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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99


    ​
    생각이 깊어질수록 더 큰 사고가 발생할 수 있기에 리안은 곧바로 몸을 뒤로 물렸다. 그러자 제스 또한 상체를 일으켜 앉았다. 제스는 평소와 달리 달려들지 않았다. 그저 무표정한 얼굴로 리안을 지그시 바라보기만 했다.
    ​
    ​
    “저…그… 제스?”
    “…”
    “으음.. 그게..”
    ​
    ​
    사실 리안은 제스에게 사과를 하기 위해 찾아왔다. 몰랐다고 해도 자신의 섣부른 행동 때문에 제스가 발정기로 고생하게 했으니 이에 대해 사과하고 서먹해진 관계를 조금이나마 회복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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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굴을 보니까 말을 못 하겠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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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끄러워서? 
    ​
    ​
    일부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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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입이 떨어지지 않지?’
    ​
    ​
    분명 페로몬을 묻힌 걸 사과하려 했는데, 어째서인지 사과하고 싶지 않았다. 마치 제 잘못이 아닌 일로 사과해야 하는 것처럼 껄끄러웠다.
    ​
    ​
    하나하나 따져보면 이번 일은 리안의 잘못이라 보기 힘들었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실수에 가까웠다. 
    ​
    ​
    리안의 입술이 떨어지지 않는 건, 억울함이나 불편함 때문이 아니었다. 
    ​
    ​
    ‘아, 설마..’
    ​
    ​
    제 육체를 벗어난 이후부터 선명해진 머릿속은 쉽게 답을 찾아냈다.
    ​
    ​
    상대에게 페로몬을 묻히는 건 ‘내꺼다.’라는 표시나 다를 바 없었고, 리안은 제스에게 그런 표시를 남긴 걸 후회하지 않았다. 
    ​
    ​
    표시를 남긴 걸 ‘미안하다’는 말도 없던 일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런 솔직한 심정에 리안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
    ​
    눈을 어디 둘지 몰라 이리저리 굴리던 그때, 가만히 리안을 바라보고 있던 제스가 먼저 입을 열었다.
    ​
    ​
    “미안해.”
    “어…?”
    “멋대로 페로몬을 묻혀서…”
    ​
    ​
    제스가 슬쩍 눈을 깔며 입술을 오물거렸다. 뒤이어 제스는 아무말 없이 도망친 것에 대해서도 사과했다. 
    ​
    ​
    “아니, 그건… 그, 제스 잘못이 아니야! 내가 멋대로 페로몬을 묻혀서 그런 거잖아!”
    ​
    ​
    제스의 진심 어린 사과에 리안은 당황하여 손을 저어 보였다. 제스는 고개를 저으며 그래도 자신이 잘못했다 재차 말했고, 리안은 손을 저으며 제스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말했다.
    ​
    ​
    그렇게 서로 제 잘못이라며 말을 주고받다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분위기가 한껏 누그러져 마음이 풀어지자 보이지 않던 게 눈에 들어왔다.
    ​
    ​
    ‘어라? 언제 이렇게 가까워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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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느새 두 사람의 거리는 어깨가 닿을 정도로 가까워져 있었다. 휘어졌던 입술이 힘이 떨어진 것처럼 어색하게 흔들리는 것과 동시에 제스의 얼굴이 리안의 어깨 위로 툭 얹어졌다.
    ​
    ​
    “킁킁…”
    ​
    ​
    눈을 살짝 내린 깐 채 유려한 선을 그리는 코가 작게 움찔거렸다. 그와 함께 붉고 커다란 귀가 아래로 축 늘어졌다가 위로 훅 올라가며 움찔거렸다.
    ​
    숨결이 닿을 정도로 거리가 가까워지자 리안은 얼굴을 붉히며 슬금슬금 뒤로 물러났다.
    ​
    ​
    “그.. 제스 -…으왓?!”
    ​
    ​
    풀썩.
    ​
    ​
    도망치는 사냥감을 덮치는 건 짐승의 본능이었기에, 제스는 무서운 맹수처럼 리안을 덮쳤다. 화들짝 놀란 리안이 반짝 긴장한 얼굴로 몸을 움츠렸고, 그 위에 제스가 올라탔다.
    ​
    ​
    “킁킁…”
    ​
    ​
    제스는 그대로 고개를 숙여 리안의 목 언저리에 코를 박았다. 목덜미에 숨결이 퍼져나가고, 붉은 머리카락이 얼굴 위를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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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왜, 왜 좋은 향기가 나는 거지?’
    ​
    ​
    야영지의 환경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주변이 전부 얼어붙어 있는 탓에 씻기도 힘들었다. 분명 제스도 제대로 씻지 못했을 텐데 알 수 없는 향기가 물씬 풍겨왔다.
    ​
    ​
    리안에게 꼬질꼬질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 대장의 권력으로 깨끗하게 씻긴 했지만, 향이 좋은 비누를 쓸 정도로 여유가 있는 건 아니었다.
    ​
    ​
    제 코끝을 간질이는 향기가 어딘가 익숙하다는 걸 자각하는 것과 동시에 제스가 리안의 목덜미에서 떨어져 살짝 거리를 두고, 그를 위에서 내려다보았다.
    ​
    ​
    언제나 귀여운 미소를 지어 보이던 얼굴은 성숙한 육체와 어울리는 유혹적인 웃음을 지어 보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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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멋대로 페로몬을 묻힌 건 미안하지만… 후회하지 않아.”
    ​
    ​
