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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

   

    집에 돌아온 춘봉이는 대뜸 길바닥에서 주워온 나뭇가지 하나를 내밀었다.

   

    “휘둘러.”

    “뭐 알려주는 것도 없이?”

    “일단 해보라고 팍씨.”

   

    어린 것이 버르장머리 없게. 서준은 툴툴대면서도 나뭇가지를 쥐고 허공에 휙휙 휘둘렀다.

   

    근데 이거 은근 손에 착착 감기네. 아무래도 레어 나뭇가지를 득템한 모양이다. 

   

    하지만 춘봉이의 눈에는 영 차지 않았나 보다.

   

    “뭐…, 평범하네.”

    “그럼 뭐 나뭇가지 하나 잡았다고 하늘이라도 베겠냐?”

    “또, 또 지랄.”

   

    춘봉이 한숨을 내쉬며 서준을 노려봤다.

   

    사실 아무리 생각해도 저 서준이라는 놈은 상당히 의심스러웠다. 일단 딱 봐도 뒷골목 출신은 아니다. 무언가를 먹을 때 반듯한 예절이 느껴지는 것까진 아니어도 어느 정도의 격식은 느껴졌다.

   

    ‘세가의 자제인가? 그렇다기에는 무공을 배운 흔적이 아예 없는데.’

   

    쯧, 혀를 찬 춘봉이 나뭇가지를 휘두르는 서준의 옆구리를 찔렀다.

   

    “억! 아 뭐!”

    “시끄러. 이제 그만 됐으니까 저기 앉아봐.”

   

    그래도 뭐…, 괜찮은 놈인 것 같으니까. 삼재검법 정도는 알려줘도 상관 없겠지.

   

   

    *

   

   

    하여간 변덕스러운 꼬맹이라니까. 생리 하나?

   

    서준이 툴툴대며 춘봉이 가리킨 자리에 앉았다. 

   

    ‘그래도 귀여운 맛이 있긴 하지.’

   

    처음에는 상당히 경계하는 것 같더니, 며칠 지났다고 이제는 은근히 졸졸 쫓아다닌다. 

   

    어린 나이에 이런 뒷골목에서 살았으니 삶이 꽤 고달팠던 걸까? 애정결핍이 있어도 이상할 건 없었다.

   

    “일단 닥치고 들어봐. 별로 어렵진 않으니까 금방 외울 거야.”

   

    춘봉이 레어 나뭇가지를 손에 쥐고 강의라도 하듯 땅에 찍찍 그림을 그렸다.

   

    “자, 읽을 수 있냐?”

    “천, 지, 인?”

    “뭐야. 글도 읽을 줄 알아? 이거 영 수상한데.”

    “아무리 그래도 이건 인마. 엉? 동네 꼬맹이도 이 정도는 읽겠다.”

   

    天, 地, 人

   

    기본적인 한자다. 

   

    어라? 그러고보니 여기 한국어 안 쓰는구나? 새삼 이제 와 생각해보니 말이 통하는 것도 신기하다. 이게 그건가? 빙의자 버프?

   

    “그럼 이거는?”

   

    춘봉이가 바닥에 괴상한 그림 하나를 그려놨다.

   

    “뭔데 이게.”

    “포도葡萄.”

    “이건 빡세네. 다른 건 맞힐 수 있을 듯?”

    “뭐래.”

   

    춘봉이가 한숨을 내쉬며 하늘 천 자를 가리켰다.

   

    “삼재검법은 세 가지 초식으로 이루어진 검법이야. 각각 하늘과 땅, 사람을 본따 만들어진 초식들이고, 그 이치에 따라 만들어진 심법이 삼재심법이지.”

    “오, 심법.”

    “별거 아니니까 그딴 표정 짓지 말고. 아무튼. 심법에는 구결이 있어. 그리고 이제 그걸 네가 외워야 돼.”

   

    큼큼, 춘봉이가 목을 가다듬더니 말을 이었다.

   

    “본디 사람은 땅에서 나 하늘로 오르는 것을 목표로 하는 미물이요, 하늘에 닿아 천인이 되었을 때……”

   

    그렇게 길진 않았다. 막힘없이 읽었을 때 삼 분 정도면 될 것 같은 길이다.

   

    근데 그걸 듣고 한 번에 외우는 건 또 다른 얘기지.

   

    “어, 야 잠깐만. 다시.”

    “본디 사람은….”

    “쓰읍…. 천인부터 다시 좀. 헤헤.”

    “헤헤는 뒤질라고 이게. 하아…. 하늘에 닿아 천인이 되었을 때……”

   

    어떻게든 구결을 얼추 외우고 나자 진이 다 빠졌다. 

