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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

    

   내가 장난감 로봇을 만들게 된 경위는 이러했다.

   5성급 호텔과도 같은 방에서 자고 일어난 나는 호화로운 아침 식사를 끝마치고 곧장 레갈리아에게 불려갔다. 애시당초 이 저택에 올 수 있던 이유가 그녀가 내게 가진 호기심 때문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불려간 그녀의 방에서 나는 그녀가 궁금해하는 지구의 이야기를 내뱉었다. 초능력이나 아인종이 존재하지 않는 순수한 세계에 대해서.

     

   그러나 아쉽게도 내게는 사람을 홀릴 만한 말재간이 존재하지 않았고, 과학과 인간만 존재하는 세계는 그녀에게 있어 그리 특별하게 들리지도 않았던 모양이다.

     

   “으음…… 재미없구나. 뭐 특별한 일은 없느냐?”

   “대통령이 총에 맞고 죽을 뻔한 이야기라면…….”

   “총? 대통령이 그런 거에 맞고 죽는단 말이냐? 어처구니가 없구나. 그쪽 세상 사람들은 전부 다 약골이라도 된다는 게냐. 아니면 히어로들이 총알도 막을 수 없을 만치 약하다는 게야?”

   “둘 다 입니다만…….”

   “에잉…… 이세계라고 해서 흥미가 조금 있었는데, 특별한 것도 없구나.”

     

   레갈리아는 애늙은이마냥 혀를 끌끌 차더니 흥미를 잃은 듯 눈길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안절부절 못 하며 허둥지둥거리기 시작했다.

     

   어제 그녀의 호위가 말했듯 내가 이 저택에서 머무를 수 있는 건 어디까지나 그녀의 호의이자 호기심 때문이었다. 그녀가 내게 흥미를 일절 잃어버린다면 당장 오늘 밤이라도 저택에서 내쫓길 수 있었다…….

     

   다행히도 흥미를 잃은 레갈리아는 곧장 나를 내쫓는 게 아니라 어디선가 장난감을 잔뜩 들고 와선 내게 말했다.

     

   “이야기 듣는 건 재미 없구나. 여랑 소꿉놀이나 하자꾸나-!”

   “네, 네? 아, 네.”

   “자네는 힘을 잃고 은퇴해서 빌런들에게 복수당하는 히어로 로봇 역이네. 알겠지?”

     

   황당한 역할 설정에 슬쩍 장난감을 바라보자, 흔히 그녀 나이대 여자아이들이 가질 법한 드레스 입은 인형 같은 건 온데간데 없고, 남자아이들이나 갖고 놀 법한 로봇 장난감이 잔뜩 늘여져 있었다.

     

   레갈리아가 사실은 남자였을 가능성도 없다. 어젯밤 호위가 그녀를 아가씨라고 부르던 것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녀의 취향이 이런 남자애들이나 갖고 놀 법한 로봇이라는 뜻이었다.

     

   “인형 같은 건 갖고 놀지 않으시나요?”

   “인형? 여가 왜 그런 나약한 걸 갖고 놀아야 하지? 요즘 대세는 로봇일세! 슈퍼 로봇! 좋지 아니한가!”

   “아하하- 제 조카들은 인형 놀이를 좋아하길래 그만.”

     

   과연. 레갈리아와 몇 번 대화를 나눠본 나는 그녀의 취향이 그리 특이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하기야 초능력이니 히어로니 하는 초자연적 존재가 실재하는 세계였다. 여자아이의 취향이 그런 쪽으로 향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나는 그녀에게 건네받은 로봇을 바라보았다. 한 손에 들어올 정도로 작지만 쓸데없으리 만치 정교했다. 팔다리가 움직이는 건 물론이요 장갑을 탈착할 수조차 있었고, 눈동자는 렌즈 같은 무언가가 반짝이기까지 했다.

     

   단순히 장난감이라고 보기에는 지나치게 잘만들어진 물건이었다. 

     

   “그 로봇에는 슬픈 사연이 있지…….”

   “예?”

   “궁금한가? 들려주도록 하지. 그건 여의 5살 생일 파티 때 있었던 일이라네.”

   ‘……겨우 몇 년전 아냐?’

     

   길어봐야 2, 3년 되었을 일을 오래된 일처럼 기억하는 그녀의 모습에 헛웃음이 절로 나왔지만, 나는 애써 표정을 숨긴 채 그녀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일단은 그녀가 내가 먹고 살 유일한 방도였으니까.