    살포시 휘어지는 눈꼬리가 야릇해 숨이 턱 막히고 축 늘어진 손에 힘이 들어갔다. 노골적인 유혹에 리안이 홀랑 넘어가려던 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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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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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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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몸이 갑작스럽게 들리더니 시야가 이리저리 흔들렸다. 눈을 한번 깜빡이자 어느새 리안은 텐트 바깥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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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황한 리안이 어정쩡한 자세로 펄럭이는 텐트 입구를 바라보았다. 살짝 벌어진 천 사이로 제스의 눈이 느리게 깜빡거리고 있었다. 그녀는 눈을 슬쩍 굴리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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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이상 붙어있으면 못 참을 거 같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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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세한 설명 없이도 리안은 곧바로 제스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리안이 고장 난 기계처럼 끼긱거리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곤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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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제스 그… 좋아해 줘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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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스의 고백에 무어라 대답을 해줘야 할 것 같아 머릿속이 하얗게 질린 상태로 말을 잇기 시작했다. 그러자 제스의 검지 손가락이 훅 다가와 리안의 입술을 꾹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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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답은 안 해도 돼.”
    “어..?”
   “어떤 대답이든 결과는 같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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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스가 그리 말하곤 곱게 눈을 휘어 눈웃음쳤다. 순식간에 손가락이 떨어지고, 눈앞에 천이 펄럭거리며 제스를 감춰버렸다. 리안은 뭐에 홀린 사람처럼 멍하니 텐트 입구를 바라보다가 몸이 으슬으슬 떨리는 추위에 정신을 차리곤 제 숙소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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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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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안이 떠난 텐트 안, 제스는 꼬리와 귀를 쫑긋 세운 채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이내 잔뜩 긴장한 고양이처럼 털을 잔뜩 세운 채로 텐트 안으로 마구 굴러다니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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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흐야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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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뒤늦게 밀려오는 부끄러움에 제스는 한참 동안 텐트 안을 굴러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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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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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음날, 리안은 빠르게 정리되어가는 야영지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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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슬슬 떠나지 않을까 싶긴 했지만 -… 이렇게 빨리 출발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는데.’
    ​
    ​
    워낙 무리의 크기가 커서 출발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거란 예상과 달리, 날이 밝자마자 떠날 준비가 한창이었다. 
    ​
    ​
    어리벙벙한 표정으로 서 있는 리안에게 곰 수인이 쾌활하게 웃으며 채비가 빠르게 끝날 수 있었던 이유를 말해주었다.
    ​
    ​
