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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

       때로, 재능은 부족한 것보다 차라리 없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내 재능은 나오나에서 상위 500등의 챌린저가 되기엔 충분했지만 프로게이머가 되기에는 부족했다.

        

       한 끗 차이라고 생각했기에 노력했다. 반응속도부터 인지범위까지 모든 것이 최상위권의 경쟁자들에 비해 한없이 부족했지만- 내게는 그 모든 걸 극복할 다른 재능이 있다고 생각했다.

        

       소위 ‘뇌지컬’로 게임을 하는 스타일을 정립해나가며 연구하고, 또 연구했다.

       

       게임을 어떻게 하면 왜 이기는지.

       

       언제, 어떤 실수가 가장 치명적인지.

        

       그 노력의 끝에 내가 부딪힌 천장은 한국 서버 492등이었고,

       

       각성하며 한 단계 진화했다고 느낀 후에조차 다시 부딪힌 천장은 프로게이머 연습생이었다.

       

       눈에 매우 뚜렷하게 보이고, 머리를 박을 때마다 죽을 듯한 고통이 느껴지는, 견고하고 뚜렷한 콘크리트 천장.

        

       저마다 머리에 커다란 혹 하나씩 단 친구들이 모여있는 해외 비인기 리그라도 가서 연봉 2,000만원 남짓 받으면서 프로게이머 생활을 할 수는 있었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유럽이나 미국은 상상도 못하겠지만, 중동 쪽 2군에는 비집고 들어갈 자리 하나 둘쯤 있었으니.

       

       하지만 거기서 출발해서 유의미한 커리어를 쌓아나갈 자신도 없었고, 그 돈 받으며 외국생활을 할 용기는 더더욱 없었더랬다. 

        

       그렇게 프로게이머를 포기했다.

       

       돌이켜보면, 그 시점에 손절을 한 건 그나마 현명한 판단이었더라. 애초에 나오나 프로게이머를 지망하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그래도 특별히 후회는 없다. 전생의 3평짜리 방에서도, 현생의 3평짜리 방에서도, 인생은 나름 즐겁고, 나오나는 여전히 재밌으니까.

        

       프로게이머의 문턱에서는 좌절했다지만, 한 번 쌓았던 나오나 실력은 어디 가지 않는다.

        

       특히 나처럼 피지컬이 아닌 뇌지컬에 의존하는 타입은, 딱히 나이를 먹는다고 실력이 급감하지도 않고.

        

       그러니까,

        

       [그치리(사제): 도적 진짜 찢어죽이고 싶네]

       [르옹(성기사): 법사가 방송하는 애라던데 ㅋㅋㅋㅋ 방송 욕심 부리는 거임?]

       [그치리(사제): 도적은 방송 나가는게 그렇게 좋으면 부모님이랑 같이 9시 뉴스에나 나오면 안 됨? 나도 치킨 시키고 볼게]

        

       내가 겨우 다이아몬드 랭크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이유는 결코 내 실력 탓이 아니다.

        

       [따먹아(도적): 음…죄송합니다.]

        

       문제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반응속도.

        

       나는 원래 ‘보고 반응’해가며 게임을 하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미천한 반응속도를 가지고 있었고, 그 탓에 거의 모든 플레이를 미리 예측된 계획에 따라 수행했다.

       

       그러니까, 상대의 좌상단 공격이 예상되면 내 손가락은 이미 그 공격을 피하기 위한 회피 커맨드를 준비하고 있다가, 상대의 오른쪽 어깨가 움찔하는 걸 보는 순간 바로 커맨드를 입력한다.

       

       칼의 궤도를 확인하기는 커녕 팔이 휘둘러지는 걸 보고 반응해도 늦는다. 오른쪽 어깨가 움찔할 때 이미 키보드 누르려고 마음 먹어야 가까스로 타이밍 맞게 카운터를 넣을 수 있다.

