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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

       “일어나, 이 새끼야!”

         

       찰싹! 누군가 내 뺨을 휘갈겼다. 강렬한 충격이었다. 덕분에 눈이 번뜩 뜨였다.

         

       “뭐, 뭐야?!”

       “야, 이 개새끼야! 똑바로 안 걸어?”

         

       내가 있는 곳은 황폐한 사막이었다. 몸이 제대로 움직여지지 않는다.

       

       고개를 내려보니 우락부락한 팔뚝의 근육을 타고 내려간 손목에는 두꺼운 강철로 이루어진 수갑이 다섯 개나 채워져 있었고, 몸은 긴 포승줄로 묶여 주변 이들과 연결되어 속박당한 상태였다.

         

       “이 새끼가 처맞더니 정신을 못 차리나. 똑바로 걸어!”

         

       뺨따구를 풀스윙으로 갈겼던 자식이 내 머리를 쥐어박았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 상황이 어처구니없었던 것도 있지만, 이상하리만큼 내가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었기에.

       

        이게 당연한 수순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대체 뭐야?’

         

       100만 뮤튜버 김공략의 삶은 어디로 가고 이상한 세계에서 깨어났다.

       

       여기는 대체 뭐 하는 곳이란 말인가? 꿈이라면 빨리 깨어났으면 좋겠는데. 근데 꿈은 아닐 것이다. 고통도 느껴지는 마당에, 이렇게 현실적인 꿈이 어디에 있겠는가.

         

       ‘미쳐버리겠네.’

         

       결국, 게임 하다가 뒤져버리고 새로운 세상에서 눈을 뜨게 되어버린 건가?

         

       “…….”

         

       잘 생각해 보니 그럴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균 방송 시간은 12시간이 넘어가고, 하루에 4시간만 자고 게임을 하는 나폴레옹 수면법. 밥도 제대로 챙겨 먹지 않아 하루에 한 끼. 그것도 배달음식만 시켜 먹어 곱창난 건강.

         

       이렇게 허무하게 뒤질 줄 알았으면 진즉에 건강 챙겼지. 편하게 죽지도 못하고 어디 이상한 사막에서 포박당한 채 끌려가고 있다니.

         

       “하아….”

         

       몸과 손이 묶여있어 도망도 칠 수 없는 상황인데 어디로 향하는 길인지도 모른다. 아무런 정보가 없다.

         

       답이 나오지 않았다.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봤다. 줄이 물줄기처럼 길게 늘어져 있었다. 그들 역시 나처럼 다리를 제외한 모든 부위가 속박당한 상태였다.

         

       나는 뒷사람에게 물었다. 백발의 노인이었다.

         

       “이봐, 지금 우리가 어디로 가는 거지?”

         

       어라. 이건 내 말투가 아니다. 부드럽게 말한 거 같은데.

         

       “…전하. 아무리 상황이 이렇게 되었다고 해서 정신을 놓으시면 안 됩니다.”

         

       얘는 갑자기 뭔 소리래? 전하가 누군데?

         

       “전하가 누구지? 나를 말하는 것인가?”

         

       내 말에 노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입술을 달싹이며 숨을 헐떡이던 그는 결국 눈물을 흘렸다.

         

       “눈앞에서 폐하와 왕비님을 잃으신 충격으로 기억을 잃으신 건가…….”

         

       수갑이 채워진 양팔을 들어 올리며 눈물을 닦는 노인. 그는 끔찍한 현실을 마주한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뭐야, 왜 저래?’

         

       내가 미간을 찌푸리며 다시 정면을 바라본 그때. 찰싹! 아까 내 뺨을 풀스윙으로 갈기고 머리까지 쥐어박았던 새끼가 다시 내 뺨을 휘갈겼다.

         

       “개새끼야! 줄이 흐트러졌잖아!”

         

       아까부터 나를 개새끼라고 부르는데, 이 새끼 내가 어떻게든 복수한다.

         

       그 전에 여기서 빠져나갈 궁리부터 해야 하지만.

         

       [띠링.]

         

       ‘이번엔 또 뭐야?’

         

       별안간 머릿속에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내 음성으로 다시 이어졌다.

         

       [플레이어를 확인했습니다. 게임 정보를 불러옵니다.]

