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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99

     왕국과 제국이 서로 교류를 통해 화해 분위기를 만들어나간다고 해도, 당연히 아직 분란의 불씨는 존재한다.

     왕국에 가장 많이 있고, 제국 내에서도 어느정도 존재한다.

     합스베르크 황제는 그 분란의 불씨를 완전히 잠재우지는 않았다.

     

     무력으로 모든 걸 통일할 수는 있지만, 당장의 피곤함과 귀찮음 때문에 모든 걸 뒤엎어버리지는 않았다.

     -집에 거미 한 마리가 들어왔다고 해서, 집 전체를 훑으며 모기를 찾아다니는 사람은 없는 것과 비슷하지.

     언젠가 황제가 그런 말을 했었다.

     그는 귀찮은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반드시 나서야 하는 상황이기는 하지만, 나서지 않아도 되는 때라면 굳이 나서고 싶지는 않다.

     그렇다면 지금은?

     ‘나서야 할 때.’

     제국 내부에 남아있는 벌레로 위장하여, 제국의 암살자를 연기할 때.

     “큭!!”

     에르난데스가 급하게 검을 막아낸다.

     제국검법의 초식을 정확하게 막아내는 걸로 보아, 황금여명 기사단도 제국군을 상대로 최소한의 훈련은 해온 모양이다.

     ‘그럼 이건 어떨까.’

     

     빠르게 검을 회수하며 앞으로 찌른다.

     정직한 찌르기처럼 보이지만, 나는 손잡이에 달린 장치를 가볍게 누르며 마력을 방출했다.

     파ㅡㅡㅡ앙!

     “!!”

     자신을 향한 찌르기를 옆에서 후려치려고 자세를 잡던 에르난데스의 눈이 커진다.

     순간적으로 반응한 눈은 자신을 향한 칼날에 꽂히고, 칼날은 내 검에서 ‘터져나와’ 자신의 가슴을 향해 날아가고 있다.

     푸ㅡ욱.

     석궁처럼 발사된 검의 칼날이 에르난데스의 가슴에 꽂힌다.

     흉갑이라거나 티셔츠 아래에 사슬갑옷이라도 입고 있었다면 어떻게 덜 깊게 박혔겠지만, 얇은 셔츠 한 벌 정도로는 오러로 사출된 칼날을 막을 수 없다.

     “이….”

     털썩.

     에르난데스가 무릎을 꿇는다.

     심장에 칼날이 박혔음에도 억지로 마나를 이용해 목숨을 유지하고 있지만, 그렇게 몇 초를 더 살아남아봐야 보이는 거라고는 동료들의 죽음 뿐.

     “크아악! 이, 제국의 쓰레기들이!”

     “너희 나라가 멸망한 걸 왜 우리에게, 커헉!”

     백금경과 카를로스의 검은 망설임이 없었다.

     오히려 상대의 부담을 덜기 위해, 자신이 직접 죽이겠다고 의지를 다진 건지 황금여명 기사들을 처리하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그리고 하나 더 이유를 들자면, 이들이 ‘저질렀을’ 행동에 분노가 어느정도 담겨 있겠지.

     “우리를 죽이려는 이유가 무엇이냐.”

     에르난데스가 반쯤 감긴 눈으로 묻는다.

     이미 죽음은 확신하고 있지만, 이유라도 알고 죽고 싶다는 듯한 눈이었다.

     “너희는, 정말로 망국의 후예들인가?”

     “…….”

     “그런데, 왜?”

     상식적으로 제국에서 멸망한 기사들이 렘버리 캠프까지 와서 황금여명 기사단을 공격할 이유는 없다.

     그런 비상식적인 상황에 대한 궁금함이 있겠지만-

     “너희들, 죽는다. 제국의 그림자에 의해.”

     나는 검은옷의 주머니 안에서 종이봉투에 담긴 물건을 꺼냈다.

     “그건…!”

     “제국의 암살부대에 의해, 죽는 것이다.”

     “그렇게 했다가는…!”

     “전쟁.”

     나는 백은가루를 꺼내 에르난데스에게 솔솔 뿌렸다.

     “본인. 평화가 싫다. 전쟁이 좋다.”

     “이, 미친…! 너, 설마…! 용병-”

     푹.

     마나가 다 닳은 에르난데스의 심장에서 피가 철철 흘러나오고, 그는 그대로 힘없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

     나는 말없이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나와 함께 온 암살자들을 향해 손짓을 했고, 곧 체구가 작은 쪽이 바로 계단을 올라갔다.

     수 초.

     “꺄악!!”

     속옷만 간신히 입은 여자 하나가 전신에 멍이 잔뜩 든 채, 눈물을 주륵 흘리며 주변을 훑었다.

     “히, 히익…?”

     기사들이 전부 몰살당했지만, 겁을 어느정도 먹기는 해도 비명을 저지르지는 않는다.

     이런 일을 몇 번 본 적이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아마도 자신도 살해당할 수 있다는 것보다는 ‘잘 뒈졌다’라는 감정이 더 큰 모양.