   

    “이걸 왜 외우고 앉아 있어야 되는 건지….”

    “사실 안 외워도 돼.”

    “뭐요? 이 새끼가.”

   

    가까스로 살인 충동을 참아냈다. 잘했다 이서준. 어린애를 후려패는 건 아무리 그래도 좀 그렇지.

   

    “근데 안 외우면 병신인 것도 맞지. 구결을 외우는 것만으로 네 무의식에 어느 정도 무공의 기반이 되는 심상이 깃들 테니까. 아니면 나중에 주화입마나 사술에 걸렸을 때 구결을 외면 어느 정도 도움이 되기도 하고.”

   

    이게 그냥 아무 소리나 지껄여놓은 게 아니란 말이야.

   

    춘봉이가 나뭇가지로 서준의 머리를 툭툭 두드렸다. 뭔가 뭔가다. 애가 참 똑똑하네.

   

    “너 원래 있는 집 자식이었냐?”

    “무, 무, 뭐…!? 아니거든!?”

    “아, 오케이.”

    “뭐가 오케이야!”

   

    팔짝팔짝 날뛰는 춘봉의 모습에 서준이 미간을 찌푸렸다.

   

    ‘오케이를 알아들어? 진짜 사이비 무협인가 보네.’

   

    원래 이 시절에 중국이 서양하고 교류를 했었나? 역사를 잘 아는 것도 아니라 모르겠다. 애초에 이 세계가 원래 세계의 역사를 따르는지도 잘 모르겠고.

   

    “자, 선생님. 그러면 우리 심법 한 번 해볼까요?”

    “으극…!”

   

    춘봉이 이를 갈면서도 서준의 뒤에 서 그의 등에 손바닥을 붙였다.

   

    “일단 기를 느끼는 게 먼저야. 그거 못 하면 그냥 쓸데없는 고생한 거니까 알아두고.”

    “괜찮아. 난 아마 잘할 듯.”

    “무슨 근거 없는 자신감이래.”

   

    춘봉이 픽 웃으며 설명했다.

   

    “이제 너한테 기를 불어넣을 거야. 근데 아마 너무 미약해서 큰 도움은 안 될 거고, 알아서 잘 느껴봐.”

    “그 무슨 무책임한 소리를.”

    “시작한다. 오래 못 하니까 집중해.”

   

    서준이 눈을 감았다. 옷 한 겹 너머 춘봉의 손에서 온기가 느껴진다. 그 상태로 집중하고 있자니 온기 속에서 무언가 간질간질한 감각이 느껴지는 것도 같았다. 

   

    ‘이게 기 맞나?’

   

    어렴풋이 붙잡은 감각을 따라 시야를 확장하니 그 무언가가 온 세상에 퍼져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가장 존재감이 뚜렷한 곳은 스스로의 체내. 그 존재감을 확실히 붙잡고 나서야 눈을 떴다.

   

    “뭐야. 왜 벌써 눈을 떠? 이렇게 집중력이 없어서야.”

    “된 거 같은데?”

    “뭐? 얘가 또 지랄이네.”

   

    춘봉이 비웃으며 등에 대고 있던 손을 조금 더 딱 붙였다.

   

    “네가 눈 감은 지 1분도 안 지났거든? 벌써 기를 느꼈으면 내가 손에 장을 지진다.”

    “흠…. 이게 아닌가?”

    “한 번 움직여보든가. 느꼈으면 어느 정도 뜻대로 움직이긴 할 테니까.”

   

    뭐, 될 리가 있나. 과거 무신武神이라 불리던 존재도 1분 만에 기를 느끼지는 못 했을 텐데.

   

    춘봉이 쯧쯧 혀를 찼다.

   

   

    *

   

   

    “뭐, 뭐야 미친.”

   

    이 새끼 진짜 나한테 사기치는 거 아니야?

   

    쩍 벌어진 춘봉의 입이 다물어질 생각을 못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춘봉의 손바닥에서 느껴진 것이다. 서준의 기가 뜻대로 움직이는 것이!

   

    춘봉의 입장에서는 이놈이 정말로 세가 출신은 아닌지, 자신을 속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만약 그렇다면 이렇게 허술하게 사람을 속인다고? 아무리 그래도 어느 정도 설득력은 있게 사람을 속여야 할 것 아닌가.

   

    지가 무슨 고금제일의 천재라는 설정도 아니고. 만약 그런 설정이라면 그냥 머리가 모자란 거다.

   

    “나는 MUGONG 고수가 될 거야~.”

    “…재수 없게 혀는 왜 그렇게 굴리고 난리야?”

