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2

       

       

       딸랑-

         

         

       나는 문쪽 방향에서 등을 돌리고 있었기에 누가 들어오는지 굳이 확인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앞에서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딴짓을 하고 있던 친구 놈이 눈을 크게 뜨며 뚫어지게 그곳을 쳐다보고 있었다.

         

         

       “야, 야! 제 걔 아니야?”

       “아오, 도대체 누구길래 정신 사납게 그러는데?”

       “저 여자애 제일(第一)전자 사장 딸 ‘설소영’이잖아.”

         

         

       제일전자? 설소영?

         

       어딘가 제법 익숙한 기업과 사람 이름.

       호기심에 벨소리가 들린 문쪽으로 반사적으로 고개가 돌아갔다.

       그리고 그곳에 감탄사가 절로 나올 정도로 아름다운 소녀가 서 있었다.

         

       희고 고운 얼굴과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생머리. 아직 앳된 얼굴이지만 나이에 맞지 않은 성숙함이 느껴졌다.

         

       나는 그 소녀가 누군지 본능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저 소녀야말로 이 「꽃같은 커플」이라는 드라마 속 주연 인물 중 한 명.

         

       정말 우연이었다.

       

       평생 마주칠 일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걸 여기서 만난다고?

         

       그녀는 원래 세계에선 ‘유지민’이라는 이름을 가진 인기 여배우였지만, 이 드라마 속 세상에선 제일이라는 대기업의 사장 딸이자 배우지망생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

         

         

       ……뭐지?

       

       얼음장처럼 차가운 표정을 보아하니 그닥 기분이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이건 지극히 내 개인적인 생각인데 아마 드라마 오디션을 탈락해서 그런 게 아닐까?

         

       그녀는 꽃같은 커플의 스토리상 드라마 오디션을 총 3번 정도 떨어지고 나서야 겨우 합격해서 그때부터 인기 여배우의 반열에 오르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인기 여배우 반열에 오르고 곧바로 마약 사건과 연관되어 순식간에 이미지가 나락으로 가버리긴 하겠지만…….

         

         

       “야, 야! 미친놈아! 저 애가 이쁜 건 세상 사람 누구나가 알고 있는데 그렇다고 너무 빤히 쳐다보는 거 아니냐?”

         

         

       이런.

         

       호들갑 떠는 친구 놈 말대로 확실히 어느샌가 눈이 마주친 설소영이 나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제법 오래도록 쳐다봤으니 부디 이상한 오해는 안 했으면 좋겠는데…….

         

       “…….”

         

       다행히 이런 일이 제법 익숙하다는 느낌으로 설소영이 곧바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주문한 커피를 받아 창가 근처의 테이블에 앉아 멍하니 밖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아마 누군가가 데리러 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는 모양.

         

         

       “배우지망생이라지? 저 얼굴로 드라마나 영화 찍으면 그냥 대박 확정 아니냐?”

       “바보야 얼굴만 예뻐서 대박이 날 거면 지금쯤 아이돌들이 배우 판을 씹어먹고 있겠지.”

         

         

       배우에게 있어서 외모는 당연히 플러스 요인이겠지만 그럼에도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연기력이다.

         

       뭐…… 따지고 보면 친구의 말이 전부 틀린 것은 아니었다.

       

       적어도 설소영의 연기력은 원작에서도 상당히 우수한 편으로 알려져 있으니까.

         

         

       ‘물론 자신의 색에 맞는 배역만 한정해서겠지만.’

         

         

       간혹 배우들 중에서 자신의 성향과 색에 따라 연기의 편차가 심해지는 배우가 있다.

         

       자신의 색에 딱 들어맞으면 신들린 듯 몰입을 이어가며 연기가 가능하지만, 색이 맞지 않는다면 확연히 떨어진 삼류에 가까운 연기력을 보여준다.

         

       설소영 역시 이런 부류에 속했다.

         

       하지만…….

         

         

       ‘바꿔 말한다면 자신의 색에 어울리는 배역을 쥐여준다면 독수리마냥 훨훨 날아다닌다는 뜻도 되긴 하지.’

