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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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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딜 뒤치다꺼리가 끝났으니 다른 일거리를 처리할 때였다. 우선 식사부터 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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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들 식사도 챙겨야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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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 주인은 실험체로 끌려온 애들의 식사를 대충 물에 감자 몇 개 썰어 넣은 걸 던져 줬다. 귀찮을 땐 유통기한이 지난 것 같은 빵을 던져주기도 했다. 그러면서 본인은 오딜이 먹을 법한 부드러운 빵과 수프를 먹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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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부터 그럴 일은 없다. 크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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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가 구운 새카만 계란 후라이를 보고 처음 국자를 잡은 나이 5세, 요리에 통달한 그에게 어린애들 식사를 챙기는 건 일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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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출 당하기 전까지 배불리 먹여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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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으로 흐흐 거리며 먹음직스러운 수프를 끓이기 시작했다. 향신료 팍팍 넣은 수프와 빵을 들고 오딜에게 가져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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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고 가도록.”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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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딜은 다시 실험에 집중하는지 식사는 거들떠보지 않았다. 방을 빠져나와 주방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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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텁.
    ​
    ​
    길쭉하고 큰 수프용 냄비 위에 뚜껑 대신 쟁반을 올리고 그릇을 올렸다. 묵직한 냄비를 번쩍 들어 올린 후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을 지하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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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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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가운 물이 뚝뚝 떨어지는 지하 감옥 안. 어린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온기를 나누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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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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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볼이 홀쭉하게 들어갈 정도로 야윈 여자아이 릴리가 멍한 얼굴로 제 엄마의 얼굴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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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자니까 더 비싸죠? 봐요! 이 정도면 꽤 값이 나갈 거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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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웅웅, 엄마의 목소리가 귓가에 퍼져나갔다. 릴리는 엄마의 모진 말 따위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에게 유일하게 의지가 되어준 ‘어른’의 품에 돌아가고 싶었다. 돌아갈 수도 없으며 돌아간다고 해도 행복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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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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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흠칫, 그때 위쪽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아이들은 몸을 움츠리며 바닥을 발로 밀었다. 두려움에 몸이 덜덜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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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턱,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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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흑마법사의 가죽 신발 소리가 아니라는 것에 안도하면서도 몸에서 힘을 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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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사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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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사 시간 때 마다 맛없는 빵을 던져주는 남자였다. 종종 흑마법사 대신 그들을 끌어내 끌고 가기도 했던 사람이다. 덜덜덜, 끌려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몸이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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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슥, 그때 따스한 온기가 그녀를 안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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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괜찮아. 언니가 있잖아.”
    “으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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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릴리는 빼빼 마른 팔로 자신을 안아주는 피아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두 사람은 친자매는 아니었지만 짙은 유대감으로 이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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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텁,턱. 달그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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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킁킁.”
    “맛있는 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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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의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지자 고소한 냄새가 코를 문질렀다. 릴리는 자신도 모르게 피아의 품을 빠져나와 코를 씰룩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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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릴리!”
    “언니 맛있는 냄새가 나.”
    “그래도 이쪽으로 와. 끌려갈지도 모르잖아!”
    “으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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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끌려가는 건 너무나 무서웠기에 릴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피아의 품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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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꼬르르르륵.
    꾸르륵.
