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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

   내가 문을 두드리자마자 안에서 근엄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들어와라.”

   

   루시의 키 두 배는 될 듯한 문을 꾸역꾸역 밀어서 열고 나니 숨이 거칠어졌다.

   

   이 허접한 메스가키. 평소에 운동을 얼마나 안 했으면 몸이 이 꼴이냐.

   

   몇 번 심호흡을 해서 숨을 진정 시킨 후 안으로 들어가니 서류 작업을 하고 있던 루시의 아버지 베네딕 알른이 고개를 들었다.

   

   살짝 들린 눈썹과 무표정한 눈동자. 입가를 가리는 멋들어진 수염과 각잡힌 얼굴선.

   

   그 아래로 보이는 목인지 어깨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거대한 근육.

   

   전체적으로 사람보다는 오크나 트롤에 가깝단 인상을 주는 베네딕은 나와 눈을 마주하더니 이내 그 얼굴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허술한 웃음을 지었다.

   

   “루시. 무슨 일이니?”

   

   다른 사람들에겐 철혈백이라 불리며 공포의 대상으로 군림하는 베네딕이지만 루시의 앞에선 그저 바보 같은 한 사람의 아버지에 불과했다.

   

   괜히 루시가 저택의 폭군이 될 수 있었던 게 아니다.

   

   이 무서운 사람이 루시를 오냐오냐하는데 그 누가 루시를 혼낼 수 있었을까!

   

   ‘그냥 보고 싶어서 왔어요.’

   “바보 아버님. 내가 아버님을 만나러 오는 데 왜 이유가 필요해?”

   

   “듣고 보니 그렇구나! 우리 루시가 나를 만나러 오는 데 이유는 필요 없지!”

   

   봐라. 딸한테 바보 소리를 듣고도 기뻐서 어찌할 줄을 모르는 저 모습을.

   

   이 사람은 루시가 허접이니 멍청이니 같은 소리를 지껄여도 기뻐할 게 분명하다.

   

   흐물거리는 미소를 짓던 베네딕은 깃펜을 내려 놓은 후 두 팔을 쫙 펼쳤다.

   

   처음 루시의 몸에 빙의했을 적에는 저 행동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지 못했지만 지금은 다르다.

   

   지난 삼일 동안 저 딸바보 트롤에게 시달린 나는 저 놈이 무얼 바라는지 알고 있다.

   

   하고 싶지는 않지만, 차라리 혀를 깨무는 게 낫단 생각이 들지만 지금 난 베네딕에게 무언갈 요청하는 입장이다.

   

   최대한 저 트롤의 기분을 좋게 만들어 놔야 이후 내 부탁을 들어 줄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래.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야. 내 생명을 위해선 해야만 해.

   

   속으로 그리 되뇐 나는 눈을 딱 감고 트롤의 품 안으로 뛰어 들었다.

   

   잘못될 것은 걱정하지 않았다.

   

   내가 전력을 다해 몸통박치기를 한다 해도 트롤의 몸엔 상처 하나 낼 수 없을테니까.

   

   베네딕은 너끈히 나를 받아내곤 너털웃음을 흘렸다.

   

   “루시. 아무리 그래도 눈을 감고 뛰어들면 위험하단다.”

   

   ‘당신을 믿었어요.’

   “바보 아버님. 날 받아줄 자신도 없는 허접이야?”

   

   “설마. 내가 누군데.”

   

   눈웃음을 지어 보인 베네딕은 루시의 얼굴보다도 큰 손을 가지고 내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섬세함이라곤 조금도 없어 보이는 사람이지만 그의 손길은 무척이나 부드럽다.

   

   생판 남인 나조차도 베네딕이 루시를 아낀다는 걸 알 수 있을 정도로.

   

   ‘저기.’

   “바보 아버님.”

   

   “뭐니? 루시.”

   

   ‘부탁….’

   “부탁하고 싶은 게 있는데.”

   

   “말해보렴.”

   

   ‘몇 달 뒤면…’

   “조금 있으면 아카데미 시험이잖아?”

   

   나는 귀여운 딸이다.

   

   나는 이 트롤의 귀여운 딸이다.

   

   …트롤한테 귀여운 딸이 나올 수 있나?

   

   몰라. 그런 거 신경 쓰지 마. 지금은 베네딕의 마음에 드는 거만 생각해.

   

   ‘저..’

   “나 그게 걱정이 돼서…”

   

   루시는 예쁘다. 어지간히 오그라드는 행동을 한다 하더라도 귀여워 보일 정도로.

   

   예를 들어 베네딕의 무릎 위에 앉아서 물놀이 하듯 양발을 차면 정말 고민이 있는 여자아이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러니? 이 아버지가 무얼 해주면 좋겠니. 내가 할 수 있는 거라면 뭐든 해주마!”

   

   딸바보 베네딕은 너무도 쉽게 내게 넘어왔다.

   

   그는 내게 진지한 고민이 있다 여긴 건지 턱을 치켜들면서 단언하듯이 말을 했다.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당신 이래도 되는 거야?