         

         

       솔직히 설소영 정도면 본인 색에 맞는 배역을 쥐여주는 것이 그리 어려운 편도 아니었다.

         

       대충 멜로 쪽으로 장르를 잡고 뭔가 사연 많고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여주인공 배역만 쥐여줘도 반은 먹고 들어가는……

         

         

       ‘잠깐만…….’

         

         

       문뜩 저렇게 카페 어딘가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한 폭의 그림이 되는 설소영을 보니 기묘한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다급히 가방에 들어 있던 노트 하나 꺼내고 책상에 굴러다니던 펜을 쥐었다.

       이런 걸 흔히 예술가들의 영감이라고 해야 하나?

       어쩌면 시간이 날 때마다 드라마의 대본을 썼었던 전생보다도 더욱 선명한 감각이었다.

         

         

       슥스스-

         

         

       나는 머릿속에서 거침없이 떠오르는 하나의 이야기를 다급히 노트에 적어 내려갔다.

       어쩌면 이 세상에 영문도 모른 채 떨어지고 처음으로 집필해보는 드라마 대본.

       너무 몰입한 나머지 자연스레 이야기의 이미지가 그려졌다.

         

         

       [어서오세요 카페 바이올렛에]

       카페 ‘바이올렛’의 주인인 ‘겨울’이 오랜 시간 동안 한 자리를 지키면서 그리운 한 사람을 기다린다는 감동 멜로 드라마.

         

       ‘겨울’은 환생을 통해 오랜 세월 동안 현암동 7번지를 지킨 신비로운 여인이다. 어느 때는 찻집, 어느 때는 꽃집, 그리고 이번 삶은 ‘바이올렛’이라는 카페를.

         

       그런 그녀는 어떠한 사람과의 약속을 떠올리며 계속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겨울’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점점 지쳐만 갔다.

         

       약속을 나눈 사람이 자신을 만나러 올지도, 지금까지 약속을 기억하고 있을지도 미지수였으며 23살에 반드시 죽는 저주를 가진 그녀는 점점 삶의 무기력함을 느끼고 있었다.

         

       결국 겨울은 자신을 좀먹고 있는 환생을 끊어낼 단서를 찾아 나서게 된다.

         

       그리고 어찌어찌 3달 뒤에 찾아올 개기 월식 때 환생을 완전히 끊어낼 방법을 찾은 겨울은 그날만을 고대하며 천천히 생에 마지막 시간을 보내게 되는데…….

         

         

       하온: (카드를 건네며) 따뜻한 에스프레소 하나 부탁드릴게요. ……음? 혹시 제 얼굴에 뭐가 묻었나요?

         

         

       우연히 개기 월식 1달 전에 ‘하온’이라는 이름의 사진작가가 바이올렛을 찾아오게 된다. 겨울은 갑자기 현암동 7번지에 방문한 그를 큰 눈으로 뚫어지게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잠시 둘 사이에 찾아오는 적막. 정신을 차린 겨울은 하온이 건네는 카드를 덜덜 떨리는 손으로 받았다.

         

         

       겨울: (떨리는 목소리) 아, 아닙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탁-

         

         

       얼마 지나지 않아 겨울은 직접 내린 따뜻한 에스프레소 한 잔을 하온이 앉은 테이블 위에 조심스럽게 놓았다. 그것을 든 하온은 천천히 커피의 맛과 향미를 음미했다.

         

       처음에는 지극히 평범한 커피라고 생각했지만, 문뜩 방금 들었던 겨울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쉴새 없이 밀려 들어오더니 어느샌가 찻잔이 비어있었다.

         

         

       하온: …….

       겨울: (하온에게 다가서서) 맛이 괜찮았나요?

         

         

       겨울의 질문에 하온은 긍정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되도록 말로 표현하고 싶었지만, 머릿속이 너무 혼란스러워서 그 이상으로 표현할 수 없었다.

         

       결국 하온은 그 혼란스러움을 해결하기 위해 겨울에게 질문을 건넬 수밖에 없었다.

         

         

       하온: 혹시…… 저희 어디선가 만난 적이 있지 않나요?