    꽈르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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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에서 울려 퍼지는 온갖 소리가 지하 감옥에 웅웅 울려 퍼졌다. 오랜 시간 굶어 감각도 없던 배가 요동치며 어서 저 고소한 냄새가 나는 음식을 먹으라고 항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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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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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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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냄새에 집중하는 사이 하얀 발이 마지막 계단을 밟고 내려왔다. 그는 평소와 달리 커다란 냄비를 든 채였다. 냄새는 냄비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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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꿀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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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가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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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척척척, 감옥 앞까지 다가온 리안은 냄비를 감옥 입구 옆에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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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잘그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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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는 허리춤에서 열쇠 꾸러미를 찾아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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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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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흐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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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이 슬슬 앞으로 나오던 아이들이 경기를 일으키며 뒤로 도망쳤다. 그가 문을 열 땐 항상 실험체 한명을 끌고 갔기 때문이다. 쓰나미에 밀려나는 것처럼 릴리는 아이들에게 쓸려 뒤로 밀려났다. 감옥 문을 열고 들어온 리안의 얼굴은 역광 때문에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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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잇,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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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문을 발로 열어두고 냄비를 번쩍 들고 안으로 들어왔다. 한쪽에 놓아두곤 허리춤에 손을 올리고 그들 쪽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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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흠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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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선이 마주쳤다는 사실에 릴리가 어깨를 움츠리며 피아의 몸에 얼굴을 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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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그락, 풍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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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언가가 물에 빠지는 듯한 소리에 릴리가 어깨를 움찔 떨며 슬쩍 시선을 돌렸다. 맛있는 냄새를 풍기는 냄비 안에 나무 국자가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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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츄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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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릴리는 자신도 모르게 터져 나온 침을 꿀꺽 삼켰다. 물조차 제대로 마시지 못해 쩍쩍 갈라진 목구멍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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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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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한쪽에 내려놓은 쟁반 위 나무 그릇을 잡아 그 안에 수프를 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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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르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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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먹음직스러운 수프가 그릇에 담기는 모습이 느릿하게 시선에 담겼다. 릴리는 뭐에 홀린 표정으로 멍하니 수프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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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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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때 피아가 이를 갈며 매섭게 리안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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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부러 저러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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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지금까지 감옥에 갇혀 쫄쫄 굽는 아이들을 보며 비웃거나 먹다 만 빵을 던져주는 쓰레기 짓을 저질러왔다. 지금처럼 감옥 안까지 맛있는 냄새가 풀풀 풍기는 음식을 가져온 적은 없었지만, 감옥 밖에서 부드러운 빵을 뜯어 먹으며 배고파서 기어 다니는 아이들을 비웃은 적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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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일이 있었기에 피아의 표정이 좋을 리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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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약 일부러 그러는 거라면…냄비를 통째로 엎어버리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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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실험체로 끌려갈 수도 있지만 적어도 릴리나 다른 아이들이 수프 맛이라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바닥을 핥아야겠지만 이곳에선 그렇게라도 먹어야 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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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가 눈을 매섭게 번뜩이며 리안을 바라보던 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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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탕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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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이 국자로 냄비 안쪽을 가볍게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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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들 식사해야 하니까 이쪽으로 와서 한 줄로 서.”
    “…!”
   “허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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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고픔에 이성을 잃은 몇몇 아이들이 뛰쳐나갔다. 그러자 두려움에 굳어있던 아이들도 반사적으로 아이들의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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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줄로 안 서면 안 줄 거야. 너는 뒤쪽에 서고,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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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소라면 아이들의 몸에 손가락 하나만 닿아도 혐오스럽게 손을 털던 리안이 새카만 아이들의 팔을 조심스럽게 잡고 줄을 서게 했다. 상상도 해보지 못한 모습에 피아는 입을 헤 벌린 채 리안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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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도!”
