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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99

       오랜 준비 끝에, 마침내 데카르트 공작령에 축제가 열렸다.

         

       축제의 규모는 황도에서도 보기 힘들 정도로 방대했고, 기간도 한 달이나 되었다.

         

       이것만으로도 평범한 축제가 아닌데, 여기서 놀라운 점이 더 있다.

         

       축제가 진행되는 한 달간 공작령의 주민들이 먹는 모든 음식과 술은 데카르트에서 부담하기로 했다.

         

       또한, 공작령의 사람들이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잊지 못할 추억을 새겨주기 위해서 많은 준비가 들어갔다.

         

       불꽃놀이, 상영회, 오페라, 뮤지컬 등등.

         

       무지막지한 금액이 깨지긴 했지만, 타격은 전혀 없었다. 프란체 코퍼레이션의 상업과 마석 사업, 마도 혁명으로 인해 남아도는 게 돈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커다란 마차를 준비해 행진을 기다리고 있다.

         

       “시간이 아직도 안 됐나?”

       “조금 남았어.”

         

       데카르트 공작가를 상징하는 예복을 입고, 프란체와 나란히 서 있다. 엘와 에나는 각각 우리 품에 안겨있었다.

         

       “부.”

         

       내게 안긴 에나가 조그마한 팔을 내밀었다. 이어서 턱을 쓰다듬더니, 방긋 웃었다.

         

       “부우!”

         

       아직 아빠라고 불러주지 않은 건 아쉬워도 그렇다 치는데, 문득 의문이 들었다.

         

       ‘왜 나보다 프란체를 더 좋아하지?’

         

       보통 아이들이 엄마를 더 좋아하는 경우가 많긴 하지만, 그건 선천적이 아닌 후천적인 이유다.

         

       이런저런 이유로 아이들과 유대감을 쌓는 시간은 엄마가 압도적으로 많으니 말이다.

         

       그래도 나는 충분한 유대감을 쌓았다고 생각했는데, 어째서 아빠라고도 불러주지 않고 프란체만 좋아하는 건지…….

         

       억울할 지경이라 어깨가 축 늘어졌다.

         

       “너무 풀이 죽지 말렴.”

         

       프란체가 키득거리며 내 어깨에 얼굴을 기댔다.

         

       “엘이랑 에나가 아빠를 싫어하는 건 아닐 거야. 널 보면 바로 웃잖아?”

         

       그건 맞긴 하다. 내가 오면 항상 격할 정도로 반겨주고 미소를 짓는 건 맞으니까.

         

       그래도 아빠라는 말이 듣고 싶었다.

         

       “언젠가 아빠 소리를 들을 수 있겠지…….”

         

       아쉽지만 때를 기다리는 수밖에.

         

       “너무 상심하지 마. 내가 있으니까.”

         

       쪽. 프란체가 내 뺨에 입술을 맞췄다. 약간의 서운함과 억울함이 단번에 사라졌다.

         

       “효과를 보니 매번 이렇게 부탁해야겠네.”

       “으응? 벌써 애들 동생 생각하는 거야?”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매섭게 바라보는 프란체. 순간 등골이 오싹했지만…….

         

       “크흠, 프란체가 원한다면 언제든지.”

         

       나도 좋은 건 마찬가지인지라 고개를 주억였다.

         

       “흐응. 나는 다섯까지 생각 중이긴 해.”

       “다, 다섯?”

         

       일순 당혹감에 말을 더듬어버렸다.

         

       “왜, 싫어?”

       “아니. 그것보단 프란체에게 무리가 가지 않을까?”

       “그건 걱정하지 마. 나도 반쯤 초월자니까.”

         

       달리아가 기적을 일으키고, 나와 존재 자체가 엮여버린 프란체는 초월자의 힘을 다소 받아들였다.

         

       그러면 문제는 없긴 하겠다만…….

         

       “아무튼, 나는 다섯까지 낳을 거야. 그렇게 알고 있어.”

