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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

       “앗, 힝, 읏, 엨.”

       

       뭔가 변명해야겠다 싶어서 입을 열었는데, 내 입에서 나온 것은 미처 언어가 되지 못한 무언가였다.

       

       내가 내는 괴상한 소리를 듣고 메이드는 나의 상태가 아주 심각하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음식이 뜨겁습니다. 혹시 흘리게 된다면 위험할 수 있으니, 제가 식사를 도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 아뇨, 괜찮은데요!”

       

       아무리 몸이 소녀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안에 들어있는 나는 다 큰 성인이었다. 이렇게 보여도 직장 생활까지 하고 있었다고. 그런데 나랑 나이 차도 별로 나 보이지 않는— 어쩌면 더 어릴지도 모르는 저 여성이 나에게 죽을 떠먹여 준다는 것은 여러모로 좀 그랬다.

       

       아, 물론 저 메이드는 굉장한 미인이기는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연인도 아닌 사람이 그렇게 해주면 엄청나게 어색해질 게 분명하다.

       

       안 그래도 이미 내 것도 아닌 몸에 들어와서 극도의 어색함을 느끼고 있는데, 여기서 더 어색해지면 하루하루가 엄청나게 견디기 힘들어질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메이드를 향해서 양손을 쥐었다 폈다 해 보이며 말했다.

       

       “자, 봐요! 손도 이렇게 멀쩡하고, 팔도 움직이니까—”

       

       하지만 나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나를 바라보는 메이드가, 마치 처음 보는 생물을 보고 있는 것 같은 표정으로 서 있었기 때문이다.

       

       “…….”

       

       “…….”

       

       입을 작게 벌리고 멍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는 메이드를 보고, 나는 그제야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도 그럴 것이, 상대는 메이드였다.

       

       아니, 물론 이 세상이 중세 판타지 속은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다. 구급차도 있고, 경찰은 한국 경찰이 입는 옷을 입고 있었고, 의사는 양복에 하얀 가운 차림이었으니까. 분명히 이 세계의 시대 배경은 현대였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한 가족만 살기에는 말도 안 되게 큰 저택에 아주 사전적인 의미의 메이드복을 입고 있는 메이드가 존재했다. 그리고 메이드가 나를 아가씨라고 부르는 것으로 추정하건대, 이 소녀의 나이와 저 메이드의 나이 차와는 상관없이 저 메이드는 이 몸의 원주인을 섬기거나, 최소한 고용되어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물론 모든 사람이 그렇지는 않더라도 피고용인에게 반말과 갑질을 일삼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존재하는 법이다. 나이를 불문하고 말이다.

       

       아니면 오랫동안 이곳에서 일하면서 저 메이드와 소녀가 나름대로 유대감을 쌓아 올렸을지도 모른다. 어젯밤에 메이드가 거리낌 없이 이마에 손을 올리던 모습을 생각해보면, 친한 언니 동생의 관계가 형성되어있었을지도. 상대는 존댓말을 쓰지만, 이 아이는 친밀하게 반말을 썼을지도 모르겠다.

       

       “…….”

       

       “…….”

       

       한동안 계속되는 침묵 속에서, 나는 번쩍 들고 있던 양손을 천천히 내렸다.

       

       “역시 제가 옆에서 식사를 도와드리는 것이 좋겠습니다.”

       

       메이드는 엄하게 말했다.

       

       네, 라고 대답해야 하는가. 아니면 응, 이라고 대답해야 하는가.

       

       하지만 결국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제대로 정하지 못한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 할 수밖에 없었다.

       

       메이드가 한 스푼씩 천천히 떠서 일일이 식혀가며 먹여주는 죽을 다 먹는 데는 거의 한 시간이 걸렸다.

       

       새빨갛게 익은 얼굴로 겨우겨우 식사를 마치고, 메이드가 다시 뒷걸음질로 방을 나가는 것을 보고, 나는 바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방 안을 뒤지기 시작했다.

       

       *

       

       내가 방 안에서 얻을 수 있었던 정보는 그리 많지 않았다. 사실 방이 넓고 잘 꾸며져 있긴 했어도, 실질적으로 이 소녀가 생활한 흔적이 있는 것은 침대 주변뿐이었다. 책장이 있기는 했지만 고전 문학 몇 권 빼고는 전부 비어있었고.