     “확인해라.”

     “예.”

     여인을 잡아온 그림자가 여인의 하복부를 향해 손을 뻗는다.

     

     위잉.

     곧 마나가 빛을 발했으나, 아무런 반응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닙니다, 보스.”

     “……곤란하군.”

     “죽일까요?”

     “음.”

     카를로스 경이 뒤에서 피 묻은 검을 닦아내려다 마는 시늉을 했으나, 나는 그에게 손을 뻗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불필요. 목적은 달성했다.”

     “확인.”

     우리는 몸을 돌렸다.

     “저, 저기!!”

     뒤에서 여자가 우리를 불렀지만, 우리는 가볍게 무시하고 바로 밖으로 뛰쳐나왔다.

     타ㅡ앗.

     거리를 벌리고, 더 거리를 벌리며 우리가 이미 마련해둔 임시 거처에 도착한 순간.

     “후.”

     나는 가면을 벗었고, 카를로스 경과 백금경 또한 가면을 벗었다.

     “저기, 보스.”

     “주변에 아무것도 없다. 안심해도 돼.”

     나는 일부러 피를 묻혔던 검은옷을 단번에 벗어던진 뒤, 바로 미리 준비해놓은 삽을 들었다.

      

     “이게 무슨 행동이냐고? 아무런 의미없는 행동.”

     땅을 판다.

     “하지만 의미를 부여하려고 한다면, 가능성이 아예 없고 할 수는 없는 행동.”

     삽날에 오러까지 담아 삽질을 하니, 땅이 스푼으로 젤리를 퍼올리는 것처럼 뭉텅뭉텅 흙더미가 주변으로 흩뿌려진다.

     “테르시안 제국의 선대 황제는 13개의 국가를 멸망시키거나 무력으로 복속시켰지. 그 이후로 제법 시간이 많이 흘렀다고는 하지만, 그 정도면 어느 나라 하나는 몰래 왕국 기사단의 분대 하나를 세 명이서 몰살할 정도의 힘을 기를 수 있다.”

     “실제로는 어떻습니까?”

     “그런 거 없어.”

     합스베르크 황제는 철저하게 행동했다.

     그래서 나도 철저하게 행동하기로 했다.

     “카를로스 경. 이곳에, 그레이 지브롤터는 있었나?”

     “아니요. 없었습니다.”

     “지브롤터와 동맹을 맺은 엘프의 최고장로, 그리고 파견나온 지브롤터 기사단의 기사는?”

     “없었습니다.”

     “그래. 저들은 우리가 죽인 게 아니야.”

     누군가에 의해 죽었다는 결론은 나왔지만, 살해범은 결코 우리가 아니다.

     “이르면 1시간 내. 늦어도 내일 아침 10시. 저 여자가 신고를 하지 않는다면, 교관들이 오지 않는 것에 이상을 느낀 본부에서 사람을 파견해서 행방을 찾겠지. 그리고 발견할 거야. 몰살을.”

     의미가 없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려고 하는 것만큼 의미없는 행동이 또 없다.

     “조사가 시작되겠지. 사람이 죽었지만, 학생들은 모를 거야. 왜냐고? 저들이 저지른 행동들이 전부 다 ‘기록’되고 있거든.”

     나는 별장 방향을 가리킨 다음, 손으로 영사기를 찍는 시늉을 했다.

     “사람을 어떻게 한 다음 영상마석으로 녹화를 해서 뭐 어떻게 해보려고 한 모양인데, 그게 드러나면 황금여명 내부에서도 치명타로 작용하거든.”

     사람이 죽었다.

     죽음 자체에 분개하며 어쩌다 죽었는지 확인하는 순간.

     “과연 바르셀 후작은 어떤 판단을 내릴까. 자작령에서 보내준 여자를 기사들이라는 작자가 여럿이서 마구 들쑤신 그 흔적에 대하여. 그리고 그 여자가 실은 자작령의 가솔도 아니고, 자작이 부른 창부였다고 한다면.”

     “…….”

     “황금여명 기사단 전체의 일탈? 아니면 그렇게 위장당한 채 살해당한 비운의 기사들? 글쎄. 과연 그런 곳에 집중하기나 할까?”

     사람이 아니라, 짐승이 죽었다는 것을 모두가 알게 되리라.

     “사건을 은폐하려고 하는 이들은 쉬쉬하게 될 테고, 의미를 부여하려는 이들은 몇 가지 증거를 가지고 온갖 망상의 나래를 펼치겠지.”

     “시체에 남아있는 제국검법의 흔적. 돌아가는 영상마석에 녹’음’된 암살자들의 대화. 어눌한 왕국어. 그리고….”

     “증인.”

     방금 막, 커튼을 급하게 뜯어낸 것 같은 거적데기를 입은 여인이 밖으로 뛰쳐나왔다.

     “왕국의 기사들을 살해한 정체불명의 암살자들이 자신의 복부를 향해 마법을 사용하더니, 곧 뭔가 아니라는 척을 하며 죽일지 말지 고민하다가 그대로 떠났다. 그래. 이 정도가 딱 좋아.”

