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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

       우린 죄가 없으니 탈옥을 하자!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우리의 관심을 끈 아가르타의 말은 꽤 충격적이었다.

       

       

       죄가 없으니 죄를 저지르자는 거는 이유 없이 맞았으니 나도 때리겠다는 말이랑 다른 게 뭐냐고.

       

       

       그런 내 생각을 읽을 리 없는 아가르타는 신이 난 채 손가락을 치켜들며 말했다.

       

       

       “간수도 없고 지금이 절호의 타이밍이죠.”

       

       

       아까까지 세상 지친 눈빛을 하고 있던 사냥꾼도 이번에는 흥미가 생겼는지 아가르타에게 시선을 맞추었다.

       

       

       “밖에 아무도 없다는 그 말의 증거는 있나?”

       

       “저는 귀가 좋거든요.”

       

       

       아가르타가 자신의 귀를 두들겼다.

       

       

       아까 나 혼자 한 말에 정신병자 취급한 것도 그렇고 아가르타의 귀는 좀 많이 좋았다.

       

       

       “탄튼 씨가 와서 살짝 혼동이 왔긴 했지만 별안간 지금은 식사 시간인데도 간수들이 보이지 않는 걸 보면 무언가 문제가 생긴 게 분명해요.”

       

       

       너무 감각에 의존한 근거였지만, 프롤로그를 보았던 나는 그 말이 사실임을 알고 있었다.

       

       지금 밖은 단 한마리의 외신에 의해 모두 몰살당한 상태라는 것을.

       

       오히려 이런 곳에 떨어진 내가 이상한 거다.

       

       

       “그래, 그러면 그렇다고 치고. 탈출은 어떤 방법으로 할 생각이지?”

       

       

       사냥꾼은 손을 비틀어 자신의 손목에 묶여 있는 나무 수갑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말했다.

       

       

       “이게 묶여 있는 이상 아무것도 못할 텐데.”

       

       “에이, 그건 쉽죠.”

       

       

       그렇게 말하며 입을 오물거리기 시작했다.

       

       뭘 하는 건지 사냥꾼과 함께 지켜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아가르타가 냅다 혀를 내밀었다.

       

       

       “붸에.”

       

       

       싸우자는 건가?

       

       사냥꾼도 그 모습에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믿은 내가 머저리지. 간사한 도적의 말은 역시….”

       

       “아이, 이어 안 브여요?”(아니 이거 안 보여요?)

       

       

       뭐라고 웅얼대는 도적을 자세히 살피니, 움직이는 혓바닥 끝이 살짝 말려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분홍색 혀의 위쪽에는 새끼 손가락 만한 바늘이 침에 묻어 반들반들하게 빛나고 있었다.

       

       

       아니, 지금까지 저딴 걸 입에 넣고 멀쩡하게 대화했다는 거야?

       

       사실 도적이 아니라 인간 차력사가 아닐까.

       

       

       아가르타는 이쑤시개처럼 바늘을 혀로 굴리다 손바닥 위로 튕겨 수갑의 열쇠구멍 안쪽으로 집어 넣었다.

       

       손의 관절을 뒤틀어 닿지 않는 구멍 사이로 바늘의 끝을 이리저리 움직인다.

       

       

       “여기를 이렇게 움직여서 여길 올리면?”

       

       

       딸칵!

       

       나무로 된 수갑이 감옥 바닥에 떨어지며 아가르타는 자유로워진 손가락을 꿈틀거렸다.

       

       

       “후, 한결 낫네요.”

       

       “…재주는 좋군.”

       

       “이것도 못하면 도적해먹었겠어요?”

       

       “죄 지은 적 없다면서요?”

       

       “…그렇게 하나하나 짚으면 신상에 안 좋아요, 탄튼 씨.”

       

       

       아가르타는 자유로워진 손으로 내 입을 막으며 오묘한 미소를 지었다.

       

       

       “헛짓거리는 그만하고 어서 풀어라.”

       

       

       사냥꾼의 말에 아가르타가 자리에서 일어나 사냥꾼에게 다가가는 것 같더니, 갑자기 자리에 멈추더니 장난끼가 가득한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흐응, 그러네요.”

       

       “뭐하는 거지?”

       

       “제가 풀어드리지 않으면 사냥꾼 씨는 이대로 있어야 하는 거죠?”

       

       

       갑자기 이상한 말을 하는 도적의 말에 사냥꾼이 사나운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이건 그래도 원작대로 흘러가는구나.

       

       초반에 도적이 플레이어한테 저런 식으로 말해서 ‘꺼져라, 필요없다.’라는 대사를 한다.

       

       그대로 도적은 먼저 가버리고, 사냥꾼은 어떻게든 탈출한 시점부터 게임이 시작되고.

       

       

       이 과정에서 아가르타가 죽는 거였다.

       

       심지어 아무런 죽는 장면 없이 아이템 발굴하는 과정에서 ‘싸늘한 시체였다.’ 정도로만 설명되고 끝.

