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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99

        

         “아… 이 영감님. 또 지랄병 도졌네. 그러니까 저번 그 엔지니어 아재인가도 그렇고, 기웃거리던 손님들이 다 학을 떼고 사라지는 거 아니야?”

         

         “모르는 소리! 승부의 세계에 ‘지랄’ 같은 저급한 단어가 어디 있나? 난 그저 공격적(Aggressive)으로 베팅하는 것뿐일세.”

         

         레이즈(Raise)라 하면, 앞선 다른 사람의 벳보다 칩을 더 거는 행위를 뜻하니. 자신의 최저 베팅을 짓뭉개는 것처럼 느낀 사샤의 빈정거림에도 알프레드 씨는 밀어낸 칩을 거두어들일 생각이 그다지 없어 보이셨다.

         

         일단… 한 번 선언한 베팅을 무른다는 게 가능한지는 둘째치고서라도 말이다.

         게다가 거칠게 뿜어진 콧방귀, 좁혀진 미간, 결정적으로 어떻게 할 거냐는 듯이 이쪽을 힐끔거리는 눈동자까지.

         

         정말 도박장에 어울리는 기선제압 방식이라고 수긍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그가 왜 특별히 득 될 것도 없는 타이밍에 갑자기 이렇게 나오는지가 궁금해졌다.

         

         상식적으로 따지면 뭐 베팅이 여러 번 쌓여서 판이 커진 것도 아니요, 그외 플레이어들이 각자 핸드를 확인하고 제대로 된 반응을 보여주었다고 하기도 어렵다.

         

         뿐만 아니라, 게임은 아직 바닥에 공통 카드(Community Card; 플레이어들이 자신의 핸드와 조합해서 족보를 만들 때 공유하는 카드로, 단계별로 딜러가 뽑아서 오픈함)조차 한 장도 깔리지 않았으니 노인의 패가 강해봐야 얼마나 강하겠는가?

         

         겨우 두 장으로 만들 수 있는 최고의 스타팅이라고 해봐야… 기껏해야 AA 페어?

         ……어이씨? 그렇게 생각하니까 조금 세게 나오실 만도 하네.

         

         문득 예전에 본 바보 같은 공익 광고 사진이 떠올랐다. 손에 로얄 스트레이트 플러시를 쥐고 있는 일생일대의 순간에 ‘이런 카드에 당신의 인생까지 거시겠습니까?’ 하는 멍청한 질문이나 던지던 포스터가.

         

         ‘그게 진짜면 이번 인생은 기본으로 걸고, 다음 생까지 레이즈 해도 괜찮을지도…?’

         

         만약 진짜 패배 확률이 0%인 도박이라면 저 제로조차 자기 머리통까지 대신 걸어달라고 부탁하지 않을까 싶었다.

         

         크흠, 어쨌든! 실없는 상상은 이만해두고. 나머지 플레이어들이 그냥 덮은 핸드를 그대로 반환하면 끽해야 블루 칩 하나 날아가고 마는 게 현재 프리 플랍 단계다.

         

         상대방을 겁먹게 만들어서 크게 이길 기회를 날려버린다는 것과 동일하며.

         추후에 바닥에 깔릴 공통 카드가 더럽게 안 도와주면 지금 뿜어낸 자신감이 그대로 악수가 되어 발을 빼기 힘든 매몰 비용으로 작용할지도 모르는 노릇이었고.

         

         하지만 당장 내가 떠올릴 수 있는 부정적인 측면만 해도 이렇게나 많은데, 정말 여러 방면에서 노익장을 과시하는 알프레드 씨가 이런 걸 몰랐을까? 당연히 알고도 질렀다고 보는 게 맞겠지.

         

         그럼 지금 따져야 하는 건 누구나가 떠올릴 수 있는 합리성이 아닌 이유다. 왜 그가 굳이 시비를 걸어 왔느냐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

         아, 무슨 베팅 액수 하나 가지고 이것저것 어렵게 따지냐고? 맞다. 실제로도 별로 어렵지 않다. 때로는 이처럼 보는 시각을 살짝 바꾸기만 해도 뚜렷하게 정답이 드러나는 경우도 있으니까.

         

         “콜…!”

