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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99

       파티가 막바지에 다다를 때까지, 나는 한참을 숨어다녔다.

        

       문제는 하필이면 내가 붉은색을 테마로 잡아버렸다는 것이다. 이 강렬한 원색 드레스는 내가 어디로 가건 눈에 띄었고, 어디에 숨어있어도 눈에 띄었다.

        

       사람들 사이에 숨어있다고 내가 어디 있는지 찾을 수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지, 하늘이와 수아는 그 이후로 나에게 접근하지는 않았다. 내가 혼란스러운 상태라는 것을 헤아려준 것일까?

        

       어디 있는지 보이긴 했다. 사실 두 사람의 눈이 계속 나를 쫓고 있어서 도망간 것이기도 하다.

        

       이렇게 넓은 곳인데, 숨을 곳이 없다는 것이 아이러니했다.

        

       그렇다고 파티장을 벗어날 수도 없다. 조금 전처럼 잠깐 방에 들어가서 쉬는 것은 그렇다 쳐도, 파티의 주인공인 내가 사라져서는 안 되니까.

        

       “아, 사라구나.”

        

       그래서, 그렇게 말을 걸어주는 사람이 고마울 지경이었다.

        

       “많이 컸구나. 나는 조금 늦게 와서 아까 대화는 하지 못했는데…… 내가 누군지 알겠니?”

        

       조금 살집이 있는 중년의 여성이었다. 젊었을 적에는 미녀였을 듯한 인상이었다. 어쩌면 두꺼운 화장을 지우면 훨씬 더 나이 들어 보일지도 모르지.

        

       사실, 누군지는 전혀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내 상황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은 알겠다.

        

       솔직히, 그 사람과 한 대화 내용이 기억에 남지는 않았다. 나에게 자기 이름과 나와의 관계를 소개하기는 했지만…… 먼 친척인데다, 내 신경이 향한 곳은 이 사람과 마주 보는 방향이 아닌, 완전히 반대 방향이었으니까. 나를 계속 눈으로 좇고 있는 하늘이와 수아가 있는 방향.

        

       그래도, 이야기는 꽤 길게 나누었다고 생각한다. 반쯤은 그냥 대답하는 기계처럼 유체 이탈 화법을 쓰긴 했지만.

        

       “이런, 내가 시간을 너무 빼앗은 것 같구나. 파티 즐겁게 보내렴.”

        

       “네, 그러면 다음에 또 뵐게요.”

        

       그렇게 길게 늘어지던 대화를 끝내고, 나는 다시 정처 없이 파티장을 돌았다.

        

       그렇게 돌다가—

        

       뭉클,

        

       하고, 뭔가 엄청나게 부드러운 것에 그대로 얼굴을 묻어버렸다.

        

       처음 생각난 것은 베개였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베개는 이렇게까지 뭉클거리진 않는다. 푹신하다면 또 모를까. 겉의 천 때문에 헷갈리기라도 한 모양이다.

        

       ……그리고, 그 천은 붉은색이었다.

        

       드레스를 만들어도 될 정도의, 고급스러운 원단.

        

       아니, 말할 것도 없이, 그냥 원단이 아니라 드레스 그 자체였다.

        

       뭔가 몽실몽실한 것을 감싸고 있는 드레스.

        

       천천히, 굳어버린 목을 억지로 움직이듯 위를 올려다보니, 소희가 나를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사라야, 무슨 일 있어? 얼굴이 빨갛네.”

        

       “어, 아, 어…….”

        

       그래, 나와 함께 지내는 세 명 중에서는 유일하게 나에게 고백하지 않은 아이였다.

        

       아니지, 어쩌면 ‘아직은’ 안 한 것인지도 모르지.

        

       혹시 몰라서 그렇게 열심히 피해 다녔는데, 하늘이와 수아가 있는 방향을 너무 신경 쓴 나머지, 나는 소희를 미처 피하지 못한 것이다.

        

       “안 되겠다.”

        

       내가 이상한 신음만 흘리자, 그게 위험 신호라고 생각했는지 소희는 나의 어깨를 잡았다.

        

       그리고, 살짝 부축하는 것 같은 자세로 만들었다.

        

       “자, 가서 조금만 쉬자.”

        

       아니, 분명히 아까 전까지 쉬고 있었는데.

        

       물론 쉬어도 쉰 것 같은 기분이 들지는 않았지만.

        

       소희는 부드럽게 내 몸을 밀었다. 강한 힘이었지만, 그렇다고 내 의사를 존중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소희에게 기댄 채 조심스럽게 발을 옮겼다.

        

       주변의 시선이 내 쪽으로 꽂혔다.

