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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

     어디에서부터 잘못되었을까.

     그 질문에 답을 한다면, 지금 이 순간이라고 답할 것이다.

     “오늘부터 우리는 제국의 앞잡이다.”

     아버지, ‘크림슨 지브롤터’가 왕국을 배신하기를 공표한 날.

     그때부터, 모든 것이 바뀌기 시작했다.

     그때 분위기가 어땠더라.

     “아, 아버지!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내 동생, 차남 누아르 지브롤터는 깜짝 놀라 의자를 박차고 일어났고.

     “오, 오빠. 저기, 아빠가 뭐라고 하신 거야…?”

     나의 여동생, 막내 레타르 지브롤터는 이해는 못 하지만 겁에 잔뜩 질렸고. 

     “아, 아아….”

     나의 어머니, 샤를로트 지브롤터는 현기증이 난 듯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다른 가신들은?

     집사장은 당황하고, 메이드는 좌우로 눈을 굴렸다.

     아침 식사의 식기를 들기도 전에 터뜨린 폭탄 발언.

     “더 이상 우리는 왕국의 변경백 가문이 아니다.”

     아버지는 그런 혼란에도 아무렇지 않게 식기를 들며 말을 이어 나갔다.

     “전쟁이 끝난 뒤, 제국의 백작가로서 가장 큰 공을 세운 가문이 될 것이다.”

     전쟁.

     큰 공.

     

     어딘가 앞뒤가 두서없이 잘린 듯, 자신만 아는 본론만 내뱉는 특유의 화법.

     성인이 되고 나서야 나는 아버지의 화법을 이해할 수 있었다.

     제국으로의 전향.

     전쟁.

     큰 공.

     “아버지.”

     “그래, 나의 아들아.”

     원래라면 나는 여기에서 그런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우리 가문은 변경백 가문이 아니냐고.

     왕국의 가문인데, 제국의 사람이 되겠다고 한 게 사실이냐고.

     하지만 그건 이미 겪어본바.

     “협곡의 길을 열어주실 생각이십니까?”

     “…….”

     꿈이, 처음으로 기억과 어긋났다.

     

     아버지는 식기를 내려놓고 나를 빤히 바라보기 시작했다.

     “길을 내어준다고.”

     다른 식솔들도 마찬가지.

     “누구 머리를 닮아서 그런지, 확실히 머리가 비상하구나.”

     

     비꼬는 게 아니다.

     “네 나이가 고작 10살인데 그런 생각을 한다니. 우리 가문에 큰 복이 아닐 수 없구나.”

     칭찬이다.

     그래서 조금은, 더 소름이 돋는다.

     “협곡을 열어준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느냐?”

     “제국이 대규모 병사들을 일으켜 왕국을 침략했을 때, 무혈입성이 가능하게 만든다.”

     이는 ‘매국노’의 사고니까.

     “왕국은 저희가 제국군과 필사의 각오로 싸울 거라 생각하며 손을 놓고 있을 겁니다..”

     “그래. 언제나 그렇듯.”

     아버지의 목소리에, 약간의 짜증과 경멸이 흘러나왔다.

     “왕국은 우리 변경백 가문을 그저 협곡을 지키는 방패로 생각하지. 지난 수백 년간 그래왔던 것처럼.”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던 당시의 나는 물었다.

     왜 왕국을 배신했냐고.

     

     나는 그가 왜 매국노가 되기로 했는지 알고 있다.

     “왕국에 더 이상 미래가 없다고 생각하신 겁니까?”

     “그레이!”

     어머니가 새된 비명을 질렀다.

     “무슨 말을!! 그것은, 반역이란다!”

     반역.

     언급하는 즉시 단두대에 목이 잘려도 이상하지 않을 중죄.

     “우리끼리의 이야기입니다.”

     나는 어머니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이 식사 자리에서 이야기가 새어 나간다면, 그건 가문의 누군가가 왕국에 아버지의 말을 알린다는 게 되겠지요.”