    “..! 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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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릴리까지 앞으로 뛰쳐나가 줄을 서자, 피아 또한 릴리를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정말 먹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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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뜨거우니까 조심히 먹고, 이거 숟가락 쓰고 돌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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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익숙한 솜씨로 아이들에게 수프를 한 그릇씩 덜어주었다. 아이들은 누구에게 뺏길까 두려워 수프를 들고 구석으로 가 허겁지겁 수프를 퍼먹었다. 어느새 릴리가 수프를 받을 차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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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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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릴리가 눈을 반짝거리며 다급하게 그릇을 받아 살금살금 한쪽 벽에 등을 기댔다. 다행히 수프는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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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슥,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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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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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심스럽게 수프를 떠 입에 밀어 넣자 전율이 일었다. 뜨겁다는 경고가 무색할 정도로 딱 먹기 좋게 따뜻한 수프는 입 안에서 가볍게 녹아내렸다. 감자를 으깨 만든 감자수프는 달콤하면서도 느끼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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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합,하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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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릴리는 허겁지겁 수프를 마시듯이 먹었다. 중간중간 들어간 작은 고기 알갱이를 씹을 땐 눈가에 눈물이 고일 정도였다. 정신을 차렸을 땐 그릇이 텅 비어있었다. 아쉬움에 숟가락과 그릇을 핥던 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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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루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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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다란 소리에 깜짝 놀란 릴리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고개를 돌렸다. 릴리 옆에 앉아있던 피아가 그릇에 입을 댄 채 수프를 꿀꺽꿀꺽 삼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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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언니?”
   “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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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릴리의 목소리에 뒤늦게 정신을 차린 피아는 마지막 남은 수프를 긁어먹다가 얼굴을 붉히며 입 안에 남은 수프를 꿀꺽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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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뜨,거우니까 천천히 먹어야 해. 릴리.”
    “으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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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릴리는 피아가 앞뒤가 안 맞는 말을 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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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따가 저녁도 먹어야 하니까. 점심에는 한그릇만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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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귓가를 두드리는 부드러운 목소리에 릴리의 시선이 감옥 문 쪽을 향했다. 문 앞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은 리안이 쭈뼛쭈뼛 그릇을 내밀며 한 그릇만 더 달라는 아이를 달래고 있었다. 그의 목소리와 미소가 너무 다정해서 아이는 얼어붙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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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깨끗하게 잘 먹었네. 맛있었어?”
    “우,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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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나이에 제대로 말을 배워보지도 못하고 팔려온 아이는 어설픈 말투로 대답했다. 리안은 그것조차 대견하다는 듯 아이의 손을 가볍게 두드려 준 후 그릇을 수거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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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자기 음식을 많이 먹으면 배가 아야! 할 수 있으니까, 아프면 말해 알겠지?”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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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가 어째서 갑자기 변했는지, 왜 맛있는 음식을 주는 건지. 그 이유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 어떤 어른에게도 의지할 수 없는 상황에서 내민 따스한 손길은 어떤 아이들도 거부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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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 그럼 난 이만 가볼 테니까 조용히 있어.”
    “응!”
   “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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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식간에 마음을 연 아이 몇몇이 철창 가까이 다가와 착실하게 대답했다. 리안은 창살 사이로 손을 밀어 넣어 아이들의 머리를 가볍게 쓸어주었다. 그러자 아이들의 얼굴이 옅게 붉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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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턱,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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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걸음 소리가 멀어지자 피아는 입술을 깨물며 무릎을 끌어안았다. 릴리에게 어른인 척을 하고 있지만 그녀도 올해 13살이 된 어린아이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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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지옥 같은 세계에서 자비는 존재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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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왕의 손에 떨어진 왕국 이스케니아, 이곳에선 인간이란 곧 가축과 다를 바 없는 취급을 받았다. 그나마 나은 대우를 받는 인간은 마족과 비슷할 정도로 심성이 끔찍한 이들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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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대하지 마, 기대하면 또다시 배신당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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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는 무릎 사이에 고개를 푹 박은 채 자신도 모르게 들뜨려는 가슴을 억눌렀다. 그리곤 자신을 배신하고 버렸던 추악한 인간의 모습을 떠올렸다. 앞에서는 웃고 뒤에서는 그녀를 팔아넘긴 쓰레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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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의 그런 분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리안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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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추천은 사랑입니다 : D다음화 보기

