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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

   EP.2

     

   “국가 재난이라는데 무슨 일이죠?”

     

   바로 옆에서 직원들이 모여 대화를 나누는 게 나의 눈에 들어왔다.

     

   “저 지금 전파가 안 터지는 거 같은데 혹시 전화되시는 분 계세요?”

   “인터넷도 먹통이에요.”

     

   현대기기의 오류는 사소하다면 사소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 작은 변수로 사람들의 불안은 마치 물에 풀린 잉크처럼 서서히 번지기 시작했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스마트폰의 인터넷을 확인했다.

   하지만 누군가의 말마따나 내 눈에 들어온 화면은 연결이 필요하다는 텍스트만 나올 뿐 우리가 익숙하게 보던 페이지는 떠오르지 않았다.

     

   “혹시 면접시험의 일환 같은 겁니까?”

     

   박조철의 말에 나는 멀리서 오리엔테이션을 준비하고 있던 나머지 직원들을 바라봤다.

   혹시나 말단 사원인 내가 모르는 어떤 시험 같은 게 준비되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단상 위를 뛰어다니는 몇몇 임원들이 나의 눈에 들어온다.

   얼굴에 당황이 가득한 채, 부하 직원들을 쪼는 그들.

   작금의 상황을 내가 바로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지금 이게 회사 측의 일정이 아니라는 것 하나만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뭔가 일이 생긴 것 같기는 한데.’

     

   나는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두근.

     

   하지만 그때, 심장을 조이는 듯한 불쾌한 감각이 나의 몸을 에워싸기 시작했다.

     

   “흐읍!”

   “허억!”

   “어어? 괜찮으……! 꺄악!”

     

   강당 끝에서부터 사람들의 헛숨 들이키는 소리가 전해져온다.

     

   쿵. 쿵. 쿵. 쿵.

     

   알 수 없는 압박감이 강당 안을 휘몰아친다.

   모든 사람이 주저앉거나 바닥에 엎어졌고 그나마 구석자리에 있던 사람들만이 벽에 기대며 엉거주춤 서 있었다.

     

   “허억. 허억.”

   “으으…”

     

   무형(無形)의 기운이 마치 소나기처럼 사람들을 적셔갔다.

   그리고 10초 쯤 지났을까? 온몸을 짓누르던 압박감이 점차 줄어들었고 귀에서 들리던 이명은 사람들의 웅성거림으로 바뀌어 있었다.

     

   “바, 방금 뭐였죠?”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이게 대체…….”

     

   사람들은 할 말을 잃었다.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사람도 보였고 속이 뒤틀렸는지 구역질을 하는 사람들도 군데군데 보였다.

     

   말로는 형용하기 힘든 본능의 영역이었을까?

   이곳의 모든 사람들이 이 순간만큼은 같은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불길함.

     

   그 순간 어디선가 기계음이 섞인 노이즈가 들려왔고 사람들은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치지직. 치직.

     

   “바, 방송 나온다! 다들 조용히!”

   “쉿쉿!”

     

   누군가의 재촉에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방송이 아니야.’

     

   나는 그나마 강당에서 스피커와 가까운 위치에 서 있었다. 그래서 알았다.

     

   머리에서 울리는 소리? 누군가 말을 한 것인가?

   아니, 애초에 이것이 소리는 맞는가?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머리가 쭈뼛거리기 시작한다.

   공기의 진동이 아닌 머리를 바로 관통하는 듯한 감각.

     

   그리고 마침내 머릿속을 헤매던 노이즈가 멈췄을 때.

     

   뚝.

     

   [차원. ■■■ ■■의 테스트를 시작합니다.]

     

   머릿속에서 시작된 차가운 음성이 침묵으로 정지된 시간의 끝을 알렸다.

     

   [확인된 인원, 401명.]

     

   [공간 좌표, (■■■,■■■). 도우미…… 치지■ 치■■직…

   …■■을 파견합니다.]

     

   파츠츠츳! 화르륵.

     

   강당의 중앙에 스파크가 튀며 순식간에 푸른 불꽃이 일었다.

     

   그리고 강당 입장부터 줄곧 가운데 자리에 앉아 있던 남자.

   그는 재수 없게도 그 갑작스러운 불꽃에 반응할 수 없었다.

     

   “아악!!”

     

   “소, 소화기…! 소화기 가져와!”

