         

       “이안…, 아니, 백우진. 네놈은 날 사랑했느냐.”

         

       서슬퍼렇게 내던져진 물음.

         

       백우진의 입가에 천진난만한 미소가 그려졌다.

         

       지금 상황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미소와 함께, 그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응.”

         

       그 순간.

         

       불길하게 타오르던 검붉은색 검이 그의 목을 꿰뚫고 지나갔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늦어서 죄송합니다.

    지난 편에 최근 중에서 가장 많은 댓글이 달렸더군요.

    그럴 거라 예상은 했습니다.

    어… 이 부분은 제가 이 글을 처음 구상할 때부터 생각하고 있었던 장면이었습니다.

    이따금 글 중간중간에 첫 번째 빙의 때를 회상하는 장면들이 여럿 나온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이었고요.

    주인공을 빙의 2회차로 설정한 것엔 이러한 이유도 섞여 있습니다.

    다들 과거의 인연이 어떤 식으로든 등장할 거라 예상은 꽤나 하신 것 같은데, 천마는 용의선상에서 제외하셨나 봅니다.

    나름 기분이 나쁘지 않음과 동시에 내가 너무 떡밥을 덜 흘렸나 싶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글이라는 건 정말 쓰면 쓸수록 더 어려워지는 것 같네요.

    호기롭게 도전했다가 현실을 마주하게 되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드리프트다, 이건 좀…, 하시는 분들께는 죄송하다는 말씀 전합니다.

    그러나 저는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하여 언젠가는 여러분께 시종일관 재밌는 소설 한 편 보여드릴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하겠습니다.

    오늘 하루도 고생 많으셨고, 저는 내일 또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매번 감사합니다.

    편안한 밤 되셔요. (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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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Completed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sent a 5,700-character message and ended up transported into a novel world once. Then after returning, I got reincarnated into a second martial arts novel by the same damn author. Only this time, I really didn’t write an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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