       

       화장대에 거울이 하나 있어 그 앞에 앉아보았지만, 거울에 비친 얼굴은 검고 긴 머리에 피부가 하얀 미소녀라는 정보 외에는 별다른 것이 없었다. 특징이라면 눈매가 상당히 날카롭다는 정도일까. 아까 본 메이드보다 더 날카로운 인상이다.

       

       눈동자가 붉은 것도 특징이겠다만…… 어디 웹소설이나 라이트 노벨에서 눈동자 붉고 검은 머리카락을 지닌 여자 캐릭터가 한둘인가.

       

       거기서 제대로 된 정보를 얻지 못한 나는, 바로 몸을 일으켜 방에 딸린 샤워실로 들어갔다.

       

       *

       

       샤워실에서 나와, 한숨을 푹 쉬었다. 샤워실에서 얻은 정보가 오히려 내 생각을 복잡하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확인한 소녀의 몸은 몹시 빈약해 보였다.

       

       뭔가 제대로 안 먹은 것 같은 몸이긴 한데, 사실 이게 가정폭력 때문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내가 병원에 실려 가는 와중에도 부모가 따라오지 않은 시점에서 의심해볼 필요는 있겠지만, 만약 정말로 이 소녀를 굶겨가며 학대했다면 메이드가 직접 죽을 가져와서 떠먹여 주거나 하지는 못하게 했겠지.

       

       그리고 멍 자국도 그랬다. 적어도 거울에서 보이는 정면 모습에는 멍 자국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반면에 등 뒤는,

       

       이쪽은 그야말로 처참했다.

       

       주로 어깨에서 팔에 이르는 부분이나 엉덩이, 종아리 같은, 주로 누웠을 때 바닥에 직접적으로 닿는 부분이 새파랗게 멍들어 있었다.

       

       물론 누군가에게 맞았다고 한다면 맞았다고 할 수도 있기는 하겠지만…… 보통 학대하는 부모가 이렇게 특정한 부분만 집요하게 때리나?

       

       ……뭐, 엉덩이 쪽이 새파랗게 물든 것을 보면 그럴지도 모르지.

       

       하긴, 내가 학대당하며 산 적이 없으니 나의 좁은 식견만으로 판단하는 것도 위험했다.

       

       만약 정말로 매일같이 부모에게 얻어터지는 캐릭터라면 그건 그거대로 큰일이니까. 이런 몸으로 제대로 반항을 할 수 있을지나 모르겠다. 반항한다고 해도 더 얻어맞을 게 분명하고.

       

       …….

       

       ……그래도 내가 얘의 몸을 보고 성적으로 이상한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다행이다.

       

       *

       

       그 후로, 나는 방 안을 샅샅이 뒤졌다. 옷장의 옷이나 책상, 서랍, 그리고 책장에 있는 책까지 전부. 책 사이에 뭔가 꽂혀 있나 싶어 찾아봤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책상 서랍 안에선 제목 없는 두꺼운 양장본 노트 하나와 봉인된 편지 봉투 하나, 그리고 반 정도 들어있는 수면제 한 통이 나왔다.

       

       옷장 안에선 교복 하나가 나왔다. 왼쪽 가슴 주머니의 학교 엠블럼에 대문짝만하게 中 자가 쓰여있는 것을 보면 중학생 때 입던 옷인 모양이다. 그 주머니 위쪽에 달린 이름표에는 ‘예사라’라고 쓰여있었다.

       

       그리고 그제야, 나는 내가 정확히 어떤 세계에 떨어져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내가 얼마 전까지 스트리머의 방송으로 보던 ‘if you wish’.

       

       그곳에서 등장하던 재벌 영애이자 악역 영애, ‘예사라’였던 것이다. 게임 내의 그래픽 CG가 그림판에 마우스로 그린 것 같은 수준이었기 때문에 매칭이 되지 않는 것도 당연했다. 2D에서 3D로 오기만 해도 알아보기 힘들 텐데, 거기에 그 2D의 데이터가 정확하지 못하다면 더더욱 알아보기 힘든 것은 당연했다.