     “……너!”

     “부인. 나는 이미 결정했소.”

     아버지는 어머니를 진정시키며, 스테이크를 썰던 나이프를 집어 들었다.

     “여기에 있는 누구도 내 말이 끝나기 전까지 이곳을 나갈 수 없다.”

     

     사아아.

     은제 나이프에 서리기 시작한 붉은 아우라.

     마나를 다룰 수 있는 기사들의 전유물인 ‘오러’.

     “내 검에 찔리고 싶은 자, 지금 이 자리에서 말하도록.”

     왕국 내에서는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강자이며, 사람들은 그를 ‘소드 마스터’라고 칭한다.

     “그레이.”

     다른 이들을 향해서는 날카로운 칼처럼 경고하던 아버지가, 내게는 상냥하고 인자한 목소리로 묻는다.

     “너는 왜 내가 제국을 선택했다고 생각하느냐.”

     “그것은.”

     “있는 그대로, 뭐든지 말해도 좋다. 네가 무슨 발언을 하든, 설령 역심 가득한 이야기를 하더라도 괜찮다.”

     “……왕국은 썩었기 때문입니다.”

     조금 돌려서 말하기는 했지만 고상하게 표현하자, 아버지가 가볍게 고개만 끄덕인다.

     “…내키는 답이 아닙니까?”

     “아니. 계속해라.”

     실망한 눈치인데, 듣고 싶은 말을 해줄까?

     ‘어차피 다 망할 거.’

     배신의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는 지금의 아버지는 모를 테니까.

     ‘꿈속에서라도 기분 좋아지라지.’

     죽은 아버지를 향한 효도라고 생각하고, 나는 헛기침으로 목을 가다듬었다.

     “이 나라는 답이 없습니다.”

     “…호오?”

     스테이크로 향하던 아버지의 눈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답이 없다. 무슨 의미로?”

     “너무나도 광범위하고 말할 부분이 많아서 일일이 하나하나 짚기 어려울 정도로 많죠.”

     무엇을 이야기할까.

     “귀족의 고결함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왕가는 금화에 눈이 멀어 작위를 천한 평민들에게 팔아치웠습니다.”

     매관매직으로 귀족 작위를 돈 많은 상인들이 사들이기 시작하면서 귀족의 권위가 땅에 떨어진 것?

     “농민들은 도적이 되어 약탈을 일삼지만, 중앙에서는 이를 제압할 생각이 없습니다.”

     참다못한 백성들이 기어이 들고일어나서 봉기를 일으키는데, 수년 동안 그들을 제압하지 못한 것?

     “귀족들은 자기 재산을 지키기 급급하고, 공작파와 후작파가 갈려서 서로 자기 세력을 원로원에 더 넣으려고 온갖 범죄를 저지르고 있죠.”

     중앙에서는 귀족들끼리 서로 재상 아래 자리 좀 먹겠다고 온갖 위법을 저지르고 있는 것?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딱 하나 대표적인 걸 이야기하자면.”

     그 모든 건 이미 왕국 전체에 만연한 문제.

     “아버지. 조금, 입에 담기 민망한 이유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괜찮다. 말해봐라.”

     지브롤터 변경백이 매국을 결정하게 된 계기.

     “지난 파티에서 어머니가 왕으로부터 모욕을 받았기 때문 아닙니까?”

     “…….”

     “그레이!!”

     내 답에 아버지는 침묵하고 어머니는 얼굴을 붉힌다.

     

     “어린아이의 입에서 그게 무슨 망발이니?!”

     “나름 돌려서 말한 겁니다만….”

     “있는 그대로 말해보거라.”

     “현 국왕이 술에 취해 어머니를 희롱한 것. 희롱 정도가 아니라….”

     “너!!”

     “됐소, 부인. 10살 아이이기 이전에, 백작가의 후계자이니.”