    “어제 사냥 덕분에 식량이 넘쳐나게 된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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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벼운 대화를 나누는 사이 순식간에 야영지는 정리되었고 모든 준비가 끝났다. 리안은 일행을 따라 곧바로 발걸음을 옮기려다 가마에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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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시 한번 말하지만, 마차가 아니라 가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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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니, 이건 아무리 그래도…”
    “수인의 속도는 마차보다 빠르다. 대장의 반려는 말보다 빠르게 달릴 수 있나?”
    “음… 아무래도 무리겠지?”
    “불편하면 내 등에 업혀도 -…”
    “하핫, 여기 괜찮은 거 같아. 응, 엄청 편하고 만족스러워.”
    ​
    ​
    곰수인은 어깨를 으쓱해 보이곤 가마의 문을 닫았다. 리안은 어딘가에 시집가는 처녀처럼 가마에 탑승한 상태였고, 네 명의 수인이 마차를 들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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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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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거운 호통과 함께 수인들이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마차보다 빠르게 달릴 수 있다는 말이 거짓말이 아닌 듯 살짝 열린 가마 문 너머로 풍경이 빠르게 스치고 지나갔다. 기차나 자동차를 타고 있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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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보다 많이 흔들리진 않네?’
    ​
    ​
    탱탱볼처럼 이리저리 굴러다니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가마는 덜컹거리긴 해도 꽤 안정적으로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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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렇게 리안 일행은 제국 쪽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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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깊은 안개가 깔린 새벽, 전장의 공기는 긴장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해가 천천히 떠오르며, 검은 갑옷을 입은 병사들의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
    ​
    흐리멍덩한 눈을 한 병사들은 손에 검과 방패를 든 채 그저 앞으로 나아가기만 했다. 그들은 흑마법에 정신이 망가져 구울처럼 오로지 피와 죽음만을 갈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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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의 뒤로 창과 활을 든 병사들이 줄지어 서 있었고, 시끄러운 나팔 소리가 전장에 울려 퍼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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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윽!”
    “다들 귀를 막아라! 마법부대 방벽을 세워라!”
    ​
    ​
    소름이 끼치는 나팔 소리는 제국 측 병사들의 정신을 어지럽혔다. 무리를 이끄는 지휘관은 발 빠르게 명령을 내리자, 마법사들이 빠르게 정신을 보호하는 마법을 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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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장은 불길에 휩싸이고, 검은 연기가 하늘로 솟구쳤다. 흑마법으로 인해 오로지 살육만을 탐하게 된 좀비나 다름없는 적군들이 물결처럼 밀려왔다. 병사들은 피와 땀에 젖어가며 격렬한 전투를 벌였지만, 점점 밀려나기 시작했다.
    ​
    ​
    전쟁의 열기가 고조되는 순간, 전장의 먼지와 연기 속에서 갑자기 찬란한 갑옷을 입은 기사가 등장했다. 기사는 한 손에 서늘하게 빛나는 검을 쥔 채 빠르게 전장의 중심으로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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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켜라.”
    “허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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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작스럽게 뒤에서 들려온 나직한 여성의 목소리에 병사는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투구의 면갑이 내려져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상대가 누구인지 곧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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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아..!”
    ​
    ​
    병사는 제대로 된 말도 제대로 잇지 못한 채 희망으로 점철된 탄성을 내뱉었다. 병사가 옆으로 비켜서자 기사의 모습을 한 노아가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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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7연참 예정입니다.
10분 정도 간격으로 올라갈 예정이며, 제목에 있는 (연참) 부분은 추후 삭제됩니다!