         

       [인식 성공. 플레이어 – 진 바렌베르크]

         

       [플레이어의 자아를 식별합니다. 동기화 성공]

         

       [진 바렌베르크의 기억을 일부 계승합니다.]

         

       갑자기 뭔 소리를 하는 거지? 플레이어? 동기화?

         

       고민의 시간도 잠깐이었다. 수많은 정보가 휘몰아치며 머릿속을 헤집는다. 극심한 두통에 눈을 질끈 감았다.

         

       “크윽…!”

         

       두개골이 깨질 것 같은 두통. 곡괭이로 내려 찍히는 기분이었다. 시야가 지진이라도 난 듯이 흔들렸다. 아찔해진 정신 탓에 일순 옆으로 고꾸라질 뻔했지만, 간신히 균형을 유지했다.

         

       그리고 잠시 후.

         

       “아…….”

         

       지금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 내가 누구인지, 지금 상황이 어떻게 된 건지. 모든 것이 파악되었다.

         

       나는 지금 로맨스 판타지 소미레 편의 최종 보스, 진 바렌베르크였다.

         

         

       * * *

         

         

       진 바렌베르크는 제국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바렌베르크 왕국의 제1 왕자다.

         

       로맨스 판타지 소미레 편. 줄여서 로판소의 히든 엔딩으로만 공략할 수 있었던 인물.

         

       그런 그가, 지금의 나다.

         

       “빨리 걸어!”

         

       찰싹! 채찍이 휘둘러져 내 등을 강타했다. 살갗이 찢어지며 쓰라린 고통이 뇌리로 전해져왔다.

         

       “크흑!”

         

       원래의 진 바렌베르크라면 억지로 신음을 참았겠지만, 나는 아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방구석에서 게임 방송만 하며 지내왔던 멸치에 불과했는데 갑작스레 이런 고통을 느끼고 참는 것도 이상하지.

         

       ‘하. 이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냐.’

       

       죽는 건 절대 사양이다. 어떻게 해서든 살아남아야 한다. 그야, 죽는 건 무서우니까. 인간으로서의 본능이니까…….

       

       아무튼.

         

       내가 아는 선에서 지금 상황을 정리하자면, 제국의 횡포를 참지 못한 바렌베르크 왕국은 반기를 들어 전쟁을 선포했지만, 압도적인 국력의 차이로 처참히 패배했다. 그 증거로 왕자인 내가 망국의 포로가 되어 속박당한 채 끌려가고 있는 것이고.

         

       눈을 질끈 감았다. 뒤지기 직전 마지막에 했던 게임이 ‘로판소’라서 이 세계로 들어온 것인가? 이럴 줄 알았으면 여성향 역하렘 게임이 아니라 꿈과 희망이 넘치는 야겜을 했지.

         

       뭐, 어찌 되었든.

         

       ‘살기 위해선 일단 여기서 탈출해야 한다.’

         

       그 방법을 궁리하기 위해 원작에서 나왔던 진 바렌베르크의 서사를 떠올렸다.

         

       원래의 스토리를 따라가면, 진 바렌베르크는 이대로 암흑가의 노예 시장에 매물로 올라간다. 뛰어난 전투 센스와 무력을 가지고 있던 그는 인기 상품으로서 가격이 폭등했다.

         

       그런 진을 구매한 사람은 바로 원작의 주인공과 대립하는 악녀, 프란체 데카르트.

         

       데카르트 공작가의 막내딸인 그녀는, 자신보다 잘 나가는 원작의 주인공을 시기해 여러 난관을 만들어냈다.

         

       ‘처음에 그년 때문에 고생 좀 했지.’

         

       첫 보스도 그 년이 고용한 용병이었다. 참고로 그 보스의 별명은 뉴비 절단기였다.

         

       지금으로서 다행인 점은 내가 그 뉴비 절단기와 맞닥뜨릴 일은 없다는 것이고, 다행이 아닌 점은 내가 프란체 데카르트의 노예가 된다는 점이다.

         

       ‘개 같은 거.’

         

       아무리 생각해도 평탄한 삶은 살아가지 못할 것 같다. 살아남는 게 목적인 건 맞지만, 진 바렌베르크가 된 이상 죽음은 예견되어 있다.

