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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

       처음 뱀이 되었을 때.

       나는 이게 꿈이 아닌가 생각했다.

       

       웬 꿈틀거리는 뱀이 되어 움직이는 꿈을 꾸다니, 나름대로 실감나는 꿈이라 생각하며 실소를 터트린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받아들였다.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고작 서른도 채우지 못한 전생의 기억은, 수천 년의 세월에 묻혀 사라졌으니까.

       

       또 수많은 시간이 흘렀다.

       불을 내뿜는 커다란 도마뱀을 잡아먹고 잠을 잔 것이 화근이었다.

       

       …설마 수천 년을 잠들 줄이야.

       어쩐지 유난히 졸리다 했더니 동면 비슷한 걸 해버린 모양이다.

       

       그 사이에 크기가 더 커진 것일까.

       나의 육체에 딱 맞는 크기의 아늑한 산맥이 한없이 작게만 느껴졌다.

       

       이대로 무언가를 먹는다고 배가 찰까.

       혹 아사를 하는 건 아닐까 싶은 걱정이 들 정도의 크기였다.

       

       그야, 산맥을 뛰어넘어 지평선을 메울 정도의 크기라면 분명 육체에 필요한 열량 또한 어마어마할 테니까.

       

       물론 그저 거대하기만한 뱀이 아닌 만큼 굶주린다고 죽는 건 아닐 거란 생각이 들긴 했지만, 그래도 배고픈 건 싫었다.

       

       해결방안은 의외로 간단했다.

       

       내가 작아지면 되는 것이다.

       동면에 들어 더욱 성숙해진 탓에 깨달음이라도 얻은 것일까?

       

       나는 자연스레 육체의 크기를 조절할 수 있었다.

       

       지금 나의 크기는 대략 300m.

       이것도 터무니 없이 큰 크기이긴 했지만, 적어도 그 전과 비교해선 고래와 플랑크톤 보다도 거대한 차이가 있었다.

       

       그렇게 정처없이 돌아다니다 보니 동굴을 발견했다.

       

       수백 미터의 거체를 감쌀 만큼 거대한 동굴.

       

       그 안에 수십 미터에 달하는 머리 세개 달린 새카만 개가 있긴 했지만, 오히려 좋았다. 때마침 잠에서 깨어나 배가 고픈 참이었으니까.

       

       [그르르르——.]

       

       놈이 낮게 하울링하며 나를 경계한다.

       새빨갛게 이글거리는 두 눈이 나를 빤히 쳐다본다.

       

       경계하고 있는 걸까?

       다만 내 상대는 아니었다.

       

       콰득.

       

       찰나에 짓씹었다.

       놈은 반응 조차 하지 못하고 으스러졌다.

       

       ‘요즘 동물은 활활 타오르는 게 대세인가?’

       

       저번에 도마뱀도 그렇고, 이 도저히 개라곤 생각할 수 없는 흉악하게 생긴 개도 그렇고.

       뭐가 그리 유행인지 온몸에서 불이 펄펄 끓어오르는 게 신기하긴 했다.

       

       그렇게 놈을 잡아먹고.

       거대한 동굴에 똬리를 틀었다.

       

       한없이 무료하다.

       무언가 재밌는 사건이 없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동굴 앞에서 서성이는 기척을 무시했다.

       

       그가 재미있는 사건을 들고오길 기대하며.

       

       

       * * *

       

       

       “…저게, 무슨?”

       

       생존의 용사, 한스는 방금 무슨 상황이 벌어졌는 지 이해 조차 할 수 없었다.

       

       그는 왕국에서 내려온 용사.

       거대한 동굴 속 마을을 몰살하는 마수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 마수를 토벌하러 동굴에 찾아온 참이었다.

       

       실적을 쌓아 더 위대한 용사가 되기 위해.

       이번 마수는 그를 위한 포석이라 생각했다.

       

       동굴 앞에서 ‘그것’을 마주하기 전까지는.

       

       케르베로스.

       지옥을 지키는 경비견이자, 근처에 다가오는 모든 이들을 불태워버리는 사상 최악의 마수.

       

       잡아먹은 용사만 해도 수십 명에 달하고, 그가 짓밟고 불태워버린 마을만 수백 개에 달한다.

       

       한 때 왕국에서 그를 토벌하기 위해 원정을 보낸 적이 있었다.

       

       용사 십수 명과, 수백의 기사들을 이끌고 간 거대한 원정이었다.

       

       그 누구도 패배를 예상치 않았다.

       그들은 모두 숙련된 전사였고, 이미 마수 따위 수십 마리도 잡아본 베테랑 중 베테랑이였으니까.

       

       오산이었다.

       

       케르베로스의 힘은 상상을 초월했다.

       

       그가 내뿜는 고열은 지면을 녹여 사방을 용암으로 만들었다. 가죽은 어찌나 단단한지 검이 닿아도 흠집은 커녕 오히려 검이 부러지기 일수였다.

       

       하물며 근처에만 다가가도 몸을 둘러싼 갑주와 보호 마법이 녹아버리는 탓에, 원정은 처참하게 실패했다.