고장난기계입니다. 늦어서 정말 죄송합니다.

짧게 요약해서 설명하자면 손목 박살(결국..)난 김에 완결까지 세워뒀던 플롯을 때려부수고 다시 세웠습니다.

공지라도 올릴까 싶었지만, 휴재 공지를 너무 자주 올리는 것 같아 죄송해서 연참을 들고 사과 공지와 함께 복귀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오래 걸려서… 이렇게 늦고 말았습니다 ㅠㅠ 죄송합니다.

세수하기도 힘들던 개복치 손목도 거의 다 회복되어서 일상 생활이 가능해졌습니다. 하여 연재주기가 회복될 예정입니다.

언제나 기다려주시고 애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3다음화 보기

생각이 깊어질수록 더 큰 사고가 발생할 수 있기에 리안은 곧바로 몸을 뒤로 물렸다. 그러자 제스 또한 상체를 일으켜 앉았다. 제스는 평소와 달리 달려들지 않았다. 그저 무표정한 얼굴로 리안을 지그시 바라보기만 했다.

“저…그… 제스?”

“…”

“으음.. 그게..”

사실 리안은 제스에게 사과를 하기 위해 찾아왔다. 몰랐다고 해도 자신의 섣부른 행동 때문에 제스가 발정기로 고생하게 했으니 이에 대해 사과하고 서먹해진 관계를 조금이나마 회복하고 싶었다.

‘얼굴을 보니까 말을 못 하겠어..’

부끄러워서?

일부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왜 입이 떨어지지 않지?’

분명 페로몬을 묻힌 걸 사과하려 했는데, 어째서인지 사과하고 싶지 않았다. 마치 제 잘못이 아닌 일로 사과해야 하는 것처럼 껄끄러웠다.

하나하나 따져보면 이번 일은 리안의 잘못이라 보기 힘들었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실수에 가까웠다.

리안의 입술이 떨어지지 않는 건, 억울함이나 불편함 때문이 아니었다.

‘아, 설마..’

제 육체를 벗어난 이후부터 선명해진 머릿속은 쉽게 답을 찾아냈다.

상대에게 페로몬을 묻히는 건 ‘내꺼다.’라는 표시나 다를 바 없었고, 리안은 제스에게 그런 표시를 남긴 걸 후회하지 않았다.

표시를 남긴 걸 ‘미안하다’는 말도 없던 일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런 솔직한 심정에 리안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눈을 어디 둘지 몰라 이리저리 굴리던 그때, 가만히 리안을 바라보고 있던 제스가 먼저 입을 열었다.

“미안해.”

“어…?”

“멋대로 페로몬을 묻혀서…”

제스가 슬쩍 눈을 깔며 입술을 오물거렸다. 뒤이어 제스는 아무말 없이 도망친 것에 대해서도 사과했다.

“아니, 그건… 그, 제스 잘못이 아니야! 내가 멋대로 페로몬을 묻혀서 그런 거잖아!”

제스의 진심 어린 사과에 리안은 당황하여 손을 저어 보였다. 제스는 고개를 저으며 그래도 자신이 잘못했다 재차 말했고, 리안은 손을 저으며 제스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말했다.

그렇게 서로 제 잘못이라며 말을 주고받다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분위기가 한껏 누그러져 마음이 풀어지자 보이지 않던 게 눈에 들어왔다.

‘어라? 언제 이렇게 가까워졌지?’

어느새 두 사람의 거리는 어깨가 닿을 정도로 가까워져 있었다. 휘어졌던 입술이 힘이 떨어진 것처럼 어색하게 흔들리는 것과 동시에 제스의 얼굴이 리안의 어깨 위로 툭 얹어졌다.

“킁킁…”

눈을 살짝 내린 깐 채 유려한 선을 그리는 코가 작게 움찔거렸다. 그와 함께 붉고 커다란 귀가 아래로 축 늘어졌다가 위로 훅 올라가며 움찔거렸다.

숨결이 닿을 정도로 거리가 가까워지자 리안은 얼굴을 붉히며 슬금슬금 뒤로 물러났다.

“그.. 제스 -…으왓?!”

풀썩.

도망치는 사냥감을 덮치는 건 짐승의 본능이었기에, 제스는 무서운 맹수처럼 리안을 덮쳤다. 화들짝 놀란 리안이 반짝 긴장한 얼굴로 몸을 움츠렸고, 그 위에 제스가 올라탔다.