         

       제안이 아니라 통보였구나.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수락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프란체와 사소한 잡담을 나누던 사이.

         

       “공작님, 공작부군님! 준비가 끝났어요!”

         

       축제를 알리는 시간이 되었다.

         

         

       * * *

         

         

       데카르트 공작령의 중앙 길.

         

       유동 인구가 많으면서도 영지에서 상업적으로 가장 발달한 구역이다.

         

       공작령의 영지민들이 좌우로 갈라졌고, 중앙으로 커다란 마차가 들어섰다. 그 위에는 이 영지를 다스리는 공작과 공작부군이 아이들을 품에 안고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들의 미소에는 한 치의 거짓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행복이 품어져 있었다.

         

       환호로 맞이하는 영지민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데카르트 공작령은 세율이 낮고 살기 좋은 영지인지라, 모두가 풍족하게 살아갈 수 있는 까닭이었다.

         

       존경해야 마땅한 대귀족의 품격을 보여주는 그들의 2세 탄생을 기뻐하지 않을 영지민들은 없었다.

         

       곳곳에서 환호가 울려 퍼졌고, 길거리 악단이 연주를 시작했다.

         

       소리가 섞여 다소 기괴한 음악이 되었지만, 사람들은 이 순간을 조금이라도 더 즐겨야 했던지라 사소한 건 신경 쓰지 않았다.

         

       그리고 한 주점의 앞. 라데아가 우물거리며 말했다.

         

       “이런 축제를 한 달 동안 여는 게 말이 돼요? 사실 공작가는 내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잘 사는 건가…?”

         

       그녀가 입에 넣고 있는 건 갈색으로 노릇노릇 구워진 꼬치구이. 벌써 라데아의 자리에만 열 개가 넘는 꼬챙이들이 놓여 있었다.

         

       “충분히 가능해. 공작가에 남아도는 게 돈이니까. 제국의 상업은 전부 데카르트가 장악했고 마도 혁명으로 인한 마석 사업도 있는데, 마탑에서는 발명까지 해서 마도구들을 팔고 있으니까.”

         

       카자르가 대답했다. 라데아의 의문을 단번에 해소해주는 답변이었다.

         

       “와, 그 돈이 얼마나 되려나.”

       “상상도 못할 만큼.”

       “…….”

         

       라데아의 입이 일자로 다물렸다. 이런 축제를 벌이고도 타격이 없을 정도면 대체…….

         

       그녀로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천문학적인 금액이었다.

         

       “근데 저희는 이렇게 있어도 되는 건가요? 너무 느긋한데…….”

         

       입술을 내밀며 고개를 기울이는 달리아. 케일이 맥주잔을 내려놓곤 말했다.

         

       “치안 문제는 엑시드라는 제국 최고의 암흑 길드가 맡아주고 있다. 우리가 나설 필요도 없어.”

         

       케일은 그리고, 하며 말을 이었다.

         

       “기사들이나 위병들이나. 모두 영지민인 건 마찬가지니 즐기라고 한 건 공작부군의 말이었잖나.”

       “그건 그렇긴 한데요. 이 정도 인원인데 위병이나 기사단을 동원하지 않아도 된다니, 좀 걱정되네요…….”

         

       카자르가 염려로 가득한 달리아의 어깨를 토닥였다.

         

       “너무 불안해 하지 마세요. 마탑의 마법사들이 역장을 펼쳐서 수상한 움직임이 발각되면 바로 경보가 울릴 테니까요.”

         

       그렇다. 이미 필요한 모든 건 손을 써둔 상태였다.

         

       “축제가 열리는 장소 한정으로 감시 역장 마법을 펼쳐두고, 그걸 유지하기 위해 마석들을 배치해뒀어요. 그러니 큰 문제는 없을 거예요.”

         

       여타 영지와 달리 공작령의 면적은 말도 안 되게 넓은지라, 전체에 감시 역장을 펼치는 건 일반적으로 불가능하다.