오딜 뒤치다꺼리가 끝났으니 다른 일거리를 처리할 때였다. 우선 식사부터 해야 했다.

‘애들 식사도 챙겨야겠네.’

몸 주인은 실험체로 끌려온 애들의 식사를 대충 물에 감자 몇 개 썰어 넣은 걸 던져 줬다. 귀찮을 땐 유통기한이 지난 것 같은 빵을 던져주기도 했다. 그러면서 본인은 오딜이 먹을 법한 부드러운 빵과 수프를 먹었었다.

‘이제부터 그럴 일은 없다. 크크크.’

엄마가 구운 새카만 계란 후라이를 보고 처음 국자를 잡은 나이 5세, 요리에 통달한 그에게 어린애들 식사를 챙기는 건 일도 아니었다.

‘구출 당하기 전까지 배불리 먹여주마.’

속으로 흐흐 거리며 먹음직스러운 수프를 끓이기 시작했다. 향신료 팍팍 넣은 수프와 빵을 들고 오딜에게 가져다주었다.

“두고 가도록.”

“예.”

오딜은 다시 실험에 집중하는지 식사는 거들떠보지 않았다. 방을 빠져나와 주방으로 돌아왔다.

텁.

길쭉하고 큰 수프용 냄비 위에 뚜껑 대신 쟁반을 올리고 그릇을 올렸다. 묵직한 냄비를 번쩍 들어 올린 후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을 지하로 향했다.

***

차가운 물이 뚝뚝 떨어지는 지하 감옥 안. 어린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온기를 나누고 있었다.

‘엄마…’

볼이 홀쭉하게 들어갈 정도로 야윈 여자아이 릴리가 멍한 얼굴로 제 엄마의 얼굴을 떠올렸다.

여자니까 더 비싸죠? 봐요! 이 정도면 꽤 값이 나갈 거라고요!

웅웅, 엄마의 목소리가 귓가에 퍼져나갔다. 릴리는 엄마의 모진 말 따위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에게 유일하게 의지가 되어준 ‘어른’의 품에 돌아가고 싶었다. 돌아갈 수도 없으며 돌아간다고 해도 행복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그랬다.

텁.

흠칫, 그때 위쪽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아이들은 몸을 움츠리며 바닥을 발로 밀었다. 두려움에 몸이 덜덜 떨렸다.

턱,텁.

흑마법사의 가죽 신발 소리가 아니라는 것에 안도하면서도 몸에서 힘을 풀지 않았다.

‘그 사람이야…’

식사 시간 때 마다 맛없는 빵을 던져주는 남자였다. 종종 흑마법사 대신 그들을 끌어내 끌고 가기도 했던 사람이다. 덜덜덜, 끌려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몸이 떨렸다.

슥, 그때 따스한 온기가 그녀를 안아주었다.

“괜찮아. 언니가 있잖아.”

“으응.”

릴리는 빼빼 마른 팔로 자신을 안아주는 피아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두 사람은 친자매는 아니었지만 짙은 유대감으로 이어져 있었다.

텁,턱. 달그락.

“킁킁.”

“맛있는 냄새..”

그의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지자 고소한 냄새가 코를 문질렀다. 릴리는 자신도 모르게 피아의 품을 빠져나와 코를 씰룩거렸다.

“리,릴리!”

“언니 맛있는 냄새가 나.”

“그래도 이쪽으로 와. 끌려갈지도 모르잖아!”

“으응.”

끌려가는 건 너무나 무서웠기에 릴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피아의 품으로 돌아왔다.

꼬르르르륵.

꾸르륵.

꽈르릇

배에서 울려 퍼지는 온갖 소리가 지하 감옥에 웅웅 울려 퍼졌다. 오랜 시간 굶어 감각도 없던 배가 요동치며 어서 저 고소한 냄새가 나는 음식을 먹으라고 항의했다.

탁!

“…!”

냄새에 집중하는 사이 하얀 발이 마지막 계단을 밟고 내려왔다. 그는 평소와 달리 커다란 냄비를 든 채였다. 냄새는 냄비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꿀꺽.

누군가가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척척척, 감옥 앞까지 다가온 리안은 냄비를 감옥 입구 옆에 내려놓았다.

잘그락.

그리고는 허리춤에서 열쇠 꾸러미를 찾아 문을 열었다.

철컥.

“…!”

“흐아악!”

몸이 슬슬 앞으로 나오던 아이들이 경기를 일으키며 뒤로 도망쳤다. 그가 문을 열 땐 항상 실험체 한명을 끌고 갔기 때문이다. 쓰나미에 밀려나는 것처럼 릴리는 아이들에게 쓸려 뒤로 밀려났다. 감옥 문을 열고 들어온 리안의 얼굴은 역광 때문에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허잇,차.”

리안은 문을 발로 열어두고 냄비를 번쩍 들고 안으로 들어왔다. 한쪽에 놓아두곤 허리춤에 손을 올리고 그들 쪽을 바라보았다.

흠칫.

시선이 마주쳤다는 사실에 릴리가 어깨를 움츠리며 피아의 몸에 얼굴을 묻었다.

달그락, 풍덩!

