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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99

    <199 – 마목의 지배자>

     

    나무괴물의 이름은 마목魔木.

    마귀나무라고도 불린다.

    생명체가 머금으면 자멸 혹은 폭주를 유발하는 불길한 기운, 암흑마나.

    그것을 나무가 오랜시간 머금으면 마귀나무가 되고, 마귀나무가 한층 더 오랜시간 암흑마나를 머금고 성장을 거듭하면 초진화를 이룬다.

    엘프들의 세계수에 비견되는 거대한 마계수.

    모든 마귀나무들의 우두머리로!

    마귀나무들은 마계수의 의지를 거스를 수 없다.

    작은 나무는 큰 나무의 뜻을 거스르고 영역을 침범하거든 생존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물 한 방울, 양분 한 줌, 태양빛 한 뼘조차 허락되지 못한 채 쫄쫄 굶어죽을 테니까.

     

    <마나제어술>

    <흉내내기>

    <마계수의 부름>

     

    바로 그 마계수의 흉내를 내며 나뭇잎들이 스스스 불길하게 흔들리는 소리를 인위적으로 재현하니, 마귀나무들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마계수의 부름을 흉내 내어 감쪽같이 마목들을 속였습니다.]

    [흉내내기 경험치+10]

    [심리예측 경험치+5]

     

    [위기에 처한 동료들을 신묘한 능력으로 구한 당신, 누군가의 존경어린 시선을 받고 있지 않나요?]

    [카리스마 경험치+10]

    [착한아이 경험치+2]

     

    [시험장의 2학년들이 판을 깨는 당신의 전략에 몹시 당황하며 포위망을 풉니다.]

    [공포유발 경험치+15]

    [행동예측 경험치+5]

    [감지 경험치+5]

     

    당장 함께 다니던 지젤과 이사벨을 구하기 위해 시작한 짓이었지만 어느새 2학년들의 포위망 중간 중간에 갇혀있던 1학년들의 기척도 느껴졌다.

    같이 구할 생각은 없었지만 어쩌다보니 다들 무임승차를 하게 생겼다.

     

    “꼬마숙녀. 우리 때문에 무리하고 있는 건 아닙니까? 이런 대규모 마법을 펼치지 않아도…”

    “엥? 전혀요? 가뿐하다고요, 이 정도는. 요령만 있으면 누구나 저처럼 할 수 있을 걸요?”

    “제 눈을 보고 말해주십시오. 정말입니까?”

     

    누가 누굴 걱정하는 걸까.

    걱정도 참 많다.

     

    “저 못 믿어요?”

    “당연히 못 믿습니다.”

    “저 그렇게 신용이 없었어요!?”

    “침상에 누워서 악몽의 저주에 시달리지를 않나, 먹지 말라는 돌은 주머니 가득 채우고 다니지를 않나, 걱정을 안하려야 안할 수가 없지 않습니까.”

    “으읏. 그건 다 사정이…”

    “저희에게 말은 할 수 없고 말입니까?”

    “미안해요!”

    “됐습니다. 딱히 추궁하면서 곤란하게 만들려던 의도는 아니니까요.”

     

    퉁명스러운가 싶으면서도 배려심이 느껴지는 말투.

    지젤의 모습에서 누군가의 모습이 겹쳐보였다.

     

    “지젤아저씨. 손오천아저씨를 닮아진 것 같아요!”

    “…제가 말입니까? 그 근육바보랑?”

    “으에엣, 머리 헝클어져요!”

    “어른을 놀리는 못된 아이는 혼 좀 나야 됩니다.”

     

    여자의 몸이 되고 나서야 알았다.

    기껏 단장한 헤어스타일을 멋대로 망치면 뭐하자는 건지 짜증이 확 나고 정강이를 걷어차고 싶은 마음이 든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이라면 진즉 그랬겠지만 왠지 오늘은 꾸중 받는 것이 싫지가 않았다.

    혼내는 사람이 지젤이라서 그런가?

    그것만은 아닌 것 같다.

    꼭 누구를 닮아서 그런 기분.

    그래.

    조나에게 혼날 때와 비슷한 느낌이다.

    가슴이 몽글몽글해지는 이상한 기분이 들어!

     

    “에헤헤.”

    “웃지 마십시오. 정듭니다.”

    “벌써 들었잖아요!”

    “못 말리겠네요. 분위기를 잡으려고 해도 저렇게 귀엽게 웃어버려서야 원.”

    “저기, 화목한 분위기도 좋은데 빨리 올라가면 안 될까? 2학년들이나 1학년들이나 슬금슬금 이쪽으로 모여들고 있는데.”

     

    이사벨의 재촉에 마목들을 이끌고 마목의 숲 중앙에 자리한 공중계단까지 올라왔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니 천 명이 넘는 2학년들이 우글거리는 숲의 광경이 확실하게 보였다.