     제국 입장에서는 이 살육사건에 대하여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수사가 시작되겠지만, 왕국은 다르다.

     “마법이 괜히 있겠어.”

     

     현장재현마법.

     마나의 흐름을 좇아, 마나의 흔적이 움직이는 걸 바탕으로 과거의 현장을 분석하는 마법.

     “왕국의 자랑인 마법을 돌려봐도, 나오는 증거는 다를 바가 없거든.”

     그 모든 기적을 사용해도, 결과는 똑같다.

     “제국 출신, 멸망한 왕국의 후예들이 암살자가 되어 나타났다.”

     그거면 충분하다.

     “범인은 지브롤터가 아니야.”

     “…….”

     “그리고 진실을 알아차릴 수 있는 능력자는 세인트 지오 아래에 없지.”

     * * *

     

     자정에 가까운 시각.

     휘ㅡ익.

     비룡이 날개를 접으며 인근 공터에 내려앉고, 황금갑옷을 입은 기사 한 명이 그대로 땅에 착지한다.

     “제, 제로스 단장…!”

     얼굴이 붉어진, 조금은 술냄새를 풍기는 황금여명 기사 한 명이 사색이 된 채 경례를 하며 단장 제로스를 맞이했다.

     “보고.”

     “그, 그게.”

     “보고하라.”

     “…에르난데스를 비롯한 황금여명 ‘골든 버드’ 소대가 전원 사망했습니다.”

     “하….”

     제로스 단장은 손으로 얼굴을 덮으며 바로 별장 안으로 향했다.

     “단장….”

     “상황은?”

     “아직 아무도 모릅니다. 저희만 확인했습니다.”

     안에 있는 황금여명 기사들은 금방이라도 검을 뽑을 기세였다.

     범인이 밝혀진다면.

     “그런가….”

     전투의 흔적.

     흩뿌려진 혈흔. 

     그리고 아직 수습되지 않은 시체.

     “물러나라. 마법을 사용하겠다.”

     

     제로스 단장이 품에서 커다란 구체형 마석을 꺼내 마나를 흘리자, 금빛의 기운이 흘러나왔다.

     찰칵, 찰칵, 찰칵.

     태엽을 감는 듯한 소리와 함께 마석으로부터 흘러나온 금빛 마나가 사람의 형상을 갖추기 시작한다.

     “욱…!”

     “이런….”

     사람 여럿이 사람 하나를 소파에 두고 뭔가를 하고 있다.

     그것을 말로 묘사하기에는 너무나도 저질스럽기에, 그 누구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거구의 빛이 쓰러져있던 사람 하나를 들고 위층으로 향하고, 나머지는 식탁에 둘러앉아 무언가를 먹고 마시고 있었다.

     짠.

     허공을 향해 잔을 부딪친 순간.

     “!!”

     금빛과는 다른 어딘가 탁한 이질적인 백색이 나타나더니, 곧 손을 이리저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성인 남자 둘, 성인…여성 하나. 3인조.”

     습격자들을 향해 금빛이 저마다 자리에서 일어나며 대응하려고 하지만, 곧 하나둘 금방 쓰러지기 시작했다.

     “저건…!”

     “제국의 검법…?”

     서걱, 서걱.

     금빛이 하나둘 제국식 검에 베이고 쓰러진다.

     그 쓰러진 금빛은 정확히 바닥에 널브러진 시체 위로 몸이 겹쳐지듯 엎어진다.

     “하….”

     가장 마지막.

     기사 에르난데스가 대응하려고 나섰으나, 그는 가슴이 크게 일렁이더니 그대로 무릎을 꿇고 쓰러졌다.

     “다른 증거는….”

     “……없을 겁니다. 애초에, 재현마법으로 확인할 건 다 확인했잖습니까.”

     부하 기사가 심각한 얼굴로 시체가 베였던 장소를 가리켰다.

     “제국검법으로 죽었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가?”

     “자네는 상급 기사 둘과 나머지 중급 기사들이 제국의 암살자들에게 당했다고 말하고 싶은 건가?”

     “제 말은….”

     “차라리, 그냥 소리소문없이 죽는 게 낫지.”

     제로스 단장은 붉어진 얼굴로 이를 갈았다.

     “황금여명의 기사라는 것들이 독에 당한 것도 아니고, 정면에서 들어오는 암살자들에게 칼로 썰려서 졌어?”

     “…….”

     “그래도 찾는다. 이건 황금여명에 대한 도전이야. 범인이 제국의 암살자든, 아니면 학생으로 위장한 제국군의 병사든, 그도 아니면 전혀 다른 제 3자가 제국의 암살자로 위장하여 우리를 죽이려고 하든….”

     단장은 자신의 허리에 찬 검을 한 손으로 꽉 움켜쥐었다.

     “죽인다. 반드시.”

     렘버리 캠프, 첫 날.

     그렇게, 아무 일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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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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