        

       그런데 여러 차례에 걸쳐 테스트해본 결과, 6개월 전부터 내가 되어버린 이 몸의 청각 반응속도는 0.08초고, 시각 반응속도는 0.17초다.

        

       육상선수들은 출발신호로부터 0.1초 내에 출발하면 ‘규정대로 신호를 듣고 출발했으면 0.1초는 지나야 출발할 수 있으니, 출발 시간 자체가 부정출발의 증거다’라는 이유로 실격당한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 인간으로서 가능한 한계치를 넘은 수준의 반응속도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반응속도와 내 플레이스타일이 만나면 어떻게 되는가 하니,

        

       [그치리(사제): 님들 방금 도적 저 @$*( 굳이 앞돌진 써서 빗나간 스킬을 쳐 맞는거 봄?]

       [그치리(사제): 진짜 이 *망겜은 트롤을 왜케 안 잡는거지]

        

       엑셀을 아무리 밟아도 시속 80키로미터 나오는 다마스를 평생 몰던 습관 탓에, 페라리를 몰면서도 자꾸 풀엑셀을 밟아버리는 드라이버가 되고 만다.

        

       결과야 뭐, 당연하게도 시속 150키로미터로 벽에 꼴아박는 교통사고다.

        

       하지만 진짜 큰 이유는 두 번째다.

        

       내가 살던 세상에서, 나오나는 원래 키보드와 마우스로 하는 게임이었다.

        

       내가 지금 사는 평행세계에서, 나오나는 풀 VR 모션트래킹으로 하는 게임이고.

        

       전생의 잔재인지, 키보드와 마우스도 지원하지만- 말 그대로 형식적으로 지원할 뿐이다.

        

       처음 이 사실을 알게 되고 황당해서 한참동안 리서치한 바에 의하면, 이 세상에서는 나오나는 물론이고 대부분의 게임은 풀 VR로 하는게 대세였다.

        

       전용 장비를 착용하면, 내가 움직이는 대로 진짜 기사가 움직이는데 당연히 누구라도 VR로 하겠지.

        

       프로 경기가 아닌 이상에야 모션 보정까지 듬뿍 들어가서, 상대가 내 왼쪽 어깨를 노리고 칼을 휘두를 때 왼팔을 살짝만 뒤로 움직이면 바로 캐릭터가 회피 모션에 들어가는 수준이다.

        

       한 마디로 온 몸으로 움찔움찔 거리기만 하면 절정의 피지컬을 선보일 수 있다.

       

       

       차라리 딸깍딸깍이 진짜 피지컬이지.

       

       

       각설하고,

       

       프로경기에서도 VR사용이 기본이니, 나오나 유저라면 일단 VR기기부터 사는게 당연한 일이었다.

        

       이 지경인데도 키보드와 마우스로 나오나를 하는 건 단 두 부류다.

       

        

       미션이 걸려서 방송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시도하는 스트리머.

       

       그리고 나.

       

        

       나는 신성한 나오나를 그런 보정을 받아가며, 괴상한 장비를 착용하고 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수 백만원을 호가하는 VR기기를 살 여력도 없었지만.

        

       그러니 나는 오늘도 키보드와 마우스로 열심히 나오나를 즐긴다. 조금, 조금 불리하더라도.

        

       “아.”

        

       큐가 잡힌 시간과 방송 화면을 비교해보니, 이번엔 참여에 실패했다. 두 손을 그러모아 ‘제발 제발 제발 제발..!’을 외치며 상대편에도 내가 없기를 기원하고 있는 아크의 모습에 미소가 새어 나온다.

        

       마침 배도 고프고, 손목도 아파오던 참이었다. 가볍게 밥을 먹으며 비참여시청자가 되는 것도 좋겠지.

        

       게임을 종료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

        

       “그래, 이거지! 봤지? 봤지? 나 진짜 다이아에 있을 사람은 아니라니까?”