    그뿐만이 아니다.

    쩌저정

    콰과광

    번쩍━

    숲 한편에서 커다란 빙하가 솟구친다거나.

    엄청난 규모의 뇌전이 마구 내리친다거나.

    하얀 섬광이 번뜩이며 마목과 나무가 무차별적으로 넘어간다거나.

    1학년 상급반에서도 최상위권에 달하는 실력자들의 행차는 동반하는 소리부터가 다르다.

     

    “기가 질리네.”

    “저흰 운이 정말 좋았군요. 오크노디가 아니었다면 지금쯤 저 아래에서 쓸려나가는 토사와 같은 신세가 되었겠습니다.”

     

    이사벨과 지젤의 표정이 조금 안 좋아졌다.

    적으로 만날 생각에 암담함을 느끼나보다.

    확실히 두 사람은 전투력에서 많이 뒤처지긴 하지.

    근데 요리사나 상인한테 전투력이 필요한가?

    딱히 상관없을 것 같은데.

    입학시험에서도 그랬다시피 전투력은 머리가 나쁜 사람들이나 따지는 것이다.

    모두의 머리를 대신해줄 내가 있는데 굳이 두 사람의 전투력이 뛰어날 필요는 없잖아?

     

    “정 그리 걱정되면 먼저 계단 지나가세요!”

    “오크노디는?”

    “둘이 안전하게 지나갈 때까지 자리를 지킬게요.”

    “같이 가자.”

    “그럼 마목들이 시간을 못 버는걸요.”

     

    두 사람이 떠나기 전까지는 여기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자 이사벨과 지젤도 내키지 않는다는 얼굴로 한숨을 푹 쉬었다.

    서로 눈을 마주보던 두 사람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돌연 양쪽에서 손을 꽉 잡아주었다.

    왼손에는 이사벨의 요리사 특유의 딴딴한 손이, 오른손에는 지젤의 부드러운 손이 감긴다.

     

    “끝나고 나면 또 이렇게 셋이 노는 겁니다.”

    “간식도 해줄게.”

    “손오천아저씨는요?”

    “멋대로 하라지. 자기 혼자 신나서 뛰쳐나갔는데.”

    “히히. 그러네요. 오천아저씨는 도시락이나 들고 따라오라고 하죠 머!”

     

    이렇게 단란하게 대화를 나누며 햇빛을 쬐고 있자니 마치 엄마아빠 손을 잡고 나란히 소풍길에 나선 아이가 된 기분이다.

    두 사람이 진짜 엄빠도 아니고 여기가 평화로운 소풍길도 아니지만.

    그래도 이 두 사람이라면 리프와 조나를 대신해서 손을 잡아도 거부감이 들지는 않는다.

     

    <지정사격 – 비살상부위>

    <자동방어의 브레이슬릿>

     

    지젤의 팔뚝을 노리고 날아드는 화살과 몸 위에 떠오르는 자동방패.

    슬슬 마목들을 피해 장거리 사격을 날리는 2학년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만 가세요.”

    “빨리 따라오셔야 합니다.”

    “너무 기다리게는 하지 마.”

    “금방 따라갈게요!”

     

    떠나는 두 사람.

    배웅을 하며 손을 열심히 흔들었다.

    다리 저편으로 멀어지는 두 사람.

    등 뒤에서 파바밧 날아드는 화살을 허공에 묶어둔 횟수가 어느새 수십 발을 넘어섰다.

    이제는 두 사람의 모습이 완전히 멀어졌다 싶을 즈음, 빙글 걸음을 돌렸다.

     

    “그래서… 지젤과 이사벨한테 화살을 쏘고 실패한 주제에 아직도 달아나지 않은 멍청이들은 대체 무슨 배짱이람?”

     

    두 사람의 곁에서는 바보처럼 헤헤 웃고 다닌다고 사람 우습게보면 곤란하다.

     

    “각오하세요. 중간고사이기도 하고. 2학년이기도 하고. 1학년처럼 살살 하지는 않아도 되겠죠?”

     

    각오하는 게 좋을 거다.

    나 지금 오랜만에 되게 화났어.

    조금 아픈 꼴을 보게 해줄 거라고!

     

     

    * *

     

     

    ‘괴물 같은 꼬맹이.’

     

    힘의 격차야 은연중에 느끼고 있었다.

    여린 체구와 달리 말도 안 되는 힘이, 단순한 물리력을 넘어선 무언가가 그 아이의 내면에 존재한다.

    쥐방울.

    애송이.

    얕잡아 부르는 말은 그런 무서운 존재감을 조금이라도 외면하고 싶은 마음도 들어있었다.