         

       다만 그건 일반적일 때의 이야기.

         

       공작령에는 마탑을 필두로 한 수많은 마법사들이 존재하며 초월 마법사인 카자르도 있다.

         

       마석도 남아도는지라 마력이 부족할 일도 없었고.

         

       “와, 그렇게까지. 대단하긴 하네요.”

       “괜히 휴가를 주신 게 아니죠.”

         

       달리아의 감탄에 카자르가 높아진 콧대로 어깨를 으쓱였다. 조용히 안주를 해치우던 케일이 고개를 까딱였다.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다 먹었으면 다음 식당으로 가지. 오늘은 전부 공짜다.”

         

       케일이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한 달 동안 공작령에 존재하는 모든 주점을 빠짐없이 다 방문할 생각이었다.

         

       “…신나셨네.”

       “따라가죠.”

       “다음은 어디려나.”

         

       다른 이들도 그에게 따라붙었다. 단순히 함께 움직이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어째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케일이 유독 맛집을 잘 찾아내는지라 따라가서 손해 볼 건 없던 까닭이었다.

         

         

       * * *

         

         

       길었던 행진이 끝나고, 우리는 가족의 시간을 가졌다.

         

       엘과 에나는 길거리를 구경하는 게 즐거운지 입가에서 미소를 떼놓지 않았고, 프란체는 그런 아이들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거리에는 음유시인이 부르는 노래가 울려 퍼졌고, 어린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영지민들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했고 안색 또한 환히 밝았다.

         

       “다들 잘 즐기고 있는 걸 보니 흐뭇하네.”

         

       프란체가 쿡쿡거리며 웃었다.

         

       “그러게. 다들 신났어.”

         

       사실 축제를 연 이유는 그저 우리 쌍둥이가 프란체를 엄마라고 불러준 사소한 이유에 불과했지만…….

         

       다 행복하고 좋아 보이는데, 인제 와서 이유는 무슨 상관이랴.

         

       어찌 되었건, 모두가 우리 쌍둥이의 탄생을 축하해줄 것이다.

         

       “어마! 어마!”

         

       길을 걷던 도중 별안간 내게 안긴 에나가 프란체를 향해 팔을 뻗었다.

         

       “어마!”

         

       아무래도 아빠인 나 말고 엄마의 품에 안기고 싶은 듯했다.

         

       “…나 서운해.”

         

       어깨가 축 늘어졌다. 왜 아이들은 나를 별로 안 좋아하는 거 같지…….

         

       이 모습을 본 프란체는 그저 쿡쿡거리며 웃었다. 쌍둥이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게 좋은 듯했다.

         

       “에나, 엄마가 그렇게 좋아?”

       “우!”

       “아빠는 싫어?”

       “부.”

         

       에나와 대화를 마친 프란체가 내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싫어하는 건 아닌데, 아빠는 좀 무섭대.”

       “…그걸 알아들었어?”

       “아니? 그냥 그런 느낌이야.”

       “…….”

         

       프란체도 날 놀리는 게 틀림 없다. 엄마라서 뭔가 다른 건가 싶었는데.

         

       “엘, 에나? 아빠도 좋지?”

       “우.”

       “우.”

       “이것 봐. 아빠도 좋아한다니까?”

         

       어깨를 으쓱이며 미소짓는 프란체. 그녀와 아이들의 무결한 웃음에 차마 불평을 내뱉을 순 없었다.

         

       “그런데 엘이랑 에나가 피곤한가 보네.”

         

       프란체가 아이들의 이마에 입을 맞추곤 옅게 웃었다.

         

       “눈에 잠이 가득 들었어.”

       “오늘 행진하고 돌아다니느라 피곤했나 보다.”

       “그럼 슬슬 돌아갈까?”

       “그러자. 어차피 시간은 많으니까.”

         

       거의 잠들기 직전인 엘과 에나를 데리고, 우리는 저택으로 돌아왔다.