“킁킁…”

제스는 그대로 고개를 숙여 리안의 목 언저리에 코를 박았다. 목덜미에 숨결이 퍼져나가고, 붉은 머리카락이 얼굴 위를 스쳤다.

‘왜, 왜 좋은 향기가 나는 거지?’

야영지의 환경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주변이 전부 얼어붙어 있는 탓에 씻기도 힘들었다. 분명 제스도 제대로 씻지 못했을 텐데 알 수 없는 향기가 물씬 풍겨왔다.

리안에게 꼬질꼬질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 대장의 권력으로 깨끗하게 씻긴 했지만, 향이 좋은 비누를 쓸 정도로 여유가 있는 건 아니었다.

제 코끝을 간질이는 향기가 어딘가 익숙하다는 걸 자각하는 것과 동시에 제스가 리안의 목덜미에서 떨어져 살짝 거리를 두고, 그를 위에서 내려다보았다.

언제나 귀여운 미소를 지어 보이던 얼굴은 성숙한 육체와 어울리는 유혹적인 웃음을 지어 보이고 있었다.

“멋대로 페로몬을 묻힌 건 미안하지만… 후회하지 않아.”

살포시 휘어지는 눈꼬리가 야릇해 숨이 턱 막히고 축 늘어진 손에 힘이 들어갔다. 노골적인 유혹에 리안이 홀랑 넘어가려던 그때.

후욱!

“..?!”

몸이 갑작스럽게 들리더니 시야가 이리저리 흔들렸다. 눈을 한번 깜빡이자 어느새 리안은 텐트 바깥에 서 있었다.

당황한 리안이 어정쩡한 자세로 펄럭이는 텐트 입구를 바라보았다. 살짝 벌어진 천 사이로 제스의 눈이 느리게 깜빡거리고 있었다. 그녀는 눈을 슬쩍 굴리며 말했다.

“더 이상 붙어있으면 못 참을 거 같아.”

“…!”

자세한 설명 없이도 리안은 곧바로 제스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리안이 고장 난 기계처럼 끼긱거리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곤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저 제스 그… 좋아해 줘서 -..”

제스의 고백에 무어라 대답을 해줘야 할 것 같아 머릿속이 하얗게 질린 상태로 말을 잇기 시작했다. 그러자 제스의 검지 손가락이 훅 다가와 리안의 입술을 꾹 눌렀다.

“대답은 안 해도 돼.”

“어..?”

“어떤 대답이든 결과는 같을 테니까.”

제스가 그리 말하곤 곱게 눈을 휘어 눈웃음쳤다. 순식간에 손가락이 떨어지고, 눈앞에 천이 펄럭거리며 제스를 감춰버렸다. 리안은 뭐에 홀린 사람처럼 멍하니 텐트 입구를 바라보다가 몸이 으슬으슬 떨리는 추위에 정신을 차리곤 제 숙소로 돌아갔다.

“우읏…”

리안이 떠난 텐트 안, 제스는 꼬리와 귀를 쫑긋 세운 채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이내 잔뜩 긴장한 고양이처럼 털을 잔뜩 세운 채로 텐트 안으로 마구 굴러다니기 시작했다.

“흐야악..!”

뒤늦게 밀려오는 부끄러움에 제스는 한참 동안 텐트 안을 굴러다녔다.

***

다음날, 리안은 빠르게 정리되어가는 야영지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슬슬 떠나지 않을까 싶긴 했지만 -… 이렇게 빨리 출발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는데.’

워낙 무리의 크기가 커서 출발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거란 예상과 달리, 날이 밝자마자 떠날 준비가 한창이었다.

어리벙벙한 표정으로 서 있는 리안에게 곰 수인이 쾌활하게 웃으며 채비가 빠르게 끝날 수 있었던 이유를 말해주었다.

“어제 사냥 덕분에 식량이 넘쳐나게 된 덕분이다.”

가벼운 대화를 나누는 사이 순식간에 야영지는 정리되었고 모든 준비가 끝났다. 리안은 일행을 따라 곧바로 발걸음을 옮기려다 가마에 실렸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마차가 아니라 가마다.