       

       12명의 용사가 고열에 녹아내렸으며, 793명의 기사가 놈의 거대한 앞발에 짓밟혔다.

       

       그 후로 왕국은 케르베로스를 잡는 걸 포기했다.

       

       현상수배서를 거두고, 케르베로스를 한 거대한 동굴에 봉인하고 그 누구도 찾아올 수 없도록 인식 저해 마법을 산 전체에 걸었다.

       

       그래서였다.

       마법이 걸려 있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어차피 대다수의 용사에겐 마법 면역이 있었으므로.

       

       그렇기에 눈치 채지 못했다.

       왕국이 산에 건 거대한 마법을.

       

       ‘그렇다면 어떻게….’

       

       주점에서 만난 이는 이 사실을 알아차렸을까.

       분명 산에는 거대한 마법이 걸려있어, 일반인은 알아차리지도 못할 텐데.

       

       거기서 한스는 한 가지 사실을 알아차렸다.

       

       이 모든 게 그 검은 로브의 계획이었다는 것을.

       

       때마침.

       케르베로스의 봉인은 완전히 풀려있었다.

       

       처참히 부서진 금빛의 쇠사슬.

       그 쇠사슬엔 시커먼 흑마법의 기운이 넘실거렸다.

       

       ‘당했다!’

       

       퍼즐 조각이 맞춰졌다.

       

       이 모든 게 함정이었던 것이다.

       

       오로지 그를 유인하기 위한.

       

       케르베로스의 불타는 눈동자가 그를 향한다. 그 눈동자에 담긴 것은 모든 것을 불태워버릴 듯한 증오심과, 한없이 굶주린 허기.

       

       털썩.

       

       다리에 힘이 풀려 쓰러졌다.

       

       ‘죽는다.’

       

       죽는다죽는다죽는다죽는다죽는다죽는다죽는다죽는다.

       

       죽음이 머리를 가득 채운,

       그 순간.

       

       스르륵.

       무언가 거대한 것이 동굴 안에 들어왔다.

       

       그 지옥견 케르베로스 보다도 수 배는 더 큰 덩치.

       

       그러나 숨막힐 정도로 어떠한 소리 조차 들려오지 않는 고요.

       

       ‘…드래곤?’

       

       그것은 전설 속 드래곤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글과 글로만 전해져오던 전설.

       

       강철보다도 단단한 비늘에, 거대한 도마뱀의 머리.

       

       태산과도 같이 거대한 거체와, 모든 걸 아래로 내려다보는 오만함.

       

       그것은 마치 전설로만 내려오던 드래곤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한스는 그 존재를 멍하니 바라만 보았다.

       

       신이 존재한다면 저러한 모습일까.

       묵빛과도 같은 비늘이 유연하게 움직이며, 케르베로스라는 지옥견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그는 손을 뻗었다.

       저 드래곤이, 케르베로스를 이길 거라는 자신감이 없었기에.

       

       분명 덩치는 드래곤이 더 거대했다.

       그 위압감도, 존재감도 드래곤이 더 강대했다.

       

       하지만….

       그 케르베로스다.

       

       자그마치 용사 수십 명을 씹어먹은 지옥견 케르베로스.

       

       본래 드래곤의 전승대로라면 저 지옥견도 씹어먹을 수 있을 테지만… 소문은 불려지기 마련.

       

       한스는 드래곤의 전설을 믿지 않았다.

       손짓 한 번에 번개가 치고, 천지가 뒤흔들리다니?

       

       그게 가능하다면 신이 아니란 말인가.

       

       하나, 드래곤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유유히 케르베로스를 향해 다가갈 뿐이었다.

       

       [그르르르——.]

       

       케르베로스가 낮은 하울링을 뱉었다.

       그 낮은 주파수를 듣는 것 만으로도 한스의 몸이 딱딱하게 얼어붙었다.

       

       지옥견의 두 눈이 타오른다.

       마치 거대한 불길처럼 케르베로스의 거체가 맹렬하게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그것만으로 한스는 심각한 화상을 입었다.

       어마어마한 열기에 갑옷이 녹아내려 옷에 눌러붙은 것이다.

       

       ‘이 틈에, 도망 가야….’

       

       오래 버티지는 못할 터였다.

       하지만 드래곤이 시선을 끄는 지금….

       

       이 산을 벗어나야——

       

       

       ——콰득.

       

       그 순간 울리는 적막감.

       무언가 짓씹히는 소리가 동굴을 울려퍼졌다.

       

       ‘젠장….’

       

       벌써 드래곤이 당한 것일까?

       

       절망에 빠져 뒤를 돌아본 그는, 멍하니 드래곤을 바라보았다.

       

       그래.

       드래곤은 죽지 않았다.

       

       오히려….

       

       콰드드득.

       

       케르베로스를 씹어먹고 있었다.

       그 화산 같던 지옥견을, 한입에 씹어먹은 것이다.

       

       한스는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만 보았다.

