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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

       전생의 기억을 떠올린 것을 기점으로 나름 시야가 넓어지고 생각이 깊어지는 등, 여러모로 성숙해진 나였고, 이를 기반으로 진득한 노력 끝에 다행스럽게도 난 금방 병사가 되었다.

       다만, 병사가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전쟁이 나고 말았다.

       평소 왕국과 사이가 좋지 않던 적대국과 벌어진 전쟁이었고, 이 전쟁은 짧다면 짧은 3년의 기간 동안 이어졌다.

         

       하필 전쟁이 나도 내가 병사가 되고 일어난 전쟁이었고, 난 울며 겨자 먹기로 전쟁에 참여해야 했다.

       도망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탈영병이 되면 인생이 고달파질뿐더러 평생을 수배자로 살 수는 없기에 이를 갈며 전쟁에 참여해야만 했다.

         

       짧은 기간이라면 기간이라 할 수 있는 3년간의 전쟁.

       허나 전쟁 참여자라면 누구나 말할 것이다.

       3년이 아니라 30년을 치른 것처럼 치열하고도 처참한 전쟁이었다고.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처참한 전쟁의 승자는 내가 속한 왕국의 진영이었고, 이로 인해 왕국은 제국까진 아니지만, 대국(大國) 반열에 오르는 계기가 되었다.

         

       왕국 병사였던 내가 이제는 강대국의 병사?

       듣자 하니 월급도 세 배가량 오르고, 전쟁 참전자답게 세금 감면도 어느 정도 있다고 하는데.

       이 정도면 팔도 썰릴 뻔하고, 뱃가죽이 뚫렸던 일도 어느 정도 정상참작이….

         

       ‘썩을, 될 리가 있나.’

         

       진짜 트롤의 회복력이 아니었으면 수십 번은 죽고도 남았다.

       처음으로 어린 시절 실험이란 이름에 고문을 일삼았던 주문쟁이에게 고마움을 느끼게 되더라.

       참 전쟁이란 건 개 같은 거란 걸 새삼스레 깨닫는다.

         

       뭐, 어쨌든 몸 멀쩡히 살아남은 데 의의를 두며 난 왕국이 대국이 됐건 말건 신경 끄기로 했다.

       무엇보다.

         

       ‘내가 더러워서 그만둔다!’

         

       신입병사부터 전쟁 참여란 미친 난도를 맞이해서인지 난 공무원이고 나발이고 모든 게 다 징글징글했다.

       그래서 곧장 사직서를 내고 퇴직금만 먹은 채 여관이나 하나 운영하려 했다.

       비록 벌이가 시원치 않아도 그편이 마음 편히 살 수 있을지 않나 하는 작은 기대감이 든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세상은 원래 계획대로 일이 풀리는 경우가 드문 법이었다.

         

       “호오, 자네가 한 것인가?”

       “예에?”

       “자네가 왕녀님을 구했네! 고맙네, 정말 고마워, 허허!”

       “…?”

         

       적국의 잔당이 갑작스레 야영지를 습격하였고, 나 또한 무작정 싸웠을 뿐인데 어쩌다 보니 왕국의 왕녀를 구하게 됐다는 애기….

       누가 들었으면 거짓말도 그럴듯하게 하라며 욕이나 얻어먹을 터였고, 난 그 거짓말 같은 얘기의 주인공이 된 것이 억울하기 그지없었다.

       적당히 튀지 않고, 그냥 조용히 살 셈이었는데, 그런 내가 왕녀를 구했다?

       이딴 말도 안 되는 경우가 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은 현실.

         

       “자네 같은 인재가 이렇게 병사로 썩고 있을 줄은 몰랐군.”

         

       갑자기 그 양반은 검 한 자루와 함께 군번줄을 닮은 목걸이를 던졌다.

         

       “앞으로 자네는 기사일세.”

       “??”

         

       나중에 안 것이지만, 고풍스럽게 생긴 중년 아재가 기사단장이란 걸 알게 됐고, 기사단장은 제 임의로 기사를 임명할 권한이 있음도 나중에 알게 됐다.

       그렇게 난 뜻하지 않게 기사 직위를 얻게 됐다.

       …정말 뜬금없게 말이다.

         

       ‘이게 맞아?’

         

       “난 가능하네.”

       “저, 전 노예 출신인데요?”

       “왕국은 능력만 있다면 출신은 신경 안 쓴다네.”

       “사, 사실 암살 조직에 몸을 담근 경력도….”

       “허어, 특이한 경력이 있군? 하지만 오히려 좋군! 경력직은 환영이네-!”

       “…….”

         

       진짜 너무 싫어서 암살자 커밍아웃까지 했는데, 이 양반에겐 통하지 않았다.

       그때 느꼈다.

       이 양반도 만만치 않은 미친놈임을.

         

       ‘…진짜 개 같네.’

         

       * * *

         

       이후 난 늦깎이 나이 27세로 기사가 되었다.

