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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

   세상은 불공평하고 엿 같다.

   크라슈가 늘 하던 생각이었다.

     

   그걸 깨달은 건 8살 무렵이었다.

   형과 누나들을 따라 검을 들었던 그 날.

     

   크라슈는 세상이 자신을 버렸음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검을 휘두르는 자신 스스로가 무척이나 형편없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사실 8살 어린애가 검을 휘두르는 게 애초에 말이 되냐만은.

   크라슈가 속한 가문은 그 평균적인 반응이 통용되지 않는 곳이었다.

     

   스타론 왕국의 최강의 가문.

   발하임.

     

   그곳에서 태어난 직계는 모두가 천재이고, 모두가 난 놈이었다.

   딱 한 명, 발하임의 수치 막내 크라슈를 제외한다면 말이다.

     

   그럼에도 발버둥 쳐서 창공의 세대까지 어떻게든 기어들어 가긴 했으나.

   그 마지막은 결국 동료라 생각했던 놈들의 배신이었다.

     

   저주밖에 담을 수 없는 몸뚱어리.

   참, 한심한 인생이었다고.

   크라슈는 그렇게 생각했다.

     

   오늘 눈을 뜨기 전까지는.

     

   번쩍!

     

   크라슈가 뜬 눈 사이로 흐릿하게 비추는 천장을 보았다.

   식은땀이 전신을 흠뻑 적셨다.

     

   동시에 앞으로 뻗어진 자기 손이 보였다.

     

   마지막까지 발버둥 치며 아서를 향해 뻗은 손.

   그 손을 멍하니 보고 있던 크라슈가 점차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맴맴-

     

   창문 너머에서 매미 소리가 자기 귀에 속삭여 들어왔다.

   흘러 들어오는 섬광이 지금이 현재 여름 낮인 것을 가르쳐 주었다.

     

   여름 특유의 후끈한 열기가 이마에 땀방울을 맺히게 하였다.

   멸망해 가던 세계는 지독할 만큼 추운 겨울이었으니 정반대되는 계절이었다.

     

   그의 눈동자가 다시금 손으로 향했다.

     

   “허어?”

     

   왜냐하면 자기 눈에 비춘 손이 멀쩡했기 때문이었다.

   크라슈의 사고가 마비되었다.

     

   그럼과 함께 그는 한 가지 사실을 더 깨달았다.

   분명 보이지 않았던 한쪽 눈이 제대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뿐만 아니었다.

   몸 전체가 예전과는 다르게 이상할 정도로 가벼웠다.

     

   주룩-

     

   크라슈의 이마를 타고 땀방울이 볼까지 천천히 흘러내렸다.

   주변을 돌아보니 이 방은 익숙한 방이었다.

     

   왜냐하면 자신이 과거 발하임 가에 머물 때 지내던 방이었으니까.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가.

   그 답은 간단했다.

     

   ‘나 설마.’

     

   마지막에 아서를 향해 뻗었던 손에 담겼던 블랙 후드.

   스킬도 훔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희망을 사용했던 자신의 스킬이.

     

   ‘아서의 회귀를 빼앗았다.’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오싹하니 소름이 돋았다.

   동시에 크라슈는 자기 손을 내려 보았다.

     

   혹시나 했지만 정말로 스킬까지 훔칠 수 있었을 줄이야.

   크라슈는 자기 손을 꽈악 쥐었다.

     

   마지막 도박 수가 성공했다는 전율이 전신에서 치솟았다.

     

   ‘사실 진작 확인해 볼 수 있긴 했지.’

     

   저주까지 훔칠 수 있는 능력이다.

   스킬을 훔칠 수 있던 것은 당연한 걸지도 몰랐다.

     

   하지만 크라슈는 굳이 시험하지 않았다.

     

   훔친다 한들 남이 평생토록 갈고 닦은 스킬을 잘 사용할 자신도 없을뿐더러.

   스킬도 훔칠 수 있다고 생각했을 때는 이미 저주로 몸뚱어리가 망가져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자신의 블랙 후드에는 명백한 단점이 존재했다.

     

   ‘훔치는 난이도는 결국 상대 평가야.’

     

   길에서 주운 돌이라도 누군가에게는 가장 소중한 것이 될 수 있다.

   그 경우 일개 돌이어도 블랙 후드로 훔치는 것은 쉽지 않다.

     

   ‘블랙 후드를 사용할 때 나오는 자물쇠가 조건이고.’

     

   블랙 후드를 발동하면 나오는 자물쇠의 조건은 천차만별이다.

     

   그리고 그 조건을 달성해야만 자물쇠가 열려 그 안에 있는 것을 얻을 수 있다.

     

   그것이 바로 블랙 후드였다.

     

   ‘그러니 능력은 더더욱 훔치기 힘들지.’

     

   당연하지만 자기 능력은 어느 사람이든 가장 소중한 것이다.