         

         

       한쪽 눈에 눈물이 맺힌 하온을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 겨울. 그녀는 어째선지 부정의 의미로 힘겹게 고개를 젓는다.

         

       하지만 겨울의 부정에도 하온은 알 수 없는 이끌림을 느끼고 그녀가 운영하는 카페 바이올렛에 매일 방문하게 된다.

         

         

       슥스스슥-

         

         

       흠.

       대충 이 정도인가?

         

       뭔가 본능적으로 급하게 적다 보니 클리셰 범벅이 된 것 같지만 여기서 조금만 더 가다듬는다면 나름 나쁘지 않은 스토리가 될 것 같은 느낌.

         

       그리고 저기 앉아 있는 설소영을 여주인공으로 떠올리며 쓴 대본이니까 그녀가 직접 ‘겨울’을 연기해준다면 분명 훌륭한 드라마가 탄생할 것 같았다.

         

       솔직히 갑자기 영감이 팍-! 하고 떠올라서 간단하게 적었을 뿐인데 드라마 속 세상의 드라마보다 훨씬 재밌다고 자부할 수 있을 수준이긴 했다.

         

         

       ‘근데 이 쉬운 걸 이곳 작가들은 왜 못하는 거냐고.’

         

         

       순간 목구멍까지 욕이 차올랐지만 어떻게든 참아냈다.

       

       실망한다는 것은 기대를 품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정말 어리석게도 나는 아직까지 이곳 작가들에게 기대를 품고 있었던 모양.

       

       쓰으읍…….

         

       그래도 조금 신기하긴 하네.

       역시 천직은 천직인 건가?

       어쩌면 이 드라마 속 세상에서 재밌는 내용의 드라마를 보지 못한 갈증 탓인 것 같기도?

       

       어쨌든.

       

       나는 대본이 적힌 노트를 바라보며 쓴 미소를 지었다.

         

       영문도 모른 채 드라마 속 세상에 떨어진 덕분에 대본을 짜는 것을 완전히 잊고 살았는데 순식간에 노트에 적혀진 글을 보니 뭔가 새삼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아, 물론 아직 완벽하게 완성된 것은 아니었지만 처음 영감이 떠올랐을 때 결말 역시 대충 생각해났기 때문에 딱히 문제는 없었다.

         

       음…….

       그나저나 이제 이걸 어떻게 할까.

       최대한 열심히 적었는데 그냥 자기만족만 하고 있기에는 뭔가 아까운 내용인데…….

         

         

         

         

         

       “어디 보자…….”

         

       그래서 그날 인터넷을 통해 최대한 방법을 알아봤다.

         

       전생처럼 어디 유명 드라마 제작사에 소속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마땅한 인맥도 없으니 내 대본을 알릴 수 있는 방법은 정말 한정되어 있다.

         

       그렇기에 지금 시도해 볼 만한 방법은 딱 공모전 정도였다. 지금 내게 있어 가장 큰 문제인 나이 제한도 없으니까 어쩌면 최선이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때마침 ‘스튜디오엔믹스’라는 드라마 제작사에서 공모전을 열고 있기도 했다.

         

       조금의 문제가 있다면 이 제작사가 1년 전에 내가 신명 나게 깠던 「따스한 공주님」을 만든 제작사라는 점일까나.

         

       그렇기에 심사하시는 분들의 안목이 심히 걱정되었지만, 지금의 내겐 딱히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뭐, 안되면 어쩔 수 없는 거지.’

         

         

       나는 정해진 양식에 맞게 파일을 보내고 홀가분하게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물론.

         

       몇 년 동안 잠깐이나마 평범했던 일상이 이 공모전을 기점으로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I Became a Genius Writer Obsessed With a Popular Actress

I Became a Genius Writer Obsessed With a Popular Actress

인기 여배우에게 집착 받는 천재작가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She likes me enough to win an award. Meet Seo Eun-Woo, a passionate K-Drama fan turned writer, whose life takes an unexpected twist when he awakens in a world of mediocre dramas. Frustrated and desperate for the perfect storyline, he stumbles upon a former actress who sparks his creative genius. Watch as their fateful encounter turns his life into a captivating drama of its own!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