       정확히는 낙하산 기사.

       그도 그럴 게 다른 놈들은 귀족 자제거나 그도 아니면 명문 아카데미 출신인데, 나는 평민 출신에다 원래는 병사였던 놈이기까지 하다.

       그런 놈이 기사 단장 덕분에 기사 명함을 달게 된 것이니 낙하산이란 말이 적절할 수밖에.

         

       또한 어느 조직이든 마찬가지로 낙하산이란 존재는.

         

       “천한 놈, 감히 이곳이 어딘 줄 알고…!”

       “칼을 뽑아라. 네놈이 있어야 할 곳으로 보내주지.”

       “순순히 제 발로 나가는 게 신상에 이로울 것이다.”

         

       …왕따, 따돌림, 괴롭힘 등등.

       다양한 수단으로 험한 꼴을 보기 마련이었다.

       이것이 바로 빽 없는 낙하산의 숙명.

         

       ‘기사단장 이 놀보다 못한 새끼!’

         

       기사로 뽑아놓으면 무얼 하나.

       빽은커녕, 그냥 단장실에 앉아 홍차나 마시고 있는데!

         

       남을 이 꼴로 만들었으면 좀 지켜주기나 할 것이지, 그런 것도 아니고.

       난 순간적으로 너무 열이 받고 말았고, 스트레스를 풀어야만 했다.

       그렇게.

         

       “너희도 내가 만만하냐-?”

         

       난 눈깔이 그대로 뒤집혔고, 다음 순간 술에 만취한 듯 기억이 끊기고 말았다.

       다시 기억이 이어졌을 때 내 눈앞에 있는 건 피떡이 된 채 널브러진 기사 단원 열대명과 나를 제압한 기사단장의 모습이었다.

         

       “허허, 역시 재밌는 인재야. 마땅한 스승도 없어 보이거늘, 싸움을 하는 법을 본능적으로 아는구나. 그야말로 짐승 같은 놈이로다.”

       “…사람 갖고 놀지 말고, 사직서나 받아줘요. 참고로 이거 부탁이 아니라 경곱니다. 이거 안 받아주면 내가 아저씨를 어떻게 할지 몰라.”

       “그래? 그거 꼭 보고 싶구나. 어떤 경고일지.”

       “난 분명히 말했습니다.”

         

       난 이제 기사단장이고 나발이고 다 짜증나서 죽이진 않더라도 턱주가리 정도는 날리고 싶었다.

       뒷일은 신경 껐다.

       어차피 이리 죽나, 저리 죽나 다 똑같은 거지.

         

       다만.

         

       퍽퍽퍽!

         

       “자, 잠깐만요!”

       “허허, 경고는 언제 보여줄 것이냐?”

       “아, 아니 내가 실수를 좀…!”

         

       이 아저씨, 존나 세더라.

       기사단장을 도박으로 따먹은 게 아니라, 그냥 기사들 중 젤 세서 단장인 걸 맞으면서 알았다.

       다른 놈들이랑 레벨이 달랐다.

       그냥 비 오는 날 먼지 나도록 두들겨 맞듯이 정말 많이도 맞고, 또 맞았다.

       이대로 가면 맞다가 죽지 않을까 싶을 쯤, 단장은 주먹질을 멈추었고.

         

       “흘흘, 고놈 참 몸 한 번 튼실하구나. 이것 봐라, 내가 땀이 다 흐르는구나.”

       “미, 미친 양반….”

       “입도 움직이다니. 역시 인재야!”

       “사, 사직서 낼 거야….”

       “아서라, 그건 내가 안 받을 것이야. 혹여라도 그만두고 싶다면 날 이겨보거라. 그럼 사직서를 받아주마.”

       “…우라질.”

         

       난 정말 이상하지만 미치도록 센 괴인에게 잘못 걸렸다는 걸 확연히 깨달았고, 그날 처음으로 눈물마저 났다.

       허나 이후 난 눈물을 흘리는 대신 마음 속 칼을 갈며 다짐했다.

         

       ‘내가 반드시 그만두고 만다!’

         

       군자의 복수는 십년이 걸려도 늦지 않는 법.

         

       ‘……이길 수 있겠지?’

         

       다만 조금 자신감이 떨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 * *

         

       이날 이후 나를 괴롭히는 놈들은 사라졌다.

       아니 정확히는 얼굴만 마주쳐도 새하얗게 질리며 도망가는 놈들이 대다수였다.

       하긴, 내가 두들겨 팬 몇몇은 여전히 신전에서 치료를 받는 중이고, 회복한 놈들 중에는 정신적으로 재기가 불가하여 은퇴한 놈들도 있다고 하더라.

         

       ‘내가 좀 심하게 패긴 했나?’

         

       그래도 어쩔 수 없다.

       그러게 누가 빡치게 하라고 했던가.

       얌전하게 살고 있는 사람 신경 건드린 건 그쪽이 먼저였다.