         

       사용인들과 기사들에게도 휴가를 내어준지라, 넓은 저택이 싸늘하다 싶을 정도로 고요했다.

         

       엘과 에나를 데리고 침실로 이동했다. 아이들을 자연스레 침대에 눕혀두고, 우리도 옆에 누워 조용히 쌍둥이를 바라봤다.

         

       “너무 사랑스럽다.”

         

       프란체가 입꼬리를 광대에 걸치며 말했다. 눈살이 부드럽게 휘어진 것이, 엘과 에나를 보고만 있어도 좋은가 보다.

         

       “그거 알아? 에나는 진이랑 완전 닮은 거.”

       “알고 있지.”

         

       우리 쌍둥이는 기본적으로 내 금안을 가지고 태어났는데, 신기하게도 에나는 흑발을 가지고 있었다.

         

       데카르트의 상징인 짙은 붉은 머리가 아닌 건 이례적인 일이었다.

         

       “에나는 정말 미인이 될 거야.”

       “엘은 프란체를 닮아서 미남이 될 거고.”

         

       프란체가 내 어깨를 때리며 꺄르르, 웃었다. 아첨이 그렇게 기분 좋았나.

         

       그러다 문득 그녀가 입술을 머금었다.

         

       “우리 아이들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좋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사랑을 줘야지…….”

         

       프란체는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손으로 아이들을 토닥였다.

         

       나는 그녀의 일렁이는 에메랄드빛 눈동자를 바라보며 고개를 주억였다.

         

       “최선을 다하자.”

       “당연히 그래야지.”

         

       우리는 서로 이마를 맞대며 눈을 감았다. 행복한 시간이 주는 몽롱한 기분을 느끼고 있던 그 순간.

         

       “어마!”

       “어마!”

         

       엘과 에나가 깨어났다.

         

       “어, 우리 쌍둥이들 깼어요? 엄마는 여깄어요.”

         

       프란체가 싱긋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엘과 에나는 꺄르르, 웃으며 그녀의 손에 시선을 고정했다.

         

       “엘, 에나? 아빠도 있는데…….”

         

       풀이 죽은 채로 조심스레 말하자, 쌍둥이의 시선이 내게로 옮겨졌다.

         

       그리고…….

         

       “아바!”

       “아빠!”

         

       처음 아빠라는 소리를 들었다.

         

       “!!!”

         

       내 눈이 휘둥그레졌다. 가슴이 터질 것처럼 뛰었다. 기다리고 기다려왔던 아이들의 아빠 소리를 들은지라, 방긋 미소가 지어졌다.

         

       “그래, 아빠 여깄어요! 엘, 에나!”

         

       얼굴을 맞대며 뺨을 비비자 엘과 에나는 이번에도 꺄르르, 웃었다.

         

       “봐. 아빠 좋아한다니까?”

         

       프란체가 방긋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흐,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너무나도 기쁜 나머지, 감정이 북받쳐 올라 눈물이 찔끔 나왔다.

         

       “뭐야, 울어?”

         

       프란체가 내 뒷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따스한 손길이었다.

         

       “우리 남편이 가끔 귀여운 구석이 있네.”

       “아니, 왜 눈물이…….”

         

       아득히 멀어, 차마 시간으로 환산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랜 시간 전부터 이 행복을 바라왔다.

         

       사랑하는 그녀와 가정을 꾸리고, 사랑스러운 아이를 낳고, 가족이 모여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근심이나 걱정 따위 없는, 느긋한 삶.

         

       가슴이 북받쳐 오른 이유는 단순히 아이들이 아빠라고 불러줘서 그런 게 아닐지도 모르겠다.

         

       나는 눈물을 머금고 픽 웃었다.

         

       이 행복이 계속 이어지기를.

         

       아니, 계속 이어질 것이다.

       

       내가 그리 만들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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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악역 영애를 키우고 도망쳤다
Score 8.6
Status: Ongoing Author:
I made a villainess destined for death into the most powerful person in the empire and then f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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