무언가가 물에 빠지는 듯한 소리에 릴리가 어깨를 움찔 떨며 슬쩍 시선을 돌렸다. 맛있는 냄새를 풍기는 냄비 안에 나무 국자가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츄릅.”

릴리는 자신도 모르게 터져 나온 침을 꿀꺽 삼켰다. 물조차 제대로 마시지 못해 쩍쩍 갈라진 목구멍이 느껴졌다.

퐁.

리안은 한쪽에 내려놓은 쟁반 위 나무 그릇을 잡아 그 안에 수프를 담기 시작했다.

주르륵.

먹음직스러운 수프가 그릇에 담기는 모습이 느릿하게 시선에 담겼다. 릴리는 뭐에 홀린 표정으로 멍하니 수프를 바라보았다.

으득.

그때 피아가 이를 갈며 매섭게 리안을 바라보았다.

‘일부러 저러는 거야..!’

리안은 지금까지 감옥에 갇혀 쫄쫄 굽는 아이들을 보며 비웃거나 먹다 만 빵을 던져주는 쓰레기 짓을 저질러왔다. 지금처럼 감옥 안까지 맛있는 냄새가 풀풀 풍기는 음식을 가져온 적은 없었지만, 감옥 밖에서 부드러운 빵을 뜯어 먹으며 배고파서 기어 다니는 아이들을 비웃은 적은 있었다.

그런 일이 있었기에 피아의 표정이 좋을 리 없었다.

‘만약 일부러 그러는 거라면…냄비를 통째로 엎어버리겠어.’

다음 실험체로 끌려갈 수도 있지만 적어도 릴리나 다른 아이들이 수프 맛이라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바닥을 핥아야겠지만 이곳에선 그렇게라도 먹어야 살 수 있었다.

피아가 눈을 매섭게 번뜩이며 리안을 바라보던 그때.

탕탕!

리안이 국자로 냄비 안쪽을 가볍게 두드렸다.

“다들 식사해야 하니까 이쪽으로 와서 한 줄로 서.”

“…!”

“허억…”

배고픔에 이성을 잃은 몇몇 아이들이 뛰쳐나갔다. 그러자 두려움에 굳어있던 아이들도 반사적으로 아이들의 뒤를 따랐다.

“한 줄로 안 서면 안 줄 거야. 너는 뒤쪽에 서고, 그렇지.”

평소라면 아이들의 몸에 손가락 하나만 닿아도 혐오스럽게 손을 털던 리안이 새카만 아이들의 팔을 조심스럽게 잡고 줄을 서게 했다. 상상도 해보지 못한 모습에 피아는 입을 헤 벌린 채 리안을 바라보았다.

“나도!”

“..! 릴리!”

릴리까지 앞으로 뛰쳐나가 줄을 서자, 피아 또한 릴리를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정말 먹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다.

“뜨거우니까 조심히 먹고, 이거 숟가락 쓰고 돌려줘.”

리안은 익숙한 솜씨로 아이들에게 수프를 한 그릇씩 덜어주었다. 아이들은 누구에게 뺏길까 두려워 수프를 들고 구석으로 가 허겁지겁 수프를 퍼먹었다. 어느새 릴리가 수프를 받을 차례가 되었다.

“자.”

“…!”

릴리가 눈을 반짝거리며 다급하게 그릇을 받아 살금살금 한쪽 벽에 등을 기댔다. 다행히 수프는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다.

슥,합!

“…!!”

조심스럽게 수프를 떠 입에 밀어 넣자 전율이 일었다. 뜨겁다는 경고가 무색할 정도로 딱 먹기 좋게 따뜻한 수프는 입 안에서 가볍게 녹아내렸다. 감자를 으깨 만든 감자수프는 달콤하면서도 느끼하지 않았다.

“합,하압!”

릴리는 허겁지겁 수프를 마시듯이 먹었다. 중간중간 들어간 작은 고기 알갱이를 씹을 땐 눈가에 눈물이 고일 정도였다. 정신을 차렸을 땐 그릇이 텅 비어있었다. 아쉬움에 숟가락과 그릇을 핥던 그때.

“후루룹!”