        

       =승리=

        

       파란 승리 화면을 앞에 두고 포효하는 아크에 화답하듯, 채팅창이 빠르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마스터 종자 아크…! 마스터 종자 아크…! 마스터 종자 아크…! 마스터 종자 아크…! 마스터 종자 아크…!』

       『아따먹 없으니 바로 개같이 3연승 ㅋㅋㅋㅋㅋ』

       『근데 그렇다기엔 아따먹 상대편일 때도 지지 않았냐?』

        

       -ㅇㅇ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승급전 축하합니다 선생님 믿고 있었다구!】

        

       -ㅇㅇ님이 10,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승급전 딱 대! 승급전 딱 대! 승급전 딱 대!】

        

       승급전.

        

       나오나에서는 다이아에서 마스터로 승급할 때 총 7판 중 4판을 승리해야 했다. 유독 마스터 승급에 대해서만 가혹한 탓에 통곡의 벽이라고도 불렸다.

        

       마스터에서 강등된지 장장 3개월만에 드디어 승급전에 복귀한 아크는, 쏟아지는 도네이션과 채팅을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빌어먹을 저격들 때문에 다이아까지 추락하고, 방제에 ‘실력방송’ 한 마디 걸어둘 때마다 ‘다딱이가 실력방송?’이라고 얼마나 놀림받았던가.

        

       다시 마스터로 승급하고 당당하게 ‘마스터 법사 나오나 실력방송’을 걸어둘 상상만 해도 입꼬리가 근질근질 거릴 지경.

        

       물론, 마음을 급하게 가질 이유는 없다. 내일, 푹 쉬고 최고의 컨디션으로 임하여 5판 내에 4승을 챙겨서 단번에 승급전을 뚫는게 방송적으로도, 확률적으로도 베스트였으니까.

        

       “여러분, 오늘 방송 여기까지 할게요. 봐주셔서 감사하고, 내일 저녁에 승급전 방송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아 승급전 맛만 보자 ㅋㅋㅋ』

       『아크야 지금이 타이밍이다 아따먹 없잖아』

       『내일 저녁에 돌아오면 승급전 7꽉으로 아따먹 풀참여 예상함』

       『ㄹㅇㅋㅋㅋ 지금 4판 연속 그 새끼 없는 게 대체 얼마만인데

        

       시청자들은 예상대로 난리를 치고 있었으나- 이러한 불만 역시, 다음 날의 기대감을 올려주는 좋은 조미료리라. 그리 생각하며, 만족스러운 웃음과 함께 방종화면을 띄우려던 순간.

        

       -ㅇㅇ님이 10,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나 아따먹인데 지금 돌리면 저격 안 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ㅋㅋㅋㅋㅋㅋ 이건 인정이지』

       『아크야 봤냐 지금이 승급전 타이밍이다』

        

       순간적으로 얼굴이 굳었던 아크는, 이내 도네이션을 한 시청자의 아이디를 확인하고 얼굴을 풀었다.

        

       방송 초기부터 시청하며 여러 차례 도네이션을 했을 뿐만 아니라, 시청자참여 게임도 했던 평범한 실버 유저. 타이밍 잡는 감은 좀 없었지만, 진심으로 화낼 일은 아니다. 살짝 연기나 하며 방종각을 잡으면 될 터.

        

       “어딜 협상질이야. 니가 아따먹이면 즉시 아이피 영구밴이다, 이놈아!”

        

       짐짓 화난 톤으로 호통을 치며 ‘ㅋㅋㅋ’가 연이어 올라오는 채팅창을 잠시 바라보던 아크는, 다시 한번 웃으며 입을 열었다.

        

       “우리 ㅇㅇ님은 저격범 사칭죄로 임시차단 드립니다. 진짜 저격범 잡아오면 풀어드릴게요. 그러면 저 진짜 이만 가요~”

        

       『ㅂㅂ』

       『내일보자』

       『ㄴㅇㅂㅈ』

       『오늘 방송 알찼다』

       『수고』

        

       나쁘지 않은 방송이었다. 도네이션도 상당히 터졌고, 편집만 잘 하면 지튜브도 상당히 재밌게 뽑힐 소스도 제법 얻었고.

