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2

       

       

       

       

       “헉, 헉, 헉.”

       

       아무리 물에 적신 수건으로 호흡기를 감쌌다지만, 숨이 차도록 뛰니 어쩔 수 없이 연기가 조금씩 목구멍으로 들어오는 게 느껴졌다. 

       

       “케켁….”

       

       하지만 멈출 수는 없었다. 

       

       “끄아아아악!”

       “아악!”

       

       화르륵!

       

       주변에서 쉴 새 없이 들려오는 소리들 사이에서, 나는 오로지 저 앞에 솟아 있는 멜른 산만을 보고 뛰었다. 

       

       ‘반드시 살 수 있을 거라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저기로 뛰지 않으면 죽으리라는 보장은 있다.

       

       그럼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있는 쪽으로 뛰어야지. 

       

       매운 연기 때문인지, 기구한 내 팔자 때문인지 눈물이 났지만 계속 달렸다.

       

       조금이라도 사람 소리가 들리는 곳을 피해 얼마나 달렸을까. 

       

       “허윽, 헉, 헉.”

       

       산기슭에 도착하자, 나는 우거진 수풀 속에 주저앉아 한참 동안 숨을 골랐다. 

       

       ‘다…다행이다. 주인공이 했던 얘기가 맞았어.’

       

       초회 때 주인공과 조연이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린 덕분에 목숨을 건졌다.

       

       ‘…그런데 이제 어디로 가야 되지?’

       

       주인공이 했던 말은 ‘멜른 산 쪽으로 가면 그나마 살 가능성이라도 있었을 텐데’가 끝이었다.

       

       게다가 조연의 말에 따르면 이 산에는 맹수나 마물이 때때로 출현하는 모양.

       

       ‘그럼 여기서 버티다가 주인공한테 구출되면 되는 거 아닐까?’

       

       산기슭에서 존버하다가 하무트교 놈들이 철수하면, 뒤늦게 도착한 주인공 일행이 생존자를 찾으러 다닐 것이다. 

       

       그때 기어나가면 아마 신변은 지킬 수 있을 터. 

       가늘고 길게 살고 싶은 나로선 주인공과 벌써부터 엮이는 건 여러모로 불편하긴 하지만, 죽는 것보다야 백 배 천 배 낫다.

       

       ‘하지만 주인공이 파견 지역을 이 근처로 정하지 않았다면 기다리는 건 허사야.’

       

       어쨌거나 그 이벤트는 유저가 파견 지역을 이쪽으로 정했을 때 발생하는 이벤트니까 말이다.

       

       ‘그리고 하무트교 놈들이 정확히 언제 철수하는지에 대한 정보도 없…. 응?’

       

       나는 차분히 고르고 있던 숨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바스락.

       

       “에헤이, 거 봐. 산엔 사람 없다니까 굳이….”

       “덕분에 연기 안 마셔도 되고 좋지 뭘.”

       “그건 그래. 우리는 대신 다른 연기나 좀 마시고 가지.”

       “킬킬, 그것도 좋고.”

       

       산기슭 저쪽에서 들려 오는 목소리에 나는 모든 동작을 멈추었다. 

       

       놈들은 건너편에서 잠시 멈춘 채 각자 담배를 꺼내 물었다. 

       

       “저쪽에선 잡았으려나 모르겠네.”

       “신호탄 안 올라오는 거 보니까 아직 못 찾았나 본데.”

       

       나는 수풀 속에 숨은 채로 이야기를 엿들었다. 

       

       “뭐, 싹 다 잡아 죽이다 보면 그중에 있겠지. 계시가 틀린 적은 없었잖아?”

       “크큭. 그야 그렇지.”

       

       나는 그제서야 이 마을 사람들이 한 명도 빠짐없이 죽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찾는 사람이 있는 거였어.’

       

       꿀꺽.

       

       “하무트님에게 장차 방해가 될 수도 있는 놈은, 어떤 놈이라도 찾아내서 죽인다.”

       “반드시.”

       

       듣자하니, 아무래도 이 마을에는 장래가 꽤 유망한 캐릭터가 살고 있었던 모양.

       

       -쳇, 너도 아니군. 죽어라.