       

       망했……

       

       ……아니지, 잠깐만. 진짜로 망했나?

       

       나는 침대 위에 펼쳐둔 그 단서들 앞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진지하게 고민했다.

       

       악역 영애라고는 하지만, 아직 악역 영애가 되기 전이다. 아직 나는 고등학생이 되기 전인 모양이니까.

       

       그도 그럴 게, 옷장 안을 뒤져봐도 중학교 교복만 나오고 고등학교 교복은 없었다. 책상 위의 디지털시계에는 오늘이 1월 1일이라고 표시되어 있었고, 그건 아직 입학식까지 두 달 하고 하루 정도의 시간이 남았다는 뜻이기도 했다.

       

       아직 고등학교에서의 관계가 완성되지도 않았으니, 당연히 내가 서사에서 ‘악역’이 되지도 못했다.

       

       게다가, 그림 때문에 제대로 알아보기 힘들다고는 하지만 고등학교 교복에도 당연히 이름표가 붙는다. 적어도 내가 고등학교에서 누가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할 이유는 없다는 뜻이다. 내가 고등학교에 가서 해야 할 일은 그저 해당 게임의 주요 인물들과 무난하게 친해지거나 서로 관심 없는 관계가 되어서 여주인공과 어떤 캐릭터가 이어지건 말건 나랑은 관계없는 상황이 되도록 유도하면 된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건 어려운 것도 없는 일이다. 친해지는 건 어떨지 몰라도 만나지 않는 거라면 자신 있으니까. 그냥 교실 구석에 찌그러져 있으면 그만이다.

       

       그리고 나는 이미 고등학생 시절 내내 교실 구석에 찌그러져 있었던 경력이 있었다!

       

       ……자랑할만한 일은 아니지만.

       

       “하아…….”

       

       우울했던 고등학생 시절의 기억은 잠시 접어두고, 나는 다시 나머지 단서들을 하나하나 살피기 시작했다.

       

       일단 수면제.

       

       ……고작 중학생밖에 되지 않은 애가 무려 수면제를 먹어야 할 정도라면, 대체 어느 정도의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던 걸까?

       

       아니, 그보다 수면제를 미성년자한테 처방해주기도 하나? 게다가 이 통 안에는 이미 수면제가 십수 알은 들어있었다. 수면제를 한꺼번에 이렇게 많이 처방하기도 하나?

       

       ……모르겠다. 딱히 잘 산다고 할 수 없는 가정에서 자라긴 했지만, 그렇다고 정신과를 들락거려야 할 정도로 심각한 정신적인 문제에 시달린 적은 없었으니까.

       

       나는 일단 수면제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이번에는 아무것도 쓰여있지 않은 노트를 집어서 펼쳐 들었다.

       

       일기장이라고 생각했더니, 연습장에 가까웠다.

       

       그리고 그것도 그냥 연습장이 아니라, 일종의 망상 노트 같은 것이었다.

       

       이 노트에는 예사라가 아마 중학생 내내 쓴 것 같은 소설이 한 무더기 들어있었다.

       

       [그의 피부는 마치 백지장처럼 새하얀 색이었다……]

       

       [후후, 나의 왼팔에 봉인된……]

       

       [나유타, 무량대수, 긍갈라를 넘어서서라도 너를……]

       

       [죽어죽어죽어죽어—]

       

       “…….”

       

       나는 조용히 노트를 덮었다.

       

       아니, 뭐. 나도 대충은 왜 이런 글을 쓰는지 알고 있다. 나도 나름대로 그런 시절이 있었고, 원래 똘기를 외부로 발산하지 못하는 내향적인 사람들은 저렇게 내부로라도 풀어야 하는 법이었으니까.

       

       사실 읽기 괴로운 것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남의 사생활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무리 지금 내게 단서가 부족하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남의 망상 노트까지 훔쳐볼 필요는 없지 않을까?