         

         경쾌한 대답과 동시에. 쌓인 타워에서 레드 칩 두개를 집어 베팅 박스에 넣는 것으로 200만 크레딧 어치 저울의 균형을 맞췄으니.

         콜(Call)이라는 건 상대의 벳이나 레이즈를 수용하는 행위. 즉, 그만큼 돈을 밀어 넣으면서 따라간다는 뜻으로 수동적으로 승부에 임한다는 것이다.

         

         고민하는 동안 슬쩍 확인한 내 핸드는 스페이드 A와 다이아 4로, 사실 전략이고 뭐고 아무것도 수립할 수 없는 애매한 패에 불과했지만 아무튼 간에 노인의 템포를 쫓아갔다.

         

         “……콜.”

         “아이씨! 그런 건 댁이 첫 순서일 때나 지르지 귀찮게 진짜…… 콜!”

         “내 기억나면 참고하지. 체크!”

         

         앉은 위치 상 내 다음 순서를 담당한 슈거 씨가 조용히 도전장을 받으셨고, 한 바퀴 돌아온 순서에 따라 그냥 처음부터 칩을 여러 번 내야 한다는 현실에 귀찮음을 내보인 사샤가 바로 이어서 모자란 금액을 박스에 쌓았다.

         

         그리고 마무리, 레이즈를 실시한 노인이 체크를 선언하는 걸로 순식간에 테이블 팟에는 도합 800만의 피 같은 돈이 모였다. 액수가 큰 칩으로 대체돼서 비주얼적인 위용은 좀 적긴 하다만.

         

         결국 그래서 이 지랄은 다 뭐였냐고? 간단하다. 일종의 신고식인 셈이다.

         세 사람의 앞에 있는 칩 무더기는 얼핏 봐도 억 단위가 넘어 보이는 반면, 이쪽은 슬롯 머신으로 잠시나마 복사기를 돌려 왔음에도 보유액이 2천만 내외.

         

         그런 상황에서 내건 벳이 하필 하이 플로어 예약권을 구매하면 주는 기본 칩과 동일한 액수인 건… 꽤 의미심장하지 않나?

         

         꾸준히 이런 카지노를 다니면서 돈 쓰러 다니는 사람들이라도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고 싶지는 않은 만큼 승산은 따지겠지. 그야 게임은 이길 때 재밌는 법이니 지당한 태도다.

         

         그렇지만 재미나 승산만큼 이들에게 중요한 걸 꼽아보라면 바로 자존심이 먼저 선택될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또 내 전문 분야인 게임으로 비교해볼까? 솔직히, 장시간 매치메이킹 큐를 돌렸는데 급도 안 되는 애가 갑자기 튀어나와서 ‘엌ㅋㅋ 저도 같이 매칭됐으니까, 님들이나 저나 비슷한 실력이죠?’ 이런 채팅을 치고 자빠졌으면. 장담컨대 약한 모세혈관 한두 개는 무조건 파열된다고 예언하겠다.

         

         꼭 놀이 목적이 아니라 정말 욕심이 있는 사람이라 하면, 아까 전의 나처럼 대전 상대의 지불 능력을 테스트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을 게 분명하고.

         

         그나저나… 기본 판돈이 십만은 무슨, 아무도 그렇게 얌전하게 놀 생각이 없으면 거의 있으나 마나 한 제한이잖아.

         저기 딜러 일하고 있는 직원 씨. 여기 게임장은 원래 이렇게 살벌해요? 아니, 대답하기 곤란하다는 것처럼 그냥 웃지만 말고.

         

         “하으….”

         

         목이 바짝바짝 마르는 것 같아서 음료수를 쭈욱 들이켰다.

         도발? 아니면 신인 괴롭히기? 하여간 그 승부에 응해주겠다는 의미로 알프레드 씨를 한 번 노려보고는 다시 정면에 시선을 집중했다.

         

         사실 어느 쪽이나 이제는 상관없으니까. 말 그대로 승패의 향방은 내 손이 아니라 저기에 깔릴 카드들에 달렸는데, 머릿속으로 족보라도 열심히 짜맞추고 있는 게 나을 테니까.