         

       나는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예정대로 프란체 데카르트의 휘하로 들어가 그녀의 미래를 바꾸는 편이 좋을 것인지, 아니면 어떻게든 탈출구를 마련해서 노예가 되는 것은 피할 것인지.

         

       “…….”

         

       그 전에 지금 상황부터 어떻게 해야 하지만.

         

       다행히도 여기서 무사히 살아 나갈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 결박만 풀어낸다면 어떻게든 싸워서 탈출할 수 있으니까.

         

       내가 들어온 진 바렌베르크는 무려 S급의 전투 능력치를 가지고 있다. 수십의 병사를 검 한 자루로 정리하는 것 정도야 일도 아니다.

         

       이런 진 바렌베르크가 잡힌 이유는 자신의 부하들이 인질로 잡혔기 때문이겠지. 그는 보기보다 정이 많은 사람이었으니까.

       

       얌전히 항복하면 다른 이들의 목숨은 살려주겠다고 했을 거다.

         

       일단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살폈다. 현재 잡혀있는 사람들은 수백. 이 사람들을 인도하는 병사의 숫자는 수십. 결박만 풀어낸다면 탈출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일 터.

         

       “흠.”

         

       다만 문제는 지금 몸 상태가 온전하지 않은 탓에 힘을 제대로 사용할 줄 모른다. 열심히 팔을 움직여봤지만, 이 더럽게 두꺼운 수갑은 꿈쩍도 안 했다. 첫 시작부터 막혀버렸다.

         

       ‘이대로 노예가 되는 수밖에 없는 건가?’

         

       내가 어금니를 깨물며 고뇌하던 그때. 머릿속에서 다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띠링.]

         

       [캐릭터와 플레이어의 능력치를 동기화합니다.]

         

       [플레이어의 실력 수준 – 최상]

         

       [캐릭터의 능력치 수준 – 최상]

         

       갑자기 온몸에 힘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한순간에 냉철해진 덕분에 내가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어떤 판단을 해야 하는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흐읍……!”

         

       팔뚝에 힘을 주며 손목을 좌우로 넓혔다. 전보다 힘이 솟아오르긴 했지만, 그럼에도 수갑을 푸는 건 무리였다.

       

       아직 내가 이 몸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것도 있고, 수갑이 너무 두꺼운 강철로 굳게 묶인 탓에 안간힘을 써도 풀리지 않는다. 다른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

       

       옆에 걷고 있는 병사의 허리춤에 걸린 한 자루의 검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순간적으로 달려들어 저걸 뽑아내고 병사를 죽인 다음, 그의 가슴에 매달려 있는 열쇠로 결박을 푼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절대 불가능한 작전이지만, 진의 몸과 향상된 능력치라면 이 정도는 가능할 것이다.

         

       적당히 눈치를 살폈다. 병사들은 우리가 탈출할 거라는 걱정은 하지 않는 것으로 보였다. 완전히 방심하고 있는 상태.

         

       “흐읍!”

         

       나는 순간적으로 줄을 이탈해 옆에 있던 병사에게 어깨를 박았다. 내 앞뒤에 있던 사람들이 반동으로 인해 넘어졌다.

         

       “크악!”

         

       병사들의 시선이 이쪽으로 몰린다.

         

       “뭐야!”

       “이탈자가 있습니다!”

       “당장 제압해!”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나는 가지런히 모인 손을 애써 움직여 쓰러진 병사의 허리춤에 있던 검을 뽑아내고, 몸에 묶인 포승줄을 잘라냈다. 스각! 이후 쓰러진 병사의 복부에 검을 찔러 넣고 마무리까지. 한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커헉!”

         

       쓰러진 병사의 입가에서 울컥거리며 피가 솟구친다. 진 바렌베르크와 동기화가 진행돼서일까. 평범한 사람이라면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에 동요할만한 상황이었지만, 나는 그에 꿈쩍하지 않고 열쇠꾸러미를 들었다.

       

       “거기! 이리 와서 이것 좀 풀어 봐!”

       “예, 예!”

       

       근처에 있던 전쟁 포로가 서둘러 달려와 무작정 열쇠들을 꽂아 넣었다.