       

       아까 누군가 했던 말의 뜻을 이제 알 것 같았다.

       

       놈들이 찾는 그 캐릭터의 재능이 꽃피기 전, 아예 싹을 잘라 버리기 위해 이 마을을 습격한 게 분명했다.

       

       ‘아무리 그래도 한 사람을 죽이려고 마을 전체를….’

       

       괜히 사이비 집단이 아니었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살아 나온 게 나 혼자라면…. 그 사람은 곧 죽을 수밖에 없겠구나.’

       

       놈들이 일찍 죽이고 싶어할 정도로 재능 있는 사람이라면, 만약 살아남았을 경우 주인공에게 꽤나 보탬이 되는 인재였을 텐데.

       

       ‘그렇게 되면 주인공이 메인 스토리를 깰 가능성이 높아지고, 나는 조용히 묻혀 가서 평화로운 세상을 즐기면 되는 건데 말이야.’

       

       그런 사람이 벌써 목숨을 잃는다니, 진심으로 안타까운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자, 가자고. 아직 남았으면 나도 칼질 좀 하게.”

       “킥킥. 좋지. 안 그래도 손이 근질근질하다고.”

       “산에 마물도 별로 없어서 심심했는데, 벨 게 좀 남아 있으면 좋겠군.”

       

       놈들이 완전히 마을 쪽으로 사라지고 나서야, 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후우….”

       

       어떡하지?

       

       일단 마을 쪽으로 돌아가는 건 자살행위다.

       

       ‘그렇다고 여기가 안전한 것도 아니야.’

       

       손이 근질거린다며 살인을 일삼는 놈들이다.

       

       목적을 달성했더라도 마을에 생존자가 하나라도 남아 있다는 걸 알게 되면, 목격자 제거를 위해서라도 재수색을 벌일 가능성이 있다. 

       

       ‘산에 마물이 별로 없다고 했지.’

       

       지금으로서는 차라리 산 안쪽으로 들어가는 게 생존 확률이 높을 것 같았다. 

       

       ‘있다고 해도 일단 놈들이 한 번 닦아 놓은 길이니 어느 정도는 안심해도 될 거야.’

       

       재수색을 벌이더라도 한 번 수색했던 길은 자세히 찾아 볼 가능성이 적기도 하고.

       

       ‘그리고 멜른 산은 초회 때 마물 토벌 의뢰로 온 적이 있어서 대강 지형을 알고 있어.’

       

       어느 정도 깊숙이 들어가더라도 길을 잃지 않을 자신이 있다는 소리였다.

       

       나는 놈들이 왔던 방향으로, 산 깊숙한 곳을 향해 움직였다.

       

       저벅, 저벅.

       

       “…….”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거짓말처럼 길을 잃고 말았다.

       

       “…분명 발자국을 따라서 왔는데?”

       

       어느샌가부터 발자국은 온데간데없었고, 뒤를 돌아보아도 자신이 따라온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다. 

       

       “아니, 그새 강풍이라도 불어서 발자국이 다 지워졌나…?”

       

       그럴 리가 없다. 

       아까전부터 바람이라고는 조금도 불지 않고 있었….

       

       ‘잠깐만. 바람이 조금도 불지 않는다고?’

       

       그게 말이 되나?

       

       황급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까 왔던 데랑 구분이 안 돼. 대체 어떻게 된 거지?’

       

       무슨 미궁에 빠진 것도 아니고,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혼란스러운 상태에서 몇 걸음을 더 걸었을 무렵. 

       

       “어.”

       

       눈앞에 동굴이 나타나 있었다.

       

       눈을 비비고 다시 봐도 동굴이었다.

       

       ‘…수상한데.’

       

       아직 산에 그렇게까지 깊숙이 들어가지도 않은 것 같은데.

       아니, 애초에 멜른 산에 이런 동굴이 있기는 했던가?

       

       꿀꺽. 

       

       나는 침을 삼켰다.

       

       이미 놈들의 발자국을 이정표 삼아 따라왔던 길은 잃었고, 그 말인즉슨 이제 언제 어디에서 마물이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다는 소리다.