    그렇지만 이건…

    저 아이가 진심이 되면 이렇게까지 차원이 다른 강함을 선보이게 되는 건가?

     

    마목의 숲의 함정.

    초반의 함정에 단단히 빠진 이후.

    마목들의 대이동에 혼란을 틈타 중앙계단 근처까지 접근했던 손오천.

    그는 실시간으로 쓸려나가는 2학년들과 그들을 양민학살하다시피 쓸어버리는 오크노디의 마목군단을 보며 두려움을 느꼈다.

    인간의 것이 아닌 마물의 기운.

    그것이 마물이 아닌 인간의 몸을 통해 발현된다.

    암흑마나를 통해 펼치는 사악한 비의.

    강력한 카리스마를 통해 악한 존재들을 부리는 몬스터테이밍.

    아카데미 외부에서는 금지기술로 지정되어 발각되기라도 하면 12선신의 추격을 받고, 제국의 공적으로 낙인찍혀 현상수배가 줄줄이 걸린다.

    그런 금단의 기술을 무려 천명도 넘는 학생들과 교관, 교수들이 지켜보는 중간고사 도중에 펼친다.

    너희가 뭘 보든.

    무슨 생각을 하든.

    이걸 누구에게 이르든.

    무슨 짓을 해도 안중에도 없다는 자신감이 있지 않고서야 감히 저지를 수 없는 짓이다.

    12선신마저 우습게 보이는 건가.

    제국조차도 두렵지 않다는 건가.

    가끔 기분 나쁜 구석이 있어도 대체로는 귀여운 인상을 주던 꼬맹이가 손오천은 멀리서 보면 이렇게까지 낯설 수 있다는 사실이 당혹스러웠다.

     

    “앗, 손오천아저씨!”

    “너 괜찮냐?”

     

    솔직히 안 물어볼 수가 없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눈자위까지 새카매져서는 완전히 맛이 간 마인같은 꼬락서니를 하지 않았던가.

    그걸 자의로 단숨에 원상태를 되찾을 수 있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멀쩡해요!”

    “지젤이랑 이사벨은?”

    “먼저 보냈어요!”

    “같이 있으면 도움이 될 텐데.”

    “두 사람에게는 보여주고 싶지 않았거든요. 매번 걱정만 끼치니까요.”

     

    그렇게 말하는 오크노디의 주변에는 여전히 변함없이 인간의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사악한 마의 기운이 마목들과 연결되어있다.

     

    “제가 이런 힘을 썼다는 건 비밀로 해주실 거죠?”

     

    부탁하는 척 말하고 있지만 이건 부탁이 아니다.

    하지 않으면 후회하게 될 거라는 사실을 은연중에 암시하는 반 협박이나 다름없다.

    다크 프린세스.

    착한아이의 민낯.

    재단의 수석장학생의 실체.

    어쩌면 자신이 알던 오크노디의 모습은 두 사람 앞에서만 보이던 가식이자 가짜이고 지금 이 모습야말로 진짜 오크노디인 건 아닐까.

     

    “쥐방울 녀석, 무슨 당연한 소릴 하는 거냐? 보호자한테 걱정을 끼치는 아이는 꾸중을 당해도 싸다고. 다 일러버릴거다!”

     

    그런 불안에 짓눌리지 않고 꿋꿋이 할 말을 한다.

    빤히 쳐다보는 눈동자 너머로 느껴지는 마주보기 벅찰 정도의 존재감.

    무표정하게 이쪽을 응시하던 압박감이 생긋 지어지는 웃음과 함께 거짓말처럼 걷혔다.

     

    “너무해~. 한 번만 봐주지. 그럼 저도 여기 길 이용할 수 있게 허락해드릴텐데.”

    “안 되는 건 안 돼.”

    “힝. 알았어요. 그냥 지나가도 돼요.”

    “정말이냐?”

    “제가 손오천아저씨를 괴롭힐 리가 없잖아요. 지젤이랑 이사벨이 슬퍼할 것이 뻔한데.”

     

    네가 슬퍼하지는 않는 거냐?

    손오천은 목 끝까지 차오른 물음을 꾹 눌러 삼켰다.

     

    “오우. 고맙다. 그럼 신세 좀 지마.”

     

    공중계단을 달리면서 등 뒤에서 느껴지는 존재감이 빠르게 어둠에 물드는 것이 느껴졌다.

    돌아보고 싶지 않다.

    더는 피부로 느끼고 싶지도 않다.

    그저 자신의 뒤로 이 길에 도전하는 이들이 불쌍하게 여겨질 뿐.

    오크노디와 친분이 없는 이들은 대체 이 계단을 지나기 위해 무슨 지옥을 겪게 될지 막연하게 떠오르는 상상조차 머릿속에서 지우고자 애써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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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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