         

       철컥. 철컥. 앞에 있는 사내가 맞는 열쇠를 찾아보고 있다만, 시간이 부족했다. 다른 병사들이 근처까지 다가온 것이다.

         

       “아오!”

         

       이대로 다시 잡히는 건가? 달리 방도가 없는 건가?

         

       “전하를 호위해라!”

       “전하만이 바렌베르크 왕국의 희망이시다!”

         

       주변에 있던 전쟁 포로들이 포효를 지르며 나를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묶여있는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이리저리 몸부림치며 다가오는 병사들을 막아냈다.

         

       “크악!”

         

       한 명이 병사에게 제압당했다. 두 명이 검에 찔렸다. 세 명이 검에 베였다.

         

       “서둘러라! 시간이 없다!”

         

       그렇게 전쟁 포로들이 죽어가는 사이.

       

       “찾았습니다!”

         

       철컥. 철컥. 팅!

         

       마침내 수갑에 맞는 열쇠 다섯 개를 찾아내고, 드디어 풀어냈다. 나는 자유로워진 손목의 상태를 확인하며 검날을 돌렸다.

         

       “다들 비켜라! 내가 정리하겠다!”

         

       나를 위해 움직였던 전쟁 포로들이 환희의 미소를 지으며 뒤로 물러난다.

         

       [플레이어의 컨트롤과 캐릭터의 움직임을 동기화합니다.]

         

       [플레이어의 실력 수준 – 최상.]

         

       [움직임이 더 가벼워집니다!]

         

       몸이 깃털처럼 가벼워졌다. 나는 틈을 놓치지 않고 진의 감각에 몸을 맡겼다.

         

       집중.

         

       시간이 느려지고 소리가 사라졌다. 타앗! 순간적으로 달려들어 그들의 사이를 자유롭게 누비며 검을 휘둘렀다.

         

       “끄악!”

       “꺼어어…….”

         

       털썩. 털썩. 난데없이 검에 베인 그들은 제대로 된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쓰러졌다.

         

       “뭐야!”

       “젠장, 진 바렌베르크가 풀려났다!”

       “다들 후퇴!”

         

       그들을 놓칠 생각은 없다. 정보가 새어나가면 추적이 붙을 테니까.

         

       다시 달려들었다. 검을 휘둘렀다. 동기화된 능력치와 진의 몸에 새겨진 감각에 의지해서 움직인다. 쉴 틈 없이 휘두른 검에 의해 피비린내가 맴돌았다. 수십에 가까운 사람들이 죽어, 모래로 이루어진 평원이 피바람이 휘몰아치는 사막으로 바뀌었다.

         

       “후우.”

         

       숨을 크게 내쉬고 정신을 차리니 우리를 이송하던 수십에 가까운 병사들이 모두 쓰러져 있었다.

         

       “전하!”

         

       살아남은 자들이 미소를 지으며 달려온다. 나는 그들의 포승줄을 베어내 풀어주었다.

         

       “열쇠꾸러미는 알아서 찾아라. 지금부터 우리는 개인행동으로 들어간다.”

       “예? 전하는 바렌베르크 왕국의 희망입니다! 혼자 움직이시는 건…!”

       “내 결정에 토 달지 말거라.”

         

       휙. 검에 묻은 피를 쳐냈다.

         

       “이제부터 우리는 각자 알아서 살아간다.”

       “전하, 하지만…!”

         

       그들과 더이상 이야기할 건 없다. 내게 바렌베르크 왕국을 재건할 의무는 없으니. 사실 그 무엇보다 원작에서도 바렌베르크 왕국을 재건하는 건 불가능했다.

         

       “다들 앞으로의 삶은 평탄히 흘러가길 기도하마.”

         

       나는 그리 말하고 정면을 향해 유유히 걸어갔다.

         

       그런데.

         

       다그닥다그닥!

         

       지면에 부딪히는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바라본 정면에서는, 수백은 거뜬히 넘어 보이는 기사단이 몰려오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온몸의 숨을 내뱉었다.

         

       “후우!”

       

       그래, 이렇게 쉽게 끝나지 않겠지. 한 번 해보자고.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사함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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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악역 영애를 키우고 도망쳤다
Score 8.6
Status: Ongoing Author:
I made a villainess destined for death into the most powerful person in the empire and then f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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