       

       내 양심 저 안쪽 어딘가에서 아까 샤워실에 들어갔던 일은 괜찮은 거냐고 묻고 있었지만, 나는 그 말은 사뿐히 무시했다. 이 노트 건과는 별개로, 샤워실이나 화장실에 들어가는 것은 이 몸 안에 있으면 언젠간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메이드에게 샤워와 화장실 뒤처리까지 부탁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건 그거대로 성추행이다.

       

       게다가 어떻게 돌아가야 할지 알지도 못하겠고.

       

       …….

       

       그래, 분명 TS 소설을 읽을 때마다 굳이 돌아갈 방법을 찾는 이유가 뭐냐고 속으로 투덜거리던 나는, 채 24시간이 지나기도 전에 돌아갈 방법을 운운하고 있었다.

       

       노트를 내려놓고 보니, 그 옆에 두었던 하얀 봉투가 보였다. 별다른 장식은 없고, 그냥 다이소 같은 곳에 가서 천 원이면 살 것 같은 흔한 편지 봉투였다. 봉투에는 ‘어머님께’라고 쓰여있었다.

       

       글씨 예쁘네.

       

       하긴, 노트에 쓰인 글씨도 예쁘긴 했으니까.

       

       조금 전에 그 노트를 보았더니 이 편지 봉투를 뜯는 것은 더 겁이 났다. 이건 진짜로 개인적인 내용이었으니까. 이 소녀가 자신의 어머니에게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는 알 수 없어도, 그 편지를 내가 함부로 뜯어서 읽을 권리가 있을까?

       

       잠깐 고민하던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노트와 편지 봉투를 들어 다시 책상 서랍 깊숙이 집어넣었다.

       

       그래, 어쩌다 보니 내가 잠시 들어오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내가 이 몸에 들어왔을 때처럼, 하루아침에 원래의 몸으로 돌아갈지도 모르지. 사실 버스 사고 같은 것이 아니라 그냥 깜빡 잠이 들어서 그런 건지도 모른다. 별로 꿈 같은 기분은 들지 않았지만.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다시 돌아온 예사라가 서랍을 열었을 때 봉투가 뜯어져 있었다면 무슨 생각을 하겠는가.

       

       뭐, 잠깐 와 있다가 돌아갈 거면 그냥 얌전히 있는 편이 제일 좋겠지?

       

       ……잠깐 있다가 돌아가는 거 맞겠지?

       

       “……상태창?”

       

       다시 한번 중얼거려보았지만, 상태창 비슷한 것도 뜨지 않았다.

       

       나는 머리를 감싸 쥐고 한숨을 쉬었다.

       

       그나마 알고 있던 게임의 설정을 떠올려본다.

       

       스탯은 지식, 체력, 매력, 이렇게 세 가지였다. 당연히 판타지 배경이 아니었으니 마나는 없었고, 저 체력이라는 말도 HP가 아니라 우리가 일상에서 생각하는 그 ‘체력’이었다.

       

       스탯은 선택지에 영향을 주고, 선택지에 따라 저 스탯이 되어야만 선택할 수 있거나, 만약 스탯이 떨어지면 실패하게 되는 경우가 있었다. 캐릭터를 공략하기 위해서는 그 캐릭터를 따라잡기 위한 스탯이 필요했다. 나는 스트리머가 스탯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가 자신이 원하지 않는 캐릭터를 공략했던 1회차를 떠올려보았다.

       

       ……만약 이 세상이 정말로 그 ‘게임’속이 맞는다면, 어떻게든 그 스탯을 확인해야 할 텐데.

       

       설마 내가 주인공 캐릭터가 아니라 상태창을 열 수 없는 걸까?

       

       하지만 그러면 큰 문제가 생긴다.

       

       스탯이야 뭐, 주인공 외에는 고정되어있으니 그렇다 쳐도, 이 게임상에는 ‘육감’이라는 설정이 존재했다.

       

       스탯이 부족하더라도 게임을 어느 정도 쾌적하게 플레이할 수 있도록 제작자가 준비해둔 초능력 비슷한 것이었다. 물론 진짜 초능력은 아니고, 게임 내적으로는 일종의 편의성 기능이었다. 플레이하기 전에 미리 선택할 수 있는 그 육감은 종류에 따라 선택지가 상대방의 기분에 미치는 영향이라던가, 기본적으로는 숨겨져 있는 공략 캐릭터의 스탯을 볼 수 있다던가, 아무튼 게임상에서 공략에 도움이 될만한 보너스 능력 같은 것이었다. 설정으로는 여주인공의 ‘감’이었다.