     아버지는 그다지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것처럼 보였지만, 결국 그 문제가 반역의 시작이었다.

     “그래. 왕이 네 어미를 희롱했다. 네가 성인이 되면 좀 더 자세히 알려주겠지만, 자기 침소로 끌어들였지.”

     “아, 아아….”

     어머니가 두 손으로 얼굴을 덮는다.

     “내 여자를 희롱당했는데, 가만히 있을 남자가 어디에 있더냐.”

     수치심과 굴욕, 그리고 악몽과도 같은 추문이 주변에 퍼지는 것이 두렵겠지.

     “왕국은 언제나 우리를 방패로써 생각했지. 변경백이 배신할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는다. 항상 그래왔으니까.”

     “그래서 그런 짓을 저질렀다는 겁니까?”

     “그래. 왕은 우리 가문 전체를 모욕한 것이다. 백작 부인을 건드렸다고, 변경백이 뭘 할 수 있겠냐고.”

     아버지의 한쪽 입꼬리가 비틀렸다.

     “그래서 뭐? 왕을 시해라도 하려고? 아니면 반란이라도 일으킬 텐가? 그대가 그럴 용기는 있고?”

     “국왕이 그렇게 말을 했습니까?”

     “온갖 정치적 수사의 껍질을 벗겨내면, 그 안에는 원색적인 표현만 남게 되지.”

     꼬우면 반란하든가.

     날 것 그대로의 말이다.

     “그래서 왕국을 배신하기로 했다.”

     “…….”

     “제국이 병사들을 이끌고 오는 날, 협곡을 열어줄 것이다. 그 어떤 전투도 없이, 왕도로 향하는 도로로 그들을 안내할 것이다.”

     “다른 길로 가면 최소한 3개월은 걸리겠지만, 협곡을 따라 왕도까지 이르는 대로로 가면 한 달 내로 왕도에 도착하겠죠.”

     “그래. 물론 아직 제국은 전쟁을 일으킬 단계는 아니지.”

     아버지가 나이프를 냅킨으로 쓱 닦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앞으로 10년. 적어도 10년은 있어야 본격적인 전쟁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의 내가 10살이었고, 미래에 전쟁이 딱 내가 20살인 해에 일어났으니.

     매국을 결정한 날로부터 이미 미래는 예정되어 있었다.

     “그때까지, 이건 우리 가족만의 비밀이다.”

     그리고 그 10년 동안 누구에게도 비밀을 들키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가 있다면.

     “우리, ‘핏줄’만의.”

     아버지의 잔인함 때문.

     푸ㅡㅡ욱.

     아버지가 가볍게 던진 나이프에 무언가가 푹 찔린 소리가 들렸다.

     “어?”

     목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푸화ㅡㅡㅡ악!!

     붉은 피를 마구 뿜어내며, 메이드 하나가 목에 나이프가 꽂힌 채 앞으로 쓰러진다.

     “꺄, 꺄아아악ㅡㅡㅡ!!”

     “백작님?! 무슨-”

     “핏줄 빼고는 누구도 믿을 수 없다.”

     아버지는 그 말과 함께, 방 안에 있던 모든 식솔을 죽여버렸다.

     한 명에 한 번.

     스테이크를 써는 나이프에는 소스 대신 피가 잔뜩 묻었다.

     대화의 내용은 바뀌었으나, 꿈의 결과는 그대로다.

     “그 누구도, 밖에 알려서는 안 될 것이다.”

     비릿한 피 냄새.

     죽어가는 인간.

     사색이 된 어머니와 동생들.

     “그건 너희도 마찬가지란다, 나의 아이들아.”

     아버지는 목이 타는 듯, 빈 와인잔에 스스로 와인을 채웠다.

     “잔을 들거라.”

     명령이었다.

     “어서.”

     우리는 와인이 아닌 보통 물이었지만, 아버지처럼 잔을 들었다.