         

         “…허면 플랍(Flop; 공통 카드 3장이 깔리고 두 번째 베팅을 하는 상태)을 진행하겠습니다.”

         

         차락!

         

         덱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고정하는, 케이스에 달린 홀더가 튕길 때마다 나는 금속음이 귀를 간지럽혔다.

         

         플레이어들의 신경전이 끝났다고 판단한 딜러가 조심스럽게 손을 움직여 케이스에서 카드를 뽑은 뒤, 테이블 중앙까지 끌어와서 오픈.

         이걸 독립적으로 4회 반복하는 것으로 좌중의 운명을 담은 공통 카드의 절반 이상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엥? 4회인데 왜 3장이냐고?

         무려 처음 뽑는 건 조작 방지를 위해 버려지는 카드(Burn Card)라고 한다. 지독하기도 하지.

         

         그렇게 해서 최종적으로 나온 카드는… 하트 3, 클로버 6, 스페이드 J.

         우리의 딜러가 얼마나 열심히 덱을 뒤섞으셨는지, 벌써부터 문양이나 수가 중구난방으로 나와서 나는 페어도 없고 플러시를 달성할 가능성은 아예 사라졌네. 음. ……나만 운 없지 아주??

         

         “””…….”””

         

         허나 내가 무심코라도 눈살을 찌푸렸다면 다른 세 사람은 목에 칼이 들어온 것 마냥 냉엄한 기세로 테이블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여태 애인이랑 장난치기 바쁘던 사샤조차 겉으로만 웃고 있을 뿐, 째진 눈이 간헐적으로 자신의 핸드와 테이블을 오가느라 바빴으니 그 긴장감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으리라.

         

         “헤이븐 홀덤에서는 상당히 간략화 된 규칙을 적용하고 있기에, 라운드마다 반시계 순으로 순서가 돌아가나…… 베팅 형평성을 위해 두번째 벳부터는 기존 텍사스 홀덤처럼 최초 베팅자의 오른쪽부터 개시됩니다. 알프레드님 차례이십니다.”

         

         “200만. 벳!”

         

         진행 멘트가 종료되자마자 이어진 기싸움은 여전했다.

         그는 계속 기본 칩이나 이미 팟으로 들어간 칩을 생각나게 만들겠다는 듯이 200만을 추가 투하-폭격-하는 것으로 내 신경을 건드려왔다.

         

         그래, 도박에 있어선 본전 생각만큼 위험한 유혹도 없지 않을까?

         아직 잃은 거 없는 나조차 여기서 접으면 쌩돈 200만이 그대~로 날아가는 잔인한 현실에 속이 뜨끈뜨끈하거늘.

         

         몇 판씩이나 꼬라 박아서 ‘냉정 침착(실은 불타고 있음)’ 같은 상태가 된 이들이 어떻게 저런 도발을 버티겠나? 보나마나 요리조리 관찰 당하다가 이 인간처럼 노회한 플레이어에게 잡아 먹히겠지.

         

         “콜.”

         

         그러는 나는 왜 엉망인 패로 이걸 버티고 앉았냐 하면… 마땅한 대안이 없어서 그렇다.

         베팅 찬스가 잔뜩 남았는데도 벌써 물러나는 모습을 보여서 얕보이기 싫다는 치기가 절반, 나머지 반은 아직까지 미련이 남은 실험 정신으로 메꿔서.

         

         무엇보다 확실하게 담판을 짓지 않으면 압도적인 시드 머니 차이를 이용해서 200만 크레딧짜리 돌을 죽도록 던져댈 텐데 그걸 마냥 맞아주고 있기도 싫으니까.

         

         “……폴드, 이만 죽지.”

         “아으, 징하기도 하지. 폴드!”

         

         ‘오…?’

         

         끝까지 갈 게 뻔한 우리 둘의 싸움에 괜히 더 휘말리기 싫었는지, 거의 문외한이나 다름없는 내 눈으로 봐도 답이 없는 공통 카드 상황에 학을 뗀 건지는 몰라도 슈거 씨와 사샤가 핸드를 던져버렸다.

         

         날아든 카드들이 뒤집히지 않도록 세심하게. 딜러가 구석으로 치워버리는 걸 보면서 나는 내심 감탄했다.