    “뜌따 뜌따이~.”

    “…미친놈 진짜.”

    “뜌따따 우따야~.”

   

   아닌가? 그냥 모자란 새끼 맞는 거 같기도 하고.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까지 모자란 놈이 세가 출신일 리는 없지. 암, 그렇고 말고.

   

    “운이 썩 좋았나 보네.”

    “야, 춘봉아.”

    “뭐.”

    “너네 집에 인두 같은 건 있냐?”

    “인두? 없는데? 그건 왜.”

   

    서준이 벌떡 일어나 춘봉의 손목을 붙잡았다. 춘봉이 기겁해 소리쳤다.

   

    “뭐, 뭐 하는데 미친놈아!”

    “장 지진다며!”

    “…진짜 지지게?”

   

    춘봉이의 눈이 파르르 흔들린다. 그러더니 눈을 딱 감고 손을 내미는 게 아닌가.

   

    “머, 멋대로 하든가!”

    “아니, 그건 좀. 내가 사이코패스도 아니고.”

    “사이…, 뭐?”

    “뭐야. 이런 말은 또 없냐?”

    “도대체 뭐라는 거야.”

   

    서준이 한숨을 내쉬며 손을 내저었다.

   

    “됐다. 아무튼 그러면 심법은 된 거지?”

    “아니? 뭔 소리야. 이제 시작이지.”

   

    기를 느꼈으니 이제 단전을 만들 차례다.

   

    “아….”

   

    벌써 피곤해진 서준이 이마를 탁 쳤다.

   

   

    *

   

   

    그날 하루는 단전을 만들고 나니 순식간에 증발해버렸다.

   

    다음날, 구멍난 천장으로 새어들어오는 햇빛에 눈을 뜬 서준이 벌떡 기상했다.

   

    “힘세고 좋은 아침!”

   

    상체를 일으킨 채 몸을 이리저리 풀어보자 왠지 모르게 훨씬 개운한 느낌이다. 평소보다 힘이 넘치는 듯한 느낌이랄까.

   

    “아아…, 그런가. 이게 무공인 것인가.”

   

    나도 이제 무인!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하려는 서준의 귓가에 깊디깊은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하아…. 아침부터 피곤하지도 않냐? 이제 막 삼류나 됐을 놈이 뭔 무공 타령이야.”

   

    머리를 벅벅 긁으며 일어난 춘봉이가 쩌억 하품을 하며 걸어나갔다.

   

    “일어났으면 무공 가르쳐 준 값이나 해. 오늘은 네가 밥 좀 벌어봐라. 누…, 형은 망이나 볼 테니까.”

    “음, 좋지. 서로의 합의가 없는 반영구적 위치 이동. 내 버킷리스트 중에 하나였어.”

    “또 지랄이지.”

   

    서준은 대충 눈곱을 떼어내며 잔뜩 금이 간 물그릇에 담긴 물을 들이켰다.

   

    “우욱…. 이딴 거 마시고 살면 안 걸릴 병도 걸리겠다.”

    “그래서 다들 일찍 뒤지잖아.”

    “저런.”

   

    입 안에 남은 찝찝한 맛을 삼킨 서준이 쭉 기지개를 켰다.

   

    “그럼 가볼까.”

   

    고상한 말로 양상군자. 막말로 도둑놈. 오늘이야말로 일차전직의 날이다.

   

   

    *

   

   

    너는 커서 뭐가 되려 그러냐. 도둑질로 먹고 살 생각이냐?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사실 이건 뭘 모르는 소리다. 도둑질은 엄연히 예체능의 영역이고, 당연하게도 재능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서준은 선배 도둑 춘봉의 충고를 되새겼다.

   

    ‘첫째는 은밀, 둘째도 은밀이야.’

   

    걸리지 않는 것이 최선. 만약 걸렸다면 잡히지 않고 튀는 것이 차선이다.

   

    ‘이건 도둑질보다는 소매치기의 영역에 가까워. 상대의 주의가 다른 데로 돌아갔을 때를 노려야 돼.’

   

    여기까지가 삼류의 영역. 하지만 이류 도둑놈은 조금 다르다.

   

    ‘어색하지 않게 상대의 주의를 다른 데로 돌릴 수 있다면 최고지.’

   

    일류까지는 잘 모르겠고, 오늘은 이류의 영역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아, 걸렸다.”

   

    좆됐네 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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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tial Arts Ain’t That Big of a Deal

Martial Arts Ain’t That Big of a Deal

무공 뭐 별거 없더라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I fell into a phony martial world. But they say martial arts are so hard? Hmm… is that all there is to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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