   

   뭐든 해주겠다는 말은 그렇게 쉽게 꺼내도 되는 게 아니라고!

   

   그렇다고 말릴 생각은 없지만!

   

   ‘정말로요?’

   “정말로?”

   

   “그럼 물론이지! 이 아버지가 언제 거짓말 한 적 있니?”

   

   어쩔 수 없네.

   

   준다는 걸 안 받을 수도 없잖아.

   

   아버지로써 멋있는 척을 좀 하고 싶으시는데 한껏 기분을 낼 수 있도록 해줘야지.

   

   ‘그럼…’

   “그럼 창고에서 나한테 필요한 걸 가져가도 돼?”

   

   “거기에 네가 가지고 싶은 게 있니?”

   

   ‘네!’

   “응!”

   

   “그래. 그럼 마음대로 가져가렴.”

   

   베네딕이 확언을 하며 웃음을 짓기에 나도 같이 웃어줬다.

   

   분명 당신이 마음대로 가져가라고 했다?

   

   이제 거기서 뭘 얼마나 가져가던 간에 그건 내 탓 아니다? 허락한 당신 잘못이다?

   

   *

   

   베네딕의 허락을 받은 후 그의 기분을 띄워 주기 위해 여러 애교를 부린 나는 집무실에서 빠져나오자마자 헛구역질을 했다.

   

   정신적인 피해가 심대했다.

   

   살다 살다 남자한테 아양을 부릴 날이 올 줄이야.

   

   생존을 위해서라면 존엄성 따위 얼마든지 내버리겠다고 결심했지만 이건 좀 마음의 피해가 컸다.

   

   방금 만큼은 [메스가키]스킬에 감사했다.

   

   스킬이 행동을 어느 정도 강제하지 않았다면 난 진즉에 쓰러졌을 거야.

   

   그래도 얻은 건 많아.

   

   알른 가문의 창고에서 원하는 물건을 가져갈 수 있게 된 거니까.

   

   소울 아카데미 고인물의 파밍 실력을 보여줄 때가 왔군.

   

   나를 이 메스가키의 몸에 집어넣은 개같은 신님. 오늘만큼은 제가 정의로운 파밍을 할 수 있게 해주세요.

   

   말은 이렇게 했지만 거기에 있는 물건을 모조리 쓸어 올 생각은 없다.

   

   아무리 베네딕이 루시를 오냐오냐한다고 해도 정도가 있을 테니까.

   

   꼭 필요한 물건 몇 개만 가지고 나올 생각이다.

   

   그 필요한 물건들의 값이 좀 되겠다고 했지만 베네딕은 배포가 큰 사람이니까 괜찮을 거야.

   

   아마도.

   

   창고에 들어가도 좋단 허락을 받긴 했지만 바로 창고로 갈 순 없었다.

   

   창고의 열쇠를 지닌 건 베네딕이 아니라 저택의 집사장이었기에 그를 먼저 찾아가야 했다.

   

   집사장을 찾아 복도를 걷던 중 창문을 닦는 시녀가 보여 그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

   “거기 너.”

   

   시녀는 내 목소리를 듣자마자 그대로 굳더니 로봇마냥 끼기긱거리며 목을 돌렸다.

   

   괴물이라도 본 듯한 그 표정은 뭐야.

   

   그렇게 루시가 싫냐?

   

   인정. 나 같으면 존나게 싫었을 것 같긴 해.

   

   그래도 겉으로 티를 내면 안 되지. 이전의 루시였으면 바로 꼬투리를 잡고 탈탈 털어 줬을 걸.

   

   ‘집사장이…’

   “집사장이 어딨는지 알아?”

   

   “넵! 1층 로비 청소를 감독하고 계십니다!”

   

   ‘알겠어요. 고맙습니다.’

   “흐응. 그렇단 말이지?”

   

   이 메스가키어 번역은 어떤 방식으로 되는 건지 아직도 모르겠네.

   

   뒤에 고맙습니다 라는 말은 어디로 날아간 거냐?

   

   시녀한테 감사를 표하는 건 메스가키적으로 해선 안 되는 일인 거야?

   

   속으로 한탄을 하며 1층으로 향하니 로비에서 청소를 지휘하는 집사장을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이전의 시녀와 달리 나를 보고서도 정중함을 표할 뿐이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아가씨?”

   

   ‘창고에 …’

   “창고에 들어가고 싶어.”

   

   “죄송합니다. 아가씨. 그건 백작님의 허락이 있어야 하는 일입니다.”

   

   ‘허락받았어요.’

   “허접 집사. 내가 허락도 안 받고 억지를 부린다고 생각해?”

   

   “죄송합니다. 허락을 받으셨다니. 제가 몰랐군요.”

   

   자기 허리춤에 올까 싶은 여자애가 시비조로 말을 거는데도 불구하고 집사장의 표정은 한 치도 흔들리지 않았다.

   

   이게… 어른의 품격?

   

   집사장은 시녀에게 무어라무어라 지시를 하고는 나를 데리고 창고 쪽으로 향했다.