       

       

       “왜 당연한 말을 대단한 것처럼 말하고 있는 거지?”

       

       “그게 풀어주는 사람에 대한 예의인가요? 좀 더 공손하게 말해봐요.”

       

       

       과연 사냥꾼은 뭐라고 말할까.

       

       저 사람이 말하는 것이 곧 원래 주인공 캐릭터 성향일 테니까.

       

       

       “장난칠 여유도 있는 모양이지? 어서 풀기나 해.”

       

       “어허, 안 돼요. 착한 어린이 말만 들어주는 착한 도적이라서요.”

       

       

       어린이, 라는 단어가 긁혔는지 사냥꾼의 몸이 크게 움찔했다.

       

       직접 당할 때는 엿같았는데, 제 3자의 위치에서 보니까 느낌이 달랐다.

       

       

       이거 개꿀잼인데?

       

       

       “천한 건 역시 천한 티를 내는군.”

       

       “아아, 안 되겠네요. 나쁜 어린이는 그냥 여기 있는 게 낫겠어요.”

       

       

       그렇게 말하며 아가르타가 뒤돌아서 나한테 다가오기 시작하자 사냥꾼이 눈을 지그시 감더니,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냥 꺼져라. 그깟 대우에 미친 손길은 필요 없으니.”

       

       

       역시 저게 정배 맞구나.

       

       사냥꾼 성격이 약간 나랑 잘 맞는다니까.

       

       

       잠깐, 생각해보니까 좋아할 때가 아니잖아.

       

       사냥꾼 여기 혼자 두고 가면 나도 도적이랑 같이 죽는다고!

       

       

       아가르타가 천천히 내게 다가왔다.

       

       

       “자, 탄튼 씨 수갑 풀어드릴게요.”

       

       “아, 감사합니다.”

       

       “오늘도 1 감사 적립. 봐봐요, 역시 저는 착한 도적이라니까요?”

       

       

       아가르타는 사냥꾼을 바라보며 비웃음을 지었다.

       

       

       “사냥꾼씨는 안 풀어 줄 거에요.”

       

       

       아무래도 아까 냄새가 난다느니 하는 말에서 많이 긁힌 모양이었다.

       

       원작에서도 저런 대사는 없어서 그런지, 원작보다 더 신경질적인 느낌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 증거였다.

       

       

       사냥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뭐 저래도 혼자 탈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으니까 저러는 거겠지.

       

       

       “지금이라도 저에게 싹싹 빌면 풀어줄 수도…탄튼 씨?”

       

       

       그런 아가르타를 뒤로 하고, 사냥꾼에게 다가갔다.

       

       절대 호의가 아니다.

       

       사냥꾼을 따라가야 죽지 않으니까!

       

       난 내 목숨이 중요해!

       

       

       “사냥꾼 씨.”

       

       “….”

       

       “뭐 하세요, 얼른 일어나세요.”

       

       

       딱히 삐진 것 같진 않았다.

       

       이미 우리를 버림패로 생각하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에 잠긴 모습이었다.

       

       

       안 돼, 이 미친놈아!

       

       아가르타는 원래 죽을 운명이었다고 치지만, 나는 아니잖아!

       

       이대로 간다면 도적의 옆자리에 있는 싸늘한 시체 2가 될 게 뻔한 상황이었다.

       

       

       이럴 때는 강경한 수를 써야지.

       

       아무리 초반 부분만 플레이 한 청정수 뉴비라고 해도 커뮤니티에서 들은 게 있는 나다.

       

       원작 지식을 사용하지 않으면 어디에 쓰겠어?

       

       나는 고심에 빠진 사냥꾼의 어깨를 잡고 말을 흘렸다.

       

       

       “저 버리고 가면 여기 있는 외신, 못 쓰러뜨릴 걸요?”

       

       “뭐?”

       

       

       확장되는 동공.

       

        어디서 그 말을 들은 건지 묻기도 전에 속삭임으로 사냥꾼이 더 말하지 못하게 막았다.

       

       

       “화 푸시면 도와드릴게요.”

       

       

       여전히 당황한 듯 흔들리는 동공을 보고 있으니, 이대로 놔뒀다가는 계속 이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빠르게 사냥꾼의 어깨를 잡은 뒤 앞뒤로 흔들어버렸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사냥꾼은 미처 반응하지 못하고 입에서 ‘으르븝.’이라는 이상한 소리를 내며 몸을 앞뒤로 조종당했다.

       

       그러고 나서야 사냥꾼은 나를 죽일놈 보듯 쳐다보기 시작했다.

       

       

       “뭐하는 짓거리지?”

       

       

       여전히 살벌한 눈빛이었지만, 그래도 방금보다는 훨씬 누그러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무래도 외신 발언이 통한 모양이었다.

       

       

       “왜 또 혼자 삐져 있어요. 아가르타도 장난친 것 뿐이에요.”