커다란 소리에 깜짝 놀란 릴리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고개를 돌렸다. 릴리 옆에 앉아있던 피아가 그릇에 입을 댄 채 수프를 꿀꺽꿀꺽 삼키고 있었다.

“어,언니?”

“읍..!”

릴리의 목소리에 뒤늦게 정신을 차린 피아는 마지막 남은 수프를 긁어먹다가 얼굴을 붉히며 입 안에 남은 수프를 꿀꺽 삼켰다.

“뜨,거우니까 천천히 먹어야 해. 릴리.”

“으응.”

릴리는 피아가 앞뒤가 안 맞는 말을 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따가 저녁도 먹어야 하니까. 점심에는 한그릇만 먹자.”

귓가를 두드리는 부드러운 목소리에 릴리의 시선이 감옥 문 쪽을 향했다. 문 앞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은 리안이 쭈뼛쭈뼛 그릇을 내밀며 한 그릇만 더 달라는 아이를 달래고 있었다. 그의 목소리와 미소가 너무 다정해서 아이는 얼어붙고 말았다.

“깨끗하게 잘 먹었네. 맛있었어?”

“우,응.”

어린 나이에 제대로 말을 배워보지도 못하고 팔려온 아이는 어설픈 말투로 대답했다. 리안은 그것조차 대견하다는 듯 아이의 손을 가볍게 두드려 준 후 그릇을 수거해갔다.

“갑자기 음식을 많이 먹으면 배가 아야! 할 수 있으니까, 아프면 말해 알겠지?”

“…응.”

그가 어째서 갑자기 변했는지, 왜 맛있는 음식을 주는 건지. 그 이유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 어떤 어른에게도 의지할 수 없는 상황에서 내민 따스한 손길은 어떤 아이들도 거부하지 못했다.

“자, 그럼 난 이만 가볼 테니까 조용히 있어.”

“응!”

“네에..”

순식간에 마음을 연 아이 몇몇이 철창 가까이 다가와 착실하게 대답했다. 리안은 창살 사이로 손을 밀어 넣어 아이들의 머리를 가볍게 쓸어주었다. 그러자 아이들의 얼굴이 옅게 붉어졌다.

턱,텁.

발걸음 소리가 멀어지자 피아는 입술을 깨물며 무릎을 끌어안았다. 릴리에게 어른인 척을 하고 있지만 그녀도 올해 13살이 된 어린아이일 뿐이었다.

‘이 지옥 같은 세계에서 자비는 존재하지 않아.’

마왕의 손에 떨어진 왕국 이스케니아, 이곳에선 인간이란 곧 가축과 다를 바 없는 취급을 받았다. 그나마 나은 대우를 받는 인간은 마족과 비슷할 정도로 심성이 끔찍한 이들 뿐이었다.

‘기대하지 마, 기대하면 또다시 배신당할 거야.’

피아는 무릎 사이에 고개를 푹 박은 채 자신도 모르게 들뜨려는 가슴을 억눌렀다. 그리곤 자신을 배신하고 버렸던 추악한 인간의 모습을 떠올렸다. 앞에서는 웃고 뒤에서는 그녀를 팔아넘긴 쓰레기들.

그녀의 그런 분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리안을 향했다.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나 혼자 장르가 다르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n the world of comedy anime, I was living an ordinary life until I became possessed by a dark fantasy novel I was reading before falling asleep. ‘Hahaha! Don’t hold a grudge -..!’ ‘Ugh, cough cough…seriously…my clothes are ruined.’ ‘…!?’ Though I was stabbed in the stomach, I calmly stood up and pulled out the spear. Originally, residents of the comedy world are a race that can be torn into 100 pieces and still come back to life the next day. ‘Stop it! Stop now! How long do you plan to sacrifice me?’ ‘No…I mean..’ ‘I’ve become strong to protect you…what have I become?’ Residents in the comedy world are just a race that vomits blood even if they stub their toe. I never made any sacrifices..but my delusion deepens and my obsession grows. One day, while I was half-imprisoned and taking care of some pitiful kids… ‘Are you the boss?’ ‘Excuse me?’ Before I knew it, I had become the behind-the-scenes boss of a huge underworld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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