         

         역시 게임이 익숙한 사람들의 판단력은 다르구나.

         진짜 찰나의 순간 동안 나는 같은 문양이나 숫자가 있는 지나 가까스로 살폈는데. 저들은 벌써 바닥은 물론 이후에 이어질 게임의 양상까지 고찰하고 일찌감치 발을 빼다니.

         

         카드가 아니라 같은 테이블에서 여러 차례 게임을 한 노인의 성정을 읽은 결과일 수도 있겠지만, 그것도 오프라인 게임이 가지는 특색을 활용한 이점이라 여기면 납득하지 못할 것도 없었다.

         

         그런 만큼, 아~ 나도 컴퓨터로 플레이하는 수준의 시스템 보조만 받아도 좋을 텐데~ 라는 생각을 떠올린 건 자연스러운 의식의 흐름이었다 그 말씀이다. 딱 네오 헤이븐에 미니 게임으로 내장된 수준의 도움은 바랄 수 있지 않은가? 하며.

         

         덧붙여 그걸 눈치 챈 자칭 가정용 로봇께서 내 중대한 착각을 정정해주는 것도 예정된 수순이었을지도 모르고!

         

         – …원하신다면 핸드와 커뮤니티 카드를 조합해 가능한 최강의 족보(Nut)를 실시간으로 제가 계속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카운팅이 가능한 경우라면 그 확률 또한 얼마든지 연산할 수 있습니다만. –

         

         ‘……어?’

         

         눈이 많고, 관심이 집중된 장소에서는 간섭을 줄이기로 약속했던 제로가 은근슬쩍 개인 메시지를 보내왔다.

         

         내용은 무려 그런 류의 서포팅을 원한다면 자기가 얼마든지 도울 수 있는데 왜 투덜거리고 있냐는 듯한 책망.

         

         있는 자원을 유효하게 활용하지 않고 끙끙대는 건 확실히 굉장히 비효율적이고 이해하기 힘든 풍경으로 그의 스캐너에 비춰지겠지. 그 정도는 쉽게 알아챌 수 있다. 하지만….

         

         ‘야, 내가 지금 직무유기하고 놀고 있기는 해도. 진짜 쫓겨나는 건 좀 곤란하거든?’

         

         얘가 아무리 그래도 큰일날 소리를 하네? 그런 편법 함부로 쓰다가 걸리면 바로 제재 받는 것쯤은 알 녀석이 왜 그런대.

         어쩌면 다 못 받아낸 잭팟 당첨금에 대한 배려로 무마할 수 있을 거라 여기는 건가… 싶었지만, 공전하는 사고에서 모순점을 찾아냈다.

         

         ……어라, 제로는 아까 슬롯 머신 굴릴 때. 나 대신 여기 카지노 규칙을 확인해서 뭐가 가능하고 뭐가 불가능한지 잘 알고 있을 텐데?

         

         – 랑데부 카지노는 게임 팩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고, 플레이어의 의사 결정을 돕는 응용 프로그램이나 임플란트 사용을 허가하고 있다고 뚜렷하게 명시되어 있습니다. –

         

         – 그 증거로 아샤님도 현재 홀덤 안내서를 펼쳐 놓고 플레이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다른 손님들도 확률 연산이나 족보 파악은 프로그램에 맡긴 채 게임 중인 걸로 보이니, 막말로 아샤님도 전용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임하셔도 문제가 없다고 판단됩니다. –

         

         “…….”

         

         잠깐, 후딱 지나간 기억을 되살려보자.

         

         게임에서 나왔던 다른 호화찬란한 카지노처럼 임플란트 비활성화 같은 당연한 절차를 거쳤나?

         아니, 그냥 간단하게 몸수색만 하고 넘어갔다.

         

         그럼 그 대신으로 내부에 방해 전파가 깔려 있는가?

         통신도 잘 터지고 네트워크도 빵빵한데 그게 무슨 멍청한 소리야.

         

         허면 대체 우째서 ‘사이버웨어는 현대인에게 스마트폰이나 다름없다~’ 같은 평가까지 내린 아나스타샤는 그걸 더 적극적으로 써먹을 생각을 안 했을까요?

         

         그건… 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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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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