       

       그리고 이 육감이라는 것은 시스템뿐만이 아니라 설정상으로도 존재해서, 게임상의 주요 등장인물은 대부분 육감을 하나씩은 가지고 있었다. 대놓고 ‘육감’이라고 표현되지는 않지만, 주인공이 어느 선택지에 마우스를 올려두고 있는지 맞힌다거나, 주인공의 스탯치를 알아차린다거나 하는, 제4의 벽을 넘을락말락하는 개그 요소로 많이 등장했다.

       

       문제는,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주요 인물은 육감을 가지고 있다’라는 것뿐, 실제로 예사라가 가지고 있는 육감이 뭔지는 모른다는 것이다.

       

       ……아니, 실제로는 없을지도 몰랐다. 일단 공략 대상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모든 주요 인물들이 가지고 있다는 소리는 못 들었으니까.

       

       “하아…….”

       

       제발 뭐 도움이 되는 능력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네.

       

       *

       

       잠깐 있다가 돌아가기는 개뿔.

       

       그 후로 한 달 하고도 2주가 지났다.

       

       그동안 내가 나의 원래 몸으로 돌아가는 일은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내 예상대로 예사라는 집안에서 얻어맞고 사는 캐릭터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사실, 그보다는 예사라의 어머니라는 사람이 예사라에게 관심이 없었다. 애초에 같이 살지도 않았고.

       

       지난 한 달 반 동안 치열한 눈치싸움과 인터넷 검색으로 알아낸 정보에 의하면,

       

       예사라의 증조부가 유진 그룹을 창업했고,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걸쳐 그 그룹을 운영해오다가, 예사라의 아버지가 요절해버리는 바람에 예사라의 어머니가 현재 회장직을 맡고 있었다.

       

       참고로 지금의 예사라의 어머니는 친어머니가 아니다. 예사라의 친모는 예사라를 낳은 직후 사망했고, 지금 어머니라고 부르는 존재는 그 후에 예사라의 아버지가 재혼하면서 들어온 사람이었다.

       

       모든 양어머니가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아침드라마같은 막장성이 적용된 세상이라 그런지 예사라의 양어머니는 딱히 예사라를 자식으로써 사랑하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그나마 예사라의 아버지가 재혼한 어머니와 자식을 낳지는 않았기에 예사라의 목숨이 위협을 받는 사태는 일어나지는 않은 모양이다만, 그렇다고 곱게 보이지도 않는 모양인지, 이렇게 집 하나 사 두고 알아서 살라고 넣어둔 모양이었다.

       

       유진 그룹은 이 세계관에서는 대한민국 재계 1위의 그룹이었다. 현금, 부동산, 주식…… 아무튼 ‘재산’이라고 부를 수 있는 모든 부분에서 유진 그룹이 가진 것이 다른 그룹들보다 압도적으로 높았다. 그래서 그런지, 예사라에 대한 정보도 인터넷에서는 꽤 흔히 찾아볼 수 있었다.

       

       뭐, 그래봐야 어린 시절의 사진 몇 장 정도였지만.

       

       빼어난 외모 때문에 호감을 가진 인물들도 몇몇 있었지만, 유진 그룹이 끼치고 다니는 민폐가 상당했기 때문에 그 이유로 예사라를 곱게 보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뭐, 덕분에 돈이 부족할 일은 없을 것 같다.

       

       예사라 혼자만을 위한 이 저택에서 상시 근무하는 인원은 총 열 두 명이었다. 예사라의 개인 가정부, 그러니까 나에게 직접 죽을 퍼서 먹였던 그 젊은 여성, 양혜인. 이 사람이 동시에 사용인의 대장 역할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나머지 열 한 명 중 네 명이 그 검은 양복을 입은 아저씨들이었다. 물론 저택에서 상시 근무를 하는 사람들이 넷이라는 거고, 양혜인을 제외하면 나머지 사람들은 전부 교대근무이기 때문에 유사시에는 훨씬 더 많은 인원을 부를 수도 있었다. 지난번에 병원에서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나머지는…… 전속 요리사가 세 명, 청소부가 세 명, 그리고 정원사가 한 명.