     

   “생일 날. 여에게 인사를 올리겠다고 정부 인사요 평소엔 테레비에서나 얼굴을 보일 법한 히어로들마저 찾아왔었지. 그들 중에는 여의 마음에 들겠다며 선물을 준비한 이들도 있었고. 이건 그들 중 한 명이 건네준 선물이네.”

     

   “선물이요?”

     

   “그래. 원래라면 눈이랑 손에서 빔이 나가고 그랬는데, 1년 전부터는 움직이질 않게 됐어. 버리기도 아까워서 그를 다시 만나면 고쳐달라고 부탁하기 위해서 남겨놓고 있던 물건이야.”

     

   “오…… 그렇군요.”

     

   나는 그제야 이 로봇이 어째서 이렇게나 정교하게, 고퀄리티로 제작되었는지 눈치챘다. 이런 대저택에 사는 아가씨다. 돈이든 권력이든 많을 게 분명하다. 그런 아가씨의 마음에 들기 위해서 가성비 따위는 생각지 않고 장인 정신으로 한 땀 한 땀 깎아 만들었으리라.

     

   로봇을 바라보는 것도 잠시, 1년 전부터 움직이지 않았다는 말을 떠올린 나는 로봇을 이리저리 돌리며 구조를 파악하기 시작했다. 

     

   ‘아, 찾았다.’

   “그래서 말일세…… 자네 뭐 하는 건가?”

   “이거, 제가 고쳐봐도 될까요?”

   “……그걸 고쳐보겠다고?”

     

   로봇을 고쳐주겠다는 말을 들은 레갈리아의 두 눈동자가 의뭉스럽게 변했다가, 다시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변화했다. 그녀는 재밌겠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망가뜨리면 책임져야 할 텐데?”

     

   “고치진 못해도 망가뜨리진 않을 겁니다. 아마도.”

     

   “그래, 좋아. 키티? 수리 도구 좀 가져다주게.”

   “예, 아가씨.”

     

   잠시 후, 호위가 가져다준 도구를 받은 나는 로봇의 장갑을 뜯어내고 그 안쪽을 살폈다. 과연 로봇의 안쪽에는 전지로 보이는 무언가가 들어가 있었다.

     

   전지 주변엔 녹슬고 먼지 먹은 회로와 부품들이 보였다.

     

   ‘1년 전부터 갑자기 작동을 멈췄다고 했지.’

     

   보통 이런 경우는 전지가 전부 닳은 경우일 텐데, 다행히도 전지는 아직 살아있는 듯 보였다. 빔이 나간다고 했으니 아마 그 빔의 출력을 버티지 못한 회로가 망가진 듯했다.

     

   나는 니퍼로 로봇 내부를 깎고 다듬으며 회로가 재작동하도록 재구성했다. 부품이 부족하면 겉에서 일부분을 뜯어와 사용했다. 그렇게 얼마나 만졌을까.

     

   기이잉-.

     

   “오, 됐다.”

   “아니, 그게 무슨…….”

     

   고친 회로에 전지를 그대로 끼운 뒤 재조립하자 놀랍게도 로봇이 저 혼자 움직이기 시작했다. 눈에서 빔이 나온다던 레갈리아의 말처럼 저 혼자 일어선 로봇은 양팔을 들어올리더니 그대로 눈에서 빔을 발사했다.

     

   지이이이잉-!

     

   “우, 움직인다! 움직여!”

     

   레갈리아는 움직이는 로봇을 보며 크게 기뻐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어린아이가 웃는 모습을 보는 게 기분 좋았을 뿐더러 그녀가 제 쓸모를 찾아준다면 여기에서 조금 더 묵고 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로봇에서 발사한 빔이 하늘을 가로 지르는 모습을 본 순간, 상당히 고양됐던 기분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로봇이 발사한 빔은 그대로 구름을 가르고 길게 이어졌다.

     

   “어, 어어…….”

   “으하하핳-! Rdx-13! 한 번 더 발사!”

   ─발사.

     

   지이이이잉-!

   레갈리아의 명령에 따라 정원을 불태우는 장난감 로봇을 보며,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고작해야 장난감 수준의 빔이 나갈 줄 알았는데.

     

   ‘미친, 이러니까 무능력자는 할 일이 없지…….’

     

   내가 멍하니 로봇을 바라보는 가운데, 나와 레갈리아를 지켜보던 호위가 기함을 토해냈다.