   그렇다 보니 조건의 난이도가 너무 높아 훔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런데 이번 경우는 어떻게 된 거지?’

     

   아서의 회귀를 훔치던 당시 크라슈는 자물쇠를 보지 못했다.

   단지, 블랙 후드를 발동 시킨 것만으로 아서의 회귀를 훔쳤다.

     

   그게 어떻게 가능했던 걸까.

     

   ‘혹시나지만.’

     

   크라슈의 머리에 스치는 생각이 하나 있었다.

     

   크라슈는 아서에게서 어렴풋이 받은 느낌이 있었다.

   그가 앳저녁에 지쳐 그저 멍하니 일을 반복하는 느낌을 말이다.

     

   크라슈가 보기에 아서는 이미 몇 번이고 회귀를 반복했다.

     

   회귀는 분명 엄청난 것이지만.

   그것을 몇 번이고 반복한다면 일반적인 정신은 버틸 수 없다.

     

   그것도 하물며 멸망을 향해 나아가는 세계라면 말이다.

     

   ‘그러니 아서는 그 세 년의 기억 전승이라는 선택까지 했던 거겠지.’

     

   다시금 회귀하더라도 최소한 옆에 사람이라도 두고픈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자신은 그런 사람조차 취급받지 못했다는 거지만.

     

   ‘어쨌든 아서의 마음속은 이미 회귀라는 능력을 지우고 싶어 했던 거였고.’

     

   그 결과 자물쇠조차 생기지 않을 정도로 손쉽게 회귀를 훔칠 수 있었다.

     

   ‘아서에게 있어서 회귀란.’

     

   어쩌면 저주였을지도 모른다.

   어떻게든 빠져나가고 싶은 저주 말이다.

     

   “잠깐만.”

     

   그러다 문뜩 크라슈는 다른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자신은 아서의 회귀를 훔쳐 과거로 회귀했다.

     

   그렇다면 자신이 알던 아서는 어떻게 된 걸까?

     

   ‘블랙 후드가 훔친 건 상대에게 남아 있지 않아.’

     

   애초에 남아 있다면 훔쳤다고 할 수가 없으니까 말이다.

   아서에게서 회귀를 훔쳤고, 그렇다면 아서에게는 회귀가 없다는 건 확실하다.

     

   그럼 자신이 알던 아서는 지금 멸망해 가는 그 이전 회차에 그대로 남겨졌다는 소리인가?

   멸망하여 쏟아지는 세계 침식의 유성우 앞에?

     

   “하, 하하.”

   

   크라슈의 입에서 헛웃음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꼴좋다. 아서.”

   

   

   

   

     

   네가 그토록 증오하던 회귀가 결국 마지막에 널 배신하게 될 줄 누가 알았겠냐.

   크라슈는 아서를 향해 비웃음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신을 고작 도구 취급 밖에 안 하던 그에게 딱히 동정은 생기지 않았다.

     

   사실 오히려 감사 인사를 받아야 하지 않을까.

   그가 그토록 싫어하던 회귀를 자신이 가져가 줬으니 말이다.

     

   ‘그래서 지금이 몇 년도지.’

     

   하지만 크라슈에게도 아서와 같은 문제점이 존재했다.

   그건 다름 아닌 이 세계의 종말을 안다는 것이다.

     

   창공의 세대조차 막지 못한 멸망.

     

   그것을 막지 못하면 자신 또한 죽는다.

     

   “썩을.”

     

   크라슈는 욕설을 내뱉으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적당히 근육 붙은 몸이 느껴졌다.

     

   재능은 없는 주제에 그래도 꼴에 살아 보겠다고 매일 같이 검을 휘둘렀었다.

   비록 형제들에 비하면 형편없지만 나름대로 최소한의 근육은 붙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거론 부족했다.

   크라슈의 눈이 자신을 비춘 전신 거울로 향했다.

     

   나이는 십 대 초반쯤 될까.

   자신의 기억 속보다 키도 작고, 똘망똘망한 푸른 눈동자가 선명히 보였다.

     

   ‘막을 수 있을까.’

     

   기껏해야 저주를 흡수하는 도구 취급밖에 받지 못했던 자신이.

   세계의 멸망을 막을 수 있는 걸까.

     

   그런 의문을 품던 크라슈는 두 주먹을 꽈악 쥐었다.

     

   ‘개소리 마.’

     

   막을 수 있을까가 아니라 막아야만 한다.

   멸망하면 뒤지는 건 자신도 똑같으니까.

   거기에 선택지는 없었다.

     

   그런 만큼 크라슈는 방문을 박차고 나왔다.

     

   오랜만에 보는 황량한 복도가 그의 두 눈에 들어왔다.

   이곳은 오래전, 자신이 어린 시절을 보냈던 발하임의 청송관이라는 곳이었다.

     

   말이 청송관이지 발하임 직계 중 가장 떨거지들을 유배시키는 곳이라 해석되어도 좋았다.