     

   주변에서 상황을 지켜본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디선가 급하게 소화기를 가져온 남성이 땅을 구르며 괴성을 지르는 남자에게 소화기를 뿌리기 시작했다.

     

   푸화악!

     

   다행히도 남자에게 옮겨붙은 불길은 금방 제압되었다. 허나 그것이 모든 불꽃을 제압했다는 말은 아니었다.

     

   허공에 생겨난 주먹만 한 불꽃이 서서히 몸집을 불려 나갔다.

   그리고 그 불꽃은 약 2m 가량의 높이에 도달했을 때 그 성장을 멈추기 시작했다.

     

   “증강현실?”

     

   누군가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곳이 게임 회사였기에 가능한 상상.

     

   하지만 사람이 다쳤다.

   저 위협적인 불꽃이 증강이나 홀로그램 따위의 그래픽일 리가 없었다.

     

   파직.

     

   “어?”

     

   주위가 너무 조용한 탓이었을까.

     

   “저기….”

     

   손을 들어 불꽃을 가리킨 누군가의 음성이 유난히 크게 들려왔다.

     

   “저기 뭔가가……”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푸른 불꽃을 향했다.

     

   짐승의 발.

     

   일그러진 불꽃의 아래로 보이는 그것은 토끼의 발을 닮아 있었다.

     

   하지만 저것을 그저 토끼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큰 괴리감이 느껴졌다.

   세상 그 누가 2미터짜리 이족보행 괴물의 그림자를 토끼라고 칭하겠는가.

     

   자박자박.

     

   마치 삼류 마술사가 쓸 것 같은 어설픈 지팡이를 든 채 두 발로 땅을 딛고 턱시도를 차려입은 토끼.

     

   어지간한 성인 남성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짐승이 자신의 입가로 손을 가져갔다.

     

   -크흠흠!

     

   …!!!

     

   한 번의 헛기침에 사람들이 얼어붙었다.

   하지만 토끼는 자연스럽게 모자를 벗으며 마치 중세유럽의 귀족처럼 우아하게 몸을 숙였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여러분.

     

   시계토끼.

   그 괴물은 유명한 영국 동화에 나오는 길잡이를 닮아 있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드디어 기대하던 ■■ 차원이네요! 자, 박수우우

     

   토끼가 익살스럽게 박수치는 시늉을 했다.

     

   언뜻 보기에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었으나 이곳의 어느 누구도 웃는 사람은 없었다.

   언제부턴가 토끼의 손을 떠난 지팡이가 우리의 머리 위를 선회하고 있었으니.

     

   -네 그렇죠. 아, 네네. 아! 게임 설명이요? 당연히 해드려야죠!

     

   토끼는 허공을 향해 한참 동안 알 수 없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공중에 있던 지팡이를 회수하며 ‘우리’를 바라봤다.

     

   -플레이어 여러분들?

     

   미지에 대한 공포가 사람들의 마음을 잠식하고 있었다.

     

   -그럼 슬슬 시작해 볼까요?

     

   숨을 죽인 채, 토끼에게서 눈을 떼지 못 하는 사람들.

   그리고 토끼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나의 시야 앞에 작은 홀로그램 창 하나가 떠올랐다.

     

   띠링.

     

   [플레이어들에게 임무를 부여합니다.]

     

   —

   『튜토리얼 #1 – 게임 시작』

     

   주제 : 생존

   난이도 : 튜토리얼

   임무 : 각자의 방법으로 24시간을 생존하십시오.

   보상 : ■■■

   실패 페널티 : 사망

   —

     

   “……이게 뭐야?”

     

   “…튜토리얼?”

     

   주변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눈에 보이는 것은 내 화면 하나뿐이었지만 모든 사람에게 같은 창이 띄워진 것이 분명해 보였다.

     

   “시인 씨도 이거 보이세요?”

     

   나에게 휴대폰을 빌렸었던 남자.

   박조철이 허공에 손가락질을 하며 나에게 물었고 나는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묵묵히 고개만 끄덕였다.

     

   중요한 것은 지금까지 일어난 일이 아닌, 앞으로 일어날 일.

   지금은 저 정체불명의 토끼를 관찰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귀찮으니 두 번 설명 안 할게요. 지금부터 여러분이 행할 모든 것들이 기록되고 남게 될 것입니다! 최선을 다해 살아남으세요! 후회하지 않을 만큼 혼신의 힘을 쏟으세요! 여러분들이 이룬 업적만큼 결과가 되돌아올 것일 테니까요!