       

       조금 전 낚시성 도네이션을 보낸 시청자조차 고작 18시간 밴으로 용서해줄 정도로 만족스러웠다. 

       

       그리하여 뿌듯한 표정으로 시청자들의 채팅을 지켜보며, 방송종료를 누르기 위한 최적의 타이밍을 재고 있던 찰나.

        

       -ㅇㅇ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저 아따먹인데 지금 게임해주시면 시청자참여 안 할게요. 인증 가능합니다.】

        

       ‘사칭으로 웃기는 것도 타이밍인데 말이야.’

        

       마지막 순간이라는 생각에 조금 방심한 탓일까. 표정관리에 실패한 아크의 인상이 살짝 찌푸려졌다.

       

       스트리머만큼 편한 직업이 없다고들 하지만, 재미도 없고 타이밍도 못 맞추는 도네이션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텐션을 유지하는 건 제법 힘든 일이었으니.

        

       ‘지튜브에선 이 부분은 자르고 아까 방종한 걸로 해야겠네.’

        

       도네이션 창을 띄워 조금 전 도네이션을 보낸 아이디 – [email protected]를 확인한 아크는, 이내 심드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dam1909267 골뱅이 cmail.com아, 재미없다~”

        

       『ㄹㅇ』

       『기가막힐 정도로 노잼이네』

       『꼭 누가 웃기면 1절에서 멈추는 법이 없어』

       『방종 타이밍까지 뇌절을 해요 꼭』

        

       “아 농담입니다 여러분. 진짜 이메일 읽은 거 아니었으니까 괜히 이메일 보내고 그러지 마세요. 암튼 전 갑니다~ 아바~”

       

       그러나 마지막 인사를 남긴 아크의 손은, 끝내 방송 종료 버튼에 닿지 못했다.

       

       -ㅇㅇ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비밀번호 q1w2e3r4!이니 접속해보세요.】

       

       평소라면 어그로에 불과하다고 치부하고 치웠을 도네이션에서, 어째서인지 묘한 현실감이 느껴졌기에.

       

       * * * * *

        

       다소 충동적으로 보낸 도네이션이었지만 후회는 없었다.

        

       오랜만에 시킨 치킨은 너무 맛있었고, 곁들인 맥주는 너무 시원했다.

        

       치킨은 4조각, 맥주는 한 캔이 남았으니까……딱 30분만 더 즐기고 싶은데.

        

       치맥과 함께 비참여시청자로서 아크의 방송을 즐기는, 나만의 작은 행복을 부당한 방종으로 뺏긴다고?

        

       이건 막아야지.

        

       맥주를 홀짝이며 기다리고 있자니, 아크의 방종화면이 스르륵거리는 효과와 함께 사라지고-

        

       대신 나타난 건, 익숙한 나오나 클라이언트 메인 화면이었다.

        

       키보드와 마우스를 사용할 때 접속되는 클라이언트로 로그인을 한 걸 보니, 방종 화면을 띄운 채로 이미 VR기기를 벗은 모양.

        

       “으음…….”

        

       VR기기 다시 착용하는 거, 오래 걸리려나. 치킨 다 먹기 전에 게임 시작했으면 좋겠는데.

        

       입을 크게 벌려 치킨을 한 입 더 베어 물며 빠르게 움직이는 채팅창으로 눈을 돌렸다.

        

       『???어??』

       『?』

       『?』

       『아따먹 계정 아님 이거??』

       『???』

       

       『이거 진짜 아따먹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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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그런 악질 방송 안ㅣ에요
Score 3.7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am a healthy skill-based broadcaster.

I don’t hate priests.

It’s not that kind of broadcast.

What?

Clarify the controversy that’s been posted on the community?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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