       

       시간이 더 지나면 해도 질 텐데, 그럼 마물이나 맹수의 공격에 더 취약해질 뿐.

       

       동굴 내부가 충분히 넓다면, 오히려 해가 뜰 때까지는 안에 쥐 죽은 듯 숨어 있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들기 시작했다.

       

       ‘…내일 아침까지만 버틸 수 있으면 나쁜 선택은 아니야.’

       

       고민은 길지 않았다.

       

       저벅.

       

       물론 동굴 안에 마물이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기에, 나는 최대한 천천히 동굴 안으로 발걸음을 내디뎠다. 

       

       그리고 입구에서 비추던 햇빛이 힘을 다한 동굴 안쪽, 새까만 어둠 속에서 한 발짝을 더 내디딘 나는.

       

       “으, 우아아아아악?!!!”

       

       쿠당탕탕!

       

       발이 허공 아래로 쑥 빠짐과 함께 어딘가로 추락했다.

       

       ***

       

       “아.”

       

       죽었나? 

       살았나?

       

       나는 눈을 떴다. 

       

       새카만 어둠 속일 줄 알았는데, 의외로 은은한 빛이 눈에 들어왔다.

       

       몸을 일으켰다. 

       

       “…다친 데가 없네?”

       

       분명 엄청나게 높은 곳에서 한참을 굴러 떨어진 것 같은데.

       

       그것도 이리 튕기고 저리 튕기면서.

       

       얼마나 지형히 험했는지는, 내 마지막 기억이 ‘이거 언제 끝나?’였던 걸 생각해 보면 대강 짐작할 수 있을 거다.

       

       그 와중에 한 가지 다행이라고 할 만한 점은….

       

       ‘이 정도 들어왔으면 적어도 하무트교 놈들에게 발각될 일은 없을 거라는 거?’

       

       어디 쫓아올 테면 쫓아와 보라지.

       

       너네들도 정신을 잃을 때까지 굴러 떨어져야 될 거다.

       

       여튼.

       

       돌아가는 길이 걱정이긴 하지만, 일단 가장 큰 위험에서 벗어났다는 것에 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조금 긴장이 풀린 나는 주변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발광석發光石인가.”

       

       이곳을 밝히고 있는 은은한 빛의 근원은 발광석이었다.

       

       탐험 시에 램프 대용으로 쓰이기도 하는 돌인데, 생각보다 가격이 있어서 돈이 부족한 초반에는 잘 쓰지 않는 아이템이었다. 

       

       “근데 이게 대체 몇 개야?”

       

       그리고 이 넓은 동굴에는 그 발광석이 무려 수백 개나 박혀 있었다.

       

       ‘저것만 캐다 팔아도….’

       

       손에 안 닿는 높이에 있는 걸 캐낼 자신은 없지만, 당장 손에 닿는 높이에 있는 것만 대충 뽑아 가도 최소 십수 개는 될 터. 

       

       ‘안 그래도 손수건 하나 달랑 가지고 나와서 앞이 막막했는데….’

       

       챙겨 갈 수만 있으면 당분간은 여관비나 식대를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이걸 이렇게 박아 놓은 게 대체 누구냐는 건데.’

       

       인간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발광석이 있다면, 그건 둘 중 하나다. 

       

       자연적으로 발광석이 나는 곳이거나, 동굴에 거주하는 지능이 있는 마물이 꽂아 놓은 것이거나.

       

       그리고, 발광석이 아주 일정한 간격으로 예쁘게 꽂혀 있는 걸 봤을 때 여기는 아주 높은 확률로 후자에 속할 것이었다. 

       

       ‘근데 아직까지 아무런 반응도 없는 걸 보면…. 혹시 그냥 빈 던전 같은 게 아닐까?’

       

       제발 그렇기를 바라며, 나는 조심스럽게 근처에 있던 발광석 하나를 흔들어 벽에서 뽑았다.

       

       다행히 맨손으로도 무리 없이 뽑….

       

       쩌적—!

       

       응? 쩌적?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곧 나옵니다… 그 녀석이!
    다음화 보기


           


I Picked Up a Hatchling

I Picked Up a Hatchling

해츨링을 주웠다
Status: Ongoing Author:
But this guy is just too cute.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