       

       

       그렇게 말하며 아가르타를 슬쩍 바라보았다.

       

       ‘진심이었는데….’라고 입을 움직이는 것 같아 한쪽 팔을 들며 때리는 시늉을 하자, 그제야 어색하게 웃었다.

       

       사냥꾼은 나와 아가르타를 번갈아 가면서 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누가 그깟 유치한 짓거리에 삐진다는 거지.”

       

       

       당신이요.

       

       마음의 소리가 입 밖으로 나가는 일은 없었다.

       

       

       “아니, 뭐 어쨌든요. 혼자 뭐 하기도 힘드실 거 아니에요. 절 봐서라도요, 네?”

       

       

       사냥꾼은 잠시 나와 몇 초 정도 눈을 맞추더니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별안간 무언가 쪼개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박살나는 소리와 함께 사냥꾼의 손도 자유로워졌다.

       

       

       “…어?”

       

       

       아가르타가 진심으로 당황한 듯 축소된 동공으로 사냥꾼을 보았다.

       

       사냥꾼은 그런 시선도 전혀 개의치 않는 듯 가볍게 어깨를 돌리며 몸을 풀 뿐이었다.

       

       

       “본 지 얼마나 됐다고 친한 척이냐.”

       

       

       눈을 살짝 감은 채 말하고 있었지만, 나한테 하고 있는 말이라는 건 금방 유추할 수 있었다.

       

       

       “현생에 옷깃 한 번 스치면 전생에는 깊은 연이 있다고 하잖아요.”

       

       

       옛날에 들어본 적 있는 말을 읊어줬더니 들을 가치도 없다는 듯이 사냥꾼은 내 말을 가볍게 무시했다.

       

       

       저 싸가지 봐라.

       

       세계관 최강자급 강자인 사냥꾼만 아니었으면 꿀밤을 참지 못했을 거다.

       

       

       내 옆을 스쳐 지나간 사냥꾼은 그대로 감옥 문으로 가 손잡이를 잡았다.

       

       

       “그래서 계획이 뭐지?”

       

       “네?”

       

       

       갑작스러운 말에 생각이 못 따라간 듯 아가르타가 맹한 소리를 내자, 사냥꾼이 콧방귀를 한 번 뀌며 말했다.

       

       

       “설마 그렇게 잘난듯이 말해놓고 아무 계획도 없었다는 건 아니겠지.”

       

       

       그제야 아가르타는 ‘아아.’하는 소리를 내며 말했다.

       

       

       “아이, 물론이죠! 그렇게 생각없는 사람 아니에요.”

       

       

       그렇게 말하며 아가르타가 빠르게 문으로 다가가 문고리에 바늘을 꼽고 이리저리 흔들어댔다.

       

       

       “그나저나 혼자 나갈 수 있었으면서 왜 가만히 있던 거예요?”

       

       “알아서 뭐하려고.”

       

       “아이, 참 까칠하네. 알았어요. 일단 나가죠?”

       

       

       왜 가만히 있었겠어.

       

       너 좆될 뻔 한 거야, 아가르타.

       

       

       내가 본인 살려준 건 알 리가 없겠지.

       

       

       절로 한숨이 다 나왔다.

       

       

       그나마 다행인 건 방금까지 그렇게 날카롭게 굴던 태도는 어디 갔는지, 지금은 문 잠금을 빨리 못 여는 아가르타에게 훈수를 두고 있었다.

       

       

       “도적이 이것도 이렇게 끙끙대면 뭐하자는 거지?”

       

       “아이 씨, 사냥꾼 씨는 하지도 못하잖아요! 오래 된 거라 뻑뻑해서 그렇거든요?”

       

       “핑계는 태산이군.”

       

       “열지 말까요?”

       

       “그러면 부수면 되고.”

       

       “들키잖아요!”

       

       

       갑자기 정상인 포지션이 된 아가르타가 사냥꾼에게 태클을 걸며 열심히 바늘을 움직였다.

       

       

       그 모습을 보며 느꼈다.

       

       당장 급한 불을 끄는 데에 성공했다고.

       

       

       그런데 이렇게 스토리 막 바꿔도 되는 건가?

       

       

       몰라, 시발.

       

       당장 뒈지게 생겼는데, 스토리 바뀌는 게 뭐 대수인가?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아가르타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탄튼 씨, 멍때리고 뭐하세요?”

       

       “가요.”

       

       

       어떻게든 되지 않겠어?

       


           


Dark Fantasy: Super Coward Mode

Dark Fantasy: Super Coward Mode

슈퍼 겁쟁이 모드 다크 판타지
Score 8.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The super cowardly me installed Super Coward Mode, and the terrifying extraterrestrials started to look cute. “Eating the flesh of an extraterrestrial deity? You’re not human! Ew!” “Even withstanding mental manipulation? What kind of monster are you!” “Enslaving an extraterrestrial deity? You must be out of your mind.” …And then, the reactions around me became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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