     

   “대체 어떻게…….”

     

   넌 또 왜 놀라는데.

     

     

   * * *

     

     

   레갈리아의 곁에서 그녀를 지키던 호위는 제가 지키는 아가씨 곁에 달라붙은 남정네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출신도 모르는 일개 부랑아 따위가 아가씨와 저토록 가까이 달라붙다니?

     

   ‘쓸모도 없는 무능력자 주제에.’

     

   아가씨께서 만약 마음이 선량하지 않으셨다면, 동시에 타인의 마음을 읽는데 천부적인 재능이 없었더라면 저 사내가 여기서 이러고 있을 수도 없었으리라. 흥미를 잃은 아가씨는 길바닥에서 주워온 사내를 똑같이 길바닥에 내던져 버렸을테니까.

     

   그러나 마음 약하신 아가씨께서는 저 망할 사내 새끼가 불안해한다는 걸 알고 저렇게 놀아주고 계셨다. 저런 옛날에 갖고 놀던 장난감 따위를 잔뜩 들고 와서는.

     

   “이건 예전에─.”

   “아, 그렇군요…….”

   ‘아가씨 말을 무시해-?’

     

   호위는 제 아가씨의 말에 집중하지 않고 로봇을 만지작거리는 사내를 보며 인상을 팍 찌푸렸다. 제까짓 게 어떻게 고쳐보려고 애쓰나 본데,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저건 부품 하나하나가 수제작으로 만들어진 일종의 공예품이었으며. 심지어 세 명 이상의 초능력자가 힘을 합쳐서 만들어낸 초상무구였다. 장난감 로봇의 형태를 하고 있을 뿐이지 병기나 다름없는 물건이었다.

     

   그걸 무능력자가 고쳐보겠다고? 불가능할 게 뻔하다. 괜히 아가씨께서 아끼던 물건을 망가뜨렸다고 경이나 치르지 않으면 다행인 일…….

     

   “아, 됐다.”

     

   그러나 놀랍게도 사내는 그 로봇을 고치는 데 성공했다. 대체 어떻게 한 건지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보아라. 정작 기대않던 아가씨도 놀라서 두 눈을 껌뻑이고 있지 않은가.

     

   아, 놀라는 아가씨도 귀엽다.

     

   그렇게 놀라기도 잠시, 아가씨는 사내가 고쳐준 로봇을 들고서 기쁘게 웃음지으셨다. 그 미소를 본 호위는 직감했다. 이제 아가씨께서 저 사내를 놓아줄 일은 없을 거라는 사실을…….

     

     

   * * *

     

   성명 : Rdx-13

   초능력 : 결정 에너지

   설명 : TV 애니메이션 「진격 다이디스전」에 등장하는 거대 로봇의 모형. 원작과는 달리 눈과 손에서 빔을 쏘아낸다.

     

   * * *

     

   장난감 로봇을 고쳐주자, 레갈리아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눈을 반짝거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자네, 과학자였나!?”

   “네? 아뇨, 과학자라기보단…….”

     

   공학자에 가까운데요.

   그러나 레갈리아는 내 말을 한 귀로 흘리며 손을 마구 버둥거렸다.

     

   “─여덟 번째! 자네에게 여덟 번째 자리를 주지!”

   “그게 무슨…….”

   “여가 만든 비밀 조직에 초대하겠다는 뜻일세!”

     

   그놈의 비밀 조직이 뭔지, 여덟 번째라는 건 또 뭔지 생각할 겨를은 없었다. 나는 감이 꽤나 좋은 편이었고 이럴 때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무척이나 잘 알고 있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보스.”

   “오오-! 알고 있구만, 자네!”

     

   숙식을 공짜로 해결할 수 있는 방도가 생겼는데 어찌 이를 거부하겠는가? 내가 신분도 능력도 없는 무능력자에 불법체류자라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새 일자리를 얻은 나는 씨익 웃으며 새 보스에게 물었다.

     

   “그래서, 무슨 조직인가요?”

   “흥흥- 악의 조직일세.”

   “……무슨 조직이요?”

   “악의 조직.”

     

   레갈리아는 손가락을 좌우로 까딱거리며 답했다.

     

   “이른바 빌런 집단이지.”

     

   ……조금 더 고민해보고 받아들였어야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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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Evil Scientist is Too Competent

The Evil Scientist is Too Competent

Status: Ongoing
I became a scientist for an evil organization. …But I’m too compe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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