     “그레이.”

     “예.”

     “너는, 후, 아니다. …괜히 장남이라고 하는 게 아닌 건가. 기대가 크단다.”

     아버지는 나를 향해 가볍게 잔을 흔들었다.

     “우리는 나라를 배신하고 적국의 첨병이 될 것이나.”

     제국에게 문을 열어주고, 왕국을 멸망시키는 일등 공신이 되었다.

     “부귀영화를 누리고 대대손손 번영할-”

     그건, 틀렸다.

     “흐.”

     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레이.”

     아버지 또한.

     “생각만으로도 행복한가 보구나. 그래. 어쩌면 그간 변경백 가문으로서 받아온 핍박과 모멸의 역사가, 네 대에 이르러 청산될 테니. 마음껏 기뻐하거라.”

     생각만으로도 짜릿한 듯, 진심으로 웃었다.

     “우리 지브롤터는 제국이 칼을 빼 드는 날, 성문을 열고 그들을 맞이할 것이다. 그때까지 우리는 조용히 숨을 죽여 칼을 갈 것이다.”

     아버지는 진심이었다.

     말해줄까.

     당신의 바람은 이루어졌으나, 대대손손 이어지지는 않았다고.

     ‘여기 있는 매국노 다섯, 모두 죽었습니다만.’

     순서의 차이는 있었지만, 나를 마지막으로 지브롤터 가문의 피는 끊겼다.

     ‘어머니는 왕국이 멸망하는 날 자진하셨지.’

     그레이 20세.

     제국은 드디어 왕국을 향해 선전포고를 날리고 협곡을 넘어 왕도를 점령한 날.

     어머니는 왕국의 멸망 소식을 듣고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레타르는 몰락 귀족들을 조롱하다가 살해당했고.’

     그레이 25세.

     막내 여동생 레타르는 왕국의 기사들을 고문하고 괴롭히다 그만 역으로 당했다.

     ‘누아르는 레타르를 죽인 놈들 잡겠다고 깝죽거리다가 살해당했지.’

     그레이 26세.

     차남 누아르는 왕국을 부흥시키겠다는 레지스탕스에 의해 붙잡혀 매국노라는 이름으로 처단되었다.

     ‘아버지.’

     그리고 그레이, 27세.

     ‘저는 제도에서 독약에 당하고, 당신은 황제에게 패배하여 처형당합니다.’ 

     

     나는 제도의 파티에서 살해당했고, 아버지는 황제와의 싸움에서 살해당했다.

     원래는 나도 독을 마신 시점에서 죽어야 했지만-

     독에 약간의 내성 아닌 내성 덕분에 조금 늦게 죽었지.

     그리고 그 뒤로는….

     “쯧.”

     나는 잔을 들었다.

     ‘다 끝났는데 무슨 소용이라고.’

     결국 이건 꿈일 뿐이다.

     그녀를 배신하고 침묵만을 지키며, 사치와 향락을 즐기며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의 회한일 뿐이다.

     “위하여.”

     나는 가볍게 목을 축였다.

     “……?”

     식도를 넘어가는 차가움.

     동시에 온 정신을 탁 트이게 만드는 탄산의 거품.

     “쿨럭, 쿨럭, 쿨럭…!!”

     “하, 하하하! 그레이, 이 녀석. 그렇게 탄산수를 좋아하더니. 그래. 나중에 제국과 교류가 커지면, 너를 위해 탄산광천 하나를 내어달라고 하마.”

     “쿨럭, 예, 감, 감사합….”

     어라.

     뭐지.

     “…….”

     꿈에서 깨어나지 않는다.

     거품이 피어오르는 탄산수가 담긴 잔에 비친 나의 얼굴은 10살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으며-

     “…….”

     탄산이 내려감과 동시에, 나는 정신이 트였다.

     지금, 이 순간은 ‘현실’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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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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