       

       싸움은 한 순간이었다.

       그는 인지 조차 할 수 없는 찰나에 끝난 싸움.

       

       승패는 판가름 났고.

       누가 더 강한 지는 불보듯 뻔했다.

       

       새파란 눈동자가, 그를 향한다.

       

       한스는 순간 숨을 쉬는 것 조차 잊었다.

       모든 신경 세포가 죽을 거라는 듯 경고를 내비치고 있었다.

       

       그는 생존의 용사.

       그 어느 누구보다 생존에 대한 본능이 강한 용사였다.

       

       그렇기에 가까스로 발을 움직였다.

       그 조차 드래곤이 흥미를 잃어 시선을 떼고서야 겨우 가능한 거였지만.

       

       한스는 그 틈을 타 도망갔다.

       도망치는 그 순간에도 드래곤에 대한 생각이 머리를 가득 메웠다.

       

       산을 질주하듯 하산해 내려온 그가 향한 곳은 그의 소속 왕국이었다.

       

       드래곤에 대한 전승이 떠오른 탓이었다.

       

       ‘그 생물은 탐욕의 덩어리다. 한번 먹잇감으로 찍은 것은 절대 놓치지 않으며, 주기적으로 산제물을 바치지 않으면 인근 마을이나 왕국에 내려와 거대한 재앙을 뿌린다.’

       

       그저 누군가의 망상으로 치부하던 신화 속 구절.

       

       그 구절이 단순한 망상이 아닌 사실이 명확히 밝혀진 지금, 그 신화는 한스의 머리에 확고한 생존 방책이었다.

       

       ‘제물을… 산제물을 바쳐야 해….’

       

       그게 아니라면.

       

       ‘왕국이 멸망한다.’

       

       섬찟!

       

       확고한 믿음이라 해도 좋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의 생존 본능은 맹렬히 울리고 있었으니까. 한스는 스스로의 생존 본능을 믿으며 왕궁 기사단에게 왕의 알현을 부탁했다.

       

       그가 용사라는 직위를 지녔기에, 왕을 마주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왕은 한 걸음에 달려나왔다.

       새하얀 수염과 세월의 깊이가 깊은 주름.

       

       그러나 그의 눈엔 반가움이 가득했다.

       

       “허허, 한스. 이번엔 무슨 좋은 소식을 보고하러 이리 한 걸음에 달려왔느냐?”

       

       왕, 레스벨리고는 기분이 좋았다.

       

       그의 왕국에서 생존의 용사는 아주 진귀한 보물이나 다름 없었다. 그가 이런 변방의 왕국에서 태어난 유일한 용사였기 때문이다.

       

       이웃 왕국과 전쟁이 벌어지지 않는 것도 오직 그의 힘 덕분이었다.

       

       그만큼이나 용사가 지닌 힘은 물론, 용사가 지닌 지위는 그만큼 막대했으니까.

       

       ‘마왕’을 처단할 존재.

       그런 존재를 척지는 것은 가장 위대한 제국, 아스트라페를 척지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한스는 욕심이 많았다.

       스스로 더욱 성장하고 강해져 언젠가 마왕을 토벌하는 게 그의 꿈인 만큼.

       

       왕은 그를 전력으로 지지하고 힘이 되어주었다.

       오직 그가 이 왕국의 유일한 희망이자, 전부였기에.

       

       그런 반가운 마음과, 친자식을 반기는 것 같은 호의를 품은 왕에게.

       

       한스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드래곤이, 나타났습니다.”

       

       “…뭐라? 허허, 농담도 참. 드래곤은 신화 속 존재가 아니었느냐.”

       

       왕은 그가 짓궂은 농담을 하고 있다 생각했다.

       

       하지만 한스는 한없이 진지했다.

       

       “그 드래곤이, 케르베로스를 집어 삼켰습니다.”

       

       “…한스, 농담이 지나치네.”

       

       왕은 그가 질 나쁜 농담을 하고 있다 생각했다.

       

       케르베로스라니?

       용사를 수십 명이나 집어삼킨 지옥견을 말하는 것인가?

       

       거기다 그 케르베로스를 드래곤이 집어 삼켰다고?

       

       하나같이 믿기 힘든 사실이었다.

       

       “한스, 그런 농담은 이제 그만…….”

       

       “나, 생존의 용사 한스는 여신께 심장을 바쳐 맹세한다.”

       

       “……!!”

       

       여신에게 심장을 바쳐 행하는 맹세.

       

       그건 스스로의 목숨을 바쳐 행하는 거대한 약속이나 다름 없었다.

       

       여전히 한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한스는 왕에게 말했다.

       

       “제물, 산제물을 바쳐야 합니다.”

       

       왕국에 비상이 내린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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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Jormungandr in a Fantasy World

I Became Jormungandr in a Fantasy World

판타지 속 요르문간드가 되었다
Status: Ongoing Author:
"A d-dragon!!" "We must offer a sacrifice!" "A dragon devouring the kingdom! I, Asgard the hero, have come to slay you!" I'm not a dragon, you idio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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