       

       집을 제대로 보지 못했을 때는 그냥 성북동 어딘가의 커다란 집 정도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실제로는 무려 로비가 있고 1층과 2층으로 나누어진, 무슨 영화에나 나올 법한 대저택이라 당황스러웠다.

       

       집 자체로도 등록문화재라던가 뭐라던가.

       

       무려 그 땅값 비싸다는 서울 한복판에 그 대저택을 지어두었다는 것에서 유진 그룹의 돈이 얼마나 있는지 알 것 같았다.

       

       이 저택만으로도 이미 서울에 알박기했다느니, 재개발을 노리고 있다느니 하는 말이 나오고 있을 정도였으니까.

       

       어쩌면 예사라가 그 저택에 살게 된 것도, ‘우리는 이 집을 이용하고 있다’라는 변명을 하기 위해서가 이유였는지도 모른다.

       

       “무엇을 그렇게 보고 계세요?”

       

       내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자, 옆자리에 앉은 양혜인이 물었다. 아무래도 개인 가정부이다보니 다소 차가운 인상과는 다르게 예사라와 이런저런 친분이 있는 것이 사실인 모양이었다.

       

       “……유진 그룹에 대한 것을 검색해보고 있었어요.”

       

       나는 지난 한 달 동안, 그냥 얼굴에 철판을 깔고 존댓말로 밀고 가기로 결정했다. 이전에 이 메이드와 무슨 대화를 어떻게 나누었건 나에게는 정보가 없었다. 직접 게임을 한 게 아니라 스트리머가 게임을 하는 것을 보았을 뿐이므로 예사라라는 캐릭터는 알아도 이 캐릭터에게 메이드가 딸려있다는 것까지는 몰랐으니까.

       

       아니, 게임을 했어도 예사라 루트를 타지 않았으면 아마 몰랐을 거다.

       

       그렇다고 성인인 상대방을, 그것도 내 기준으로는 처음 보는 사람한테 반말을 하는 것은 난이도가 너무 높았다.

       

       존댓말을 했는데 원래 반말을 했던 사이였다, 라는 것과 반말을 해봤는데 원래 존댓말을 하는 사이였다 중에서 뒤쪽이 훨씬 더 리스크가 클 거라는 판단도 있었고.

       

       양혜인도 처음에는 당황한 듯 보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적응했는지, 내 말투를 문제삼지는 않았다.

       

       “좋은 습관이네요. 언젠가 그룹 전체를 물려받을 분이니 그룹에 대한 여론을 미리 읽어두시는 편이 좋겠죠.”

       

       그녀가 싱긋 웃어 보였다. 양혜인은 지난번에 병원에서 봤을 때처럼 검은 코트를 입고 있었다. 그때는 미처 생각을 못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저 코트는 메이드복 위에 그대로 입는 것이었다. 그래서 허리 아래로는 조금 펑퍼짐해 보였다. 어떤 의미에서는 두꺼운 옷을 입고도 허리가 잘록해 보이기도 했으므로, 보기에 나쁘지는 않았다.

       

       “……그런데 저희는 지금 어디로 가는 거죠?”

       

       “말씀드리지 않았던가요?”

       

       양혜인이 눈을 살짝 크게 뜨면서 물어왔다.

       

       “아뇨, 그…… 지난번에 취소된 일정을 계속한다고만 해서요. 무슨 일정이었죠?”

       

       내 질문에, 양혜인은 눈을 두어 번 깜빡였다.

       

       마치 내가 그걸 잊어버렸다는 것이 엄청나게 당혹스럽다는 듯.

       

       “아가씨, 정말로 기억이 나지 않으세요?”

       

       “어…….”

       

       나는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뭐라고 말하지? 사소한 거라면 몰라도,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걸 보면 진짜로 중요한 일이었던 게 분명하다. 잊어버리는 것이 이상할 정도로.

       

       “아가씨.”