         

       뭐, 이렇게 되다 보니 난 강제적으로 기사단에서 소외된 채 묵묵히 내 할 일만 했다.

       나의 목표는 결국 단장 아재를 쓰러트리는 거다.

       그러니 이를 위해서도 단장 아재를 쓰러트리기 위한 노력에 박차를 가해야 했고, 난 암살 길드 시절 이후로 그다지 한 적이 없는 ‘수련’이란 걸 밤낮을 가리지 않으며 했다.

         

       …수련이라고 한들 알고 있는 거라곤 얼마 되지 않았지만.

         

       “저거 왕국 기본검법 아니야?”

       “그, 그런 것 같은데?”

       “…저걸로 단장님을, [오러 유저]를 이길 수 있을까?”

       “불가능이지.”

         

       내가 알고 있는 수련이라곤 암살자 시절 익힌 은신술과 암기술 따위밖에 없었다.

       허나 그걸로 절대 단장 아재를 이길 수 없으며, 설사 이긴다 한들 내가 만족을 못했다.

       그래서 난 정면 대결을 생각하며 검술 수련을 시작했고, 유일하게 알고 있는 검술이자 모든 국민이라면 아는 기본검술만 수련했다.

         

       어느 명문 기사가문에서 가르치는 상위 검법 등은 아무것도 모르는 나로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가르쳐줄 지인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단장 아재라면 기꺼이 가르침을 줄 것도 같지만, 난 절대 그러지 않았다.

       구걸하는 느낌도 있었으며, 그 양반 제자 비스름한 것도 절대 되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렇기에.

         

       “야, 너. 나랑 대련 좀 하자.”

       “내, 내가 뭘 잘못했다고 이러는 거야!”

       “됐고, 간다.”

       “제, 제기랄!!”

         

       다행스럽게도 내가 있는 곳은 기사단.

       고급 검술을 익힌 엘리트 놈들이 잔뜩 포진되어 있었으며, 난 하루에도 수차례씩 놈들과 대련하며 놈들의 검술을 눈대중으로 익히고, 나에게 부족한 점을 채워갔다.

       거의 대부분 신체능력으로 이기긴 했지만, 기사단에는 진짜배기 놈들도 제법 있었고. 그런 놈들한텐 패할 때도 있었다.

       오로지 검술로만 덤빈 패착이었고, 굴욕적이기보단 저놈들에겐 뺏어먹을 게 많은 테니 환영스러울 뿐이었다.

         

       그렇게 대련으로 물고 늘어지는 나날.

       어느 정도 성과가 보일 때마다 난 꾸준히.

         

       콰아아앙!

         

       “아직 자네는 나에게 안 된다네.”

       “끄으으윽!!!”

         

       단장 아재에게 덤볐다.

       덤볐다기보단 단장 아재가 내 재롱을 기꺼이 봐주는 느낌이었지만, 난 이를 굴욕으로 여기는 대신 반드시 이기고 말겠다는 독기만 키웠다.

         

       그렇게 또 싸우고, 싸우고, 싸우고 싸우길 반복했고, 결과적으로 난 백전백패를 달성했다.

         

       백번 싸워서 백번 다 깨지고 만 것이다.

         

       “…인간 같지 않은 양반.”

       “오러 유저가 뉘집 개 이름인 줄 알았느냐? 흘흘, 꼬우면 너 또한 오러 유저가 되면 되는 게다.”

       “……미치겠네.”

         

       오러 유저.

       인간의 몸으로 초인이 된 자들.

       오러란 신비한 힘을 다루는 인간들로 어릴 적부터 체계적이면서도 미친 수련을 받은 놈들 중에서도 천재 소리 듣는 놈들 다 재끼고 이겨서 가까스로 닿을 수 있는 경지.

       그리고 오러는 오러로만 상대 가능한 것이 대륙의 상식.

       그렇기에 오러 유저는 인간의 형상을 한 괴물이다.

         

       그리고 내가 이겨야 할 양반은 왕국의 셋 밖에 없는 ‘진짜배기’ 오러 유저였다.

         

       이 정도면 슬슬 인간적으로 절망할 부분이다.

       도저히 이길 방법이 보이지 않으니까.

         

       스릉.

         

       “호오, 또 덤비려고?”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덥니다.”

       “나에겐 안 통할 것 같다만.”

       “…그럼 천번만번 찍어 보죠, 뭐.”

       “그거, 참 재밌겠구나.”

         

       쾅!

         

       이후 3년.

         

       난 여전히.

         

       “하아, 진짜 그만두고 싶다.”

         

       기사단에 남아 있었다.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환생 30년, 알고 보니 장르가 로판이었다?
Status: Ongoing Author: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the genre was romance fantasy? ...Really, how? I lived as a magician's slave, experimented on, then as an assassin, mercenary, soldier, and even a knight. This is a story where I'm in a genre all by my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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