        

       그야 당연하다. 이 파티의 주인공인 내가,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부축받고 있었으니까.

        

       “사라가 어디 아프기라도 한가?”

        

       ‘삼촌’이 다가와서 물었다. 아주 당연하다는 듯 소희에게 물어보는 것을 보면, 소희가 나의 메이드라는 것은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소희에게 완전히 기대서 있었고.

        

       아, 어쩌면, 머리에 피가 몰려서 얼굴이 새빨간 내가 정말로 아프게 보였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네, 그런 것 같습니다.”

        

       드레스를 입고 있는 소희가, 평소에는 잘 보여주지 않는 메이드 모드로 말했다.

        

       “그렇군. 그럼 편히 쉬어라. 여기는 내가 있을 테니까. 무리해서 자리를 지킬 필요는 없어.”

        

       ‘삼촌’은 부드럽게 말했다.

        

       ……사실 아직 의심스러운 부분이 많은 사람이었으니, 이 자리는 내가 지키는 것이 옳겠지만…….

        

       그래, 어쩔 수 없다. 여기 서 있어 봐야 도움이 되지 않을 테니까.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

        

       소희가 나를 데리고 온 곳은, 1층의 어느 방이었다.

        

       차라리 처음부터 이 방을 찾았으면 좋았을 텐데.

        

       “사용인 숙소 중 하나야. 어제는 학생들이 묵었고. 짐은 따로 보관 중이니까, 잠시 침대에 눕는다고 뭐라고 할 사람은 없을 거야. 뭐…… 하긴, 여기가 너의 집이라는 걸 생각하면 뭐라고 해도 의미가 있을까 싶다.”

        

       소희는 침대에 나를 조심스럽게 눕혔다. 그리고 이마에 손을 얹었다.

        

       “그렇게 열이 심하지는 않아.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해열제라도 찾아올까?”

        

       “아니…… 아냐, 그럴 것까지는 없어.”

        

       그래도 누우니까 훨씬 낫기는 했다. 사실 해열제까지는 필요 없을 거다. 병에 걸린 게 아니라 그냥 생각이 많아서 머리가 아픈 거니까.

        

       “그래?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나는 여기 있을게.”

        

       소희는 근처에 있던 의자를 끌고 와서 침대 옆에 앉았다.

        

       “…….”

        

       “…….”

        

       잠깐 두 사람 다 말이 없었다.

        

       “크흠.”

        

       소희는 그 상황이 조금 어색했는지, 그렇게 헛기침했다.

        

       ……생각해보면, 나는 소희와 단둘이 있었던 적이 거의 없는 것 같다. 수아나 하늘이는 그래도 단둘이 있었던 기억이 있는데, 이상하게 소희에게만 그런 기억이 없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소희와 처음 만나는 순간부터, 나는 수아와 하늘이와 같이 있었으니까.

        

       “…….”

        

       “…….”

        

       잠깐 침묵이 이어지다가,

        

       “아, 그래.”

        

       소희가 그 침묵을 깨고 싶기라도 했는지, 얼른 말을 걸었다.

        

       “하늘이랑 수아한테는 이미 선물을 받았나 봐?”

        

       아마 내 손과 목에 걸려있는 것을 보고 그런 말을 하는 것일 거다.

        

       “……응.”

        

       차마 두 사람과 키스했다는 말은 하지 못했다.

        

       그래도 반지를 다른 손가락에 옮겨 낀 것은 현명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약지에 끼고 있었다면, 소희 말고도 다른 사람들이 내 이변을 눈치챘을 테니까.

        

       “사실 이런 걸 보는 법은 선배한테 배웠어. 주인의 변화는 바로바로 알아차려야 한다면서.”

        

       ……그 말은 즉, 양혜인도 알고 있다는 소리일 거다.

        

       어쩌면 양혜인은 그것보다 더 많은 변화를 눈치챘을지도 모르겠다.

        

       그 생각을 하며 내가 몸을 부르르 떨자, 소희는 고개를 푹 숙였다.

        

       “그, 조금 소름 끼쳤나?”

        

       “아, 아냐, 아냐.”

        

       눈을 살짝 치켜뜨고 조심스럽게 나를 보는 소희에게, 나는 얼른 손사래를 쳤다.

        

       그리고 상체를 살짝 일으켜 앉았다.

        

       그래도 정당하게 이유를 대고 침대에서 쉬고 있으니, 훨씬 마음이 편했다. 어질어질했던 머리도 조금은 진정되었다.

        

       “괜찮아. 나를 위해서 그렇게 공부했다는 거잖아?”

        

       “그, 그렇지.”

        

       내 칭찬을 들은 소희는 얼굴을 살짝 붉혔다.