   청송관은 기껏해야 집사 한 명과 하녀 세 명이라는 소박한 인원으로 운영될 만큼 작은 관이니 말이다.

     

   ‘내가 여기에 있단 건.’

     

   10살쯤에 했던 증명 식이 끝마쳤다는 소리였다.

     

   “도련님? 어딜 그리 급히 가십니까.”

     

   그런 순간 밖으로 나온 그의 앞에 집사가 말을 걸어왔다.

     

   흰색의 수염이 눈에 띄는 집사의 이름은 알리오드.

   자신을 따라 청송관에 배치된 집사였다.

     

   그 얼굴을 보자 순간 크라슈의 눈이 치켜 떠졌다.

     

   ‘그렇구나. 알리오드도 살아 있던 시점이구나.’

     

   왜냐하면 알리오드는 이 발하임에서 유일하게 자신을 돌봐준 집사였기 때문이었다.

     

   크라슈는 실로 오랜만에 그의 이름을 불렀다.

     

   “알리오드.”

   “예, 도련님.”

     

   자신의 부름을 듣고 고개를 숙이는 알리오드를 보며 크라슈 또한 따라 웃음을 지었다.

     

   “셋째 형이 가문의 수치인 나를 죽이라며 준 독약은 이번에는 언제쯤 쓸 생각이냐.”

     

   알리오드의 얼굴이 두둑하니 굳었다.

   크라슈는 그 모습을 보며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었다.

     

   청송관 집사 알리오드.

   14살 때쯤, 크라슈가 먹는 스튜에 셋째 형에게서 받은 독약을 탄 이이자 크라슈가 태어나 처음으로 겪었던 배신.

     

   그 장본인이었다.

     

     

   * * *

     

   알리오드의 머릿속에는 혼란이 가득 찼다.

   눈앞에 있는 크라슈 발하임은 그가 태어났을 때부터 배정받은 발하임의 직계 자손이었다.

     

   유일하게 세계 최강의 강대국 에파니아 제국과 견줄 수 있는 스타론 왕국.

   그런 스타론 왕국이 제국과 견줄 수 있는 이유는 딱하나 발하임 때문이었다.

     

   그곳에서 태어나는 직계들은 하나 같이 타고난 무위를 지닌다.

   그렇기에 제국도 섣불리 스타론은 어찌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눈앞에 크라슈 발하임만큼은 달랐다.

   본래 발하임의 직계라 하면 10살이 되기 전 이미 수많은 신들이 그들을 점찍어 두며 계약하자고 조건을 제시해 온다.

     

   신들에게 있어 계약자가 뛰어나면 뛰어날수록 자신의 격이 올라가기 때문에 발하임 가의 직계들은 늘 신들의 우선순위에 있었다.

   그러나 크라슈 발하임은 달랐다.

     

   발하임 가에 내려오는 증명 식.

   10살이 되던 해, 자신이 발하임 가에 있어 얼마나 뛰어난 자인지 보여주는 그 증명식에서 마저 크라슈는 어떤 신과도 계약하지 못했다.

     

   타고난 무위조차 형편없는 그다.

   그는 결국 발하임의 수치로 여겨진 끝에 청송관까지 내몰리고 말았다.

     

   그런 그의 집사인 알리오드도 피가 말리는 일이었다.

   자신이 평생토록 따라야만 하는 직계 자손이 이토록 형편없으니, 그의 미래 또한 내정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도, 도련님,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알리오드는 당황 섞인 표정으로 크라슈를 향해 내뱉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자기 삶을 비관하며 망나니 같은 모습을 보이던 크라슈였다.

     

   그런 그가 불과 며칠 전에 받았던 제안을 알아차릴 거라고는 생각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뭔가 달라지셨어?’

     

   평소 크라슈의 눈동자는 삶의 의지를 잃어버린 듯, 힘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 사실이 더더욱 알리오드를 포기하게 했지만, 오늘만큼은 뭔가 달랐다.

     

   그의 눈에서는 이상할 정도로 강렬한 열망이 느껴졌다.

   마치, 하루아침에 사람이 바뀌기라도 한 것, 마냥 말이다.

     

   ‘대체 뭐가.’

     

   어젯밤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분명 어젯밤에 있었던 일이라고 해봤자 그가 검을 휘두르다 지쳐 잠든 것 말고는 기억이 없는데.

     

   알리오드가 당황하는 사이.

   크라슈는 자기 이마를 천천히 쓸어 올렸다.

   저주가 없는 덕분인지 머리카락의 결이 상당히 좋다.

     

   가문의 치욕이라곤 하나 그래도 스타론을 대표하는 귀족이니 관리를 잘 받은 덕택이었다.

     

   이것도 얼마 안 가 자신의 마음만큼 푸석푸석해지겠지만.

     

   ‘당황하고 있군.’

     

   알리오드의 얼굴을 보니 이번에는 좀 다를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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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부양펭귄 님 후원 감사합니닷!!! 참고해보겠습니다. 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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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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