     

   토끼가 뭐라고 떠들든 간에 사람들은 그저 얼어붙은 채, 녀석을 바라볼 뿐, 아무런 액션을 취하지 못했다.

     

   -여기 차원 인간들은 똑똑한 종자가 많으니 알아서 살아남을 거라 믿습니다!

     

   ‘살아남는다?’

     

   무엇으로부터?

     

   더 이상의 정보는 없었다.

   토끼는 그다지 친절하지 않았고 우리는 저런 괴물에게 질문을 던질 정도로 용감하지 못했다.

     

   -그럼 행운을!

     

   토끼는 이해할 수 없는 말만 잠시 떠들고는 등장했던 불꽃 속으로 유유히 걸어 들어갔다.

   압도적인 등장에 비해 생각보다 허무한 퇴장.

     

   사람들은 눈앞의 위협이 사라지자 참았던 숨을 몰아쉬며 주저앉기 시작했다.

     

   “하아… 이게 도대체 무슨……”

     

   옆에 있던 박조철이 뒷목을 쓸며 인상을 찡그렸다.

   하지만 잠시 후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건지 말을 하다 말고 공중을 향해 손을 휘적거렸다.

     

   “저기… 뭔가 달라졌습니다.”

     

   [00:01:00]…

     

   새롭게 떠오른 화면.

     

   “시간…?”

     

   [00:00:59]…

   [00:00:58]…

   [00:00:57]…

     

   홀로그램의 숫자가 1씩 줄어들고 있었다.

   아까 토끼가 말한 본론으로 이어지는 맥락일까.

     

   아니,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뭐가 어찌 되었든 지금 내 앞에 떠오른 게임 같은 시스템 창이 있는 이상 멍청하게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실패 페널티 : 사망]

     

   분명히 그렇게 적혀 있었다.

   24시간을 생존하라는 말과 함께.

     

   “다들 주목해 주십시오!”

     

   하지만 그때 누군가의 굵직한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강당 안을 메아리쳤다.

     

   사람들의 시선이 모인 곳은 정면의 단상 위.

   그곳에는 듬성듬성 흰머리가 돋보이는 중년인이 마이크를 들고 일장 연설을 준비하고 있었다.

     

   “저는 스카이 게임즈 인사부장 박동철 이라고 합니다. 현재 사태에 대해 알아보는 중이니 너무 심려치 마시고 우선 자리에서 대기해주시길 바랍……”

     

   사람은 겪어보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불안감을 느낀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누군가의 명령이나 부탁은 마치 마약과 같이 사람들의 뇌를 지배하는 경향이 있었다.

     

   다시 말해.

     

   ‘미쳤군.’

     

   위험하다.

   지난 평생을 눈치와 판단으로 살아온 나의 본능이 지금 당장 이 자리를 떠나라고 말하고 있었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지금,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과 단체로 움직인다는 것은 자살행위라는 외침과 함께.

     

   “지금 어디가십니까?”

     

   하지만 내가 발을 떼는 순간 박조철이 나의 팔을 붙잡았다.

   진지한 눈빛. 정확히는 알 수 없었지만 아마도 이게 면접과 관련이 된 것인지 마지막으로 확인하려는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화장실 갑니다.”

     

   “……”

     

   “따라오려면 따라오세요.”

     

   “아까 저분은 대기하라고 하지 않으셨……”

     

   “그럼 여기 있든가.”

     

   단호한 나의 반응에 박조철의 얼굴이 굳어졌다.

   박조철 자신도 지금 이 상황이 뭔가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을 것이다.

     

   지금 이곳에 대기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위험한 행동인지도.

     

   슥.

     

   결국 스스로 판단을 내린 듯 박조철은 아무 말 없이 내 뒤를 따랐다.

     

   하지만 우리와 비슷한 생각을 한 사람이 은근히 많았던지 출구를 향하는 사람은 예상과 달리 계속해서 불어나고 있었다.

     

   “거기! 지금 나가지 말라고 내가…!”

     

   등 뒤로 박동철 부장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들려온다.

   하지만 뒤돌아볼 겨를 따위는 없었다.

     

   [00:00:02]…

   [00:00:01]…

     

   그리고 나는 문에 거의 도달했을 때 마지막으로 타이머를 확인했다.

     

   [00:00:00]

     

   0초.

     

   모두의 타이머가 멈췄고.

     

   팟!

     

   [임무를 시작합니다.]

     

   모두의 타이머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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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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