       

       양혜인이 진지한 표정으로, 조금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가씨는 지금, 약혼자를 만나러 가고 있어요.”

       

       “…….”

       

       뭐?

       

       그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은 것은 기적이었다.

       

       “……네?”

       

       욕지거리가 튀어나오려는 것을 꾹 참고 한 박자 느리게 물어보자, 양혜인은 다시 한번 침착하게 대답했다.

       

       “지금, 아가씨는 약혼자를 만나러 가고 있다구요.”

       

       이런 개씨발.

       

       다행히도, 이번에도 입 밖으로 그 욕을 내뱉지는 않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N MH님, 후원 감사합니다!

    이제 막 첫 화를 올렸는데 이렇게 큰 돈을 후원해주시다뇨ㅠㅠ 그저 감사드린다는 말 밖에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전작을 200화 넘게 썼더라도, 이렇게 다시 새로운 소설을 쓰기 시작하니 여전히 긴장되네요. 새로운 전개를 짜고, 캐릭터도 새로 만들어야 하고, 전작과는 확실하게 다르게 써야 하니까요. 그러면서도 일부 소재는 겹치니 쓰면서 조금 조심스러워지는 감이 없지 않습니다. 나름대로 배경도 바꾸고, 중심소재도 바꾸어 봤는데 독자님들께선 어떻게 느끼시는 중인지 궁금하네요. 이번 소설도 부디 독자님들께서 읽으시며 즐거움을 느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일주일 정도 글을 쉬다가 다시 쓰기 시작했는데, 고작 일주일 쉬었다고 글이 술술 나오지는 않네요. 다시 예열하고 글쓰는 속도를 되찾는 과정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물론, 그 말이 연재주기를 지키지 않겠다는 말은 아닙니다. 혹시 이런 일이 있을까 싶어서 아예 전날에 써서 예약을 걸어버리는 식으로 업로드중이니까요. 확실히 이렇게 하니까 글 쓰는데 다소 여유가 생기네요. 아마 일하면서 쓸 때도 정확하게 연재시간에 올리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새해에 맞춰서 새로 연재하기 시작한 소설입니다. 사실 줄거리는 어느정도 완성이 되어있고, 결말도 대충 생각해 둔 것이 있지만, 이번에도 몇화에 끝날 것이라고 정확하게 말씀드리기는 어려울 것 같네요. 전작을 쓸 때만 해도 100화 내에 끝날 줄 알았는데 무려 230화를 끌었으니까요. 너무 급하게 끝내려고 하지 않고 천천히, 이 소설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나씩 꺼내보려고 합니다. 부디 그 기간동안 독자님들께서 즐거우셨으면 좋겠네요. 이번에는 플러스 신청이 목표라서 더 긴장되는 것도 있습니다.

    저를 믿고 이렇게 큰 돈을 후원해주셔서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언제나와 같이, 매일 오후 5시에 오시면 읽으실 수 있도록 준비하고 기다리는 작가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도 저의 소설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

    배캅사냥꾼님, 후원 감사드립니다!

    이제 막 시작하는 소설에 이렇게 후원해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ㅠㅠ 독자님들의 응원은 글을 쓰는 제게 있어 언제나 큰 힘이 됩니다.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할 때 어떤 평가를 받을지 몹시 긴장되기도 하고, 솔직히 앞으로 수백일동안 글을 써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다소 막막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큰 응원을 보내주시니 용기가 나네요. 아직 독자 여러분께 완벽하게 보답해드렸다고 하기에는 글의 양이 적기는 하지만, 매일매일 꾸준히 소설을 쓰는 것으로 보답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막 2화를 올리려고 봤는데, 벌써 선작 수가 100을 넘었네요! 소설을 연재하기 시작한 첫날부터 이렇게 많은 분들께서 제 작품을 선택해주셨다는 것에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아직 스토리가 본궤도에 오르기에는 이르지만, 미리 감사드린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전 소설에서 그랬던 것처럼 태그에 써둔 대로 정직하게, 그리고 매일 성실하게 글을 쓸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이전작부터 이번 작품까지 꾸준히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다시 한 번 후원 감사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언제나 열심히 노력하는 작가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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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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