“아니, 이건 아무리 그래도…”

“수인의 속도는 마차보다 빠르다. 대장의 반려는 말보다 빠르게 달릴 수 있나?”

“음… 아무래도 무리겠지?”

“불편하면 내 등에 업혀도 -…”

“하핫, 여기 괜찮은 거 같아. 응, 엄청 편하고 만족스러워.”

곰수인은 어깨를 으쓱해 보이곤 가마의 문을 닫았다. 리안은 어딘가에 시집가는 처녀처럼 가마에 탑승한 상태였고, 네 명의 수인이 마차를 들어 올렸다.

“출발한다!”

무거운 호통과 함께 수인들이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마차보다 빠르게 달릴 수 있다는 말이 거짓말이 아닌 듯 살짝 열린 가마 문 너머로 풍경이 빠르게 스치고 지나갔다. 기차나 자동차를 타고 있는 것만 같았다.

‘생각보다 많이 흔들리진 않네?’

탱탱볼처럼 이리저리 굴러다니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가마는 덜컹거리긴 해도 꽤 안정적으로 움직였다.

그렇게 리안 일행은 제국 쪽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

깊은 안개가 깔린 새벽, 전장의 공기는 긴장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해가 천천히 떠오르며, 검은 갑옷을 입은 병사들의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흐리멍덩한 눈을 한 병사들은 손에 검과 방패를 든 채 그저 앞으로 나아가기만 했다. 그들은 흑마법에 정신이 망가져 구울처럼 오로지 피와 죽음만을 갈구했다.

그들의 뒤로 창과 활을 든 병사들이 줄지어 서 있었고, 시끄러운 나팔 소리가 전장에 울려 퍼졌다.

“크윽!”

“다들 귀를 막아라! 마법부대 방벽을 세워라!”

소름이 끼치는 나팔 소리는 제국 측 병사들의 정신을 어지럽혔다. 무리를 이끄는 지휘관은 발 빠르게 명령을 내리자, 마법사들이 빠르게 정신을 보호하는 마법을 발동했다.

전장은 불길에 휩싸이고, 검은 연기가 하늘로 솟구쳤다. 흑마법으로 인해 오로지 살육만을 탐하게 된 좀비나 다름없는 적군들이 물결처럼 밀려왔다. 병사들은 피와 땀에 젖어가며 격렬한 전투를 벌였지만, 점점 밀려나기 시작했다.

전쟁의 열기가 고조되는 순간, 전장의 먼지와 연기 속에서 갑자기 찬란한 갑옷을 입은 기사가 등장했다. 기사는 한 손에 서늘하게 빛나는 검을 쥔 채 빠르게 전장의 중심으로 나아갔다.

“비켜라.”

“허억..!”

갑작스럽게 뒤에서 들려온 나직한 여성의 목소리에 병사는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투구의 면갑이 내려져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상대가 누구인지 곧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아아..!”

병사는 제대로 된 말도 제대로 잇지 못한 채 희망으로 점철된 탄성을 내뱉었다. 병사가 옆으로 비켜서자 기사의 모습을 한 노아가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나 혼자 장르가 다르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n the world of comedy anime, I was living an ordinary life until I became possessed by a dark fantasy novel I was reading before falling asleep. ‘Hahaha! Don’t hold a grudge -..!’ ‘Ugh, cough cough…seriously…my clothes are ruined.’ ‘…!?’ Though I was stabbed in the stomach, I calmly stood up and pulled out the spear. Originally, residents of the comedy world are a race that can be torn into 100 pieces and still come back to life the next day. ‘Stop it! Stop now! How long do you plan to sacrifice me?’ ‘No…I mean..’ ‘I’ve become strong to protect you…what have I become?’ Residents in the comedy world are just a race that vomits blood even if they stub their toe. I never made any sacrifices..but my delusion deepens and my obsession grows. One day, while I was half-imprisoned and taking care of some pitiful kids… ‘Are you the boss?’ ‘Excuse me?’ Before I knew it, I had become the behind-the-scenes boss of a huge underworld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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