        

       그리고 크흠, 크흠, 하면서 목을 다시 가다듬었다.

        

       “그, 그래서 말인데, 나도 주고 싶은 게 있어.”

        

       “생일선물?”

        

       “그래.”

        

       소희는 고개를 끄덕인 다음, 팔을 들어 보였다.

        

       소희의 왼팔에는 팔찌가 두 개 끼워져 있었다. 가느다란 금색 팔찌였다. 태닝 된 것처럼 살짝 어두운색의 소희 피부에 굉장히 잘 어울렸다.

        

       소희는 그중에 하나를 벗었다.

        

       “그, 일부러 두 개를 샀는데, 아무래도 들고 오기에는 넣을 곳이 없어서 내가 차고 있었어. 미안.”

        

       “아, 아냐.”

        

       나는 얼른 그렇게 말하며 한쪽 팔을 소희 쪽으로 건넸다.

        

       소희는 배시시 웃으면서, 내 팔에 팔찌를 끼워주었다.

        

       금색 팔찌가 빛을 받아 반짝였다.

        

       “예쁘네.”

        

       사실 나는 이런 것을 보는 눈이 없었다. 그냥 팔찌구나, 반지구나, 목걸이구나, 하고 판단하는 수준이 다랄까.

        

       그래도, 이 아이들이 얼마나 심사숙고해서 골랐는지는 알 것 같았다. 전부 굉장히 심플하고, 내가 괜찮다고 생각할법한 디자인이었으니까.

        

       “고마워.”

        

       “아니지, 내가 고맙다고 해야지.”

        

       “그런가?”

        

       소희는 그렇게 중얼거리더니 웃었다.

        

       뭐랄까, 어떤 고민도 없어 보이는, 순수한 웃음이었다. 웃음이라는 단어를 그대로 사람 표정으로 옮겼다고 해야 하나…… 아니지, 묘사가 조금 이상한가? 웃음이라는 단어 전에 누군가가 처음으로 웃었으니 그런 말이 생겼을 텐데.

        

       뭐, 아무래도 상관없나.

        

       “…….”

        

       “…….”

        

       그리고 다시 침묵이 찾아왔지만, 딱히 어색하지는 않았다. 기분 좋은, 따뜻한 침묵이었다.

        

       “……후우.”

        

       소희가 가슴에 손을 얹고, 숨을 살짝 내쉬었다. 제대로 전달되어서 다행이라는 기분이 물씬 풍겼다.

        

       ……하지만, 사실 소희가 그렇게 숨을 내쉰 것에는 이유가 더 이유가 있었던 모양이다.

        

       바로 직후에, 소희는 다시 숨을 깊게 들이마시더니, 이렇게 말했다.

        

       “나, 사실은 레즈비언이야.”

        

       “……어?”

        

       “남자가 아니라, 여자를 좋아해.”

        

       “……어어?”

        

       아니, 잠깐만.

        

       그런 이야기를 나한테 하는 것은……

        

       이유야 딱 하나밖에 없지 않겠는가.

        

       조금 전까지 진정되었던 머리로, 다시 피가 몰렸다. 얼굴이 살짝 붉게 상기되었다.

        

       “……혹시, 이상하다고 생각해?”

        

       소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 두 눈은 불안함으로 떨리고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날로먹게해주세요님, 후원 감사합니다!

    제가 소설을 여기까지 쓸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저의 소설을 읽어주시는 독자 여러분 덕분입니다! 혼자 쓰기만 하면 금방 흥미를 잃어버리지만, 저의 글을 읽어주시는 분이 이렇게 많다는 것을 알고 난 뒤로는 계속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작가가 쓰는 글에 가진 애정은, 읽어주시는 독자 여러분 덕분에 나오는 거겠죠. 매일 혼자 글을 썼다면 지쳐 나가떨어졌을 것이 분명합니다.

    오늘 저의 소설을 읽어주신 분들, 그리고 앞으로도 저의 소설을 기다려주실 분들이 계시기에, 그렇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저는 오늘도 이렇게 글을 쓸 수 있었습니다. 글 쓰는 것은 즐겁지만, 최소한의 의무감과 노력이 없다면 글은 써지지 않는 법이니까요. 세상에 스스로 완성되는 글은 없습니다. 작가가 써야만 글은 완성되어 연재될 수 있고, 작가가 글을 쓰게 하는 원동력은 그 쓰인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이 있다는 확신입니다.

    오늘도 저의 소설을 읽어주셔서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매일같이 글을 쓰며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제가 글을 쓰며 느낀 즐거움을, 독자 여러분도 똑같이 느껴주신다면 너무나 감사하겠습니다. 앞으로도 꾸준히 읽을만한 글을 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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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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