   

   알른 가문의 창고는 예상했던 대로 꽤나 규모가 있었다.

   

   이럴 줄 알았어. 게임 안에서도 백작급 가문을 털어 먹으면 얻는 게 많았으니까.

   

   대부분은 금이나 보석처럼 현물의 가치를 지닌 물건인가.

   

   비쌀 것 같기는 한데 지금 내게 현금은 무의미했다.

   

   돈이 많으면 무얼 하나 그걸 쓸 방법이 없는데.

   

   뭣보다 저런 건 나중에 얼마든 원하는 만큼 가질 수 있다.

   

   지금의 내게 필요한 건 당장에 효용을 발휘할 수 있는 물건이었다.

   

   한참 안을 둘러보던 나였지만 수많은 물건들이 나열되어 있는 창고에서 내가 바라는 걸 찾기는 쉽지 않았다.

   

   이게 게임이었다면 보기만 해도 어떤 물건인지를 알 수 있으니 상관이 없지만 내 눈으로 식별을 하려니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이래서야 원. 나중에 식별 계열 스킬을 얻든가 해야지.

   

   지금은 그냥 집사장한테 찾아달라고 부탁을 할까.

   

   ‘집사장…’

   “허접 집사. 영약은 어디 있어?”

   

   영약.

   

   소울 아카데미의 고인물들이 눈에 불을 켜고 찾아내려 하는 아이템.

   

   영약의 효과는 간단하다.

   

   아무런 조건 없이 섭취하는 것만으로 특정 능력치를 영구적으로 상승시켜 주는 것이다.

   

   실로 허접한 메스가키의 신체 능력치를 빠르게 끌어올리기 위해선 영약이 필요했다.

   

   어제 대충 실험을 해봤는데 지금 루시의 몸으론 무기를 드는 건커녕 바깥을 달리는 것조차 할 수 없었다.

   

   경보로 20초쯤 뛰면 지쳐서 폐가 터질 것 같은 몸으로 무슨 단련을 해봐야 무슨 의미가 있겠어.

   

   최소한 멀쩡하게 움직일 수 있을 정도는 돼야 단련을 하든가 말든가 하지!

   

   그러니까 영약 내놔. 영약. 백작 가문 창고면 두 세 개 정도는 보관돼 있을 거 아냐.

   

   “영약은 왜 찾으십니까?”

   

   내 물음에 집사장은 질문으로 답했다. 왜 찾냐니?

   

   ‘제가…’

   “내가 먹으려고 그런다. 왜?”

   

   “…아가씨. 영약은 분명 아가씨를 강하게 만들어 줄 테지만 거기엔 그만한 대가가 따릅니다. 영약을 먹게 되면 몸이 뒤틀리는 고통을 겪게 될 터인데 그걸 알고서 말씀하시는 겁니까?”

   

   몸이 뒤틀리는 고통이라니? 게임에는 그런 묘사 없었는데?

   

   아하. 집사장. 영약이 워낙에 귀한 물건이니까 겁을 줘서 못 가져가게 하려는 수작이구나?

   

   음흉하네. 그렇지만 내가 그런 거에 현혹될 것 같아

   

   난 소울 아카데미 고인물이라고! 내가 이 게임에 대해서 모르는 게 있을까 보냐!

   

   ‘괜찮아요.’

   “허접 집사. 얌전히 내놓기나 해.”

   

   “그러시다면… 알겠습니다.”

   

   집사장은 잠시 말을 망설이다 이내 고개를 끄덕이더니 내게 영약을 가져다 주었다.

   

   “이게 힘을 늘려주는 영약이고, 이 쪽은 체력을 늘려주는 영약입니다.”

   

   지금 내게 꼭 필요한 체력 상승의 영약이 두 개. 거기에 더해서 힘 상승의 영약이 하나.

   

   그를 확인한 나는 비명에 가까운 탄성을 질렀다.

   

   체력 상승의 영약 하나만 있어도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두 개나 있다니!

   

   거기에 힘 상승의 영약도 내게 꼭 필요한 물건이잖아!

   

   내가 루시가 되고서 지나간 삼일 동안 가장 행복한 순간을 고르라 한다면 난 당당히 지금이라고 말할 거야.

   

   “이 중 무엇을 가지고 가시겠습니까?”

   

   ‘다.’

   “다.”

   

   “예?”

   

   ‘다 가지고 갈 거에요.’

   “허접 집사. 늙어서 귀가 잘 안 들려? 다 가지고 간다고 했잖아.”

   

   숫자도 딱 맞네!

   

   소울 아카데미에서 영약은 1년에 딱 세 개만 섭취할 수 있다.

   

   그런데 마침 집사장이 가져다 준 영약은 세 개지 않나.

   

   이건 하늘이 내린 운명이야. 그러니 이건 내가 다 가져가야겠어.

   

   죄책감은 없었다.

   

   이거라도 있어야 내가 살 수 있는 상황인데 죄책감은 무슨 죄책감이야!

   

   원래 빙의자는 이런 거 다 처먹는 거라고 그랬어!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살고 싶으면 뭐든 해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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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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